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명 생일은 세상을 향해 따스한 미역국 한 그릇 차려주는 일이라 했건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너무 많은 축복과 기쁨을 얻었습니다. 출국 전 설/생일 겸 멋진 향수를 사주신 패션 디자이너 이상봉 선생님의 선물을 받고 오늘도 '치익' 뿌리고 나갔습니다.
선생님 미국에서 런웨이 잘 하고 오시길 염원하면서 오랜동안 향을 기억하겠습니다. 선생님이 이 향수를 사신게 용기의 곡선이 너무 멋져서 사셨다고 하더라구요. 향수의 주인이 '너'라면서 주셨어요.
생일날 미술관 도슨트를 했습니다. 백화점 VVIP 클래스에 강의를 갔다가 알게 된 분들인데요. <베르사이유의 영광>展의 두번째 도슨트를 했습니다. 저로서도 뜻깊은 시간이었습니다. 생각해보니 미술과 패션 때문에 제2의 인생을 살게 되었으니 생일날 도슨트를 하는게 꽤나 멋진 이벤트가 된 셈입니다. 끝나고 근사하게 뷔페에서 점심도 먹고요. 더 화끈한건 무슨 1시간 도슨트 겨우 한걸 가지고 너무 큰 액수의 사례금을 받아서.....부담이 되더군요. 블로그에서 했던 약속을 지키고 싶어서 받았던 금액 전액 제가 돕고 있는 조손가정에 온건히 드렸습니다. 상품권이니까 이걸로 생필품을 하시는게 더욱 좋을 거 같아 그리했습니다. 어차피 백화점 상품권은 받아도 쓰질 못합니다. 맨날 보세나 길거리 마구 쏘다니면서 독특한 아이템 사는 걸 좋아하는 제겐 상품권이 큰 메리트가 없거든요.
그렇다고 선물 주신걸 마음대로 유용한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전화드려서 이렇게 썼다고 말씀을 드렸고요. 이미 도슨트 하면서 함께 누린 행복의 시간으로 보상은 충분합니다. 그리고 저는 도슨트를 할 때 절대로 사례를 받지 않는 원칙을 지키고 있습니다. 도슨트를 할 때는 항상 저소득층 학생들과 문화적 소외계층을 위해서만 활동을 한다는 원칙을 나름대로 세웠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상위 1퍼센트의 분들을 위해서 도슨트를 하지 않는 건 아닙니다. 어제 뵈었던 사모님들이 바로 1퍼센트 사모님들인데요. 한국사회가 언제부터인가 빈부격차가 심해지면서 부의 문제를 '도덕적'인 문제로 단죄하는 성향이 강해졌습니다. 그러나 재력이 있는 분들 중에서도 언제나 사회를 향해 돕고자 하는 손길을 가진 분이 많고, 오히려 방법을 몰라서 어떻게 해야 할지를 묻는 분들 또한 많다는 겁니다. 이때 마음을 열고 그들이 가지 사회적 영향력을 건설적인 채널링을 통해 물꼬를 틔우고 흐르게 하면, 오히려 이게 더 빨리 가는 방법이 아닐까 생각도 합니다.
생일날은 제가 제 자신에게 선물을 하는 날입니다. 뭐 항상 그렇듯 책을 삽니다. 미술관련 강의나 저술을 통해 번 돈은 무조건 사회와 나를 위한 재투자로 토해낸다는 두 번째 원칙을 지킵니다. 1퍼센트 사모님들에게 받은 금액의 정확하게 두배를 삽니다. 다 읽고 더 풍성하게 강의도 하고 블로그에 글 올리고 하면 됩니다. 이게 받은 선물을 더욱 풍성하게 세상에 돌려주는 방식이라고 믿기 때문이죠. 우선 브래들리 퀸이 쓴 <BOOT> 부츠의 역사와 문화에 대해 아주 심도깊은 서술이 돋보이는 책입니다. 마니 포그가 쓴 <Couture Interior>란 책도 인상 깊습니다. 패션 디자인이란 영역이 단순하게 옷만을 다루는 것이 아니라 실내장식의 문제와 연결지어서 어떤 시각을 가질 것인가를 잘 설명하고 있는 책입니다.
