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rt & Fashion/시네마 패션

루이 14세는 춤꾼(?)-영화 '왕의 춤' 리뷰

패션 큐레이터 2010. 1. 24. 21:51

 

 

S#1 바로크 시대를 관통하는 거울-루이 14세

 

복식을 통해 시대의 면모를 읽는 작업을 하는 나로서는 각 미술관의 카탈로그와 미술 도록과 더불어 관심을 갖고 챙기는 것이 바로 '의상을 소재로 한' 혹은 영화 속 의상이 볼만한 '코스튬 드라마'를 구해 보는 일이다. 이집트의 의상을 살펴보기 위해 1940년대 헐리우드의 고전 영화 '클레오파트라'를 보고, 1920-30년대 재즈 시대의 패션을 공부하기 위해 '위대한 개츠비'나 '벤자민 버튼의 시간은 거꾸로 간다' '체인질링' 같은 작품을 고른다. 1960년대 68혁명 세대의 저항적 패션과 사회변동을 이해하기 위해 프랑스의 '누벨바그'세대의 영화들, 가령 장 뤽 고다르의 '네 멋대로 해라'의 진 세버그의 옷차림과 헤어스타일을 살펴본다. 복식사를 연구하면서, 가장 화려한 두 시대를 고르라면 바로크와 로코코를 고르지 않을 수 없다. 남성적이고 웅장한 바로크와 내밀하고 여성적이며, 섬세한 로코코 패션은 후세 많은 이들에게 영향을 주었다. <왕의 춤>은 바로 루이 14세와 그를 둘러싼 예술가들이 궁정에서 보여준 삶의 방식을 다룬 영화다.

 

 

열네살의 어린 ‘루이 14세’는 권력을 움켜쥔 어머니와 재상 마자랭의 빛에 눌려, 우울하고 고독한 유년을 보낸다. 그의 유일한 낙은 발레와 음악이다. 이 영화 속엔 중세의 봉건영주 사회를 넘어 한 명의 왕에게 모든 권력이 집중되는 <절대왕정> 시대의 드라마가 녹아있다. 어머니의 친정체제는 도무지 깨뜨릴 명분이 없고, 그저 작곡가 륄리나 극작가였던 몰리에르와 교분을 쌓으며, 답답한 마음을 예술을 통해 푸는 루이 14세. 발레리노로서 무대에 수차례 올랐던 멋진 다리를 가진 왕. 루이 14세의 면모가 영화 속에 드러난다.

 

이 영화에는 놓치지 말아야 할 요소가 몇 가지 있다. 작곡가 륄리와 왕의 '동성애적 코드'의 관계설정과 당시 종교귀족들을 향해 신랄한 풍자를 일삼는 프랑스 희곡의 문호 몰리에르의 모습, 궁정발레에서 오늘날의 현대무용으로 성장하게 되는 계기가 만들어진 시대의 풍모를 이해하는 것이다. 특히 무용의 역사에 관심이 있는 이들에겐 오늘날과 같은 정면 액자 형태의 프로시니엄 무대가 등장하는 이 시대의 무용 안무나 그 내용을 살펴본다면 더욱 풍성한 영화 보기가 될 것 같다. 여기에 내가 좋아하는 당시의 바로크 패션까지 함께 공부할 수 있으니, 영화 자체의 내적 매력을 떠나, 바로크 시대를 읽는 교과서를 하나 얻는 셈 쳐도 좋을 것 같다.

 

 

S#2 춤추는 남자, 루이의 이유있는 발레

 

이 당시의 발레를 보면 지금 우리가 알고 있는 형태의 발레와 무대부터가 완전히 다르다. 커다란 실내에서 춤판의 3면을 에워싼 회랑에서 춤을 추었다. 공연자들의 움직임이 그려내는 형상과 바닥의 도형을 관객들은 바라봤다. 오늘날의 발레에서 보는 도약이나 현란하게 교차되는 발의 움직임 같은 건 없다. 르네상스 시대부터 시작된 궁정발레는 쾌락과 기분전화, 정치적 기능이 결합된 일종의 연극이었다. 즉 국가의 영광을 기리고 지배자의 통치방식이 지상의 조화를 대변해 주는 내용을 주로 다루었다.

 

이 영화를 보면 왕을 중심으로 8명의 귀족이 함께 무리를 이루어 춤을 추는 장면이 나온다. 각 한 사람 한 사람의 개별적인 무용기술 보다, 일사분란한 통일성을 강조한 당시의 무용을 살펴볼 수 있다. 개별적인 면모를 감추기 위해 각자가 가면을 쓰고 춤에 동참했다.

 

예전 무용사가인 수잔 오가 쓴 <서양 춤 예술의 역사>를 읽으면서 시각적으로 떠오르지 않았던 당시의 모습을 이 장면을 통해 완전히 이해하게 되었다.

