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rt Holic/영화에 홀리다

대학가는게 죽어도 싫을 때-영화 '언 에듀케이션' 리뷰

패션 큐레이터 2010. 8. 5. 09:00

 

 

 S#1 인간에게 필요한 성장통

 

인간은 항상 되어감(Becoming)의 시 공간 속에 머무는 존재다. 머문다는 표현은 딱히 어울리는 말은 아닐것이다. 인간의 성장은 그만큼 우여곡절과 다이나믹한 힘으로 가득한 무대다. 동 서를 막론하고 길을 떠나는 인간의 이미지를 소재로 삼는 소설이나 영화는 사실은 '길을 떠남으로서 성장해가는' 인간의 면모를 다룬다. 중세시절 오랜 세월 장인 밑에서 도제생활을 해도, 직업을 얻을 수 없었던 중세의 수공업 기술자들의 편력기나, 기사들의 모험기, 고향을 떠나 맥락 속에서 새로운 경험을 하며 익히며 살아가는 청춘의 이야기는 실상 이 길을 떠나는 모티브를 원형으로 한다.

 

론 쉐르픽 감독의 2008년작 <언 에듀케이션>은 학교란 기성체제와 일반 사회 속에서 균형점을 찾기 위해 악전고투하는 소녀의 이야기다. 개인적으로 론 쉐르픽 감독을 좋아하게 된 것은 영화 마니아들의 모임에서 본  <초급 이태리어 강습>때문이다. 이 작품으로 2001년 베를린 국제영화제 은곰상 및 국제영화평론가 협회상 등 4개 부문의 상을 휩쓸며 단번에 자신의 이름을 알리는 데 성공하였다. 현대 영화사에선 80년대 후반부터 선 보인 영화적 기법을 흔히 순수주의 영화론이라 부른다. 인공조명을 사용하지도 않고 감독의 개입도 거의 없는 영화다. 흔히 북유럽 영화의 거장 라스폰트리에가 <도그마>란 영화를 이렇게 연출하면서 아예 이런 방식의 영화를 <도그마>방식이라 부른다. 이번 작품 <언 에듀케이션>도 대부분 야간촬영 보다는 실제 빛을 이용한 주간용 화면들이 대부분을 채운다. 연출에 대한 이야기는 다음 기회로 미루고 영화 내용부터 살펴보자.

 

 

전쟁이 끝난 후 1961년 영국이 배경이다, 전반적인 경제침체와 전후의 상흔을 극복하지 못한 가난한 나라, 영국. 옥스퍼드 대학을 목표로 공부하는 17세의 우등생 소녀 제니가 있다. 그녀의 부모님은 한 마디로 보수적 가치 그 자체다. (그런데 솔직히 나는 영화 속 보수적인 면모들이 의외로 끌린다. 가령 남자친구를 데려와 인사시키고 항상 돌아올 시간을 정하고 부모님의 허락하에 데이트를 하는 모습도 그리 나쁘지 않았다) 어찌되었든 부모의 엄격한 통제와 고리타분한 학교 교육에 염증을 느끼는 제니. 첼로를 연주하는 게 그나마 삶의 무게를 더는 방식이다. 어느 비 오는 하교길 ‘비싼 첼로가 비에 젖을까 봐’ 차에 태워준다며 나타난 연상남 ‘데이빗’(피터 사스가드)이 나타난다. 그는 위트와 배려심, 경제적 능력까지 갖춘 훈남. 호기심 가득한 제니에게 새로운 세상을 소개한다. 현실의 집과 학교가 더 이상 참기 힘들어진 상황에서 그의 등장은 사못 새롭고 신선하다. 비루해보이는 자신의 신분이며 생활에 방점을 찍게 되었으니.

 

 

개인적으로 1960년대 초반 비틀즈의 힘이 영국을 휩쓸기 전 당시의 소소한 패션을 볼 수 있어서 좋았다. 올림머리도 너무 잘 어울리고. 요즘 왜 이렇게 60년대 패션 스타일에 끌리는지 원. 입시체제에서 매일 죽음의 고문을 견뎌내는 한국적 상황과는 또 다른 맥락을 보여주는 영화 <언 에듀케이션>. 이 영화는 교육의 본질이나 체제를 부정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교육 그 자체의 필요성, 성장을 위한 과정에서 어떤 역할을 할 수 있는지를 순수한 관점에서 보여준다. 60년대 초반 소수의 전문직을 제외하곤 직장을 얻기 힘든 영국사회의 면모는 지금 우리의 모습과 닿아있다. 노동력 잉여의 사회에서 '스펙 올리기' 열풍에 몰입하는 우리 사회의 대학생들의 모습이 오버랩된다. 그들은 성장을 위해 길을 떠나야 하고 아니, 그래야만 하는 슬픈 사회의 초상화다.

