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아왔습니다. 지난 16일 동안 오스트리아의 비엔나와
잘쯔부르크, 인스부르크, 스위스의 루체른, 바젤, 프랑스 파리를
관통하는 여행길을 시작했습니다. 원래 이 여행의 목적은 비엔나 출신의
화가이자 환경 운동가인 훈데르트 바서를 연구하기 위해, 그의 집과 미술관, 그가
건축한 공공미술품을 살펴보기 위해서였죠. 여기에 플러스, 근대라 불리는 시대정신을 산출한
대표적인 세 개의 도시, 비엔나, 파리, 상트 페테르부르크를 답파하는 여정의 마지막
길이었습니다. 역사문화학자인 칼 쇼르스케의 <세기말 비엔나>를 읽으며
비엔나란 한 도시가 태어나는 과정을 통해, 우리가 흔히 모더니티라
부르는 근대가 어떻게 태어나는지, 그 영혼의 자궁 속을
살펴보고 싶었습니다. 만만치 않았습니다.
비엔나는 음악과 미술, 문학, 연극에 이르는 다양한
예술의 장르가 '근대(Modernity)'의 옷을 입으며 새롭게 잉태된
장소입니다. 음악과 미술과 문학은 각자 떨어져있는 영역이 아니라 서로가
긴밀하게 접속되어 영향을 미치며 성장했던 거대하고 복합적인 도시이지요. 그 겉옷의
실루엣을 살피는데도 힘이 부칠 정도였습니다. 다시 갈 기회가 있으리라
믿어보는 수 밖에요.
이번 여행은 지적인 이해를 더하는 것과 더불어
제 몸을 쉬고, 새로운 공간과 시간의 흐름에 맞추며 지난 동안
슬금슬금 자라난 생의 각질을 지우는 시간이었습니다. 하루하루가 느리게
변주되는 나날이었습니다. 제게 주어진 16일 동안 내 정신의 캔버스 위에 어떤 그림을
그리고 채색할 수 있을까를 고민했습니다. 좋은 사람들을 만나 인사를 나누고
사랑하고, 아찔하게 달콤한 케익에 미각을 담두고, 예쁜 성당에 들어가
매일 뜨겁게 기도하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잘쯔부르크에선 영화 <사운드 오브 뮤직>의 촬영지였던
장크트 길겐과 몬트제에서 묵으며 영화 속 남자 주인공이 불렀던
'에델바이스'를 따라 불러보기도 했고......
1800미터의 리기산에 올랐습니다.
온통 백색의 눈이 덮어버린 탓에 숲의 연두빛이
지워지는 듯 했지만, 두 가지 빛을 서로를 삼투하며
더욱 아름다운 풍경을 빚어내고 있었습니다. 모든 것이 궁핍한
시간, 겨울의 환을 견뎌대는 눈송이는 꽃이 되어 비처럼 내리고 있더군요.
꽃비가 되어 떨어지는 눈들은 수런 수런 수다를 떠는 여인의
언어가 되어 앙상한 숲의 속살을 살포시 안고 갑니다.
루체른 호수에서 묵는 시간......
고요한 설산의 잔영이 투영되는 거울같은
호수의 표면위로 지나온 내 여정 속 변해가는 얼굴을
비춰볼 수 있었습니다. 루체른의 물빛은 깊었습니다. 아침이 되면
코발트 빛 하늘과 그 하늘을 모자이크 하는 구름 모두
몸을 털고 호수의 깊음 아래 몸을 담급니다.
그 위에 내 상처도......푸른 영혼의 멍울도 풀었습니다.
하늘을 비상하는 새들의 힘찬 날개짓을 보며
나도 한번 다시 날아야지.....결심을 굳힙니다. 사실 지난 해
너무 답보상태에 빠져있었습니다. 책은 여러권을 계약해놓고선, 글이
앞으로 나가지 않았습니다. 몸엔 글독이 퍼졌고, 신경성 피부염과 대상포진 사이에서
몸 하나를 추스리기 어려울 정도였습니다. 이젠 괜찮습니다. 정말이요......
생의 시계를, 그 초침의 흐름을 조정할 수 있는 힘은
여전히 내 안에 있었습니다. 만나는 이들, 나를 위해 길을 찾아주고
말을 걸어주고, 깊은 이야기를 나누었던 아름다운 친구들이 있었습니다. 여행이란
결국 우리에게 주어진 시간을 만남의 붓으로 채색하는 시간이었습니다.
4일동안 계속해서 비가 내린 우기의 파리도
나쁘지 않았습니다. 해가 짧은 겨울은 여행객들이 그리
좋아하지 않는 계절이지만, 전 이상하리만치 겨울 여행이 좋았습니다.
러시아 횡단열차를 타고 도스토엡스키를 만나러 가던 때도 겨울이었고 파리를 처음
갔던 97년 겨울의 시간도, 저는 잊을 수 없었으니까요. 정말 많이 추웠습니다.
겨울 강을 건너 환한 꽃 두름 엮어
찬란한 봄을 준비하는 꽃들의 운명처럼, 우리의
여행도 그랬으면 합니다. 지난 16일, 기껏해야 2주일에
이틀 더 했을 뿐인데, 여행을 하는 저로서는 한달이 넘게 여행한
듯합니다. 인터넷이며 스마트폰, 그 어떤 것에도 묶이지 않았습니다.
여행은 어떤 면에서 보면 지금껏 쓰지 않던 안경을 다시
맞춰 쓰는 과정과도 닮았습니다.
새로운 휘도와 굴절을 만들어내는
렌즈로 바라보는 또 다른 세상에 대한 기대와 믿음
무엇보다 결국 어느 곳이든 '따스한 인간들이 있는 고향'이었음을
다시 배우고 몸에 새기는 일이었으니까요. 떠나있는 동안
여러분이 많이 보고 싶었고 그리웠습니다.
자 이제 글로 다시 한번 여행을 떠나야겠네요.......
행복한 주말 맞이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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