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rt Holic/영화에 홀리다

인생에서 별을 따는 방법-영화'가타카'리뷰

패션 큐레이터 2010. 8. 9. 20:49

 

S# 우리가 클래식을 읽는 이유

 

무수한 시간의 입자가 흘러간 궤적, 그 틈새로 푸른 빛을 투사하며 현재의 나를 되잡아주는 것들. 우리는 그것을 고전(Classic)이라 부른다. 고대 로마에서 7척으로 구성된 함단을 국가에 헌납할 수 있는 재산을 가진 계층을 클라시쿠스라고 불렀다. 클래식은 이 계층의 의미가 확장되어 지금까지 내려온 것이다. 전쟁과 같은 불가피한 위기상황에서 나라를 구할 수 있는 재력을 가진 자들의 노블레스 오블리주, 즉 사회적 책임을 묻는 말이기도 했다. 여기서 더 나아가 삶의 어려움, 위기상황을 돌파할 수 있는 지혜와 통찰력을 줄 수 있는 텍스트, 문학작품, 예술을 의미하는 것으로 오늘날의 클래식의 의미가 자리잡는다. 고전이 빛을 발할 때는 뭐니뭐니해도 '위기상황'에서일 것이다. 위기는 여러가지 층위를 가진다. 요즘처럼 남북관계가 극한에 치달을 때면, 안보의 위험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고, 경제적 급부를 쌓는 과정에서 생긴, 절차상의 평등의 문제는 여전히 이 땅을 강북과 강남으로 나눈다. 이렇게 계층계념이 탄생하고 이 계층에 대한 생각은 특정 계층이 다른 계층보다 우월하거나 부족하다는 식의 생각을 주입한다. 그래야만 자신들의 작은 땅덩어리와 정신의 몽오리가 견고해지기 때문일거다.

 

 

중학교 사회수업 시간, 우리는 흔히 지위(Status)에 대한 개념을 배운다. "개인의 사회적 신분에 따른 위치나 자리"라고 쓰여있다. 우리는 이 지위를 내 자신의 성취를 통해 얻기도 하고 귀속된, 다시 말해 부모를 통해 얻게 되기도 한다. 고대와 중세, 르네상스를 넘어 근대로 들어오면서 '사회 속의 인간의 자리'는 철저하게 성취에 의한 것으로 이해되어왔다. 자신의 피땀흘린 노력을 통해 얻는 것으로 말이다. 사회가 고도의 네크워크 사회가 되고 자본의 집중 현상이 점점 더 누적될 수록, 예전에 배웠던 성취지위에 대한 개념이 더 흐려진다. 개천에서 용이 나는게 점점 더 어려워지는 사회가 된다는 거다. 신자유주의 경제가 보여준 고도의 계층차별화는 바로 이런 현상을 더욱 심화시켰다. 자본은 끊임없이 축적되며 다양한 측면의 자본을 양산한다. 우리시대, 자본은 단순하게 돈과 동일한 개념이 아니다. 부유한 집안에서 태어난 아이들은 그만큼 더 좋은 환경에서 문화적 헤택을 누리며, 이런 경험들이 축적되며 확실하게 '계층'을 나누는 문화자본의 표식이 된다.

 

서론이 쓸모없이 길었다. 영화 <가타카(Gattaca)>는 1997년 제작된 SF 영화다. 단순하게 공상과학이라 이름하기엔, 영화 속 메시지가 10년을 훌쩍 뛰어넘은 지금 통렬하게 우리들의 폐부를 찌르기 때문일 터. 영화 속 미래사회는 철저하게 유전자 조작을 통해 태어난 아이들이 '우성'인자와 사회적 우선권을 갖는다. 부모의 사랑을 통해 자연 분만된 아이들은 '열성'인자를 가진 사회적 부적격자로 낙인찍힌다.

 

 

부적격자로 태어난 까닭에 유치원에 보내지 못한다. 이유는 보험 적용을 못 받기 때문이다. 보험회사가 보면 좋아할 대목이다. 미국 내에서만 돈이 없어서 병원에 가지 못해 전전 긍긍하는 인력이 수천만에 이르건만, 한국사회의 정치권과 결탁한 자본은 국민보험제도를 없애고 민영화 해야 한다고 주장하지 않던가. 입으로는 민영화를 통한 개인의 최적화된 보험을 운운하지만, 개인의 병력과 정보를 통해, 신체적으로 취약한 이들은 아예 보험의 혜택에서 배제하려는 자본의 폭력에 불과하다.

 

 

주인공 빈센트는 어디 한군데 나무랄데 없지만, 자연분만으로 태어났다는 이유로 사회적 부적응자로 낙인찍힌 삶을 산다. 반면 그의 동생은 유전자 조작으로 태어난 탓에 우성인자를 가진 계층으로 분류된다. 빈센트의 꿈은 우주 조종사다. 그러나 유전자 결과 그의 심장능력이 조종사가 되지 못한다고 조기에 못을 박은 탓에, 가타카란 회사의 청소 용역부로 일하게 되는게 전부. 모든게 유전자를 통해 결정되어 있는 사회의 단면을 옹골지게도 그렸다.  빈센트는 DNA 중개인을 통해 교통사고로 불구가 된 수영선수이자 유전학적으로 우성인 제롬 모로우를 소개받고 그의 유전인자를 돈으로 사게 된다. 그리하여 제롬의 유전인자로 가타카에 엘리트 사원으로 취직하며 꿈을 키운다. 제롬과 키를 맞추기 위해 신체확장수술까지 받는 빈센트.