 

이런 비루함을 이겨내기 위해 좋은 대학에 가야하지만, 정작 영화 속에서 캠브리지를 나와 라틴어를 가르치는 선생님의 모습을 보니, 이것도 영 따라하고 싶지 않을 뿐. 제니의 일상에 파랑을 일으키는 두 명의 남자와 한 여자. 이들을 따라 미술 경매장에 가서 번 존스의 그림을 직접 사기도 하고, 파리 여행을 떠나기도 한다. 이 순간이 영원할 것 같은 순간. 그 사랑은 물거품이 되고 만다. 바닥까지 떨어지고 나서야, '세상엔 공짜가 없다'는 작은 진실을 발견할 뿐. 그렇게 제니는 인간으로 여자로 성장한다. 알고보니 이 남자, 유부남이었다. 결론이야 뻔할 테지만.

 

 

대학 무용론이 대세다. 대학이 세상에 적응할 수 있는 실질적 지식을 전해주는 기능을 하지 못한다고 비평한다. 하지만 난 서글프다. 이런 대학 무용론에는 몇 가지 관점이 빠져있다. 사학재단이 어떤 과정 속에서 80년대 군부정권 하에 성장했는지, 이들이 양산한 수많은 대학들이 학력 인플레에 일조하고 있다는 것도 말하지 않는다. 결국 교육을 통해 양성된 인재들을 흡수할 수 있는 지속 가능한 경제구조와 모델 또한 중요하건만, 여기에 대한 논의가 거의 없다. 대학 대신 마이스터 과정을 운운하지만, 정작 마이스터가 나와도 이들이 취업해서 자신의 꿈을 펼칠 수 있는 중세 시대의 보테카, 워크샵은 한국에 없다. 이건 중세시절에도 마찬가지였다. 각 나라별로 도제에서 장인이 되기까지 걸리는 시간은 평균 7년이다. 당시의 시장은 너무 협소했다. 길드가 폐쇄적인 형태로 발전한 이유다. 이런 와중에 기술자들은 각 나라를 편력하면서 자신의 기술 수준으로 일할 수 있는 나라를 찾아다녔다. 그렇게 편력의 길에 접어들었던 것이다.

 

현 기술장인에 대한 사회적 인식 자체가 여전히 낮은 나라에서, 실제 기술과 경험보다는 학력이라 불리는 졸업장 위주 사회에서, 중세시대 시작된 대학의 본원적 가치를 회복하기란 요원한 길로 보인다. 그러나 도전을 해야 하고 우리 또한 변화의 도정으로 나가야 한다는 점에는 추호의 의심도 없다.

 

 

오늘도 대학을 가야 하는가 가지 말아야 하는 가로 고민하는 이들에게, 딱히 해줄말이 명쾌하지 않다는 게 아쉽다. 나 또한 해외유학이란 스펙의 덕을 입었던 그룹 중의 하나란 걸 모르지도 않는다. 영화 <언에듀케이션>은 우리에게 교육이 본원적으로 인간에게 해줄 수 있는, 혹은 무장시켜줄 수 있는 힘이 무엇일까에 대해 생각해보자며 채근한다. 지루하고 답답해 보이는 학교란 무대, 그저 바깥으로 나가면 좋은 일들만이 펼쳐질 것만 같은 환상 속에서, 준비해야 할 것에 대해 성찰의 기회를 부여한다. 나이가 들어가면서, 사람들을 상대로 강의를 하고 가르치면서 또 배우게 된다. 중요한 건 존재론을 상기하는 점임을. 왜 배우는지, 이 과목을 통해 뭘 얻어야 하는지, 내가 배운 작은 지식이 세상이란 거대한 톱니바퀴에 어떻게 맞물려 갈 수 있는지, 작은 질서가 주는 생의 기쁨을 배우는 일이 얼마나 중요한지 말이다.

 

개인적으론 60년대 패션의 교과서처럼 남성 수트와 여성 드레스가 나와서 눈이 호사를 누렸지만, 시각만큼이나 마음 속엔 생각의 여지와 주름을 남겨놓았다. 대학가기가 죽어도 싫다고 외치는 그대. 혹은 싫은 이가 있다면 이 영화를 한 번 보도록. 그냥 생각에 빠져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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