8권의 국내도서 중 유독 눈에 들어오는 3권의 책은 최근에 발행된 <인상주의-모더니티의 정치사회학>과 들뢰즈의 <주름, 라이프니츠와 바로크>입니다. 우리는 흔히 인상주의 그림에 대해 너무 잘 안다고 착각을 합니다. 하지만 되돌아보면 아는게 하나도 없죠. 백화점이 탄생하고 중간계급이 등장하고, 감성노동자가 등장하는 세상, 어찌보면 지금 우리사회의 원형이 된 모습을 잉태한 거대한 자궁과 같은 정신의 시대지만, 우리는 아는게 없었습니다. 너무나 작가 중심의 협소한 이해만을 했기 때문인데요. 이번에 나온 인상주의 모더니티의 정치사회학은 바로 사회경제사적 관점에서 현대라고 불리는 개념의 어둠과 빛을 동시에 드러냅니다. 철학자 질 들뢰즈의 <주름>은 강의 때문이라도 꼭 읽고 싶은 책이었는데 좀 어렵습니다. 그의 책은 참 만만치는 않지만 읽다보면 섬광처럼 떠오르는 문장이나 아이디어를 얻게 되는 경우가 많아 또 한번 도전하려고 합니다.
요즘 툭하면 인터넷에서 '종결자'란 표현을 많이 쓰던데요. 카르티에사에서 나온 <파워 오브 스타일>이란 도록을 샀습니다. 눈이 행복합니다. 카르티에는 2년전 한국에서 열린 전시회를 통해 한번 소개를 드렸지만, 보석 각각의 상징적인 의미나 작업방식들, 착용자의 삶등 다양한 이야기를 풀어내기엔 부족했지요. 한땀한땀 읽어보고 있습니다. 다시 말하지만 이런 도록은 여성분들은 보면 안됩니다. 특히 결혼하신 분들은요. 남편의 옆구리가 심하게 멍들정도로 꼬집힐 수 있습니다. 한쪽에선 소비를 부추기고 또 다른 한쪽에선 쇼핑중독에 대한 치료서를 냅니다. 에이프릴 레인 벤슨이 쓴 <Stopping 쇼핑>입니다. 강박장애로 표현되는 쇼핑중독 현상에 대해 지적하고 이를 치유할 수 체크 리스트와 방법론이 돋보여 샀습니다.
다니엘 스와로브스키의 최신판 도록을 한권 샀고 <패션 속 건축>이라는 주제를 다루는 3권의 원서를 샀습니다. 이외에도 12권의 책을 신청했습니다. 또 한칸의 패션 큐레이터의 서재가 채워지겠군요. 생일날 책을 살때는 유독 기분이 좋습니다. 배가 불러요 정말이지.......무엇보다 어렵게 구한 책, 힘들게 읽어서 정리하고 블로그에 올릴 때얼마나 기분이 좋은데요. 뭐 제가 이 세상에 할 수 있는 유일한 작은 일이기도 하고요. 다음뷰를 보면 멋진 서평을 쓰는 블로거들이 많습니다. 물론 인터넷 서점 내의 블로그를 운영하는 서평가들도 만만치 않죠. 서평관련 블로그를 소개하는 글을 쓰고 싶은데 선정하기가 만만치 않은 이유입니다. 분야별로 나뉘어서 하나씩 해볼까 생각하고 있습니다. 역사책 분야, 사회과학 분야, 소설 분야, 그 중에서도 추리소설/환상소설 등 한국도 이제는 서평 블로그의 세분화가 이뤄지고 있어서 분류가 가능한 시점이 되어가고 있습니다. 다음엔 꼭 <블로그에 홀리다>폴더에 서평블로그에 대한 글을 올려보길 기대하면서.......
책 때문에 행복한 하루......다가오는 주말 강의를 위해 열심히 준비모드로 들어가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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