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rt Holic/일상의 황홀

만화 '신의 물방울'이 격찬한 와인, 몽페라를 만나다

패션 큐레이터 2011. 6. 1. 07:00

 

 

서양미술사를 좋아하다 보니, 18세기 중엽의

네덜란드 회화작품들을 자주 봅니다. 일종의 명상용인데요.

 이 당시 네덜란드 사회상을 담은 '바니타스'회화 작품들입니다. 초기

자본주의 사회의 병폐와 다양성, 역동성 등 다양한 면모를 갖고 있었던 암스텔담을

중심으로, 당시 화가들은 물질적 풍요 속에서 쉽게 망각하는 신의 메시지를

전달하고자 이 바니타스(허영에 대한 고발) 회화란 장르를 만들었죠.

화가 클래즈 뢰머가 그린 그림 속 은식기와 유리잔이 눈에

들어오실겁니다. 무엇보다 와인잔에 가득 담긴

백포도주의 빛깔이 미려하네요.

 

 

저는 항상 제가 잘 모르는 영역에 대해 공부하는 걸 즐깁니다.

친구가 와인 관련 브랜드 매니저를 하고 있어서, 이번에 시음회에 초대를

받았습니다. 대부분 초대받는 분들의 면모를 보니, 와인에 관한 자격증은 물론이고

자신의 이름으로 와인 브랜드를 런칭하신 분도 있고, 와인클럽 대표 등 이 분야에 대해 많은

지식을 가진 분들이 대부분이라, 저로서는 듣는 것 만으로도 좋은 경험이었습니다. 와인 애호가라면

만화 <신의 물방울>을 잘 아실겁니다. 1권 98페이지에 나오는 주인공 시즈쿠는 샤토 몽페라

Chateau Mont-Perat 2001년 산 한 모금을 마신 후 영국의 그룹,

퀸의 <보헤미언 랩소디>가 떠오른다고 말하죠.

 

 

사실 저는 만화를 읽을 때, 주인공이 묘사하는 언어의 특질과 느낌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시음회에서 8종의 몽페라를 마셨지만, 사실 초보인 저로서는

혀 끝에 닿는 미각의 느낌을 명징한 비유나 그림으로 그리기가 쉽지 않았죠. 저는 해외를 다니며

비즈니스를 했고, 이 과정에서 참 많은 와인들을 경험해보긴 했습니다. 특히 프랑스 쪽 회사와 거래가 많아서

파리와 리용을 비롯한 남서부 지역을 다니며 와이너리도 가봤습니다. 정찬과 함께 가볍게 곁들인

와인을 마시다보면, 술에 약한 저로서는 맛 보다는, 술을 강권하지 않는 그들의 문화가

고맙고 술을 못하는 것이 죄가 아니라는 생각을 하게 한 그들이 고마왔던거죠.

 

 

개인적으로 사진에 보시는 Les Amants 와인이 좋았습니다.

맛 보다 레이블의 그림이 마치 고호가 그린 아몬드 나무를 연상시켜서 눈에

들어오더라구요. 고호도 그렇지만 당시 프랑스 사람들은 유독 일본의 정적인 판화에서

그들의 미술이 가진 한계점을 돌파할 수 있는 가능성을 찾았기에, 일본의

선적 느낌에 대한 기호와 애착은 참 지금도 강하게 남아있습니다.

세 가지 포도품종을 섞어서(블랜딩) 우아하고 부드럽게

정제된 느낌을 선사합니다.

 

 

왜 신의 물방울의 주인공 시즈쿠는 몽페라를 가리켜

퀸의 <보헤미언 랩소디>가 떠오른다고 했을까요? 그것은 음악 속에 담긴

두 개의 병립하기 쉽지 않은 집시들의 삶과 저항성, 신산하면서도 자유로운 풍성한

정신을 담아내기 때문일거라 생각합니다. 보헤미안 광시곡은 처음엔 4명의 보컬이 자신의

음역을 내며 결합합니다. 그러다 피아노 연주와 더불어 메인 곡이 나오죠.