 

가타카에서 만난 아일린이란 여자와 만나 사랑에도 빠지고, 그녀 또한 심장기능이 취약해 조종사가 되지 못한 아픔을 갖고 있다. 자신의 정체성을 버리고 제롬의 모습으로 살아가는 빈센트의 모습은 눈물겹도록 치열하다. 체모를 비롯한 몸의 표피들이 조금만 벗겨져도 유전자 조사를 통해 걸리기에, 매일 돌로 피부를 긁어낸다. 출생시 의사가 규정한 서른살의 삶, 어찌된 것이 유전의 법칙이 그의 삶을 하나씩 빗겨나간다.

 

 

빈센트에게 자신의 삶을 주다시피한 제롬의 삶 또한 눈물겹다. 그는 빈센트를 통해 반신불구가 된 자신의 영혼을 달랜다. 우주선을 타려는 빈센트의 꿈은 곧 그의 꿈이 되어간다. 서로가 한 몸이 되어 범죄의 알리바이를 맞춰가는 과정은 서로에 대한 고문과 다를바 없다. 유전자 조작을 통해 규정된 사회에서, 배제된 계층이 자신의 꿈을 이루기 위해 악전고투하는 과정은, 바로 지금 우리들에게 많은 생각의 몫을 던진다.

 

 

한번의 버튼 누르기로 '조직'에 가입될 수 있는 자와 배제되는 자가 구분되는 사회. 사회생물학의 담론을 쾡한 눈으로 보게 끔 하는 편견일 수도 있겠지만, 고도의 과학기술이 자본가의 욕망과 정치세력들의 입과 맞물릴 경우, 어느 누구도 이런 사회가 오지 않는다고 말할 수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이 영화를 좋아하게 된 이유는 주인공 빈센트의 면모와 꿈이 그를 움직이는 힘임을 믿기 때문이다. 아일린과 사랑에 빠진 빈센트는 서로에게 머리카락을 내어주며 유전자 조사를 해보라고 시킨다. 그들 모두 '바람에 날라갔네요'란 대사와 함께 유전의 껍질과 허위를 벗어버린다.

 

 

빈센트와 그 동생이 어린시절 바다에서 자맥질하는 장면이 수 차례 나온다. 이 장면을 왜 갑독이 여러차례 삽입했을까는 영화를 보면 알 수 있다. 초반에는 번번히 동생에게 지던 빈센트였지만 어느 시점에서인가 그는 유전학적 유성인 동생을 이긴다. 동생이 묻는다. "어떻게 이럴수 있는가 하고" 그는 답한다 "넌 돌아갈 힘을 남겨두고 헤엄치지만 나는 그 힘을 모두 이곳에 쏟기 때문이라고" 적어도 내가 이 영화에서 발견한 최고의 대사가 아닐까 싶다. 인생에서 별을 따는 방법이 무엇인가라고 묻는다면 이 영화는 우리에게 인생의 상처(scar)를 별(star)로 만드는 것은 딱 철자 한 자 차이임을 말해줄 것이다. 빈센트의 처절한 꿈을 통해. 그는 현대로 부활한 이카루스다.

 

다시 내 자신에게 물어본다. 책을 쓰는 일, 글을 쓰고 방송을 하는 일, 사람을 만나고 다양한 프로젝트를 기획하는 일, 이 모든 것에 과연 '돌아갈 힘을 남겨두고' 잔 머리를 굴려가며 앞으로 한발자욱씩 나선 건 아닌지 말이다. 패션의 통사를 쓰는 일은 만만치 않을거다. 한국에서 누구도 시도하거나 도전하지 않은 일이 아니던가. 게다가 기존의 시선을 가진 이들이 보기에, 다소 도발적인 시대의 규정과 해석을 정리하는 일이기에, 가슴앓이가 적지 않다. 그러나 그저 분노하며 과거를 돌아보긴 싫다. 과거의 상처에 탐닉하며 두근거리는 미래를 보지 못하는 우를 범하고 싶지 않아서다. 뭐든지 한 범주에 최초로 들어가는 책을 쓰는 건 괴롭지만, 잘하면 이건 역사가 되고 준거가 된다. 난 그 준거의 꿈이 되고 싶다.

 

 

P.S

개인적으로 이 영화를 자세히보면 60년대 패션을 하고 있음을 발견하게 될거다. 여기에 아르데코풍의 무늬와 패턴들이 건물건축이나 사물의 형상에 덧입혀 있음도 알게 될거다. 왜 일까? 정체성의 위기란 문제를 미국의 60년대, 가장 치열하고 험했던 그 시절의 좌표를 통해 물어보려는 의도는 아니었을까? 그냥 내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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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룹 오아시스가 부른 70년대 최고의 명곡 Don't look back in anger를 올립니다. 가사 한줄 한줄 음미하며 들어보니 너무 힘이 나네요. 비록 지금은 힘들고, 한발자욱 내딛는 것이 힘들더라도, 지나온 날들을 분노의 눈으로 보기보단, 자양분을 공급받은 날들로 기억한다면 좋겠지요. 무더운 한주의 시작, 행복하게 보내세요. KBS TV 미술관 강의가 다가오네요. 그때 뵈어요. 멋진 내용으로 찾아뵐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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