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예종 자유예술캠프가 드디어 끝났다. 딱 한마디 하고 싶다. '속 시원하다'고. 복식사와 미학, 영화이론을 접목한 <영화, 패션에 홀릭하다>란 제목으로 런칭하고 7주동안 정말 열심히 달렸다. 주당 4시간 강의, 회사 때문에 평일엔 뛸 수가 없어 토요일에 시작한 강의였지만 꽤 인기가 좋았다. 어쩌다 자예캠의 인기강사가 되어버렸다. 회사 CEO 대신 전문강사가 될까 두렵다. 특임교수 제안이 여러 번 있었지만 매번 고사했다. 경영을 뒷전으로 하고 지나친 외부 활동을 하는 것이 좋지 않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예전 외국에서 MBA를 하고 돌아와 전략 컨설팅 분야에서 일을 할 때 친한 선배가 성공 기업의 신화를 썼다. 방송과 언론은 그의 이름을 대서특필하느라 바빴다. 겸임교수에 특임, 외부 강연에 많은 시간을 쏟으며 연예인 못지 않은 인기를 누렸다. 그런데 그 결과는 ? 거품이 꺼지면서 그 잘나가던 회사도 와르르 '나가떨어져 버렸다' 기업경영은 이런 것이다. 매 순간 차가운 머리와 따스한 가슴으로 데이터를 읽고, 일련의 의사결정을 혼신으로 내리며 싸워야 하는 무대다. 그 무대에 선 배우가 관객인 소비자를 향해 모든 에너지를 써야 한다. 나도 모르게 선배의 전철을 밟게 될까 두렵다. 균형을 잃지 말자고 손을 모은다.
작년 한해, 외부활동이 잦았다. 방송국에선 왜 이렇게 전화가 오는지. 어찌되었건 한예종 자유예술캠프는 참 즐거운 추억이다. 무대의상 디자이너, 모델, 첼리스트, 영화감독, 배우, 시나리오 작가, 패션저널리스트, 패션 디자이너, 복식사 교수님들, 다양한 군의 사람을 만나 나누었던 시간들이다. 다른 강의들은 끊고 여기에서 만난 이들하고만 알콩달콩 살고 싶다. 이번 강의를 들었던 분 중에 영화감독님이 계셨다. 이 분이 그 유명한 영화 '노팅힐'의 한국인 스테프였던 사실을 알고는 놀랐다. 이번에 새로 영화를 개봉하신다. 강의 수강생들 모두 VIP 시사회에 갈 생각이다. 자신의 본업 이외의 일을 하는 즐거움은 무엇보다 '내가 하고 싶었던 다른 분야'의 사람들을 만날 수 있는데 있다. 강의 과정에서 나와 비슷한 무늬의 생각을 하는 이들을 만나고 나누는 일은 행복하다.
란제리 디자인을 하시는 선생님께서 천 조각을 한땀 한땀 모아 책갈피를 만들어주었다. 책갈피란 단어를 얼마만에 들어보나했다. 비단 조각처럼, 산재된 지식의 조각들을 모아 한땀 한땀 바느질을 하는 일. 이것이 강의가 아닐까 싶다. 특히나 복식사와 미학이란 분과가 무슨 혁신적인 이론이 있는 것도 아니고, 지나온 유구의 시간 속에 떠오른 앙금을 수저로 떠서 사람들에게 먹이는 일이다. 그저 작은 불꽃을 꿈꾸고 곁불이나 되었으면 했다. 책갈피 같은 인생이면 좋겠다. 무거운 책을 읽을 때, 텍스트의 숲을 헤맬 때, 언제든 다시 돌아와 읽어야 할 지점을 알려주는 책갈피같은 강의. 이런 강의라면 비록 내용은 부족해도 강의자는 꽤나 행복할 것 같다. 큰일이다. 몸은 하나인데 하고 싶은 일들은 계속 생기니 말이다. 이 아크로바트의 과정에서 균형을 잃지 않는 내가 되길 기도하고 또 기도하는 수 밖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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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월 스케줄을 보니 막막하다......쉬고싶다. 다른 블로거 분들 마실이라도 좀 다닐랬더니, 세상은 또 내 몸뚱이를 찢으려 한다......살아남아야겠다. 힘들다고 생각될때면 되돌아 보면 된다. '내곁엔 참 고마운 사람들이 많다'는 것과 '이만하면 남자 인생 참 괜찮다'고 믿어보면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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