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용, 인간의 역사를 더듬다
춤은 인간의 억누를 수 없는 체험이다. 원시종합예술에서 현재의 세분화된 형식의 무용이 발전되기까지 유구한 시간이 필요했다. 무용의 역사는 인간의 역사다. 원시시대 태양에 대한 미사의식으로부터 출발해서 중세를 거쳐 르네상스의 학자들이 그리스 연극의 형식을 빌어 발레를 창조한 이레 발레란 이름의 무용예술은 많은 변천을 겪었다. 원시시대, 인간은 자연현상에 대한 경외감을 표현하고 강력한 자연의 폭력을 달래기 위해 춤을 추었다. 문화 인류학자 조지프 프레이저는 그의 저서 ‘황금가지’에서 땅과 사람들의 번식 전쟁 혹은 액막이 주술에 관한 제식의 한 형태로 춤이 존재했다고 말하고 있다.
우리가 알고 있는 발레란 4세기 동안의 끊임없는 정련과 실험의 결과물이다. 발레(ballet)란 말은 춤을 춘다는 뜻의 이탈리아어 ballare에서 유래한 것인데 16세기까지 이 말은 궁정에서 사용된 춤의 형식을 의미하는 말이었다. 역사상 최초의 발레작품은 이탈리아의 발레 교사인 발타자르 보조와예가 프랑스 앙리 2세의 왕후 카트린느 드 메디치의 후원아래 제작한 ‘여왕의 발레 꼬미끄’다.
이 때의 고전발레는 고정된 움직임의 언어로 구성된 세계였다. 18세기에 접어들면서 춤은 무용은 귀족의 유희양식으로 발전한다. 프랑스의 루이 14세는 귀족들을 위해 오늘날의 발레단과 오페라단을 설립, 사회적 통합을 위한 정치적 목적의 무용을 선보인다. 그러나 이후 낭만주의 시대를 거치면서 초기의 고정된 무용동작의 어휘는 폐기된다.
낭만주의 시대의 춤은 정서적으로 자유롭고 주관적인 표현을 위해 모든 형식을 배격했다. 형식보다는 정신성을 찾는 역사가 시작된 것이다. 당시 낭만주의 무용운동을 이끈 사람은 장 조르주 노베르였다.
그는 ‘발레닥숑’(ballet’d’action)이란 무용철학을 주창했다. 그 핵심은 발레가 극적인 구경거리-말이 없는 연극-가 돼야 한다는 것이었다. 프랑스 혁명 이후 귀족을 비롯한 광범위한 관객층이 몰리면서 무용은 ‘투명한 육체를 통해 표현하는 연극’으로 발전한다. 1950년대에 접어들면서 유럽의 발레는 상연되는 즉 개인의 창조성과 예술적 통합의 실천을 통해 시대의 맥락을 표현하는 방향으로 발전한다.
롤랑프티의 ‘트리플 빌’ 내한공연을 맞아
세계적인 안무가 롤랑 프티가 한국에 온다. 롤랑 프티는 유럽발레 100년간의 역사에서 가장 중요한 현존 인물이다. 1940년대 중반, 실존주의 철학이 유럽을 휩쓸던 시절, ‘유랑극단’ ‘랑데부’ ‘젊은이와 죽음’과 같은 실존주의 계열의 발레작품을 올려 호평을 얻었다. 유럽의 표현주의 무용의 시작을 알린 것이다.
그는 세계대전 이후, 침체기를 맞았던 프랑스 발레를 세계적 브랜드로 만드는 데 일조했다. 안무 및 무대, 세트, 의상, 각 분야에 모두 개입하여 자신만의 카리스마와 예술적 통찰력을 불어넣고, 개별 작업자들과의 협업을 통해 기존의 발레형식을 해체하는 작업을 했다.
젊은이와 죽음(1946년 작)은 프랑스의 시인 장 콕토가 대본을 쓴 롤랑 프티의 두 번째 작품으로 발레리노 미하일 바리시니코프가 출연한 영화 ‘백야’로 리메이크 되기도 했다. 그의 작품에 드러나는 특징 중 하나가 ‘문화적 혼종성’이다. 런던과 헐리우드에서 다양한 활동을 했던 그는 미국식 뮤지컬을 프랑스 발레에 결합한 독특한 작품들을 만들었다.
