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rt & Healing/내 영혼의 갤러리

고전을 읽는 이유-그림이 새로 보인다

패션 큐레이터 2010. 4. 7. 06:30

 

 

티치아노 <다나에>

1488년, 캔버스에 유채, 120 x 187 cm

에르미타주 미술관, 러시아

S#1 우리가 명작을 읽는 이유

 

일을 마치고 프란체스코 회관에 갔습니다. 황지우 선생님께 듣는 <명작읽기>2 수업에 참여하기 위해서였죠. 명작이란 곧 클래식을 말합니다. 고전이지요. 클래식이란 원래 그리스 시대의 최상류 계층을 뜻하는, 계급적 개념입니다. 7 척으로 이뤄진 거대 전함편대를 말하죠. 이때 클라시쿠스란 이런 전함을 기꺼이 사서 국가에 헌납할 수 있는 정도로 부와 명예를 가진 계층이란 뜻입니다. 국가를 넘어 인간의 위기상황에서 언제든지, 전쟁에 임할 수 있도록 '거대한 전함'을 쥐어줄 수 있는 것. 그것이 클래식의 힘입니다. 명작을 통해 고대에서 중세, 근대를 거쳐 현대에 이르는 거대한 정신사적 궤적을 관통할 생각을 하니 마음이 기쁩니다. 원전을 읽는 마음이 가볍습니다. 선생님의 말씀대로 '명작을 읽는다는 것은, 그 속에 있는 정신의 섬광과 교감하는 것'이 되길 바랍니다. 살아있는 텍스트의 새파란 풀같은 방목지를 어슬렁거리며 뜯어먹는 행복한 시간이 되길 바란다고 하셨습니다.

 

저는 중세문학을 주로 들을 예정입니다. 다 알려진 <아더왕 이야기><돈 키호테><가르강튀아와 팡타그뤼엘>을 읽습니다. 성배를 찾아가는 기사들의 이야기, 랜슬롯과 귀네비어 왕비의 애틋한 사랑 등, 중세의 문학을 살펴보는 재미를 얻어보려 합니다. 무엇보다 최근 복식사 통사를 정리할 생각으로 고대에서 중세에 이르는 문학 작품들을 살펴보고, 그 속에 등장하는 복식과 옷의 의미들을 다시 재검토 하고 있는데요. 중세시대의 패션 소품과 옷에 묻어나는 사랑의 향기를 찾아보려고 해요. 원전들을 읽다보면 상상력을 일으키는데 도움이 될 거 같습니다. 오늘은 <원탁의 기사>와 <민담의 형태론>이란 책을 공부했습니다.

 

 

렘브란트 <다나에>

 

<민담의 형태소>는 프로프가 쓴 책입니다. 러시아 민담 100개를 분석, 31개의 이야기를 끌어가는 요소와 7개의 인물유형을 추출해냈습니다. 우리가 흔히 "옛날 옛적에 먼 어느 나라에......"하고 시작하는 이야기를 분석한 것이죠. 지나친 단순화와 도식화로 비난을 받기도 하지만 우리가 즐겨보는 '헐리우드 영화'의 문법은 이 책에서 소개된 구조를 따라하는 것이 대부분입니다. 그만큼 안전하고 실패의 위험이 없죠. 흔히 영화의 컨벤션(관습)이라고 불리는 것들의 원천이 여기에 있습니다.

 

이야기가 자꾸 길어지는 데요. 프로프를 공부하면서 다시 읽게된 그림 <다나에>에 대해 설명하려 합니다. 다나에는 신화 속 인물입니다.  자신의 아버지였던 아르고스의 왕의 명령으로, 청동탑 꼭대기에 감금된 다나에. 그녀의 아이가 아버지를 죽일 것이라는 신탁 때문에 아버지는 그녀를 감금하게 되죠. 이때 그녀의 미모에 반한 제우스가 황금의 비가 되어 나타나 그녀의 다리 사이로 흐릅니다. 서양 미술사에는 이 다나에의 이야기를 테마로 사용한 작품들이 꽤 많습니다.

