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rt Holic/영화에 홀리다

여자 마흔, 갱년기를 극복하는 법-영화 <가을 아다지오> 리뷰

패션 큐레이터 2010. 8. 23. 09:00

 

 

 S#1 여자 40, 무엇으로 생을 꾸려가는가

 

광폭한 여름의 혹서를 견디는 요즘, 갈맷빛으로 익어가는 워커힐 산책로를 걸었다. 건듯 불어대는 여름의 미풍은, 후텁지근한 땀냄새를 지우기엔 무리인 듯 싶다. 엄마를 따라 산책 온 아이들의 고아대는 소리, 언제부터인가 무분별하게 개인별장이 난립하며, 더욱 조붓해진 산책길은 불쾌와 유쾌의 감정이 오간다. 가을이 오기를 기다리며 커피 한잔을 마시고 나왔다. 호텔 커피숍에 앉아 혼자 한강을 바라보는 시간, 쓸쓸하다 못해 애잔하다.

 

이번 제천 국제음악영화제에서 본 4편의 영화 중 마음 한켠을 따스하게 안아준 한 편의 영화가 있다. 바로 일본 감독 이노우에 츠키의 <가을 아다지오> 올해 초 이미 몬트리올 영화제에서 극찬을 받은 작품이었다. 영화제에서 이 작품을 건진 건 행운이다. 영화감독 이노우에 츠키는 작년 로테르담 영화제에 <지구를 두드리는 여인 The Woman Who is Beating the Earth>란 단편으로 주목을 받았다. 단편영화였지만 영화 속에서 그녀는 음악과 리듬이란 요소를 교묘하게 병치시켜 짧지만 생동감 넘치는 에너지로 충만한 작품을 만들었다. 올해 그녀는 다시 <가을 아다지오>란 영화로 로테르담에 도전했다. 일본에서 거의 소수자에 가까운 가톨릭 수녀를 주인공으로 삼았다. 그녀는 이제 40에 접어들었다. 수녀의 삶과 그녀를 둘러싼 종교적 풍경을 동시에 아우르며, 여성 자신의 여성성과 섹슈얼리티의 문제를 다룬다. 사춘기의 소녀에서 아가씨로 다시 한번 제2의 사춘기를 맞이하는 여성의 삶을 '몸의 변화' 를 통해 살펴본다. 신체는 정직하게 그녀의 내면을 비추는 거울이 된다.

 

이번 영화에서도 이노우에 츠키는 음악이란 요소를 연출에 접목시킨다. 발레공연을 위해 피아노를 치는 일을 하면서 음에 몸을 맡기는 발레리나들의 모습을 보게된다. 이들을 가르치는 남자 선생에게도 애틋한 감정을 느끼게 된다. 이 영화는 흔히 말하는 수녀란 소재를 팔아먹는 작품이 아니다. 자기발견과 후회, 수용이라는 정신의 3단계를 거치는 한 인간의 면모를 살펴보면 될 일이다. 이 영화의 원제는 불혹의 아다지오다. 불혹이란 무엇인가. 유혹에 흔들리지 않는 40대를 가리켜 공자께서 친히 붙여준 세월의 레이블이 아니던가? 그러나 과연 40대는 유혹에 흔들리지 않는가? 변화하는 자신의 몸과 감정의 앙금을 견뎌내느라 가장 어려운 시기가 아니던가 말이다. 이런 감정에 동감하는 이들이라면 이 영화를 보고 좋은 평점을 주는 건 무리가 아닐 듯.

 

 

마리아는 일찍이 어린나이에 교의를 받고 수녀가 되었다. 자신에게 주어진 자질구레한 성당 관리일과 잡일들, 내적인 삶과 믿음, 자신에게 주어진 책임을 다하며 하루 하루를 살아간다. 그녀의 나이가 40이 되면서 일련의 변화들이 일어난다. 바로 폐경기를 맞이하게 된 것. 폐경기의 시간은 그녀를 제2의 사춘기처럼 그녀의 몸과 영혼을 바룬다. 자신의 삶과 실존에 대한 불편한 감정들이 밀려온다. 수녀가 되기 위해 버려야 했던 것들에 대한 후회, 그러나 그녀는 이 모든 것들을 극복하고 다시 수녀로서 태어난다. 가장 중요한 건, 수용이다. 지금의 변화를 받아들이고 또 다른 삶을 향해 추돌해가는 힘. 그것이 바로 자기 긍정이 아니겠는가?