국립발레단이 7월에 올리게 될 ‘트리플 빌’ 은 롤랑 프티의 ‘아를르의 여인’ ‘젊은이의 죽음’ ‘카르멘’으로 구성되어 있다. 이 중 ‘카르멘’은 초연 당시 파격적일 만큼 에로틱한 의상과 안무, 도발적인 헤어스타일로 엄청난 반향을 일으켰던 작품이다. 무엇보다 한국 초연을 위해 롤랑 프티의 오리지널 스텝들이 대거 내한, 본 작품의 독창성을 더욱 빛낼 예정이다.
롤랑프티를 사랑한 남자-의상 디자이너 필립 비노
올 2월, 내한공연을 위해 한국을 방문한 무대의상 디자이너 필립 비노를 국립발레단 사무실에서 만났다. 30년 넘게 프랑스 파리 오페라 가르니에 극장의 의상제작을 담당했던 그는 롤랑프티의 가장 절친한 친구이자 무대 파트너다. 필립 비노의 작업범위는 가히 놀라운 수준이다.
파리 패션의 거장 크리스티앙 라크루아나 이브 생 로랑과의 공동작업은 말할 필요도 없고 최근 한국에서 전시 중인 프랑스 화가 로르주 루오, 80년대 프랑스에 일본패션의 바람을 불러일으켰던 하나에 모리와의 설치작업, 현대무용가 윌리엄 포사이드, 포스트 모던 무용의 선구인 제롬 로빈스와의 무대작업, 영화감독 페드로 알모도바르의 영화의상 작업 등 일일이 거론하기 힘들다.
인터뷰 내용은 대부분 지금까지 롤랑 프티와의 작업에 초점을 맞추었기에, 상세한 설명은 생략한다. 무대의상 디자이너라는 개념 자체가 생소한 한국에 비해, 다양한 문화장르의 벽을 넘어 작업을 해온 그의 의상철학은 의외로 간단했다. “연출자의 의도를 충실히 해석하고 옷으로 반영하는 것’이다.
롤랑 프티와 ‘신데렐라’ 작품을 위해 의상을 50번이나 새로 디자인 해야 했던 경험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모든 안무가의 견해는 존중되어야 한다”는 말로 귀결된다. 그의 입술을 통해 듣는 현대무용의 거장 이야기들은 흥미로웠다. 많은 재능을 갖고 있지만 너무나 변덕스러운 탓에 ‘다시는 작업을 하고 싶지 않았다는’ 포스트 모던 댄스의 거장 제롬 로빈스의 면모 또한 놀라울 수 밖에.
지금까지 해온 작업 중 가장 인상 깊은 작품은 ‘지젤’ 이란다. “지금까지 4번의 공연을 하면서 2번은 고전적인 양식으로, 나머지 2번은 환타지가 섞인 초현실적 양식을 도입, 새로운 면모를 보여주었다”고 말하는 거장의 면모에 여유가 넘쳤다. 그에게 자신이 디자인한 무대 작품 중에서 ‘개인적으로 연기에 참여하고 싶은 작품’이 있는지 묻는 질문에 “모던한 재즈 스타일로 번안한 ‘코펠리아’에 출연하고 싶다”고 했다. ‘사랑을 비를 타고’의 주인공 진 캘리 스타일로 만든 발레작품이라 유독 기억에 남는다고. 이번 국립발레단의 <트리플 빌> 초연이 기대되는 건, 발레를 총체예술로 승화시킨 롤랑프티의 안무에, 그와 함께 호흡을 맞춘 다양한 스텝들의 철학이 궁금해지기 때문이다. 놓치지 말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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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시간 통역을 맡아 수고한 국립발레단 홍보팀의 황보유미님께 감사를 드립니다. 짧은 체류 일정에도 인터뷰에 응해주신 세계적인 무대의상 디자이너 필립비노 님께 다시 한번 감사의 인사를 전합니다. 트리플 빌, 무대의상 피팅 시간 때 꼭 찾아뵐게요.
사진: 이화미디어 문성식, 글: 김홍기 본 기사는 오마이 뉴스에도 함께 개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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