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fe & Travel/해를 등지고 놀다

세기말 비엔나, 천재들을 만나는 여행

패션 큐레이터 2010. 11. 3. 01:46

 

 

여행을 떠납니다. 11월 9일부터 25일까지 16일동안

오스트리아 비엔나에 머물 생각입니다. 2년 동안 쓰지 않은 휴가를

다 끌어모아 재충전의 시간으로 삼았으면 하는 마음입니다. 사실 재충전이란 표현은

교만한 말입니다. 비엔나는 세기말, 근대란 개념을 잉태한 도시라고 말해야 할 만큼, 많은 천재들이

이곳에서 활동하며 문화 예술의 꽃을 피워낸 곳입니다. 일일이 거론하기도 만만치 않지요. 여러분이 좋아하는

클림트가 있고 그의 애제자인 에곤쉴레가 있으며 지금껏 제 자신이 세우고 싶은 회사의 전형인

빈 공방이 있습니다. 건축과 실내장식, 패션과 미술 디자인이 하나로 뭉쳐 아이디어를

실험하던 빈 공방도 들러야 합니다. 미술과 패션의 저널리스트로 활동하면서

사실 도록과 텍스트로만 공부해온 작가들도 부지기수입니다.

 

 

모든 문화예술의 장르가 그렇겠지만 작품이 잉태된 도시의 풍경과 사람들의 모습

그 속에서 당시 사람들은 무엇을 공유하고 어떤 코드를 드러낼 때, 작가를 천재로 생각하고

그와 함께 먹고 마시며 향유할 수 있었을까를 생각해보는 것은 중요합니다. 천편일률적인 역사비평의

방식이나 미술사의 고답스런 방식보다는, 한 당대의 천재들이 등장하면서 시대의 풍경을, 모습을 어떻게 변화시키고

공시대의 다른 이들과 나라, 문화에 영향을 미쳤는지, 그 관계를 하나씩 짚어가는 것도 매력적입니다.

 

 

클림트의 키스를 제대로 보겠군요. 아마도 한 장의 그림 앞에서 하루 종일

보낼지도 모르겠습니다. 해외 여행을 할 때, 흔히 유명 미술관이나 갤러리에 들르지만

시간상 2-3 시간 겨우 있다 오는 경우도 많습니다. 하지만 이번에는 그림 앞에서 널브러질 생각을

하고 갑니다. 클림트에 관해 쓰여진 글들을 다시 읽고 있지만 타인의 생각에 더이상 동조하고 싶지도 않네요.

한국에서 클림트 전시가 열렸을 때, 여러번 도슨트를 하면서 일반인들에게 그림을 설명했지만

과연 내가 아는 것이 얼마나 정확하고, 그림에 대한 이성적 이해가 아닌, 마음의 이해를

갖고 설명했는지 다시 한번 물어봐야겠습니다.

 

 

무엇보다 이번 여행에서 다시 한번 재확인의 시간을

갖고 싶은 화가가 있습니다. 바로 에곤실레입니다. 저는 그의 그림에

미쳐있습니다. 패션을 좋아하다보니 더욱 그렇고요.

 

 

에곤실레에 관한 책도 한국에 많이 나와있습니다.

해외에서 나온 원서들과 텍스트도 많이 읽었습니다만 여전히

그는 불가해한 바다입니다. 그가 그린 그림 속 인물과 패션의 세계 속에

담긴 세기말의 우울한 정신의 풍경을 반드시 조금이라도 이해할 수 있기를 바라고

있습니다. 늦은 초겨울의 시간으로 여행을 잡은 이유도 바로 그렇습니다.

 

그림이 내게 말을 걸지 않을 때가 있습니다.

그때는 그 그림을 내려놔야 합니다. 세계적인 미술사가가

혹은 평론가가, 혹은 대중이 유명한 그림이라고 아무리 떠들어도

소용없습니다. 모든 캔버스의 풍경은 정신의 풍경이며 나 자신의 내면의

일면을 지적하거나 찌르는 상처가 되지 않으면 그림은 다가오지 않습니다. 그렇다고

우울하지만은 않을 겁니다. 그림을 보는 시간은 제겐 가장 행복하니까요.

 

 

이번 오스트리아 빈 여행에서 발굴해야 할 작가가 있습니다.

훈데르트 바서란 현대 화가입니다. 원래 이 여행도 바서의 한국전을 앞두고

자료정리와 심도깊은 이해를 위해 추진한 것입니다. 아직 확정되진 않았지만 가능하다면

<훈데르트 바서>의 한국전시에서 도슨트도 맡아볼 생각입니다. 바서가 살아왔던 흔적을 되집으며

그림 속에 지속적으로 드러나는 모티브에 대해 생각해 보고, 그가 가진 생각과 주변의 모습을

담다보면 그의 그림과 작품 전반에 대한 견고하고 정감어린 이해가 생기지 않을까요?