아날로그적인 피아노와 일렉트로닉 기타가 섬세하게 결합하며

부드러운 초반 무대를 장식하며 다시 4개의 보컬이

갈라지며 결합되기를 반복합니다.

 

 

진흙과 석회암 위의 자갈이 깔려있는 포도밭에서

60년 이상 된 포도나무에서 한 그루당 4 송이 정도만 수확하여

만든다는 퐁페라 AOC Cadillac. 설명서를 읽어보니 이렇게 나오네요.

현재 500병의 와인만 만들어졌다는 게 이걸 맛보다니 행운인

셈이지요. 과일향 가득한 농밀함이 혀끝을 스칩니다.

 

 

패션을 연구하는 사람으로서 옷을 만드는 일,

혹은 입는 일, 향수를 입는 일, 와인을 재배하고 만드는 일,

그림을 읽고 해석하는 일, 이런 모든 것들이 결국 이 분과에서 오랜동안

지식을 가진 분들과 이야기를 나누다 보면 다 통한다는 느낌을 받을 때가 많습니다.

세상 그 어느 것이든, 인간의 손길을 통해 육성된 것들을 소비하는 것이 우리의 운명이라면,

장인정신이 깃든 것들에는 세월의 결을 관통하는 공통분모가 있다는 생각이지요. 옷도 향수도 입는 이의

입장과 미각과 취향을 반영하듯, 와인도 그럴겁니다. 아마도 몽페라 와인을 좋아하는 분들은

이야기 거리가 많은 분들일거라는 생각을 했답니다.

 

 

곁들여 나온 송어 뫼니에르와 샐러드, 안심 스테이크도 좋았고요

 

 

계속 고민합니다. 보헤미언 랩소디를 떠올렸다는 그 의미를 말이에요.

이번 모임에서 만나뵌 좋은 분들이 많습니다. 와인 칼럼니스트 김혜주 선생님과

전문 기자분들이 나누는 대화를 듣는 것 만으로도, 배와 정신이 함께 채워졌으니 고마운 일입니다.

특히 김혜주 선생님께는 와인을 비평할 수 있는 언어를 배울 수 있는 책을 권해달라고

부탁을 드렸는데 알려주시겠다고 했고, 직접 쓰신 책도 보내주시겠다고 해서

열심히 공부를 해볼 생각입니다. 와인 덕분에 멋진 분들을 만난 것

자체가 술이 주는 농밀한 행복과 더불어 더욱 빛나는 것이죠.

 

 

짙은 자주색에 풍성한 과일향이 도는 몽페라 와인을 8잔을

맛보고 글로 써보고 느껴보려고 노력을 했습니다. 옷도 착용자가 오랜세월

자신의 습속에 따라, 몸에 착용되어 자연스레 아름다운 주름이 잡히듯, 와인도 발효의

시간을 잘 견딘 것들이 멋지다네요. 곰삭임의 시간을 견딘 인간의 사유가

단순한 한 가지의 메시지가 아닌 다층적인 의미를 지니듯 와인도

그런가 봅니다. 좋은 와인은 각자의 혀끝에 닿는 인상의

스케치도 수백장이 그려지나 봅니다.

 

 

몽페라 와인을 만드는 대표님과 한 컷 찍었습니다.

제가 와이너리 놀러가도 되냐고 물었는데, 꼭 오라고 해서 '저는

이런 말 들으면 꼭 실행한다'고 다짐까지 받아놨습니다. 프랑스 분들하고

사업을 할 때 가장 좋았던게, 바이어가 자기 집에 초대를 해서 단촐하지만 따스하게

식사하고 가족들과 이야기 나누고 할 때였는데요. 햇살이 좋은 날, 미풍과

함께 와이너리에서 멋진 식사나 한번 해봤으면 하네요. 이런 기억의

날이 언제적이었는지, 다시 한번 업그레이드 해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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