 

 

코레지오 <다나에>

1531년 목판에 템페라, 161 cm x 193 cm

로마 보르게세 미술관, 이탈리아

 

많은 화가들의 작품 중 저는 개인적으로 바로크 시대의 코레지오가 그린 <다나에>가 제일 기억에 남습니다. 우선 황금비를 받기 위해 침대 위 시트를 펼치는 모습도 인상깊고, 여기서는 유일하게 제우스가 날개달린 전사의 모습을 하고 나타나, '들어가도 되느냐?'고 묻죠. 이 그림을 보면 은근히 재미있는게 침대 아래 있는 두 명의 큐피드입니다. 둘이 뭘 하고 있자면 지금 화살촉을 갈고 있는데요. 원래 규피드의 화살촉은 다이아몬드로 되어 있다고 해죠. 세상 단단한 그 어느것도 관통할 수 있는 힘을 가진 금강석, 그 화살로 가슴을 맞은 사람들은 '지위고하를 막론하고' '지식의 유무' '철저한 이성의 무장'에도 불구하고 사랑에 빠지죠. 작가는 두 명의 큐피드를 그려서 한쪽은 신성한 또 다른 쪽은 세속의 사랑을 표현하려고 했다지요.

 

적어도 그림의 의미를 이 정도로 해석했던 게 전부였는데요. 이번 프로프의 <민담형태론>을 들으면서 몇 가지 새로운 사실을 배웁니다. 이 그림을 둘러싼 이야기에도 이야기의 모티프들이 여러개 살아 숨쉬는데요. 우선 '감금'입니다. 오비디우스의 <변신이야기>에 나오는 다나에도 이 감금이란 장치가 이야기에 들어가죠. 꼭 이 그림 뿐만이 아니라, 다른 나라, 다른 민족의 이야기에도 비슷한 '감금'의 요소들이 발견됩니다. 여기에 유괴와 납치, 방문의 요소가 겹쳐지게 되죠. 신화를 보면 툭하면 회오리 바람이나 염소, 까마귀, 용으로 변신해 나타나기도 하고, 주인공을 납치하거나 유괴합니다. 강간에 가깝죠. 많은 이야기 중 왕비는 항상 햇볕이 차단되거나 햇살을 받고 회임을 합니다. 그래서 그림 속 다나에게에 쏟아진 황금비나 햇살을 남성의 '사정'에 비유하기도 합니다.

 

 

구스타브 클림트 <다나에>

1907-8년 캔버스에 유채, 77 x 83 cm, 개인소장

 

제우스가 다나에에게 나타난 것, 황금비를 쏟아부어 아이를 갖게 한 것. 사실은 여성에 대한 남성의 강간과 다를바 없죠. 그리스 신화의 러브 스토리는 거의 납치와 유괴가 러브 스토리의 핵심을 이룹니다. 수렵시대의 사랑법이 투영된 것이라고 볼 수 있죠. 다나에를 그린 클림트의 작품은 가장 에로틱 하기로 유명합니다. 당시 상징주의 미술의 영향을 함께 받았던 클림트는 다나에의 이야기에 끌렸고, 당시 다나에는 많은 근대화가들이 즐겨 그리던 소재였습니다. 신성한 사랑과 초월의 상징이라 추켜세우지만, 결국은 수렵시대의 여인납치와 감금, 강간으로 이어지는 꽤나 '짜증나는"연애담의 확장이기도 합니다. 어찌되었든 그림을 자세히 보시면 짙은 자주색 베일로 온 몸을 감싸고 있죠? 오스트리아 제국을 상징하기 위한 장치였답니다. 다나에가 낳은 아이가 바로 페르세우스입니다. 메두사를 죽이고 안드로메다를 구했던 영웅. 그 페르세우스입니다.

 

어찌보면 강의를 듣고, 원전을 읽으며 상상하는 것은 '길을 떠나는 과정'과도 비슷합니다. 텍스트의 숲을 헤매며, 자신을 둘러싼 풍경의 요소들을 하나씩 그림 속에 담아가는 것. 나만의 풍경으로 그려가는 것이겠죠. 길을 떠난다는 것은 모험입니다. 아더왕 이야기나 중세 기사들의 모험담도 결국은 길 위에서 펼쳐지는 '성장이야기'의 확장이지요. 이번 강의를 통해서 더욱 길 위에서 '나 만의 길을 찾는 시간'이 되길 바라고 있습니다.

 

 

***

오늘은 바로크 오페라 '유디트의 승리'를 보러 갑니다. 비발디가 작곡한 작품인데 국내 초연이네요.

최근 들어 공연리뷰가 많이 늘었죠? 연극과 무용 오페라 등 다양하게 섭취하고 있습니다. 금요일엔 발레리나

강수진씨의 발레갈라 공연을 보러갑니다. 저녁시간이 기대되는 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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