 

35살의 나이, 여전히 아름다울 것 같은 감독의 모습을 봤다. 영화가 끝나고 질의 시간이 수도 없이 이어졌다. 워낙 감독이 장면 하나하나에 의미를 부여할 수 있는 장치들을 불어넣은 까닭이다. 꽃의 수술을 하나씩 떼는 첫 장면에서 부터, 수녀가 살고 있는 공간의 미장센에 이르기까지, 여러 질문이 오갔다. 이노우에 츠키의 영화가 매력적인 건, 그저 수녀를 소재로 팔아먹는 영화(Nunexploitatuion)들이 보여주는 컨벤션들, 가령 수녀원을 떠나 세상의 쾌락에 빠지고 만나는 과정을 그리는 영화의 덫에 빠지지 않았다는 점일거다. <가을 아다지오>는 이런 어리석은 사춘기 시절의 행동을 우회하며 '수녀'의 삶과 여성의 삶에 대한 존경으로 채색한다. 영화 속에서 그녀가 신앙을 버리거나 혹은 수녀원을 떠나는 식의 결론은 찾아볼 수 없다. 중요한 것은 흔들림 속에서 새롭게 발견한 감정의 무늬일 것이며 이 무늬는 그녀의 후반부의 생을 지탱해 나갈 것이다. 실제로 영화 속 마리아 수녀는 피아노를 유려하게 연주한다. 알고 보니 음악가 출신의 배우 시바쿠사 레이다. 자신의 캐릭터를 믿음직하게 변모시키기 위해 주인공은 섬세한 연기의 동선을 따라, 감정을 토해낸다. 쉽지 않았을 텐데, 연출과 호흡이 잘 맞았다.

 

S#2 폐경기, 조용한 혼돈을 극복하는 법

 

여성들은 폐경을 맞이하면서 몸의 변화를 감지한다. 열꽃이 피고 얼굴이 화끈거리는가 하며, 또 한편으로 쾌적함을 느낀다는 이들도 있다. 자신의 신체에 대해 점점 무덤덤 해지며 남편에게 자신의 신체의 변화를 감추기도 한다. 예전 80년대 후반 미국의 저명한 심리학자였던 게일 쉬이 박사는 <조용한 변화>를 통해 수많은 미국 여성들의 폐경기 이후의 삶과 우울증을 극복할 수 있는 방식을 내놓았었다. 한국도 2030년에 이르면 여성인구의 45퍼센트가 폐경기에 이른다는 통계가 나왔다. 그만큼 다가오는 신체의 변화와, 그 이후의 삶을 어떻게 충만하게 살아갈 것인지에 대해 고민해야 할 때가 온 것이다.

 

영화를 보면서 기억에 남는 대사가 있었다. 그건 초경을 시작한 아이가 수녀님께 와서 피가 흐른다며 울먹이는 장면이었는데 마리아는 이렇게 답한다. "하나님이 인간에게 사랑을 위해 단지 하나씩을 한달에 한번씩 선물로 준다고. 그런데 그 단지에는 기한이 있어서 오래되면 더 이상 물을 담을수는 없다고. 자신은 하나님께 다 돌려줬다고" 말이다. 이 대사를 받는 꼬마아이의 말이 더 예뻣다. "수녀님은 사람들에게 그 단지를 나눠준 것"이라고. 이 장면이 더욱 예뻤던 것은 아이가 싸온 도시락과 동일한 것을 수녀님이 의자에 앉아서 같이 먹는 장면이다. 수녀님오 초경을 맞은 사춘기의 소녀처럼 다시 되돌아 간것을 이렇게 표현하다니. 화면이 곱다. 가슴 한 구석이 따듯해지는 영화다. 폐경을 맞은 여성들이 보면 참 좋을 것 같다. 자기발견의 과정과 자기 수용의 과정을 이렇게 곱게 그려낸 작품을 언제 봤나 싶다. 개봉관에서 보게 될 가능성은 거의 없다고 보여지지만 말이다. 게일 쉬이는 자신의 책에서 폐경기(Menopause)를 맞은 여성들을 위해 새롭게 폐경기의 개념을 정의한다. Men O Pause (남자들은 우선 멈춤)이라고. 나이가 들면서 여성에 의해, 혹은 남성에 의해 우리 자신이 규정되기 보다, 홀로 있음에도 빛나는 나 자신을 빚어가고 싶다. 그런 만남과 관계를 통해 더욱 신이 조형한 아름다운 인간으로 살아가는 것. 아마 이 영화가 내게 준 메시지가 아닐까 싶다.

 
제2의 사춘기를 맞이한 이 땅의 여인사십 후반의 여성들에게 이 영화를 바친다. 다들 행복하시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