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fe & Travel/나의 행복한 레쥬메

으랏차차 우리동네에 놀러오세요

패션 큐레이터 2010. 6. 10. 08:30

 

 

수요일이면 부랴부랴 사무실에서 일을 정리하고 부천에 있는 경인방송 OBS로 갑니다. 5시 50분 부터 7시 50분까지 두시간 동안 펼쳐지는 정보 버라이어티 쇼 <으랏차차 우리동네>에 4명의 MC로 등장합니다. 딱히 패널이라고 말씀드리기가 어려운 것이 이 프로그램의 특징입니다. 약간 시트콤 느낌을 살려서 쇼에 등장하는 이들이 각자 캐릭터를 가지고 의사표명을 하는 방식이거든요. 저는 자칭 인터넷좀 찾으면서 아는 척도 하고 세상에 대해 궁금한게 많은 똑똑이 스머프 컨셉이고 김빛이라 아나운서는 실제 회사에서도 막내인데, 이곳에서도 신참이고 사회에 갓 진출한 여성의 입장과 시선을 드러낸답니다. 강성범씨는 제 나이 또래 답게 과장 말년차 정도의 직장인 컨셉이래요. 가장 아이들 키우고 집 마련하고 뭐 이런 고민들이 가장 많은 또래의 모습을 드러내죠.

 

 

방송을 시작한 건 이제 두달째 접어듭니다만, 제가 보기엔 경인방송의 특징이 기존의 공중파 방송과 차별되는 몇 가지 지점이 보이더군요. 특히 토크쇼의 경우에는 사회자와 패널로 양분되는 기존의 스타일을 무너뜨리고 생생하게 서로 치고 들어가다 보니 처음엔 당혹스럽기도 했지만 요즘은 점점 더 목에 익숙해지는 느낌입니다. 사실은 혼이 많이 난답니다. 오늘도 대본 보느라 자꾸 고개 숙여서 혼났구요. 제가 방송 경험이 일천하여 다른 패널분들에 비해 많이 미숙해요.

 

 

생방송이 진행되는 스튜디오 내 세트의 모습입니다. 편하게 동네 주민들이 거실에 앉아서 수다를 떠는 느낌을 살려보려고 했다는군요. 내용은 시사와 정치를 비롯한 다양한 생활 속 정보들을 다루는데 저는 사실 처음에는 제가 이 프로그램에 맞나, 제대로 해낼 수 있나 하는 생각에 고사를 했습니다. 참고로 패널은 요일마다 바뀌는데요 월요일은 시사인의 주진우 기자가 화요일엔 강력포스 딴지일보 총수 김어준 선생님 수요일에 제가 나온답니다. 한번 뵈었으면 하고 있네요.

 

패션과 미술에 대해서라면 누구보다 잘할 수 있지만 사실 시사에는 그리 탁월하게 아는 지식도 많지 않았습니다. 예전 라디오 프로그램에서 아침마다 북 칼럼니스트로 <책 읽어주는 남자>를 진행한 이후,  텔레비전은 처음이라 당황하기도 했고, 제 자신과 제대로 맞는 컨셉인지 고민도 많이 했답니다. 시간이 지날수록 나름 일상의 재미들을 찾는 프로그램에 맛도 알게 되고요. 이 방송 시작하면서 신문을 더 심도깊게 읽는 것 같습니다.

 

 

 KBS의 <TV 미술관>에서 강연 요청이 들어왔습니다. 패션 전시가 있을 때 한번 쯤 갤러리에서 현장 강의하는 것을 담고 싶다고해요. 다음에 나올 기회가 있을거 같네요. 어찌되었든 패션과 미술 관련 프로그램, 혹은 공연이나 영화 쪽 소개하는 일을 하고 싶기도 했는데, 이쪽과 다소 거리가 멀긴 하지만, 되짚어보면 제가 블로그에서 소개했던 미술 작품들이 일상과 사회적 현상들을 다시 읽어보기 위한 수단이었다는 점에서 <오늘의 그림 한장>같은 코너를 여기에 넣어보면 어떨까 하고 수석 프로듀서님께 제안도 드려봤습니다. 개인적으로 블로그에서 10년넘게 써온 글의 방식들이 사안을 그림 테마로 묶어서 설명하는 일이다보니 기회가 되면 이것 만큼은 제가 알아서 다 해낼수 있을거 같고, 미술/패션 컬럼니스트답게 제 정체성도 찾을 수 있지 않을까 싶기도 합니다. 그래서 기도하고 있죠.  

 

 

자 이제 저와 함께 진행하는 분들을 소개해야 할 차례군요. 먼저 개그맨 강성범씨. 수다맨에서 시작하여 형님뉴스에 이르기까지 속사포같은 언변에 반했던 개그맨이 아니었나 싶어요. 개인적으로 참 좋아했었거든요. 장가 안간다고 맨날 프로그램 진행하면서 놀리시는데, 저라고 뭐 안 가고 싶어서 이러나요. 사정이 안되니 그렇지요. 중요한 건 강성범씨가 시사나 사회문제에 대해 관심이 많다는 점이에요. 특히 함께 하는 염경환씨는 문학이나 예술영화에 굉장히 깊은 소양을 갖고 있답니다. 저도 방송 끝나고 식사하면서 두 번 이야기를 했는데 깜짝 놀랐어요.