 

 

그의 그림과 건축에는 2차 세계 대전을 겪으며 전쟁의 상처를 감내한

따스한 이상주의자의 풍모가 젖어있습니다. 그가 건축한 쓰레기 폐기장이나 빌딩들

환경을 사랑하고 그 속에서 자신의 영감을 무한히 펼쳐나간 한 장인의 궤적을 하나씩 밟아볼

생각입니다. 환경에 대한 이해가 날로 깊어가지만, 여전히 이 땅에선 4대강을 비롯한 환경 파괴의 움직임에

미래에 대한 꿈들은 철저하게 붕괴되고 있습니다. 평생을 반전주의와 환경주의자로 살아온

그의 삶을 살펴보며, 우리가 일상에서 자연을 껴안을 수 있는 방법을 배워올 생각입니다.

 

 

또 다른 작가가 있습니다. 오스카 코코슈카입니다.

제 블로그를 한국화가들을 소개하는 장소로 만들면서 사실

서양미술사의 주요한 작업들을 소개하는데는 게을렀던 것이 사실입니다.

저는 코코슈카의 표현주의적인 초상화가 좋습니다. 이 초상화의 주인공이 건축가

아돌프 로스입니다. 그 또한 당대 최고의 건축가이고 샤넬은 그의 철학을

좋아하기까지 했죠. '장식은 죄악이다'란 말로 유명한데요.

일명 샤넬의 '청담동 며느리룩'인 샤넬 슈트의

정신적 근간을 이루는 영감이 되었죠.

 

 

세기말 비엔나는 천재들의 도시이자 '근대'란 정신을

잉태하기 위해 이전의 요소들과 치열한 이념적 싸움을 벌인 시대입니다.

이런 정신의 풍경을 이해할 때라야, 음악의 도시 빈에서 왜 현대음악의 시조인

쇤베르크가 '조성을 파괴한' 음악을 들고 나왔는지, 프로이트가 성과 인간의 심리를 연결

시켰는지 조금씩 실마리를 풀어갈 수가 있죠.

 

 

시간이 허락한다면 체코 프라하에 들러 알폰스 무하도 만날것입니다.

그에 대한 이해없이 흔히 미술사의 '아르 누보'는 반쪽짜리 이해입니다. 적어도

저 처럼 패션을 미술을 통해 바라보는 이들에겐 그렇지요. 이외에도 디자인 뮤지엄과

패션의 영감을 얻을 수 있는 다양한 장소들을 다녀볼 생각입니다. 한예종 자유예술캠프의 이번

겨울 강좌는 르네상스에서 로코코까지입니다. 이번 여행을 통해 멋진 내용들을

담아 풀어내려면 열심히 다녀야 할 것 같습니다. 비엔나는 이점에서

최고의 도시가 되지 않을가 싶어요.

 

만만치 않은 여정이겠지만 잘 소화했으면 합니다.

무엇보다 이번여행에선 '먹고 기도하고 사랑하고' 오겠습니다.

미술관에 가면 그림에 취해 툭하면 끼니도 거르기가 일쑤였지만 이번엔

맥주에 와인에, 전통음식도 실컷 먹고 거리를 다니며 빈티지 의상도 사고 쇼핑도 하고요

항상 여행할 때마다 멋진 사람들을 만나곤 했었습니다. 빼쩨르부르크에서도 모델

출신의 멋진 화가 아가씨를 만나서 차를 마시며 이야기도 나누고 같이

도시 여행도 했었는데, 이번에도 그런 기적이(?) 일어날까요?

 

오늘을 마지막으로 11월 마지막까지 블로그 포스팅은

쉽니다. 이번 여행은 한 권의 책을 쓸 수 있을 만큼의 자료를 모으고

여행 와중에도 글을 쓰며 돌아다녀 보려 합니다. 물론 인터넷은 안할겁니다.

회사일, 방송(KBS에서 전화가 올지도 모르지만)도, 정기적인 블로그 포스팅의 압력도

다 잊고 갑니다. 그곳에 있는 시간에 취해, 비엔나에서 길을 잃게 되더라도

괘념치 않을 생각입니다. <샤넬 미술관에 가다>를 출간하고 지난

2년간 너무 혹독한 스케줄에 시달렸습니다. 이제는

제 몸과 영혼에 '평화선언'을 하고 쉽니다.

 

 

자 이제 떠날 시간입니다......비엔나에서 길을 잃어도 좋을것입니다.

 

따시뗄레!......당신의 행운을 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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