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1 히키꼬모리의 천국-일본의 이면
영화 '공기인형'을 봤다. 배두나가 출연해서라기 보다 개인적으론 감독 고레에다 히로카츠에 대한 신뢰 때문이다. 나는 고레에다 히로카츠 감독의 필모그라피 전체를 좋아한다. 그는 가족이란 사회적 제도에 관심을 갖는다. 형제와 부모 자식간의 갈등, 해묵은 표현이지만 영어에 Air one's dirty linen이란 것이 것이 있다.
더러운 린넨천을 바깥에 널지 말라는 뜻이다. 여기엔 이중의 의미가 담겨 있다. 가족사의 부끄러운 일면을 바깥에 알리지 않는다는 뜻이기도 하다. 가족간의 상처, 노출을 꺼리는 아픔의 상징을 때가 시꺼멓게 탄 린넨직물에 비유한 것이 재미있다.
고레에다 감독은 가족사의 치부와 갈등, '가족'이란 사회적 실체를 구성하는 제도의 모순에 대해서도 일침을 가한다. 현대일본 영화는 사회적 제도인 가족의 해체를 테마로 자주 다룬다. 2004년작 '아무도 모른다'에서는 가족의 해체속에 버려진 아이들의 치열한 삶을 다뤘다. 니시카와 감독의 2006년작 '유레루'에서는 현실순응형 인간인 형과 자유분방한 스타일의 동생 사이에 흐르는 암묵적인 '상처'를 추리형식으로 다뤘으며 작년 여름, 내 가슴 한구석에 큰 구멍을 냈던 고레에다 감독의 '걸어도 걸어도'는 가족의 소중함과 더불어, 작은 상처가 누적된 가족사의 슬픈 이면을 다뤘다.
고레에다 감독을 좋아하는 이유는 모든 사안을 '가족중심'으로 환원하지 않는 태도 때문이다. '생은 버거운 것이고 그저 개인은 살아갈 뿐'이란 낭만적이고 소극적인 입장에 머물지 않는다는 말이다. 그는 적극적으로 개입한다. 그는 '아무로 모른다'를 연출한 후, 일본 사회에 만연된 가족해체와 버러진 아이들의 생존을 통해, 아무도 돌보지 않는 일본제국의 '신자유주의 이후의 세계'를 구성했다.
편부/모 가정의 확대, 이에 대한 사회적 시선과 돌봄이 부재하는 사회의 부산물로 태어난 애꿎은 아이들의 희생을 통해, 일본 사회의 병리적 측면을 하나하나 면밀하게 살펴본 것이다. 사회를 비평하고 반영하는 일본영화의 역사는 1951년 구로자와 아키라 감독의 '라쇼몽'을 기점으로 시작한다. 구로자와 감독은 영화를 통해 '누가 거짓말을 하는지' 각각의 시점 쇼트를 통해 다양한 목소리가 가진 '각자의 진실'을 이야기 했다.
그는 군국주의의 다양한 가면의 빛깔을 각각의 '인칭의 목소리'를 통해 드러냈다. 일본사회의 내재된 모순을 가장 충격적으로 드러낸 영화는 제제 다카하사 감독의 1997년작 <뇌어>란 작품이다. 뱃속에 기생충을 기르는 고기를 빗대어 닫힌 순환을 지속하는 일본이라는 사회를 그렸다. 개방이 아닌 폐쇄된 순환을 통해 내면은 점차 썩어가는 일본 사회를 그린 것이다. 1950년대부터 본격적으로 시작된 영화의 '정치적 모더니즘'운동은 고레에다 히로카츠에 이르러 새로운 국면을 맞는다. 고레에다 감독을 좋아하는 두번째 이유가 여기에 있다. 여전히 '희망'을 버리지 않는 따스한 시선을 견지하는 그의 용기 때문이다.
