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rt & Fashion/런웨이를 읽는 시간

여자들이 무늬를 입는 이유는-로다테(Rodarte)의 2011 S/S 리뷰

패션 큐레이터 2011. 3. 3. 09:00

 

 

옷은 인간과 함께 태어나 성장하고 늙어간다.

옷이 인간의 삶을 투영하고 대변하는 일종의 은유가 되는 것은

바로 이런 이유다. 우리는 배냇저고리를 입고 100일이 될 때까지 지상에서의

위태한 삶을 버티고, 그 이후엔 지나온 날들의 숫자만큼의 '천조각'을 모아 퀼팅한 상의를

입어 '이 지상에서의 첫 번째 파티'를 준비한다. 어디 이뿐인가? 옷을 통해 우리는 사회란 '조직체'의 일원

이 되고 죽음의 순간까지도 '수의'를 통해 이 대지 위에 한 순간 피었다 지는 생의 여백을 메운다.

인간의 생멸과 그 과정을 나무에 비유하는 건 꽤나 진부하지만 여전히 이런 은유가

힘을 잃지 않는건, 가을빛 아래 조락의 시간을 건너는 인간들에겐 나무의

목질이 주는 결이 세월의 흔적처럼 느껴지기 때문일터.

 

 

올 2011년 S/S 뉴욕 패션 위크에 등장한 수 많은 디자이너들 중 유독

내 망막에 맺혔던 한 디자이너가 있다. 바로 로다테(Rodarte)다. 패션이 예술이

될 수 있음의 가능성을 타진하게 한 디자이너다. 면밀히 말하면 두 명의 자매가 이끄는 이

브랜드는 올 봄/여름 컬렉션에서 자신들이 자라고 태어난 캘리포니아의 아스라한 풍광을 담았다.

로다테는 케이트와 로라 멀리비란 두 자매가 세운 패션 & 액세서리 브랜드다. 둘 다 파사데나의 UC 버클리

를 졸업한 재원이었고 2005년 자신들의 브랜드를런칭한 후 업계 내 다양한 상을 수상하면서 패션의 제국에 발을 담군다.

이후 대중적인 패션 유통업체인 갭(Gap)사와 최근엔 타겟(Target)사와 콜래보레이션을 하며 영역을 확장했다.

사실 로다테의 성장과정은 초기부터 탄탄했다. 미국판 보그의 편집장이었던 안나 윈투어와의 미팅을

비롯, 첫 등장부터 업계평판을 좌우하는 우먼스웨어 데일리의 표지를 장식할 정도였다.

 

 

로다테의 고객 리스트를 보고 있노라면 솔직히 눈부시다 못해

어떻게 하면 이렇게 풍성한 셀레브리티들의 부름을 받을 수 있을까 사뭇

궁금하다. 틸다 스윈튼, 엠마 왓슨, 키이라 나이틀리, 나탈리 포트먼, 리즈 위더스푼

여기에 <마리 앙투아네트>의 주인공 커스틴 던스트는 그녀가 미국 패션 디자이너 협회에서

주는 공로상을 받으러 갈때 에스코트까지 해줄 정도였다. 이건 약과다. 미국 내 패션 유통의 혈맥이라고

할만한 버그도프 굿먼이나 바니, 니먼 마커스 중간 가격대 상품을 대대적으로 판매하는 니먼

마커스에 이르기까지, 그녀의 옷에 눈독을 들이는 견고한 바이어층도 부럽기만 하다.

최근 영화 <블랙스완>의 의상을 맡아 이력에 새로운 방점을 찍기도 했다.

 

 

그녀들이 선보인 이번 컬렉션은 '고향에 대한 오마주'다.

미국 서부의 광대한 자연을 거닐거나 혹은 비행기를 타고 미세한

관찰을 해본 사람이라면 알거다. 수없이 군락을 이뤄 거대한 장관을 조형하는

삼나무 숲들, 그 사이로 투과하는 짭조름한 햇살의 양과 텁텁하게 피부에 와 닿는 감촉들.

미국 영화에 괜히 '삼나무'가 들어가는 제목의 작품들이 많은게 아니지 싶었다. 이번 컬렉션에 나온

작품들을 보면 하나같이 나무의 결과 목질부에 새겨진 세월의 무늬를 중간색조로

트린트해 찍은 것들이 많다. 판화기법을 사용해서 그런지 더욱 텍스타일에

안착된 나무 무늬들이 더 선명하고 견고하게 느껴진다.

