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서울 명동은 슬로 패션과 패스트 패션의 전쟁터다. 지난해 겨울, 스웨덴 브랜드 H&M의 국내 상륙과 더불어 이미 내수시장에 뿌리를 내린 자라(ZARA)나 유니클로·포에버21은 말할 필요도 없고, 이랜드 또한 스파오(SPAO)라는 토종 패스트 패션 브랜드를 론칭하면서 ‘성전’을 불사할 태세. 패스트 패션은 ‘빠른 회전율’과 ‘빛의 속도에 버금가는 상품 출시와 폐기’라는 원칙 위에 서 있다. 신상품은 2주일마다 쏟아지며, 고객들은 참신한 디자인에 환호한다. 복잡다기한 현대, 다양한 정체성과 자신만의 색깔을 원하는 이들에게 패스트 패션은 신속한 ‘자아 변신’을 가능케 해주었다.

슬로 패션이 뜬다. 패스트 패션과는 차별화되는 논리를  내세운다. 경영학에서는 소비자가 물건을  구매할 때 투자하는 시간과 정신의 수준을 ‘관여도(Involvement)’라는 말로 설명한다. 패스트 패션은 가격대가 저렴한 만큼, 의사결정 시간이 짧다. 반면 슬로 패션은 친환경 소재, 개성을 살리는 실루엣으로 승부한다. ‘옷발’이 나는지 여부를 결정해야 하기에 의사결정 시간이 길다.


 

 

 

 
패스트 패션은 ‘빛의 속도에 버금가는 상품 출시와 폐기’라는 원칙 위에 서 있다. 위는 코오롱패션의 패스트 패션 브랜드 ‘쿠아’ 매장.
슬로 패션의 대명사는 영국 새빌로(Savile Row)의 수제 남성용 슈트다. 소설 <80일간의 세계 여행>에서 주인공 필리어스 포그의 집이 있던 곳이 새빌로다. 이곳에서 제작되는 영국풍 슈트를 비스포크(맞춤) 슈트라 부른다. 산업 패턴을 사용하지 않고 고객의 치수를 직접 재고 그에 따라 재단한다. 대량생산 방식으로 만들 수 없는 착용자의 스타일과 정신성을 되살리는 손맛의 아우라(고고한 분위기)가 있다.

최근 슬로 패션 관련 기사들이 뜬다. 그런데 바뀐 건 삶의 속도와 옷을 입는 태도의 변화가 아닌, 지갑의 두께가 변해갈 뿐이다. 왜일까? 요즈음의 ‘슬로 패션’에는 옷의 윤리 개념이 부재하기 때문이다. 현 시장의 슬로 패션은 대안이 아닌, 또 다른 지갑 열기의 방식일 뿐이다. 자본주의의 가쁜 호흡을 가다듬고 삶의 대안을 ‘옷’이라는 렌즈를 통해 바라보려는 노력은 보이지 않는다. 패스트 패션에 대해 반성을 촉구하지만, 옷을 싸게 만들지 못하는 한 슬로 패션은 한때의 유행으로, 돈 있고 여유있는 자들이 만든 허위의식으로 끝날 가능성도 크다.

복식사는 이를 증명한다. 19세기 중반, 재봉틀과 인공염색 기술이 등장하면서 대량생산의 길이 열렸지만 한편에서는 천연염료를 이용한 호박색이나 옅은 초록 의상을 제작해 입고 다녔다. 산업혁명 초기 열악한 근무조건에 저항하는 재봉사들의 연대 파업과 연결되며 하나의 흐름이 될 줄 알았다. 이 복식 개혁운동의 주창자는 소설가 오스카 와일드다. 그러나 웬걸 그들의 운동은 당대의 공고한 패션 체계의 한계를 넘지 못했고 ‘깨이지 못한 여성을 교화하려 한다’는 지적 우월주의라는 욕만 얻어먹었다. 행간을 읽어보면 지금 뜨는 ‘에코 시크’니 공정무역이니 하는 관점의 결과가 보이지 않는가? 돌아가는 판세가 비슷해서다.

   
재활용 디자인 브랜드 ‘리블랭크’가 가죽 재킷(위)을 가방(아래)으로 바꾼 모습.
지속가능성이 화두인 시대이건만, 패션의 논리는 이와는 완벽한 대칭을 이룬다. 패션은 어원 자체에 ‘변화’라는 뜻이 담겨 있고, 지속가능성에는 ‘유지’라는 뜻이 들어 있다. 두 단어는 양립할 수 없는 운명이다. 패션은 신상품 판매를 위해 구상품을 계획적으로 진부하게 만드는 논리 위에 서 있다. 기업 전략에서는 이를 계획적 진부화(Planned Obsolescence)라 부른다. 패스트 패션은 계획적 진부화의 속도가 가장 빠른 의류산업의 변종이다.


장치산업이자 노동집약적 성향이 강한 의류 제조업은 그 자체로 친환경 논리에 대치된다. 면화는 세계 직물 원료 중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면서도 전 세계 농약의 10%, 살충제의 22%를 작황을 위해 사용한다. 면화 재배 및 염색에 들어가는 막대한 물의 양 때문에 중앙아시아 아랄 해는 매년 15%씩 줄어든다. 저비용으로 생산된 패스트 패션 상품은 대부분 소각로에서 최종 처리되는데 영국에서만 매년 100만t이 넘는 의류가 버려진다. 폐기 과정에서 발산되는 중금속 또한 환경에 악영향을 미친다.

패스트 패션은 빠른 파괴 초래


이외에 열악한 근무조건에 시달리는 아동노동도 문제이다. 문제는 패션산업으로 인해 발생하는 사회적 비용이 옷 가격표에 반영되지 않는다는 점이다. 이 모든 것이 패스트 패션의 ‘광폭한 속도’와 연결되어 있다. ‘착하게 입는’ 방식에 대해 다시금 생각해보는 기회를 가질 필요가 있다. 내가 입은 스웨터 한 벌, 티셔츠 한 장이 누군가의 노동력을 터무니없는 대가로 착취한 결과라면, 과연 그 옷을 행복하게 입을 수 있는지 물어봐야 한다.

패스트 패션을 통해 간편하고 빠른 변신이 가능해지는 만큼, 지구는 쉽게 망가져간다는 걸 이해하자. 이기적인 욕망을 자발적으로 통제하는 힘을 가진 인간. 우리는 그것을 윤리적 인간, ‘호모 에티카’라 부른다. 윤리란 습관에 관한 이론이라는 뜻이다. 바로 자연과 공생하며 만들어낸 ‘인간의 관습’을 배우는 것이다. 패션의 윤리학 또한 이와 다르지 않다. ‘옷’의 생산과 유통과정을 바르게 ‘앎’으로써 우리 시대와 화해하는 법을 배우는 것. 개념 찬 인간은 옷발이 다른 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