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rt & Fashion/패션 필로소피아

오바마가 사랑한 패션 디자이너-이자벨 톨레도

패션 큐레이터 2011. 1. 16. 23:26

 

미셸 오바마가 사랑한 디자이너

 

어느 시대나 권력의 정점에 선 이들의 패션은, 많은 이들에게 모방과 열망의 대상이 된다. 패션현상이 발흥하기 시작한 중세 말기에서 본격적으로 무르익는 르네상스로 가면, 이탈리아의 도시 국가의 실질적 참주들은 유난히도 패션에 신경을 썼다. 이 참주들은 결국 정치권력과 결탁한 상업자본가들인데 모직물 교역으로 돈을 번 자들이 많았다.

 

이들은 자신의 부와 새롭게 형성한 사회적 권위를 내세우기 위해 '패션'을 적극적으로 사용했다. 하나같이 여러겹의 옷을 입고 진주와 루비, 에머럴드로 장식된 커다란 네크웨어(러프라 불린 목 장식 칼라)를 달기도 했다. 절대왕정 시대로 소개되는 바로크로 오면 이런 상황은 더욱 심해진다. 루이 14세는 프랑스의 국부를 '럭셔리 산업'의 진흥에 목표를 두었고 리용산 실크를 전 유럽에 팔기 위해 스스로 초상화 속 패셔니스타로, 모델이 되어 포즈를 취했다.

 

현대로 와도 이런 상황은 정치체계의 맥락만 다를 뿐, 그대로 이어진다. 각 나라의 영부인들, 흔히 퍼스트 레이디의 패션은 그 나라의 패션의 수준을 드러내는 지표다. 하토야마 유키오 일본 총리의 부인이었던 미유키 여사는 60대 중반이 넘었지만 단발머리에 청바지를 입은 '소녀'의 이미지로 기존의 일본제국의 '여성적 이미지'에서 확실하게 탈피했다. 미국의 현대사에서 이 퍼스트 레이디의 패션은 항상 당대의 문화적 지표였다.

 

강력한 리더십으로 세계의 2강 구도를 만들며 세계를 재편하던 70년대 케네디 대통령의 아내, 재클린은 기존의 영부인 이미지믈 버리고, 당당하게 민소매와 세줄 짜리 모조진주 목걸이, 일명 화분모자를 쓰고 커다란 선글래스를 걸친 그녀의 이미지로 대중에게 소개되었다. 바로 젊은 40대 기수론을 펼친 대통령의 파트너 다운 선택이 아닐 수 없었다.

 

현 오바마 대통령의 부인 미셸의 패션도 만만치 않다. 이미 다양한 패션잡지의 패션모델로 선정된지 오래다. 특히 취임식때는 유색인종이었던 대만 출신의 디자이너 제이슨 우와 쿠바출생의 미국 디자이너 이사벨 톨레도의 드레스를 입고 나섰다. 은빛이 감도는 라임색 드레스와 오버코트를 입고 초록색 가죽 장갑을 꼈다. 전형적인 1960년대 미국의 <성난 눈으로 돌아보라> 세대의 패션이었다. 그녀는 60년대 빈티지 패션을 좋아한다. 세계사를 보면 60년대는 갈등의 시대였다. 아버지의 세대의 견고한 틀을 깨고, 기존의 법에 대항하는 청년문화는 바로 프랑스에선 68혁명을 미국에선 흑인의 민권운동이 날개를 달고, 치열한 시대의 자궁 속에서 착상했다. 왜 그녀는 유색인종과 미국 내 소수민족 출신의 디자이너를 골라 옷을 입었을까? 물론 심미적으로 그녀가 즐겨입는 옷이기도 하겠지만 미국 역사에서 최로로 흑인 대통령의 탄생을 좀더 암시적으로 드러내기 위한 패션의 전략은 아니었을까 싶다.

