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1 주류와 맞짱을 뜨며 살아가기
이번 달 20권의 패션관련 도서를 구매했습니다. 최근 그리스 로마 복식에 대한 깊이있는 연구가 미국과 유럽의 복식학계에서 이뤄지면서 성과들을 집대성한 2권의 논문집과 5권의 저널 연구집, 시대별 패션 사진작가들의 사진집을 대거 구매했습니다.
『Roman Dress and the Fabrics of Roman』은 로마 시대의 의상 체계를 통해 로마 시대의 사회/정치/문화의 내밀한 구조를 살펴보고, 관련된 문학작품과 옷을 묘사한 은유들을 고고학적으로 캐물으며 시대의 초상화를 그려냅니다.
이외에도 『Dress and the Roman Woman : Self-Presentation and Society』에서는 대 로마 시대의 여성들의 패션을 통해, 당대의 옷에 대한 개념과 여성들의 스타일, 자기 현시를 위해 사용한 액세서리와 보석, 옷의 다양한 의미들을 함께 추적함으로써 고대 복식사 연구의 풍성한 상상력을 불어넣어줄 것으로 기대하고 있습니다. 저도 현재 열심히 읽고 있는 중인데요. 올해 여름 한예종 자유예술캠프에서 고대에서 르네상스까지의 패션을 영화를 통해 살펴보는 작업을 하는데 자료로 사용하려 합니다.
한국에 나와 있는 복식사책들의 문제점은 대부분 시대별 의상을 Costume이란 관점에서 접근한다는 데 있습니다. 주로 의복용어와 형태들을 서지를 통해 밝혀내는 정도에 머물러있죠. 서양복식사를 심도 깊게 연구해야 할 필요를 느끼지 못하는 것일 수도 있고, 어차피 자료 측면에서 너무 방대하고 우리의 입장에서, 일방적으로 서구 학자들의 연구를 수입하고 해석하는데 치중해야 하니, 제대로 깊이있는 연구와 소개가 이뤄지지 않고 있습니다.
<샤넬 미술관에 가다>를 쓴지도 이제 1년 5개월이 훌쩍 흘렀습니다. 증보판을 내거나 후속작을 내야 하는데, 올해는 패션의 심리학과 경영전략 책을 쓰고 있는 터라, 복식사 관련 책은 쓰기가 어렵습니다. 다만 자료들을 모아 고대에서 중세, 르네상스, 바로크와 로코코, 신고전주의와 근대, 현대에 이르는 복식사를 미술을 통해 꼼꼼하게 통사적으로 풀어내는 작업을 진행중입니다. 꽤 긴 시간이 걸릴것으로 보입니다. 3권의 책으로 묶어내는 통사를 쓴다고 해도 3년입니다. 40세가 되기 전에 완성을 해야 할텐데, 만만치 않습니다.
최근 서재를 쭈욱 살펴보면서 한 가지 아쉬운 것이, 텍스트 중심의 연구서를 주로 사서 공부하다 보니, 도록과 카탈로그를 모으는 일에 조금 헤이해져서, 자료의 보강이 필요함을 느꼈습니다. 특히 텍스타일 분야를 위해 미술사와 관련 자료들을 모으는 일을 다시 시작했고, 세계 민속의상과 고유직물과 패턴을 연구하기 위한 자료들을 올해 상반기까지 모두 취합하여 모을 생각입니다. 내년 5월에 세계 복식 사전이 드디어 편찬되어 나옵니다. 6천 페이지에 달하는 광대한 내용을 담고 있는데요. 이 또한 선주문을 해야 하기에 오늘 주문을 마쳤습니다. 3천 파운드인데 드디어 질렀습니다. 이번달엔 손을 빨면서 살아야 할 것 같습니다.
S#2 닉 나이트-내게 패션은 싸움을 위한 매개다
오늘 소개할 닉 나이트는 영국출신의 패션 사진작가로서 쇼 스튜디오 닷컴의 디렉터로 일하고 있습니다. 그는 매우 사인화된, 실험적 시각을 패션에 응용, 기존의 작가들이 보여주지 못한 대담하고 강렬한 느낌의 사진을 뽑아내는 것으로 잘 알라져 있습니다. 닉 나이트의 사진집 <스킨헤드>는 1982년 처음 발행되었는데요. 당시 24 살의 디자인과 학생이었던 그는 패션 매거진 i-D의 에디터였던 테리 존스의 도움을 받아 100장이 넘는 50주년 잡지 기념 사진을 찍게 되죠. 이 작업 이후, 이름을 얻게 된 그는 1986년 아방가르드 풍의 일본 출신 패션 디자이너였던 요지 아마모토의 카탈로그 작업에 동참합니다. 그와 더불어 세계적인 그래픽 디자이너 피터 세빌과의 협업으로 패션사진의 독특한 시선을 마련하는 계기를 만들게 되죠.
이후로 그는 세계적인 패션 디자이너들과 쉼 없이 작업을 했습니다. 이번 닉 나이트의 사진집은 지금까지 그가 작업했던 작품들을 디자이너 별로 모아 소개하고 있습니다. 작고한 알렉산도 맥퀸이나 아우디, 캘빈 클라인, 크리스티앙 디오르, 질 샌더, 랑콤, 리바이 스트라우스, 마틴 싯본, 이브 생 로랑, 스왈롭스키, 로얄 오페라 하우스 등 눈 부시게 멋진 사진들이 눈 앞에 펼쳐지네요.
아직도 한국에선 패션 사진이라 하면, 상업사진이란 범주속에 넣고, 예술과 상업사진의 경계를 치밀하게 놓으려는 속성을 갖고 있습니다. 패션은 한 시대의 이야기입니다. 그 이야기를 풀어내는 과정을 한 컷 한 컷에 담아내는 것. 옷과 그것을 입은 모델, 그들을 둘러싼 사회적 분위기를 포착하는 작가만의 독특한 시선이 필요한 예술의 장르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상상력은 결국 당대의 관습속에 굳어져 있는 언어를 해체하는 힘입니다. 그것은 때로는 망치가 되고 추가 되기도 하며, 다양한 요소를 통합해 껴안아내는 직물같은 역할도 하지요. 각 시대의 패션이, 종교가, 미적 기준이, 사회적 행위 모두가 결국은 상상력이란 이름앞에서 새로운 '옷'을 입게 되는 일입니다. 요즘들어 패션사진들이 새롭게 보이더군요. 단순하게 옷을 판매하기 위한 매개가 아니라, 새로운 디자인을 위한 영감이 되고, 스프링 보드가 된다는 것이죠. 똑같이 옷을 찍어도 사진작가들의 렌즈에 따라, 직물의 성격이 완전히 달라 보이기도 하고, 무엇보다 착용자가 갖고 싶은 느낌의 범주가 찬연하게 달라질 수 있다는 것. 그런 점에서 패션사진은 옷을 입는 개별 인간의 역사를 쓰는 펜과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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