S#2 섹스 토이, 일본의 공허한 심장을 관통하다
<공기인형>은 성인들의 성욕을 배출하기 위해 만들어진 '섹스토이'의 다른 표현이다. 테판야키집에서 종업원으로 일하는 한 남자. 그는 옛 사랑을 잊지 못한 채 섹스토이와 밥을 먹고 잠을 자고, 성관계를 맺는다. 공기인형을 공원벤치에 앉혀놓고 커플 목도리를 하고 있는 그의 모습은, 변태라는 말로 해석되기엔 '극도로 원자화된 일본의 개인'이 감내하는 쓸쓸한 외로움과 고독이 배어난다. 재미삼아 유럽이나 일본의 성인샵을 구경할 때마다, 궁금했었다. 도대체 저런 물건은 누가 사는 것일까? 남성성기를 본떠 만든 '딜도'에서 포르노 여배우의 성기를 본떠 만들었다는 섹스토이까지. 수많은 성욕을 배설하는 장치들을 만들고 유통하는 일본산업의 한 단면은 놀랍기만 했다. 돈이 없으면 결혼도 연애도 불가능한 신자유주의 사회의 단면일까? 아니면 더이상 개인이 사회적 관계를 맺기를 포기하고 '혼자만의 세계'에 갖힌 꼴이 된 것일까? 이 균형은 어떻게 잡아야 하는 걸까? 별별 의문이 들었다.
어느날 이 섹스토이(배두나 분)는 사람의 마음을 갖게 된다. 주인 몰래 나와 햇살을 쬐기도 하고 주변의 모든 것이 신기할 뿐. 우연하게 들어간 비디오 가게에 직원으로 채용, 아르바이트를 하는 준이치와 사랑에 빠진다. 주인이 섹스토이에게 지어준 이름은 노조미, 그의 옛 연인의 이름이다. 노조미는 낮에는 가게에서 일을 하고 밤에는 주인을 기다린다. 이중생활을 지속하며 그녀는 주변부의 모습을 찬찬이 되돌아본다. 예술영화들의 계보를 줄줄 꿰어차고 있는 비디오 가게 주인은 아침이면 밥 가운데 구멍을 뚫어 계란을 넣고 비벼먹는다. 비디오가게에서 그녀를 발견하고 밤이면 그녀를 모델로 '수음'에 빠지는 청년이 등장하고, 은행에서 왕따를 당하는 나이든 여자행원이 있는가 하면 공원에서 하릴없이 시간을 보내는 할아버지가 있다. 이들 모두 현대 일본의 텅빈 정신성을 대변하는 사물화된 인간들이다.
공원 할아버지는 텅빈 가슴을 가진 인간으로 가득한 세상을 이야기 하고, 노조미는 자신과 동일한 사회의 모습에 연민을 느낀다. 누구나 텅 빈 중심을 가질 때, 채울 수 있다는 것, 나아가 텅빔은 타인을 통해서만 채울 수 있다는 간단한 진실을 노조비는 배우게 된다. 인간보다 따듯한 마음을 가지게 된 그녀의 시선 속에 비친 일본의 단면은 공허하고 외롭다.
S#3 그녀가 심장을 가진 이유는
그녀는 자신을 만든 섹스인형 제작자를 찾아간다. 그에게 묻는다. 왜 내게 마음이 생겼느냐고. 주인은 답한다. 그것은 '자신도 모르는 일'이라며 지금까지 성욕 배출을 위해 사용되다 유기된 인형의 모습을 보여준다. 여성신체를 본떠 만든 실리콘 인형이 기계적으로 누워있는 풍경은 사못 소슬하다. 오다기리 조가 특별출연, 창조주의 모습을 연기한다. 그는 말한다. 처음 인형을 사갈 때와 돌아올 때, 그들의 모습이 판연하게 달라져 있다라고. 어떤 인형은 형태를 알아볼 수 없이 구부려져 있거나 찟겨져있고, 눈과 머리칼이 뽑힌 것들이 있는가 하면, 동반자살이라도 했던지, 피가 흥건히 묻은 것도 있다.
섹스토이들은 차가운 머리와 따뜻한 가슴을 가지고 싶은 우리들에게, 텅빈 가슴을 가진 차가운 이성적 존재가 살아가는 사회의 단면을 보여준다. 그 끝이 너무 애닮다. 섹스토이를 사고 싶은 남자들에게 말하고 싶다. 배출하고 싶은 욕망으로 가득한 사회, 누군가는 그것을 받아줘야만 할텐데, 닫힘을 추구하는 사회에서, 사람들은 스스로 문을 닫고 '히키꼬모리'가 된다. 그녀가 심장을 갖게 된 이유는, 여전히 버리고 싶지 않은 '희망' 때문일거라고, 그렇게 믿어볼란다. 세월의 흐름과 죽음의 의미를 독특하게 묻는 영화 <공기인형>. 독립영화를 보는 것 같은 느낌이 들기도 하지만 배두나의 새로운 가능성을 읽어볼 수 있다는 점에서 기대를 걸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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