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rt & Fashion/시네마 패션

옷에 관한 세가지 초상화-패션다큐멘터리 <무용>

패션 큐레이터 2009. 11. 20. 00:33

 

 

S#1 옷의 얼굴은 몇개일까?

 

인간은 언제부터 무슨 이유로 옷을 입었을까요? 복식사 책을 볼때마다 여기에 대한 대답은 보통 5가지 정도로 요악됩니다. 신체보호와 장식, 권력의 의미를 투사하기 위해, 혹은 에로스적인 의미를 담아내기 위해 등등이 그것이지요.

 

이외에도 우리가 옷을 고르고, 그 옷을 통해 자신을 드러내는 방식에는 여러가지가 있습니다. 착장을 완성하기 위해 액세서리와 보석을 사용하는 이유도 바로 '입음으로써' 의미가 완성되는 복식의 미를 인간이 획득하기 위함이지요. 결국 옷은 소통이자 비 언어적 커뮤니케이션의 꽃이 되어 우리 곁에 남습니다.

 

지아장커 감독의 다큐멘터리 <무용>은 이 옷의 초상화를 보여주는 작품입니다. 느린 카메라워크로 잡아내며 관객들로 하여금 마치 초여름 햇살아래 산책자의 보폭과 호흡을 유지하도록 만들어주죠. 너무 빨리 달려가는 통에 놓치는 것이 많은 우리들에게 '너무나도 익숙해서' 도통 철학적인 사색의 주제가 될수 있을까 하고 생각하는 '옷'에 대해 다시 한번 바라보도록 돕습니다.

 

제64회 베니스 영화제에서 다큐멘터리 부문 대상을 받은 작품입니다. 굳이 영화제 수상경력을 나열하는 건, 이런 작품이 국제적인 영화제를 통해 자주 선보여주길 바라는 마음에서입니다. 한국 복식사 공부를 하면서, 최근 다양한 복식장인들을 만나려는 계획을 세우고 있습니다.

 

한국전통복식 무형문화재 선생님들을 뵈면서 복식에 대한 철학을 듣고, 생각의 무늬들을 하나씩 녹취하며 글로 쓰고 있자니, 사실 우리에게도 지아장커 감독이 연출한 옷의 미학 못지 않은 색깔과 사유가 있을텐데, 살려내지 못하는 지금의 현실이 안타까운 것이죠. 어찌되었든, <무용>은 제겐 힘이 되는 작품이었습니다. 감독의 연출노트를 읽어봅니다. "우리는 현재 중국의 의류 산업에 초점을 맞추어 서로 다른 세 곳의 다른 지역을 촬영하면서 경제적 수준에 따라 나뉘는 사람들의 진정한 삶을 발견했다. 옷은 우리를 보호하고 개인의 취향을 전하는 동시에 옷은 기억을 가진 채, 개개인의 인생 방식을 분명하게 전달한다

 

 

옷이 기억과 연결될 수 있다는 점이 제 마음을 끌더군요. 개인의 역사를 살펴보고 싶다면, 적어도 미시적 차원에서 그의 삶을 살펴보는 작은 편린이 될수 있는 오브제 중의 하나가 바로 '옷장'이라고 생각합니다.  한 인간이 입었던 옷의 의장과 그 속에 담긴 의미를 자세히 보면, 그의 성격과 라이프스타일, 인간관계, 세상에 대한 입장 등 다양한 요소를 추려낼 수 있기 때문이죠.

 

저는 남자치곤 꽤 큰 옷장을 갖고 있는데요. 그만큼 옷이 많기도 하려니와, 패션 소품을 좋아한 탓에 서랍별로 액세서리와 가방, 지갑, 벨트, 양말, 장갑, 기본적인 주얼리, 이외에도 패셔너블한 장치들을 말끔하게 정리해 놓았습니다. 3년째 겨울이 되면 사용하는 벙어리 장갑을 보면, 겉으론 수다스러운 척 하지만, 내면은 온통 벙어리 냉가슴을 앓으며 주저하는 제 자신의 모습을 닮았지요. 꽤 세월이 지났지만 베이직한 디자인을 유지하기에 오랜세월 올들이 풀려 보풀이 생겨도, 더욱 따스하게 느껴지는 니트는, 생의 계단을 밟으며 더욱 유연해지는 제 자신을 닮았습니다.  

 

 

영화가 시작되면 덥고 습한 광동지역의 의류공장 모습이 보입니다. 세계 의류의 70퍼센트를 차지하는 패션공산품 공장이 된 중국. 그러나 그 이면에는 시끄러운 재통틀 소리 속에 침묵을 지키며 작업하는 봉제공의 모습이 보입니다. 자신의 식기를 가져와 공장에서 밥을 타먹으며, 엄청난 양의 옷을 재봉합니다. 알게모르게 생긴 질환으로 직장 내 보건소엔 약을 타는 사람들의 숫자가 늘었습니다. 노역속에 만든 옷은 그들이 알지 못하는 낮선 고객에게 팔려가겠지요. 지아장커의 카메라는 냉정하게 거리를 유지합니다. 답답할 정도로 붙어있는 공업용 미싱 사이로 촘촘하게 앉은 이들. 그들을 구획하는 기둥이 감옥의 창살처럼 느껴집니다. 앞이 보이지 않는 답답한 현실 처럼, 그들을 비추는 청색기운 도는 쓸쓸한 형광등 불빛, 그 아래서 잔혹하게 생을 살아가는 노동자들의 모습이 보입니다.