 

 

갈색은 참 신비한 빛깔이다. 안온한 자연의 품을 연상케 하는

빛깔의 스펙트럼은 유독 깊어서, 같은 브라운이지만 설명하기 어려운

섬세한 차이들이 존재한다. 나무의 빛깔은 왜 이렇게 한 마디로 집어낼 수 없는

다양함과 깊이를 갖고 있을까? 한국화가 김덕용의 세계에서 나는 패션 디자이너 로다테

와의 만남의 지점을 찾아본다. 갈색을 사용하되 이것을 변주하는 방식과 철학이

비슷하다고 느끼기 때문이다.

 

 

김덕용은 한국적인 아름다움을 나무의 목질부에서 찾는다.

시간의 축적과 삭힘이 자연스레 이뤄지는 그 나무의 표피에 아로새겨진

곰삭은 삶의 흔적과 무게를 찾아 표현한다. 결이란 단어만큼 멋진 단어가 있는가?

우리는 '한결같다'라는 말을 종종한다. 무슨 뜻인가? 세파에 흔들리지 않고 오롯하게 자신의

빛깔을 드러내는 사람의 품성을 가리켜 하는 말이다. 결은 작품의 질감을 만드는 가장 중요한 요소이고

시간이란 '인간이 인위적으로 변화시킬 수 없는 절대적 요소' 앞에서 드러나는 실존적 무늬다.

나뭇결의 자연스런 도열은 마치 피아노의 선율처럼 우리의 시선을 잡아 이끈다.

 

 

김덕용_어머니-청실홍실_나무에 자개_110×153cm_2006 (좌)          김덕용_작은방-길몽_나무에 단청기법_95×138cm_2006 (우)

 

김덕용의 그림 속에 등장하는 여인들은 우리 내 여인들이다

맞다. 백점 만점에 백점을 주고도 남는 이 나라의 여인들이다. 살을

드러내지 않고도, 육감적이며 뚝뚝하니 말수도 없고 내성적이지만, 침묵의

시간을 따스하게 매우는 은은함을 가진 여인들이다. 나무의 목질부는 얼마나 거칠고

툭툭한다. 거칠음 속에 알알이 박혀 있는 자연의 시간을 기억하기 위해 인간은 나무를 잘라

조탁하여 테이블과 의자를 비롯한 다양한 가구를 만든다. 인간은 단순하게 자신의

무게를 실은 가구위에 앉는 것이 아니다. 축적된 시간의 흐름 속에 잠시

앉음으로써 '생의 방점'을 찍는 것이다.

 

 

나무 숲을 거닐 때 불어오는 청신한 가을 냄새가 날 것 같은 옷들

이번 로다테의 컬렉션에서 내가 발견 할 수 있는 작은 미덕이 아니었을까 싶다.

게다가 패턴 위에 패턴을 입히는 '패턴 온 패턴'을 통해 세월의 기준을 감내하며 견뎌낸

다양한 생의 무늬를 버무리는 디자이너의 손길은 마치 자연을 조형한 신의 손길을 생각케 한다.

 

 

무늬를 입는다는 것은 단순한 문제가 아니다.

로다테의 옷에 드러나는 다양한 무늬들의 찬연한 흐름을 보라

무엇보다 그 무늬를 레이어드 룩으로 변화시킨 그녀의 손길에는 기본적인

'겹쳐입기'의 철학이 배어있다. 다양한 나무의 목질, 나무 잎사귀의 엽맥, 그 사이를

흐르는 순정품의 물과 햇살의 흔적이 우리를 부른다. 인간의 숲을 거닐며 우리는 인간과의

조우를 통해 '그들의 무늬'를 내 것으로 입는다. 유독 남성과 달리 관계지향적인

여성들은 그 무늬를 입음으로, 타인과의 조화를 꿈꾸는 것이다. 남자들이

무늬를 잘 못입는 건 누군가를 지배하고 누그러뜨리기

좋아하는 태생적인 정신의 습속 때문이다.

 

 

진중하고 차분한 황금색, 그 위로 변주되는 다양한 브라운

알루미늄박에 투명한 피막을 씌워 실 모양으로 가늘게 잘라 만든 금속사(絲).

그 실을 짜넣은 피륙인 루렉스와 브로케이드, 실크는 이번 컬렉션에 주로 등장하는 직물이다.

천 위로 새겨진 무늬들이 내는 '길'을 따라가고 싶은 하루다. 그 길 위에서 사람들을

만나고 헤어지고 성장하며 살아가겠지. 로다테의 옷을 보는 시간, 유독

흘러간 시간의 추회가 피부의 옷을 뚫고 지나간다.

 

Image Courtesy by Rodarte

Thank Rodarte for providing images and designer's note

All the images of Rodarte 2011 S/S Collection protected by Copyrigh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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