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rt & Fashion/패션 필로소피아

파리의 패션과 미술을 보고 싶다면-프티 팔레로 가라

패션 큐레이터 2011. 1. 9. 17:38

 

 

패션을 공부하는 또 다른 방식-미술관에 가라

 

저는 패션의 역사를 연구하는 큐레이터이자 기획자로서 역사 속 패션의 모습과 그 진화과정을 살펴보는데 관심이 많습니다. 우리는 흔히 패션이라고 하면 그저 연예인을 비롯한 셀리브리티의 옷차림이나 그들의 메이크업과 헤어스타일을 따라잡는게 전부인양 이해하기 쉽습니다. 어찌보면 각종 매체들이 우리들로 하여금 그런 사고의 덫에 빠지도록 만들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이번 파리여행에서도 매번 그렇듯 미술관과 작은 화랑들을 주로 다녔습니다만, 되돌아보면 이번 여행은 참 좋았습니다. 찾아들어간 갤러리나 미술관에서 '패션과 관련된' 혹은 깊은 연관성을 가진 작가들의 기획전을 즐겨 볼 수 있었기 때문이지요.

 

 

프티 팔레에 갔습니다. 작은 궁전이란 뜻을 갖고 있지요. 1900년 파리를 비롯한 온 유럽을 들썩이게 한 만국박람회를 위해 지어진 건물이었습니다. 지금 이곳에는 파리 시립미술관의 작품들을 소장되어 있죠. 바로 맞은편에는 당당한 풍모의 열주기둥으로 인해 더욱 멋진, 그랑 팔레가 있죠. 파리 시립미술관 답게 파리의 근대역사와 패션을 살펴볼 수 있는 작품들도 많이 소장되어 있습니다. 제가 꼭 빠지지 않고 이곳에 들르는 이유지요.

 

 

중세와 르네상스 회화작품을 소장한 방을 지나 18세기 파리시의 모습을 그린 작품들을 담고 있는 터크 컬렉션에 잠시 머물며 '오늘날의 파리'가 어떻게 발전했는지 살펴보는 것도 매력이 있습니다.

 

 

이곳에서 주세페 드 니티스의 전시를 봤습니다. 행운이었습니다. 주세페 드 니티스(February 25, 1846 – August 12, 1884)는 파리 근대패션의 교과서라고 해도 될 만큼, 정교하게 당대의 여성들과 패션의 양상을 초상화를 통해 그려낸 화가입니다. 그는 이탈리아 출신의 화가로서 당시 파리 살롱과 인상주의 화풍을 결합한 독특한 색감과 붓터치로 시대와 여성들의 옷차림을 그렸습니다. 원래 이탈리아에서 미술학교를 다니다, 경직된 사고가 팽배한 당대의 미술학교 시스템에 저항을 했었다지요. 그 결과 1863년 학교에서 쫒겨나 당시 유명화가였던 지오반니 바티스타 칼로 밑에서 사숙하며 그림을 익혔습니다.

 

 

1867년에 파리로 이주, 아트딜러였던 구필과 계약을 맺고 한 마디로 '당시에 팔릴만한 그림'들을 그렸습니다. 살롱에서 전시회도 수 차례 하면서 파리 내 인지도도 넓혔지요. 이후 풍경화에 푹 빠져 살았지만 얼마 못가 프랑스 인상주의 화가들의 전시에 초대되어 함께 전시를 했습니다. 이때 초대장을 보낸 이가 에드가 드가였습니다. 미술사에선 여전히 그를 아는 이가 많지 않습니다. 비주류 작가군에 소속되기 때문이겠죠.

 

 

하지만 복식의 역사를 연구하다 보면, 미술사에서 내로라 하는 작가들보다, 당대의 풍속화, 초상화를 그린 작가들을 더욱 찾아야 할 때가 많습니다. 어찌되었던 당시 비싼돈을 주고 그린 초상화에는 당시 패션의 흔적들이 너무나 적나라하게 드러나있기 때문입니다. 메이크업 하나만 봐도 눈썹을 그리는 방식에서 입술화장과 볼터치까지 시각적 자료인 그림을 통해 알수가 있답니다. 제가 복식사를 하면서 미술 도록을 더 철저하게 모으는 이유지요. 무엇보다 지금 우리가 현재의 연예인들, 배우들과 가수들의 패션에 천착하듯, 이 당시의 그림들도 당대 유명한 오페라 가수나 배우들의 초상화가 많답니다. 물론 그들의 패션 또한 지금처럼 화려하죠. 위의 그림은 19세기 후반 최고의 배우였던 사라 베르나르의 모습입니다. 광대복장을 하고 있지요.

 

 

당시 배우들의 옷차림이며 살롱 문화의 단서를 찾아내어 공부하기에 너무나 안성맞춤인 그림이라고 생각하지 않으세요?

 

 

1860년대 남자들의 정장 수트와 넥타이를 맨 모습, 여기에 톱 해트를 쓴 신사의 모습을 발견하는 것 어떤 이들에겐 그저 그림 한장을 이해하는데 필요한 작은 상식일 찌 모르겠지만 제겐 작은 흐름 하나 조차도 놓칠 수 없는 정교한 의미를 갖고 있답니다.