 

이사벨 톨레도의 전시도록을 사서 읽으면서 이런저런 생각을 했다. 무명에 가까왔던 디자이너가 영부인의 취임식 패션 하나 때문에 불세출의 스타가 될 수 있는 세상. 어찌 보면 그게 미국 시장이기에 가능한지 모르겠다는 생각 말이다. 1962년생 방년 49세의 디자이너는 대통령 영부인의 사랑 덕택에 인기와 명성을 톡톡히 얻었다. 뉴욕의 F.I.T와 파슨즈에서 패션을 공부했던 재원이지만, 어린시절 부터 워낙 바느질을 좋아했던 그녀는 자신을 디자이너가 아닌 재봉사라고 생각한다고 말할 정도다. 물론 그녀의 패션이 괜히 탄생한건 아닐터. 패션 일러스트레이터인 남편에게 생각과 느낌을 전달하는 방법을 익혔다. 그는 그 개념을 스케치로 옮기고 그녀는 그 생각을 다시 옷으로 옮겨낸다. 바로 무에서 유를 창조하는 과정으로서의 패션을 선보인거다. 이사벨 톨레도의 전시는 유기적 형태와 직관을 묶어내는 그녀의 능력을 보여준 <유기적 기하학> 코너와 투명과 불투명의 세계를 함께 표현한 <그늘의 두 가지 얼굴>, 직물의 구조를 이용해 자연스레 옷의 긴장감을 표현하는 <서스펜션> 등 6가지 섹션으로 나뉘어져 있다.

 

 

 

 

유기적 기하학 Organic Geometry

유기적 기하학이란 용어는 직관적인 생각을 기본적인 형상과 연결짓는 그녀의 작업을 설명하기에 가장 적절하지 싶다. 그녀는 옷으로 입혀졌을 때 드러나는 3차원과 2차원 평면을 함께 고민한다. 도너스 가게에서 도넛을 먹다가 두개의 원을 연결해 만들었다는 드레스(왼편)는 평면으로 접을 수 있지만 사람이 입으면 볼륨감 넘치는 옷이 된다. 말미잘의 유동적인 움직임을 표현한 작품도 있다. 반투명의 실크 쉬폰을 소재로 하여 마치 무중력 상태를 유영하는 말미잘의 움직임을 옷으로 표현해냈다. 혹은 앞치마 두개를 붙여 옷의 상판을 만든 에이프런 드레스(두번째 아래 왼쪽)도 있다. 그녀는 이러한 변화과정, 기존의 모습을 버리고 새롭게 변모되는 '형상변화'에 주목한다. 보랏빛의 수레국화가 피어나는 형상을 저지 소재를 이용해 몸선을 타고 유연하게 떨어지는 주름으로 표현해냈다.

 

 

 

투명과 반투명을 넘어 Shadow

 

그녀는 빛의 이중성을 좋아하는 작가다. 현대패션의 주요 모티브로 '암영'을 이용한다. 투명과 불투명의 세계를 관통하는 빛의 속성을 표현하는 것이다. 우리는 전통 복식에서 현대의 패션에 이르기까지 이런 측면들을 자주 보게 된다. '보일락 말락'하게 신체를 감싸는 옷에 더욱 '성적인 흥분감'을 느끼는 이유다. 그는 옷에서 불투명한 질감이 갖는 관능적인 측면을 표현화기 위해 레이스를 자주 이용한다. 레이스가 만들어내는 암영의 느낌은 스페인 화가 고야의 그림 속 마야를 떠올리게 한다. 오른쪽의 백색 실크 오건디로 만든 웨딩 앙상블 드레스를 보자. 두 겹의 직물 사이에 다소 둔탁하지만 가벼운 소재를 더하여 빛과 어둠, 양면의 속성을 더욱 명징하게 드러낸다.

