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군가를 만나고 대화를 나누는 일은 행복합니다. 만남은 생의 확장으로 이어지는 열쇠말이 됩니다. 만남은 타인의 시선으로 구성된 세상의 격자 무늬에 내 시선을 담구고, 틀의 세상이 나의 시각 아래 유연해질 때까지 기다림을 필요로 합니다. 그래야만 그/그녀가 보이고, 그/그녀의 세상이 눈에 들어오지요.
만나야 할 사람을 만날 때, 마치 데자뷰를 체험하듯 낯선 얼굴이 낯익은 풍경이 되기까지 걸리는 시간은 초당 5미터. (영화제목을 한번 써 봤습니다) 그만큼 만남이 따뜻하기에, 과거에 한번 쯤은 만났을 거라는 인지적 착각에 빠져들기 쉽습니다. 그래서 만남이 좋고, 그 만남의 질이 나를 행복하게 합니다. 덩달아 멋진 사람을 소개시켜 준 사람에게도 더욱 살가운 고마움을 표시하게 되죠.
이번 성탄절을 앞두고 영화 <호우시절>의 조감독이자 각본을 맡았던 이한얼 감독을 만났습니다. 많은 분들이 소설가 이외수의 장남으로 기억하지만, 뭐 저는 영화가 좋았고, 각본이 좋아서 만나고 싶었던 영화인이지요. 물론 소설가 이외수 선생님을 두번 찾아뵈었고 이후로도 이상하리 만치 이외수 선생님 가족과 친척 분들과는 잦은 교류를 가졌습니다. 그러나 다시 말하지만 이런 이유로 이한얼 감독을 만난 건 아닙니다.
저는 영화감독을 평가할 때, 적어도 촉망받는 조감독 군 중에서 가장 먼저 입봉(감독데뷔)을 할 재목을 찾고 싶을 땐, 그가 만든 단편영화를 꼭 찾아서 봅니다. 그리고 영화 속 리듬과 호흡, 화면구성의 방식, 무엇보다도 사물을 찍는 그의 시선을 살펴보지요. 이한얼 감독은 베이징 영화학교를 졸업하면서 6분짜리 <봄이요>라는 작품을 만들었습니다.
70-80년대의 정서적 풍경을 안고 있는 중국의 현 모습에 끌렸다는 그는, 미만한 연두빛 봄 기운과 황토빛 땅의 빛깔, 뻥튀기를 만들기 위해 기계를 돌리는 할아버지의 모습을 아스라히 화면 속에 담았습니다. 호흡은 다소 느립니다만, '봄'과의 만남 혹은 조우를 느린 호흡으로 따스하게 안아보기 위한 시도라 생각됩니다. 상상마당에서 보았던 그의 작품은 제 심중의 끝에서 피어나는 꽃망울을 톡 하고 때렸습니다. 한 마디로 필이 꽂혔습니다.
올해 33살의 나이. 쟁쟁한 한국 영화계의 감독들 아래서 탄탄하게 연출 수업을 했습니다. 이제 곧 그의 작품을 볼 수 있을거란 생각을 해봅니다. 물론 신중하게 또 신중한 작업을 할거라 믿어봅니다. (길 지나가는 사람 3번 꼭 시켜달라고 감독님께 부탁도 하고 왔습니다. 저도 잘 하면 영화에 나올지도 모르겠습니다.:)
이한얼 감독에 대한 첫느낌은 사실 이외수 선생님을 뵈었을 때와 그리 다르지 않았습니다. 예전 이외수 선생님을 뵈러 화천에 갔었을 때, 이한얼 감독은 방에서 자고 있었습니다. 밤샘 작업이 잦은 조연출이니 당연할 밖에요. 이외수 선생님의 이미지는 항상 자상하신 삼촌의 모습입니다. 장남 답게 예절바르고 사물에 대한 따스한 시선을 견지하는 모습이 좋습니다. 영화 <호우시절>각본을 쓰게 된 동기며 이 작품을 할 때 어떤 마음가짐을 가지고 임했는지 물었습니다. 그는 '단식중'이라고 했습니다. 스테프 활동을 하느라 총각시절에 비해 몸이 많이 분 이유도 있고, 단식을 하면서 "감각의 포화 속에 사로잡혀, 상실될 위기에 있는 순수한 오감을 찾아보고 싶었다"고 말합니다.