 

마지막으로 우리 프로그램 최고의 공주님, 김 빛이라 아나운서. 오늘은 짙은 연지빛 슬리브리스 상의에 플리츠 주름이 양쪽으로 트인 광택소재의 진회색 스커트를 입고, 마지막은 진주 귀걸이로 깔끔하게 장식. 예쁘고 총명이 뚝뚝 떨어지는 홍일점이죠. 빛이라님께 들어보니 최근 아이폰 웹 애플리케이션 중에 이 경인방송 프로그램을 그냥 볼 수 있게 해주는게 나왔다네요. 직접 눈으로 확인해 보시면 좋아요.

 

저는 개인적으로 프로그램 중에서 제일 마음에 드는 코너가 마지막에 있는 <우동 곱배기>입니다. 이게 우리동네 곱배기 뭐 이런 뜻의 약칭이더군요. 우리 시대의 아버지에 대해서 다루는데요. 오늘은 사고로 팔 한쪽을 잃으시고도 장애인들을 위해 구두를 만드시는 장인이 나오셨습니다.

 

세창 장애 구두연구소를 운영하시면서 장애우들을 위해 구두를 만드시는 남궁정부 선생님이에요, 예전 <꿈꾸는 구두 5만 켤레-외팔로 짓는 세상에서 단 한 사람만을 위한 구두>란 책을 읽었었는데 그 책의 주인공이셨어요. 물론 세계적으로 구두 명품을 만드는 장인들의 이야기들은 한국에도 책으로 나와 있죠. 페라가모나 지미추 스토리 같은 책도 나왔어요.

 

개인적으로 복식사를 연구하다 보니 구두에 관심이 많습니다. 페라가모도 사실 구두의 명장이 되기 위해 UCLA에서 해부학을 공부했었죠. 발이 편하다는 것. 거기에 맞는 구두를 만드는 것이 쉽지 않은 이유입니다. 발은 인간이 대지에 맞닿는 중력을 가장 강력하게 느끼고 힘을 분산해야 하는 기능을 해야죠. 그러다보니 피로감이 강하게 들죠.

 

우리는 흔히 디자인을 겉을 예쁘게 꾸미는 기술 정도로 알고 있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러나 인간을 위한 디자인이란 바로 유용성을 생각하고 제품을 사용할 대상의 상처와 욕구를 명확하게 이해하고 이것을 반영하는 기술입니다. 우리는 이 간단한 사실을 너무 쉽게 잊고 산답니다. 한강 르네상스 프로젝트와 청계천이 바로 디자인 철학이 없는 행정가들의 소산임을 잊어서는 안됩니다.

 

특히 장애우들의 경우 사고로 다리를 잃거나 왼쪽과 오른쪽 발이 크기나 길이에 편차가 클 경우 일반 구두를 신을 수가 없습니다. 문제는 이 경우 맞춤을 해야 하지만 맞춤 구두 기술자 조차도 장애우의 발 상태를 정확하게 측정해서 하나뿐인 구두를 만들어주진 못해요.

 

여러분들은 제가 이렇게 이야기 하면 그게 뭐 그리 대수인가 라고 생각하실지 모르겠어요. 하지만 발과 관련된 장애를 가지고 계신 분들은 신발을 신고 눈이 온 땅을 뽀드득 뽀드득 소리를 들으며 밟고 걸어가는 게 꿈일수 있다는 점 기억하셨으면 좋겠습니다.

 

저는 이 분을 보면 놀라운 것이 사고로 팔 한쪽을 잃고 기능공에서 아무것도 할수 없는 노인이 된 상황에서도, 침착함을 잊지 않고 자신의 상황 속에서 타인의 아픔을 더욱 깊게 이해하면서, 공감하며 구두를 만들어왔다는 점입니다. 이것이야 말로 디자인이란 말이 갖고 있는 본질이 아닐까 싶습니다.

 

영어에서 '내가 네 입장이라면'이란 말을 할 때, If I were in your shoes라고 표현합니다. 타인의 구두를 신는 일이 바로 타인의 입장과 상처를 이해하는 은유가 되어 사용되고 있는거죠. 영혼의 구두를 빚는 장인의 손길, 새롭게 장애우들을 위한 구두를 만들기 위해 정형외과학도 공부하신 걸로 아는데요. 이런 분들이 진정한 신 지식인이고 우리 사회, 디자인의 본질을 찾아가는 장인이 아닐까 싶어요. 이 분이 팔을 잃고 난 후 구두 만들기에 매진하면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내가 필요한 사람인것을 깨닫게 하려고 팔이 사라졌나보다' 라고요..... 오늘은 이분을 영상으로라도 뵌 것이 가장 기쁜 일이 아니었나 싶어요. 주소와 연락처를 받았는데요 한번 직접 가서 인터뷰를 해보고 싶더군요. 기사로 올려보고 싶습니다. 기다려주세요.

 

아차.....obs <으랏차차 우리동네> 많이 사랑해 주세요. 꼭이요. 약속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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