 

 

 

카메라가 찾아가는 두번째 풍경은 바로 중국의 패션디자이너 마케의 작업실입니다. Exception이란 자체 브랜드를 운영한 이래 10년 후 그녀는 자신의 개인작업을 위해 <무용無用>이란 브랜드를 만듭니다. 말 그대로 쓸모없음을 뜻합니다.  그녀는 지금 현대 중국의 패션산업에 대해 비판적인 시각을 드러냅니다. 패스트 패션의 힘이 오랜 수공예와 장인의식이 어우러진 명품의 역사까지 흡수하는 지금, 그녀의 생각엔 곱씹어볼 것이 많습니다.

 

그녀는 철저하게 수공업에 의거해 옷을 만듭니다. 수공품은 기업정신에 반하는 것이라 더이상 인정받지 못하지만 그것은 역사를 통해 대물림되며 오랜시간 정성을 다해 만들어졌기에 흠집이 생겨도 쉽게 버릴 수 없도록 만들어진다는 것이죠. 현대 중국의 패션산업에서 초당 수천개의 패션상품이 만들어집니다. 그녀의 관점에선 이런 상품은 소비자와 어떤 친밀한 관계도 맺을 수 없다는 것입니다. 손으로 만든 것은 감정이 실릴 수 밖에 없고, 그 감정의 끈을 통해 역사가 만들어진다는 것. 옷 한벌에 한 사람의 삶의 변천과정이 있고 이를 바탕으로 세대간의 대화가 가능하다는 디자이너의 말이 와닿았습니다.

  

 

디자이너 마케의 말을 인용합니다. "역사가 있는게 매력있다. 옷은 땅속에 묻어주어 시간이 형태를 변하게 만드는 일을 작업을 통해 보고 싶었다. 자연과 함께 창조하는 일. 창조과정에서 내가 제어하지 못한 부분은 자연에게 맡긴다. 그저 디자이너는 작품의 기초를 다치고 방법을 구성하고 나머지는 자연이 완성하게 하는 것. 그것이 이번 <무용>브랜드의 핵심이다"

 

 

2007년 파리 가을/겨울 컬렉션에서 발표한 작품의 모습입니다. 다큐멘터리를 보니 옷을 흙속에 묻고 오랜시간을 기다리네요. 왜 디자이너는 이런 작업을 하는 것일까요? 그녀는 이렇게 답합니다. "땅속에 묻힌 옷을 꺼낼 때에, 그 옷 자체에 자연스럽게 매장한 장소와 시간, 그 옷에 관한 모든 느낌이 기록되는 거에요. 전 물건도 기억할 수 있다고 믿어요"

 

 

디자이너의 말이 한마디 한마디 어찌나 공감이 가던지요. 옷이 기억의 저장고를 넘어 인류와 민족의 정서가 각인된 영혼의 화석이 된다는 것, 개인의 미시적 역사를 구성하는 오브제가 된다는 제 생각을 깔끔하게 메워주네요. 옷을 땅 속에서 흙과 만나, 미세한 온도와 흙의 입자 사이로 스며드는 햇살과 바람의 양을 통해 새로운 모습으로, 마치 조각작품처럼 빚어지게 될 겁니다.

 

다큐멘터리를 보면 모델들이 하나같이 옷이 너무 무겁다며, 이게 무슨 소용이 있냐며 질문을 던지는 장면이 나옵니다. 말 그대로 무용입니다. 옷은 用의 산물입니다. 중세 때는 옷을 만드는 일은 모직이라 불었습니다. Lanicifium이라 해서 양모로 물건을 만들거나 사람들에게 의복을 공급하는 일을 의미했죠. 이것은 Armatura라고 해서 건축 및 장비의 기술과 더불어 의학 농경, 수렵, 항해, 구경거리 등 유용하다고 평가되는 7개의 기술 중 하나였습니다. 이 기술은 오늘날의 예술을 뜻하는 아트(art)의 유래가 되는 아르스라고 불렸지요. 

 

소용이 있다는 것은 무엇일까요? 패션쇼에서 보여준 마케의 옷은 정말 무용지물일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되돌아보면 단순한 장식미술, 응용예술의 일부로 생각된 패션이, 옷과 그것을 입은 인간의 관계, 역사를 연결함으로서, 우리 자신에 대한 성찰을 이끈다는 점을 생각해보면 바로 이것이 옷의 '소용'이 아닐까 싶습니다.

 

이제 느린 카메라 렌즈는 먼지로 뒤덮인 산샤 지방의 작은 양장점으로 향합니다. 그곳에서 봉제수선사는 지역 광부들의 옷을 수선하며 일상의 소소한 이야기를 나누죠. 옷을 고치러 온 이 중에는 과거 재단사 경력을 가진 이들도 있습니다. 맞춤복 체계로 옷을 만들었나 봅니다. 대량생산 중심의 공장라인이 들어서면서 그들은 경쟁력을 잃어갔겠죠. 내품은 담배연기만큼이나, 짙은 생의 무게가 광부의 어깨를 누릅니다.

 

<스틸 라이프(2006)>에서 과거의 기억과 그로 인한 깊은 삶의 흔적을 짐진채 살아가는 중국인의 풍경을 보여준 지아장커 감독. <무용> 또한 그 연장선에 있는 작품입니다. 내면세계의 표출이자 동시에 계급의 상징이기도 한 옷. 제조자와 착용자의 일상을 통해 노동하는 인간의 면모를 드러내는 그의 시선은 오롯합니다. 패션을 공부하는 학생과 더불어 일반인들도, 적어도 옷이란 걸 입고 다니는 체험을 하는 모든 이들에겐 한번쯤 생각의 음식이 되어줄 영화입니다. 꼭 한번 찾아보세요. 다음에서 다운로드 받으시면 된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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