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rt & Healing/빛으로 그린 그림

세바스치앙 살가두의 아프리카 사진전-우리시대의 아바타

패션 큐레이터 2010. 2. 16. 17:47

 

 

 

 

희망의 힘은 세다

-세바스치앙 살가두의 사진을 읽는 시간

 

S#1 케냐에서 보낸 한 철

2년 전 아프리카로 여행을 떠났습니다. 영화 아웃 오브 아프리카의 배경이 된 케냐의 나쿠루 국립공원. 호수 위를 유영하는 플라맹고의 광경은 거대하다 못해 막막했지요. 핑크 빛 속살을 토해내는 플라밍고 무리의 길이는 족히 몇 킬로미터에 이르는 듯, 군학의 수평선은 소실점을 찾는 인간의 의지를 허물어뜨렸습니다. 아프리카는 외적으론 원시적 아름다움의 극치를 보여준 곳이었죠. 그곳에서 호스피스 생활을 하면서 에이즈로 죽어가는 아이들을 돌보거나, 구호시설을 짓는 일을 했습니다. 세계적인 빈민촌 중의 하나인, 케냐의 키베라. 그곳에서 만난 9살 난 조니는 자신의 몸집보다 훨씬 큰 물지게를 지면서도, 천식을 앓는 엄마를 걱정하는 소년이었습니다.

 

 

                                         

 

S#2 검으나 희나 땅의 백성들

다큐멘터리 사진작가 세바스치앙 살가두의 사진전을 보기 위해 나가는 길. 많은 눈이 내린 까닭에 도시의 풍경은 그 어느 때보다 고적합니다. 사물의 실루엣이 극단적으로 단순해졌지요. 다큐멘터리의 어원은 가르치다란 뜻의 Docere란 라틴어에서 시작됩니다. 이미지를 보는 자들에게 교훈을 주거나 자기 성찰적인 메시지를 담고 나아가 작가의 통제 하에 다양한 존재의 목소리를 담는 사진. 이것이 다큐멘터리 사진의 본질입니다. 2차 세계대전 이후, 다큐멘터리 사진은 일상의 소소한 풍경과 내면적인 자아의 모습을 찍는 데 열중하며, 세계를 거시적으로 바라보는 관점을 잊고 있었죠. 이 때 삶을 둘러싼 사회적 조건에 의문을 제기하며, 예술과 사회의 소통을 강조하는 작업을 했던 작가가 바로 세바스치앙 살가두입니다. 세바스치앙 살가두는 1944년 멕시코의 상 파울루에서 태어났습니다. 원래 그는 국제커피기구에서 커피 수요예측과 시장개발을 책임지던 경제학자였죠. 이 과정에서 아프리카를 방문하게 되었고 건축학을 전공한 아내의 카메라를 우연하게 들여다 보게 되면서, 그의 인생은 180도 전환의 운명을 맞습니다.

 

 

이후 포토 저널리즘으로 자신의 인생을 새롭게 시작하며 아프리카 지역의 극심한 가뭄 속에 죽어가는 땅의 백성들을 찍었고 유럽 전역으로 몰려든 이주민들의 삶의 곤경을 하나씩 자신의 사진기에 담습니다. 그를 세계적으로 만든 것은 <노동자들>이란 연작사진입니다. 여기에서 그는 브라질 세라 페라다 금광에서 셔츠와 팬티 하나만 달랑 걸치고 온 몸으로 부대끼며 일을 하는 노동자들의 모습을 담습니다. 선진국이 누리는 풍요로움의 이면에 감춰진 저임금 노동착취의 현실을 신랄하게 보여주었죠. 육체노동을 통해 생을 살아가는 이들의 모습을 찍되, 마냥 동정조의 시선 보다는, 동료애의 관점에서 현실을 바라볼 것을 우리에게 권합니다. <, 대지를 박탈당한 자들의 싸움>이란 사진집에선 멕시코 시에라 지역에 살고 있는 농장의 노동자들을 담습니다.