 

 

예전에 그림을 중심으로 봤지만 최근엔 조각품들도 자세히 살펴보는 여유가 생겼습니다. 패션을 공부하기엔 오히려 3차원으로, 양감을 가진 조각품의 정밀한 모습이 더 좋죠. 옷 매무새나 헤어스타일, 당시 보석을 했던 여인들의 자태를 살펴보는데도 좋구요.

 

 

제가 좋아하는 카를로스 뒤랑의 <스턴 부인의 초상>입니다. 뒤랑의 그림은 제가 <샤넬 미술관에 가다>에서 장갑의 에로티시즘이란 항목에서 다루었던 화가입니다. 아내부터 처제까지 다들 배우 출신이라 화려한 미모를 자랑했지요. 행운의 사나이였습니다.

 

 

연작 작품들이었는데 작가 이름이 생각나질 않는군요.

그러나 패널 위에 그려진 사람들의 옷차림과 각자 개성있게 쓴 모자가 눈에 들어왔습니다.

 

 

겨울 우기의 파리를 거닐며, 박물관과 미술관이 항상 붐비는 걸 볼 때마다 한편으로 참 부럽습니다.

 

 

전쟁과 식민의 역사를 겪으며 짧은 시간 안에 비약의 발전을 해온 '생의 기적'
그 배후에는 잃어버린 역사의 광대함이 너무 크다는 걸 박물관을 갈 때마다 느낍니다.

 

 

어찌보면 지나간 역사를 상품화해 혹은 관람용 시설로 만들어 돈을 벌고 있는게 유럽입니다.

 

 

인상파 화가의 화구를 현장 그대로 재현해 놓아서 유심히 살폈습니다.

 

 

솔직히 파리에 가면 인상주의를 빼놓고 보면, 프랑스란 나라도 자체적인 양식이 많지 않습니다. 다들 식민주의의 쟁패 속에 타국에서 훔쳐온 문화재들과 그림들을 앞다투어 소장했고, 이는 역으로 자라나는 세대의 상상력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지요. 인간의 상상력은 절대로 고정된 장소에서 피어나지 않습니다. 다른 이들과의 만남을 통해 촉발하는 것이죠.

 

 

식민활동을 통해 어찌보면 오늘날의 유럽강국들은 문화적 유전자들을 철저하게 흡수한 것이고, 이렇게 흡수한 미적 감성들이 진화하면서 자신들의 고유한 양식으로 다시 피어나는 것이죠.

 

 

많은 분들이 의아해 할지 모르겠습니다. 도대체 이 곳에서 패션의 무엇(?)을 배울 수 있기에, 박물관으로 가라고 하는 것인지. 패션이란 단순한 옷차림을 뜻하는 단어가 아닙니다. 어느 당대나 사람들은 이상적인 자신의 육체를 갖기 원했고 여기에 따라 패션의 논리가 만들어졌죠. 미술관에서 중세시대 패션을 보고, 르네상스 시대의 패션을 살펴보는게, 도대체 현재의 명품 브랜드 중심의 패션을 분석하고 살펴보는데 무슨 도움이 되는가? 라고 물어볼 분이 있을 지 모르겠습니다.

 

그저 패션이라고 하면 '연예인 누구의 옷차림이 어떻고' '누구 따라잡기'에 매여있기에, 우리는 우리 전통속에 살아숨쉬는 한복의 라인과 미학 조차도 현대화 하는데 힘이 들었습니다. '뭐 눈에 뭐만 보인다는'게 틀린 말이 아니더군요. 서구를 극복하기 위해 그들의 역사와 미적인 감성을 공부해야 하는 이유입니다.

 

 

아르 데코풍 장식 계단을 촘촘히 내려와........

 

 

19세기 초 여인들의 조각상을 보며 패션의 실루엣에 대해서 생각해보고

 

 

초상화를 통해 방점을 찍는 당대패션의 향기를 다시 맡아봅니다. 파리패션을 연구하기 위해서 파리 패션 위크와 런웨이만을 다니면 된다고 생각했다면 오산입니다. 이 땅의 많은 패션 저널리스트들의 글이, 그저 패션쇼 후기에 머물고 외국 단신들을 번역해 올리는 수준으로 끝나는 이유지요. 우리에게 그들을 해석할 수 있는 지적 토양과 논리가 없기 때문입니다. 외국의 저명한 패션 저널리스트가 뭐라고 했다더라.....고 하면 우루루 몰려가서 받아적기 바쁘고, 어디 이게 패션만의 문제겠습니까? 지금 바로 우리들의 모습이지요. 패션이 트랜드와 유행만을 다루는 영역이 아닌, 바로 인문학이어야 하는 이유에 대해 적어봤습니다. 패션은 모든 곳에 존재합니다. 스타일리스트들의 '옷입기 전략' 에도 있지만, 박물관에서도 배울 수 있고, 거리 속 여인들의 풍모에서도 배울 수 있는 게 패션이죠.

 

어찌보면 이 모든 걸 사유하고 '옷 차림'에 대한 생각으로 변모시키는 과정 모두가 패션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여러분......마음의 눈을 떠주세요. 패션이 얼마나 광대하고 우리의 삶 전체를 관통하는 '기호'인지 좀 더 폭 넓게 생각하며 성장하는 우리가 되어주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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