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rt & Fashion/패션 필로소피아

명품은 이렇게 태어난다-너희가'한땀한땀'을 아느냐?

패션 큐레이터 2011. 3. 24. 22:17

 

 

인간은 왜 명품을 추구할까요?

언제부터인가 한국사회에선 두 부류의 소비가

자리를 잡는 것 같습니다. 해외 명품 브랜드와 기존의 디자이너

브랜드가 경합을 하는 것이죠. 최근 인기리에 종영된 <시크릿 가든>에서

현빈이 유행시킨 '한땀한땀'이란 수사를 떠올립니다. 우리는 그가 입고 있는 옷이

이탈리아 장인이 한땀한땀 만든 것이라는 사실은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 공정과 과정상의

세부적인 내용은 잘 모릅니다. 그저 비싼 해외 명품이니까, 혹은 백 퍼센트 수제로

만들어진다는 점 정도만 어렴풋하게 이해하기 마련입니다.

 

 

한땀한땀이란 말 그대로 핸드 메이드입니다.

손의 정신과 아우라가 깃들여진 제품을 말하지요. 한국도

이 전통이 그대로 있습니다. 우리가 잘 모를 뿐입니다. 오늘 소개하는

행사는 가죽과 모피의 명품 <펜디>의 FATTO A MANO FOR THE FUTURE 입니다.

해석하자면 '미래를 위한 핸드 메이드' 정도가 되겠군요. 이번 행사는 이탈리아 장인이

펜디의 시그너처 브랜드인 셀러리아 핸드백에 들어가는 가죽으로 가지고

제품을 만드는 과정을 약식으로 소개하고, 나아가 현대 미술가와의

콜라보레이션을 통해, 수공예적 정신이 어떻게 미래를 향해

그 가치를 훼손시키지 않고 나갈 수 있을까를

물어보는 퍼포먼스라고 보시면 됩니다.

 

한국사회는 급격한 현대화 과정 속에서

전통 장인의 위상과 그 의식을 전승하는 데 실패한

사회였습니다.(과거형으로 쓴건 앞으로 우리는 이런 모습을

반성하리라는 믿음 때문이죠) 손으로 일일이 청소하고 작업하고

손 노동을 하는 분들을 막 대하는 사회. 자신을 위해 손 노동을 해준 이들에게

팁을 주지 않는 나라. 그게 당연한 줄 아는 사람들. 언제부터인가 우리는

그렇게 변모해갔습니다. 손의 가치를 스스로 폄하했지요.

 

 

이번 행사를 꽤나 기다렸습니다.

최근 <BRUT>잡지의 4월호 테마가 '패션과 장인정신'

이었습니다. 펜디와 페라가모, 모자 디자이너 스테픈 존스, 발렌티노 등

패션의 영역에서, 손을 통한 영감의 완성을 이뤄낸 현대의 장인들을 찾아가는 글입니다.

 

 

수제 가방을 만드는 과정에서 빼놓을 수 없는 작업판입니다.

그 위를 한번 보세요. 피혁용 바늘과 왁스 처리한 실, 펀칭기와 망치가

눈에 보이실 거에요. 작업판 위가 거뭇하게 보이는 것은 300미터의 가죽을 이용해

두 개의 스툴(의자)를 만들기 위해 한땀한땀 구멍을 뚫다보니, 5만번이란

시간이 축적되어 그 표면이 이런 형상을 띠게 되었습니다.

 

 

가죽 봉제용 바늘입니다.

 

 

가죽의 명문, 펜디 셀러리아 라인의 핸들 부분을 만들기 위해

사용하는 가죽입니다. 이 가죽을 이용해 의자를 만들겁니다. 원래 이 퍼포먼스는

펜디의 디자인 마이애미 팀이 현대 예술가들과 협업을 통해 공예정신의 부활과 디자인의 해석

을 꿈꾸는 프로젝트의 일환입니다. 미국의 비버리힐스와 영국의 해럿 백화점에 이어

아시아에선 최초로 한국의 갤러리아 백화점의 펜디 매장에서 선보이고 있습니다.

 

 

셀러리아 라인의 핸들용 가죽을 이용해 만든 스툴입니다.