 

 

고야의 그림 속 여인들은 하나같이 반투명의 드레스를 잘 입는다. 물론 그림 속 주인공인 마야들은 원래 스페인 사회의 하층민으로서 복장을 통해 타인들과 자신들을 철저하게 구분한 계층을 일컷는다. 매춘부의 복식인 셈이다. 어느 사회나 남성의 성욕을 위해 존재하는 수많은 매춘부들이 있었고 그들의 복식은 당대의 유행의상이었다. 고야의 그림 속 여인들의 고혹적인 아름다움도 그 중 하나의 예일 뿐이다.

 

 

 

매달림 속의 긴장 Suspension

 

톨레도는 <서스펜션>이란 용어를 저지와 타프타 소재의 드레스에 사용한다. 굵은 끈을 이용해 부풀리거나 혹은 넓은 직물의 띠를 이용해 늘어뜨린 디자인을 지칭하는 표현이다. 첫번째 '헤르마프로디테' 드레스는 수평축을 따라 파상무늬를 그리는 고리들로 구성되어 있다. 이 과정에서 생각지 않은 형태들이 등장한다. 축을 따라 매달려 있는 고리들이 만드는 주름의 아름다움이 옷의 핵심이다. 결국 그녀의 드레스를 빛나게 하는 건, 주름의 섬세한 형상에 있다.

 

 

 

유동적 건축 Liquid Architecture

 

패션 일러스트레이터 안토니오 로페즈의 창작 파트너였던 후안 라모스는 그녀의 옷을 가리켜 유동적인 건축물에 비유했다. 톨레도는 유독 저지를 이용한 드레스를 많이 만들었는데 그녀의 옷은 편물의 유동적인 성격을 잘 드러내면서도 한편으론 건축적 구조를 갖추고 있다. 왼쪽의 테킬라 선라이즈 드레스는 레이온 저지를 이용해 여러개의 수평띠를 만들어 제작했다. 칵테일의 종류인 테킬라 선라이즈는 테킬라와 라임 주스, 소다수, 크림을 함께 넣어 만든다. 액체의 밀도 때문에 잔에 담으면 마치 태양이 떠오르는 것처럼 점증되는 색상의 띠가 만들어진다. 칵테일을 따라 만든 드레스의 빛깔이 곱다

 

패션 전시에 대한 포스팅을 많이 올리고 있다. 패션이 미술관의 오브제가 될 수 있다는 믿음 때문이다. 패션전시에는 다양한 얼굴이 있다. 디자이너를 띄우는 전시도 있고 브랜드의 역사를 묻는 전시도 있고, 옷의 물성을 성찰하는 전시도 있다. 이외에도 사회학적인 관점에서 여성의 역사를 '한 종류의 옷'을 통해 드러내기도 한다. 이번 톨레도 전시의 핵심은 '생각'을 옷으로 '변화'시키는 과정 자체에 주목해야 한다. 그 작업을 오랜동안 천착해온 작가의 면모를 한번의 포스팅으로 다 설명하기는 어렵지만, 이런 시도 자체가 활발하게 이뤄지는 뉴욕의 패션계가 부럽다.

 

솔직히 이사벨 톨레도는 미셸 오바마가 만들어낸 아이콘이다. 영부인이 입어 인기를 얻은 측면이 분명 있다. 영부인에게, 자신의 옷차림 하나하나가 '국격'을 올리고 한국 패션을 알리는 민간외교임을 알아달라고 말하고 싶다. 이명박 대통령이 에르메네질도 제냐 정장을 입었다고 언론에 특필되는 걸 봤다. 국격을 드러내는 패셔니스타로서 대통령과 영부인이 자국의 패션 브랜드와 옷에 대해 신뢰와 믿음을 가졌으면 좋겠다. 나폴레옹도 자국산 실크를 수출하기 위해 얼마나 조세핀의 옷에 잔소리를 늘어놓았나 말이다. 대통령과 영부인이 앞장서서 한국의 패션을 알린다면 얼마나 좋겠는가. 영부인께서 불황에 허덕이는 한국 패션 산업을 살리는 '이 어메이징한 여자'가 되어주길 바라는 마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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