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동원_사유의 숲-나무, 구름이 되어 시가 되어_캔버스에 아크릴채색_130.3×162.0cm_2009
자연은 참 좋다. 편안하다. 그 속에 있으면 마음 한 구석 생채기엔
새살이 돋는다. 나무와 풀과 바람, 꽃과 나비, 생명의 외경은 그렇게 숲 속에서
자연스레 잉태하고 성숙하며 순환한다. 비온 뒤 갠 하늘은 맑음으로 갈라진 하늘의 균열을
꿰매고, 오랜 시간을 기다려, 하늘의 기운을 쏟아 꽃을 피워낸다. 아침이 되면 밤 새 내린 소나기에 피 묻은
실밥 곧게 뽑아, 지난 상처를 안아, 영광의 자리에 놓는다.
금동원_사유의 숲-잎새, 내 안에 시가 되다_캔버스에 아크릴채색_97×130.3cm_2009
금동원의 그림 속 숲은 그 자체로 하나의 소우주를 이룬다.
사유의 숲 속에 들어가면, 모든 것이 일체를 이룬다. 영롱하게 피어나는
아침이슬은 마치 불교의 인디라망처럼 서로를 비추며, 장엄의 세계를 보여준다.
자연의 사물속, 배어있는 의미들이 화가에게로 와서, 붓끝으로
영그는 한편의 시를 그린다.
금동원_사유의 숲-나무와 시_캔버스에 아크릴채색_130.3×162.0cm_2009
금동원의 그림은 자연이 우리에게 주는 수천 수만의
혜택 중 요소들을 뽑아 나열한 우리시대의 추상화다. 자연이란 구상을
사유의 숲으로 초대하여, 이상적 세계의 요소를 추출한다.
금동원_사유의 숲-Happy flower_캔버스에 아크릴채색_60.6×72.7cm_2009
그림 속 꽃들은
때로 상처를 입어 떨어지고, 불구가 되지만
아침이 되면 온전하게 회복한다. 그렇게 꽃의 의미를 완성하는 것이다.
꽃에는 '자연의 역사'를 조형하는 거대한 힘의 실체가 아로세겨져있다. 그 힘 앞에서
자신의 정치적 힘을 자랑하는 자, 어리석을지니......그 앞에서
순종의 미덕을 배워야 할 것이다.
금동원_사유의 숲-Happy tree_캔버스에 아크릴채색_130.3×162.0cm_2009
이른 봄, 여린 알몸으로 피어나
순결한 햇살아래, 얼굴을 붉히는 홍조 띤 벚꽃의
요염함을 아는 이들은 어디에 있는가? 이제 4월이 다가오건만
계절의 길목, 주변과 중심에 피어나는 꽃 중 아름답지 않은 꽃이 어디에 있는가?
금동원_사유의 숲-나무, 내 안에 시가 되다_캔버스에 아크릴채색_60.6×72.7cm_2009
연두로 물든 싱그러움, 하얀 그리움을
포개어진 고고함의 상징, 이팝꽃 줄선 숲길......아침 햇살을
맞으며 걷는 산책길은 그저 '곱기만 하다' 금동원의 그림은 철저한 이상주의자의
산물이다. 추상(Abstraction)이란 단어에 감춰져 있듯, 자연만물의 형상에서,
정신작용에 걸러진 줄기를 가지치는 일이 아니던가?
그러나 무엇보다 금동원의 그림이 끌리는 이유는
색의 힘에 있다. 무채색의 새벽이 지나면, 빛의 환란 속에
자신의 속살을 여는 자연 그 대로의 빛깔, 언제부터인가, 인간은 색의
환희에 자신의 시신경을 맡기는 일을 간과해왔다. 보이는 풍경은 갖은 정치적 풍경일 뿐
세상사의 단면들이 마치 흑과 백의 색채로만 되어 있는 듯한 착각 속에
살아온 것이다. 이제 금동원이 그린 색의 숲으로 들어가라.
금동원_사유의 숲-나무, 꽃이 되어_캔버스에 아크릴채색_53×45.5cm_2008
현실의 숲이 걷기 무섭고, 어깨가 무거울 때
그림 속 사유의 숲을 거닐자. 여전히 우리는 밝은 색을
가슴 속 가득하게 가진 존재임을 잊지말자, 그렇다, 그림앞에서 결심하자.
스위트 라테의 연주로 듣는 <달콤한 행복을 꿈꾸다>를 올립니다.
봄같지 않은 봄기운에, 몸의 세포 곳곳이 놀라는, 실망스런 봄의 시간,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의 영혼속엔, 이미 가득차 들어온 봄을 느껴보시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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