 

 

뭐든 명품의 탄생은 원재료부터 시작하기 마련이지요.

로마산 가죽을 정제하여 균질하면서도 자연스럽고 가벼운 표면처리가

된 가죽을 사용합니다. 로마의 피혁산업에 대해서는 4월호 <브뤼트>지의 특집기사를

통해 자세하게 다루었습니다. 한번 살펴봐 주세요.

 

 

가죽 장인들이 사용하는 도구를 담은 키트군요.

 

 

가죽으로 만든 나비 펜던트입니다.

그 과정을 한컷 한컷 찍다보면 펀칭을 한 위에

한땀한땀 기름을 입힌 실을 바늘에 꿰어 정성스레 솔기선을

따라 꿰매어 갑니다. 쾌나 집요한 시간이지요

 

 

매장 내부 풍경을 찍었습니다.

오른쪽에 보이는 의자가 바로 한국의 이광호 작가가

PVC로 일일이 엮어 만든 의자입니다. 최근 패션과 가구의 만남이

두드러지고 있습니다. 모나코 부띠크 미술관에서도 비슷한 전시가 있었는데요

이 내용또한 다음 회차에 올리도록 하겠습니다.

 

 

이탈리아의 저명한 예술관련 출판사인 엘렉타에서 한정본으로

펜디와 콜라보레이션을 통해 만든 <The Whispered>란 책입니다. 내용을

살펴보다 중세부터 이어져온 이탈리아 핸드 메이드의 전통과 역사, 장인들의 공방을

설명하는 책입니다. 7만원이란 고가였지만, 서점에서 구할 수 없기에 '공부'를 위해 구매했습니다.

 

 

셀러리아 라인에 사용되는 가죽의 단면과 내부를 찍어봤습니다.

 

 

재봉에 사용되는 실이구요

 

 

원래 명품을 완성하는 것은 결국은 디테일이라고 믿고

있습니다. 저 또한 패션의 명가들과 보테가라고 불리는 공방을

직접 인터뷰도 하고 공부도 하지만, 항상 느끼는 건 마지막의 터치에요.

바로 방점을 찍는 일, 그것을 손을 통해 하느냐 혹은 기계에 맡기느냐가 명품의

향방을 가릅니다. 위의 화면은 셀러리아 라인 백의 내부 안감으로

들어가는 정제된 린넨입니다. 두텁지만 견고하죠.

 

 

가죽 위에 망치로 펀칭하는 모습이에요

 

 

그 로마산 가죽으로 만든 펜디의 플랫슈즈입니다. 색감이 좋죠.

 

 

1925년 설립된 가죽과 모피의 명문, 펜디는

이번 행사를 통해 자신의 정체성들을 새롭게 새우고 있습니다.

최근들어 현대미술과 패션의 결합이 눈부실 정도입니다. 좋지요. 그런데 한가지

빠진게 있습니다. 패션은 과연 예술의 장르중에 어느쪽에 더 무게를 실어줘야 하는가의 문제지요.

인간을 위한 디자인의 본질은 '기능성'에 있습니다. 실용과 예술적 감성은 하나인데

언제부터 인가 두 개념이 자꾸 상호독립적으로 발전하다 보니, 이 두 개의

생각 사이엔 골이 패였지요. 이 골을 봉합하며 공예적 전통과

디자인이 결합되는 제품의 정신을 되살리는 것.

이것이 바로 한땀한땀의 본질이죠.

 

 

이번 프로젝트에 참여한 이광호 작가님입니다.

가구 디자인을 하시는데요. 펜디가 영 탤런트 캠페인을

하면서 각 국의 신인 예술가와 디자이너들을 발굴하고 후원하면서

젊은 기운을 받고, 때로는 영감을 얻고 전통 속에 축적된 장인의식을 나누며

앞으로 한발 한발 나가는 모습이 좋습니다.

 

 

 

어느 브랜드나 시간이 가면 노후되기 마련입니다.

세대란 단어는 영속적으로 서로에게 영향을 주고 받으며 연결되어야 합니다.

손을 맞잡으면 됩니다. 핸드 메이드가 여전히 우리에게 잃어버린

정신과 시간의 흔적을 말하는 건, 이런 부름 때문이겠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