 

 

 

수년 째 계속되는 가뭄으로 땅은 갈라지고 기본적인 장비 하나 없이 저임금에 의해 손가락이 잘려나가는 현실. 지속되는 정치적 불안정과 봉건적 농경사회의 기본적인 틀 속에서 땅 위에 던져져 버린 이들의 상처와 고통을 다룬 사진들은 그 자체로 충격이었습니다. 하루 분량의 식량만을 배급 받으며 빗물 저장고를 짓는 사람들의 모습. 삶의 노역으로 깊은 금이 패어버린 얼굴과 마른 대지의 이미지가 눈에 선하게 들어옵니다. 1993년부터 세기말까지 촬영된 <난민들>이라는 작품은 전 분쟁과 전쟁으로 인해 자신의 터를 떠나는 사람들의 모습을 담았습니다. 청년 시절, 작가는 정치적인 이유로 프랑스에서 농업경제학을 공부해야 했습니다. ‘정신적 난민의 생을 살아야 했던 작가 자신의 시선은, 같은 무늬의 아픔을 겪었던 이의 비탄과 안타까움으로 난민의 모습을 찍습니다. 현실을 인내하는 의지와 희망을 향한 몸부림을 포착하는 카메라의 눈은 정확하고도 따스했습니다.

 

 

S#3 살아있는 모든 것들은 스러지지 않는다

이번 <아프리카>에서 선보이는 이미지들은 매혹적이고 신비한 대륙, 아프리카의 모습과 더불어 강대국의 자원전쟁으로 인해 찢긴 현재의 아프리카를 다룹니다. 역사의 질곡 속에서 여전히 이중의 상처를 입은 아프리카. 작가는 니제르를 출발하여 앙골라, 모잠비크, 스페인 령 사하라에서 독립 전쟁을 취재합니다. 이후 에티오피아, 수단, 차드의 한발과 기아, 르완다의 대량 인종학살에 이르는 아픔의 땅, 아프리카를 그려내지요. 각종 재난 속에서 수백만의 난민이 발생하고 기와와 질병에 허덕이고 생존권이 위협을 받는 최악의 상황 속에서도 희망을 버리지 않는 사람들의 표정은 긍정 그 자체입니다. 이번 작품은 그가 <창세기>라고 부르는 최신의 프로젝트 중 일부입니다. 순수하고 원시적인 상태로 살아가는 자연과, 이 모든 것을 아퀴지는 조형자의 시선을 함께 담습니다. 르완다에서 콩고, 우간다에 이르는 부비룽가 화산지대, 그 속에서 살아가는 산악 고릴라의 모습까지, 경이로운 생물학적 다양성을 드러내는 아프리카의 속살이 이번 살가두의 사진을 통해 드러나게 될 것입니다.

 

 

인간은 땅에 대해서 제 칠일의 휴식과 일곱 번째 해의 휴작과

마흔 아홉 번째 해의 희년을 인정함으로써 자신의 땅을 해방시켜야 하며 그럼으로써 스스로를 해방할 줄을,

관대함을 다할 줄을 알아야 한다. 인간은 또 과수의 첫 번째 수확을 경작지의 한 구석을 수확하지 않은 상태로 남겨놓아 대지에게

돌려줘야 한다. 가난한 사람들은 그렇게 해서 그 땅에서 자신들의 몫과 유산을 가지게 된다

 

앙드레 슈라키의 인간과 땅과 하늘 중에서

 

                                       

 

땅에게 휴식을 제공하지 않고, 무한정의 생산만을 요구하는 인간의 욕망은 자연파괴로 이어집니다. 영화 <아바타> 속 자연 속에서 생태적 삶을 살아가는 부족과 그들의 자원을 뺏으려는 지구인의 모습은 안타깝게도 이미 이 세상에서 재현되고 있습니다. 작가는 <창세기> 연작을 통해 아프리카에 투영된 우리들의 미래를 그려내려 한 것은 아닐까요?

 

본 글은 <문화공간>2월 '김홍기의 갤러리 가는 길'에 수록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