섭생을 조율해본 기억이 있는 분들은 이 말을 이해하리라 생각합니다. 저도 한 때 몸무게를 조정하면서 맵고 짠음식을 피했습니다. 3주 정도가 지나면 혀가 예민해지죠. 원래의 맛을 느낄 수 있는 상태로 돌아오는 것입니다. 이한얼 감독은 바로 그런 상태에서 영화 '호우시절'의 마무리를 하고 싶었다고 했습니다.
너무나 기술중층적이고 감각적인 영화들이 판치는 세상. 그런 작품 들 속에서 정말이지 너무 순수해서 한편으로 '식상해 보일수도 있는' 스토리 구조를 끝가지 유지한 것은 그런 감독의 의지가 표현된 것이라고 봐야겠지요.
저는 한얼씨가 좋은 영화 감독이 될거라 믿습니다. 제가 약간 신끼(?)가 있는 건 아닌데, 단편작업을 보고, 연출하는 방식을 보면 이 사람이 대성하겠다고 찍으면 꼭 되는 걸 자주 경험을 했습니다. 이한얼 조감독은 스스로 대중적 코드를 찾아서 영화 속에 녹여내는 작업을 게을리 하지 않겠다고 했습니다. 영화란 결국 산업자본의 산물이기도 하기에, 마냥 예술작품으로서의 영화만을 고집할 수도 없지요. 가장 좋은 방법은 흥행에도 성공하면서, 여력을 이용해 자신이 추구하고 싶은 영상미학을 담아내는 작품도 만드는 것입니다. 가장 복받은 케이스의 감독이지요.
눈이 많이 내립니다. 삼청동에도 눈이 쌓이겠지요. 감독님이 그곳에 살고 계시다네요. 제가 정말이지 자주 나가는 곳인데, 한번 다음에는 시간을 내어서 오랜동안 이야기를 해야겠습니다. 그렇게 시간이 흘러 또 봄이 오면, 감독 이한얼님의 작품 속에 '봄빛'가득한 날이 오겠지요. 팬으로서 그 시간을 기대할 뿐입니다.
이건 인터뷰 끝나고 시네큐브가서 찍은 사진입니다.
이 사진을 굳이 올리는 건, 머플러와 장갑을 자랑하기 위해서입니다.
일산 아람누리에 강의를 나가며 만난 분들이 성탄절 선물로 사주셨습니다. 감사합니다.
파티에 가기 전, 시장에 들러서 카키색 코트를 정말 싸게 마련했는데 색감에 딱
맞아서 이번 겨울 따뜻하게 보낼 차비를 갖추게 되었습니다.
그래도....요 며칠 너무 추워요.....빨리 <봄이요!>하고 외칠 수 있길 바랍니다.......
아래 View 버튼을 누르시면 새롭게 업데이트 되는 글을 편하게 보실 수 있습니다.
41982
'Art & Fashion > 패션 인스퍼레이션 ' 카테고리의 다른 글
나는 행복한 광대-배우 오지혜 인터뷰 (0) | 2010.04.16 |
---|---|
무대의상 디자이너 필립비노 인터뷰-발레에 취하다 (0) | 2010.03.27 |
우리시대의 핀업걸 낸시랭을 만나다 (0) | 2009.09.16 |
우리시대의 논객 진중권을 만나다-거북이가 달리는 시간 (0) | 2009.06.16 |
불독같은 남자의 환경사랑-알면 사랑한다 (0) | 2009.06.04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