Life & Travel/나의 행복한 레쥬메

KBS 명작스캔들 녹화를 마치고......세시봉 조영남과 함께

패션 큐레이터 2011. 7. 6. 06:00

 

 

화요일, KBS 본관에서 <명작스캔들> 녹화를 했다.

전문 패널로 들어갔는데, 생각보다 대본에 의지하기 보다, 자유롭게

생각을 치고 받고 들어가는 스타일이다보니, 타이밍을 많이 놓쳐서 제대로 이야기를

못했다. 많이 아쉽다. 순발력의 문제는 아닌것 같다. 예전 OBS에서 개그맨 강성범씨랑 할때도

별로 기가 죽진 않았는데, 그때는 되돌아보면 고정이다보니, 3회 정도 촬영하다보면, 서로의 스타일도 알고

언제 치고 나가야 하는지 약간의 감도 생기는 법인데, 이번에는 그런게 없었다. 그래도 아쉽다.

최원정 아나운서가 그림 속 폴카 댄스를 옆에 계신 음악평론가 선생님에게 춰보라고

했을 때 선생님이 약간 머뭇거리시던데, 그때 '도전'하고 외쳐볼 걸 그랬다.

 

이번 방송에서 다룬 그림이 르누아르의 <물랭 드 가레트>다

무도회 장면이 고운 그림이지만, 정작 이 시대의 가장 화려한 의상들과

첨단 패션의 런웨이이기도 했던 이곳에 대한 설명을, 제대로 못해서 많이 아쉽다.

방송 후, 다음에 기회를 봐서 못다한 이야기나 풀어야겠다. 가수 조영남 선생님을 직접 뵙기는

이번이 처음이어서, 어찌나 기쁘던지. 방송하실때 워낙 강력하게 주관을 이야기 하시는 분이지만, 사실

냉철하게 하나하나 살펴보면 곱씹어 볼 내용도 많았다. 어찌되었든 매일 캔버스에 작업 하시고

있다는 말씀에 박수도 쳐드렸다. 뭐든 성실한 사람이 좋다. 르누아르도 그랬고.

 

 

녹화가 한 시로 잡혀 있다 보니, 간단하게 분장실에 샌드위치랑 먹을 거리가

있었는데, 챙겨먹질 못했다. 방송 앞두고 뭐 먹을걸 입에 넣는 스타일도 아니고. 끝나고 나서

조영남 선생님께서 시원한 열무국수를 사주셨다. 한 그릇 쓱 다 비웠다. 옆에 계신 김정운 교수님. 원래

이분 베스트 셀러 작가에서 방송인으로 열심히 활동하시는 건 알고 있었는데 직접 뵈니

참 좋았다. 의외로 생각하는 방식이랄까, 복식의 심리학에 대해서 책을 쓰고 있다

고 말씀드리니까, 꼭 해보라고 격려해 주셨다. 힘을 얻어왔다.

 

이날 김정운 교수님이 방송에서 하신 말씀 중에

"남자의 절반은 여자지만, 여자의 절반은 남자가 아닌 그 무엇으로

채워져 있다"란 말을 하셨다. 은근히 곰삭이게 된다. 뭘까.....그 무엇이. 그런데

사실 이런 말을 들을 때마다, 왜 남자들은 항상 여성들에 대한 의존도가 높다는 말 같아서

나같은 성향의 사람들은 딱히 공감은 하기 어렵다. 남자와 여자의 차이를 넘어

인간이란 테우리의 아름다운 세상을 꿈꾸는 내겐, 여전히 화두다.

 

 

이번 명작 스캔들에서 다룬 <물랭 드 가레트>는

제 2 제정기 시대, 파리의 정치적 혼돈과 이와 역설적으로

늘어가는 소비사회의 면모들, 그 속에서 정체성을 투쟁하기 위해

패션이란 매개를 사용한 이들의 모습이 상당히 보이는 그림이다. 이런 걸

내가 아닌 다른 패널분들이 그래도 잘 풀어주셨다. 솔직히 말하자면 내가 말해야 할

타이밍의 대사를 다른 분들이 잘 쳐주셨다. 어찌되었든 고마운 일이고.

 

가장 아쉬운 건, 인상주의 화가 르누아르의 총평을 하는 시간에서

내가 영화 <스모크>를 예로 들었는데 아무래도 편집될 것 같다. 많은 분들이

이 영화를 잘 모르기도 하려니와, 참 따스한 영화였는데. 내가 왜 이 예를 들었을까?

영화 속 주인공 오기 렌은 매일 같은 시각, 뉴욕의 브롱크스 거리에 나와 사진을 찍는다.

항상 같은 장소, 같은 화각으로 포착한 거리의 풍경은 어떨까, 프레임 속에는

매일 그 거리를 같은 시각에 지나가는 다양한 사람들의 표정을 담는다.

풍경은 자연으로만 구성되지 않는 다는 것. 결국 그 풍경 속에

편입된 인간의 따스한 면모가, 엄마에게 입맞추는 잠이

들깬 아이의 표정이, 애인을 위해 카푸치노잔을

들고가는 남자의 부산함이 묻어난다.

 

우리의 일상이란 그렇다. 매일 똑같은 것 같지만

섬세한 변주가 옷의 주름처럼 접혀있는 곳. 그것이 우리의

일상이다. 사물과 인간, 그리고 자연, 이 모든 물상은 빛의 은혜 아래

그 면모를 드러낸다. 인상주의가 아름다운 건, 아니 르누아르의 저 행복한 표정을

짓는 인간들의 무도회가 고운 건, 누가 뭐래도 그 명멸하는 빛 아래, 한 순간을

그래도 낙관하며 만끽하는 인간들의 따스한 노력이 숨쉬기 때문일거다.

 

적어도.......나는 그렇게 믿고 싶다.

 

 

조영남 선생님께 내 책 <샤넬 미술관에 가다>를 드렸다.

책을 드리면서 "영원한 댄디로 살아가세요"란 말을 덧붙여봤다.

사람들은 복식사에서 댄디즘이란 게, 무슨 꽃미남처럼 잘 꾸미고 다니는

남자들을 말하는 줄 착각한다. 댄디란 무엇보다도 시대에 대해 저항적인 생각을

갖는 사람들이다. 이걸 방송에서 말했어야 했는데, 타이밍을 놓쳤다. 이 땅의 방송국 문화

혹은 문화예술 프로그램을 대하는 태도와 취향, 솔직히 예술인으로서 이런 고정관념에 도전하고

생각하고자 하는 바를 내뱉을 수 있는 것도 부러운 거다. 선생님의 그런 위치가 부럽고.

그래서 진짜 댄디로 사셨으면 하는 마음이다. 획일화되어가는 남성 패션의

세계에서 여전히 기계적인 아름다움을 거절했던 그 댄디처럼......

 

오늘 방송이 지금껏 출연했던 프로그램 중 가장

실력을 발휘하지 못한 시간이었을것 같다. 그래도 행복하다.

르누아르의 그림 속, 화가를 누구보다 믿어주었던 한 평론가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