 

이 당시 춤은 개인의 사회화 도구였다. 집단과 조화를 이루게 하는 수단으로서 궁정발레는 인간을 교양있게 교육시키는 기능을 떠맡았던 것이다. 대부분의 궁정 발레는 발레의 문맥 속에서 조화나 합일이 회복되는 것을 찬양하는 <그랜드 발레(Grand Ballet)>로 마무리 되었다. 이 그랜드 발레가 끝나고 나며 모두가 함께 춤을 추는 무도회가 이어진다. 무도회를 통해 관람객과 공연자들은 무용 공연에서 보여준 이념과 일체가 되도록 하는 '마술적 움직임'에 함께 동참해 춤을 추었다. 당시의 춤은 그만큼 정치적인 퍼포먼스였던 셈이다.

 

 

S#3 춤 잘추는 남자가 정치도 잘한다(?)

 

이 시대의 무용은 그만큼 오늘날의 오케스트라의 지휘자처럼 부분 요소들을 기획하고 통제하는 한 사람의 힘을 필요로 했다. 루이 14세는 항상 그 중심의 역할을 했다. 프랑스의 궁정발레는 그가 통치하던 시절 최고조에 달했다. <카산드라의 발레>라는 작품에서 최초로 무용가로 등장했던 루이는 이후 1670년, 자신의 신체가 비만해져서 더 이상 발끝으로 춤을 출 수 없다는 걸 인정할때까지 무용수로 활약했다. 그는 항상 그리스 신화 속 아폴로의 역을 맡았다. 아폴로는 태양의 상징이었고, 우주의 중심으로서 군주의 모습을 드러내는 데, 이 보다 좋은 연극 캐릭터는 없었기 때문이다.

 

영화 속에서 태양의 상징을 들고 온 몸에 금칠을 한 이가 바로 루이 14세다. 그는 1653년 륄리가 작곡한 <밤의 발레>란 작품에서 마녀와 늑대인간, 가짜 지체부자유자들이 판을 치는 어두운 세상에 빛을 가져다 주는 '떠오르는 태양'으로 연기했다. 이때부터 그의 태양신의 역할은 본격적으로 시작된다.

 

 

춤 추는 왕. 루이는 탐미적 성향이 강했던 군주였지 싶다. 패션에 관한 그의 세밀한 관점은 이미 <샤넬, 미술관에 가다>에서 자세히 설명했다. 그는 발레가 귀족만의 산물로 남길 거부했고, 춤을 과학화하고 싶었다. 춤 예술을 위한 과학적 원리를 연구하도록 학자들을 독려했다. 이 뿐만이 아니다. 음악을 기록하는 악보가 있듯, 무용의 움직임을 기록하는 무보가 등장한 것도 이때부터다. 왕은 1672년 왕립 무용 아카데미를 설립하도록 지시한다. 이 아카데미가 오늘날의 '파리 오페라좌'다. 궁정 내에서의 정치도 일종의 연극이라고 생각했던 군주 루이 14세. 파리를 유럽에서 가장 화려한 '럭셔리의 도시'로 설계했던 최초의 군주. 그러나 최근의 연구는 그의 정치적 연극은 절반의 성공에 머문다는 결론을 내리고 있다.

 

 

작곡가 륄리가 왕의 눈총을 받고 점차 세력을 잃어가는 과정에서 보여주는 광적인 집착은 이 영화의 묘미다. 연극사에 길이남을 풍자극 <타르튀프>를 남긴 몰리에르의 실제 연기 모습을 볼 수 있는 것도 이 영화의 묘미다. 종교권력을 비판하는 이 작품은 당시 교회로 부터 상연금지 명령까지 받게 된다. 오늘날의 한기총과 같은 권력화된 종교세력의 면모가 떠오르는 장면이다. 최근 역사학자 이영림의 <루이 14세는 없다>를 열심히 읽었다. 루이 14세를 예술의 부흥자, 혹은 파리 패션의 스타일리스트로 이해하고 있던 내겐 마치 한 꺼풀의 '비늘이 벗겨지는' 것 같은 내용의 논문들이 담겨 있었다. 태양왕이라 불리는 루이 14세는 없다고, 다만 그에 대한 신화만 있을 뿐이라는 저자의 주장이 뼈저리게 와닿았다. 한 나라의 대통령 조차도 보수 언론에 의해 좌지우지 되며, 농락당하고 끝내는 죽음으로 생을 마쳐야 하는 상황을 경험한 우리들에겐, 루이14세의 신화는 또 다른 과거의 사례일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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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한예종 자유예술캠프 강의를 맡으면서

수업 준비와 공부, 독서등에 많은 시간을 투자하느라 블로그 관리가

미진합니다. 포스팅 속도가 늦어지겠지만 그래도 이번 강의를 맡으며 저 스스로

좀 더 넓어지고 깊어지려고 공부하고 있습니다. 하나의 글을 써도, 포스팅을 올려도 깊이있는 글로

채우고 싶습니다. 강의 때 맛있는 김영모 과자와 머쉬멜로우 사탕, 커피와 샌드위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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