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rt & Fashion/런웨이를 읽는 시간

옷주름이 아름다운 이유-두리 정의 2011 S/S 리뷰

패션 큐레이터 2011. 3. 4. 07:00

 

 

올해 초 <Fashion Designer Survival Guide>란 책을 번역하며

그 책에서 언급된 수많은 신인 디자이너들의 사례들을 접할 기회가 있었다.

뉴욕 패션계의 멘토인 메리 겔할답게, 자신이 발굴한 디자이너, 경영 컨설팅을 하는

과정에서 익힌 지식을 책을 통해 풀어내는 그녀의 입담과 정보력은 대단했다. 그만큼 번역하느라

많은 에너지를 할여해야 했다. 책에 소개된 신인 디자이너들 중에 유독 눈에 띠는 이름이

있었다. 두리 정(Doo Ri Chung). 한국인 출신의 패션 디자이너였다. 파슨즈를

졸업한 후 디자이너 조프리 빈 밑에서 6년 간을 일했고 수석디자이너가

되었다. 이후 부모가 운영하는 세탁소 지하실에 워크샵 공간을

만들고 자신의 브랜드를 런칭한 디자이너다.

 

 

메리 겔할이 그녀에 대해 논평한 부분을 보면

디자인도 좋지만 무엇보다 검소하게, 비즈니스적인 감각을 갖고

사업에 임하는 그녀의 태도에 좋은 점수를 준 것 같다. 무엇보다 외국에서

활동하는 한국인 디자이너 들에게 쏟아지는 스포트라이트랄까? 이런 것 보다 내실있게

자신의 이력을 쌓으며 차곡차곡 생의 계단을 올라가는 그런 모습에 반하게 된다. 그녀는 인터뷰를 통해

자신에게 영감을 주는 사람이 디자이너 앤 드뮐뮈스터와 현대무용가 마사 그래이엄이라고

밝혔다. 우선 나랑 좋아하는 코드가 비슷해서 끌렸다. 마사 그레이엄은 무용계의

피카소라고 불릴 정도로, 오늘날 우리가 알고 있는 현대무용의 어머니라

칭해도 무방할 정도의 거장이다. 오늘날 현대무용의 동작과

문법은 상당 부분 그녀의 노력을 통해 잉태되었다.

 

 

마사 그레이엄이 중요시 여기는 무용의 원칙 중 하나가

몸으로 빚어내는 일련의 주름같은 동작들이다. 누적되는 동작들 속에

담긴 신체의 의미들이다. 그래서일까? 두리 정의 디자인은 유독 저지 소재의

드레스가 많은데, 소재적 특성 때문에 독특한 주름이 생기고 명멸하는 작품들이 많다.

서구의 패션사를 보면 이 주름에 대한 강한 애착과 전통을 볼 수 있다. 그리스 시대부터 사람들은

옷을 지어 입을 때, 자연스레 소재를 통해 드러나는 물성 중의 하나로서 이 주름(Drape)

을 숭상했다. 권력이 높은 자일 수록, 사회적 위계가 높을 수록 옷에 더 많은 주름

을 내어 자신을 표현했고 이를 통해 우아함(Elegance)을 드러내는

유혹하는 듯한 패션의 코드를 옷에 덧입혔다.

 

 

지암바티스타 사소페라토 <성모자> 캔버스에 유채, 내셔널 갤러리

 

상아빛과 베이지를 기본 색조로 한 컬렉션은 한 마디로

온화한 밤의 정취를 연상하게 한다. 하얀 달빛을 발 아래 쓸고 가는

적요의 시간, 모델들은 크림빛 드레스를 입고 런웨이를 걷는다. 한쪽 어깨를

드러낸 비대칭적인 디자인의 드레스, 아무리 봐도 질리지 않는 우아한 고전적 주름이

디자인의 강력한 요소로 자리잡는다. 차분하게 문제를 풀어가는 디자이너의

손길을 글을 쓰는 이 곳에서조차 느낄 수 있다. 르네상스 시대 화가

지암 바티스타 사소페라토의 그림 속 마리아의 옷 주름을 보라.

 

 

왜 화가들은 여인들의 옷차림을 그릴 때, 주름에 착목했을까?

그림 속 마리아의 옷이 레드와 블루 두 가지로 사용된 것은 이유가 있다.

빨강은 예수의 피를 파랑은 부활과 생명을 뜻한다. 이 당시 르네상스 미술에서 자주

사용하는 도상적 의미였다. 하지만 성모자의 포근하고 안정적인 느낌을

창조하는 것은 무엇보다 마리아의 머리 쓰개와 옷 주름이다.

 

 

 주름은 아름답다.....세월의 시금석을 견디며

인간의 인체를 껴안아온 직물이 자연스레 잉태하는 그 주름의

매력은 무엇으로도 설명하기 어렵다.

 

 

섬세한 시폰 소재의 탑이나 중국풍의 모란 꽃 무늬를

프린트해 펼쳐놓은 드레스도 눈에 들어온다. 거미줄에서 모티브를

얻었다는 이번 2011년 S/S 컬렉션. 거미에겐 교차된 선들의 주름은 생명을

유지하기 위한 수단이 된다. 그러나 내가 보기엔 이번 두리의 작품 속 주름은 생존보다는

앞으로 전진하는 고단한 생의 몸짓 같다. 배추 애벌레를 본 적이 있는 이들은

알 것이다. 작은 한 뼘의 공간을 이동하기 위해 얼마나 끌어당기고 밀어 올리는 주름을

애벌레가 움직여야 하는지. 푸른하늘과 초록빛 잎파리, 그 사이를 중재하며

움직이는 애벌레는 주름의 힘으로 오로지 움직인다. 그렇다.

주름은 생명을 위한 에너지원인 것이다.

옷에도 동일하게 적용된다.

 

Image Courtesy by Doo 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