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지연_desire_emotion_실리콘_160×160×120cm_2009
어린시절 겨울이면 엄마는 스웨터를 입혔다. 굵은코로 뜨개한 뭉툭한, 지금보면 한없이 빈티지 느낌의 스웨터였다. 엄마가 늦가을이면 짜기 시작한 실의 축제는 한 벌의 옷이 되고 내 몸에 입혀져 완성되곤 했다. 여기에 꼭 빠지지 않는 것이 있으니, 바로 스웨터 팔꿈치에 가죽이나 두터운 덧직물을대는 거였다. 이렇게 옷의 운명은 더욱 늘어나 다음 해까지 버텼다.
"누비며, 호며, 박으며, 공그를 때에 겹실을 꿰었으니 봉미를 두르는 듯 땀땀이 떠갈 적에 수미가 상응하고 솔솔이 붙여 내매 조화가 무궁하다" - 조씨 부인「조침문(弔針文)」중에서
김지연_desire_in_실리콘_가변설치_2009
반복적 행위를 통해, 내 신체 한 부분을 덧댄 직물엔 아들의 안전과 겨우 내 한기를 이겨내기 바라는 엄마의 따스한 마음이 녹아 있다. 보풀이 생기고, 헤어지고, 찟어진 직물과 직물을 맞대어 바늘로 결합한다. 한 땀 한 땀 엄마의 체온이 더해진 탓에, 겨울 한기는 촘하게 차오르는 실의 여백에 채워진 모성의 열기에 덥혀져 훈풍이 되어 신체와 스웨터의 빈 공간을 떠돈다.
얼마전 만났던 누빔장의 손길엔 바로 예전 보았던 엄마의 삶의 무늬가 녹아 내리고 있었다. 아이를 키우는 과정이 얼마나 반복된 일상과의 싸움인지, 모성이란 사실 한 인간이 인간을 세우는 존엄의 과정인지를 '바느질' 하나를 통해 배운 것이다나는 김지연의『Sewing body』展을 통해 켜켜히 쌓이는 엄마의 온정을 느낀다. 그녀의 작업은 일견 독특하다.
김지연_desire_out_실리콘_160×97cm_2009
색을 넣은 실리콘에 자신과 타인의 몸을 조각 조각 캐스팅한다. 이를 굳힌 후 바느질로 다시 한번 공그르는 작업이다. '신체를 바느질한다'는 것은 신체를 한 장의 직물처럼 사유하는 일이다. 신체는 외부의 환경에 가장 먼저 노출된다. 물질적 신체의 문제를 넘어, 신체가 담아내는 영혼까지도 그 영향을 받는다. 거친 담즙을 통하는 신체의 상처를 꿰매고 기우는 작업. 이 과정을 통해 신체와 정신 양쪽과 화해한다.
김지연_desire_island_실리콘_160×240cm_2009
김지연의 작품을 보면, 매우 미세한 신체의 부분들, 가령 입술이나 주름, 손금 등이 지문처럼 찍혀있다. 신체는 작가의 개인적 상처의 현존을 그대로 드러내 응고시킨 주형과도 같다. 작가는 캐스팅을 통해, 상처와 아픔의 기억을 저장하고 이를 치유하기 위한 '바느질'이란 행위를 끄집어낸다. In과 Desire Out 이라는 제목에는 욕망의 방향성이 담겨 있다. 내면의 상처와, 이를 치유 한 후 바깥으로 자유롭게 흘려보내려는 의지가 고스란히 나타나는 셈이다.
작품 속에 드러나는 섬세한 표현을 위해, 손과 발 위에 거즈도 대지않고 직접 캐스팅을 했다. 조각가 자신의 신체를 빌어 작품화 하는 경향은 80년대 후반부터 이미 존재했다. 세자리 발다치니는 엄지 손가락, 손, 유방과 같이 인체를 확대해 조각으로 만들었다. 오히려 신체부분을 확대함으로서 마치 추상화처럼 보이도록 작업한 것이다. 각각의 신체 부위 하나하나가 개인의 역사를 기록하는 기념비처럼 보이도록 한 것이다.
김지연_portrait_실리콘_35×35cm×2_2007,2008
김지연의 조각을 보며, 다소 소롯한 느낌이 드는 것은 바로 신체를 도장처럼 사용한 면모 때문이다. 삶은 반복적 행위이지만, 어떻게 바라보느냐에 따라 그것은 비루할 수도 있고, 누빔에 누빔을 더해, 따스함을 담아내기도 한다. 나 어떤 쪽을 택하고 있는 것인지......물어보지 않을 수 없다. 2009년 한 해를 보내며, 내 몸에 축적된 상처들을 털어내고, 이제는 새로운 몸을 갖고 싶다. 엄마의 누빔이 필요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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