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rt & Healing/내 영혼의 갤러리

난 생긴대로 살거다, 어쩔건데?-변웅필의 그림을 보다가

패션 큐레이터 2009. 12. 14. 23:38

 

변웅필_Selfportrait as a man-Christmas Ball(3/3)_캔버스에 유채_72.7×60.6cm_2009

 

오늘은 한가람 미술관에서 열린 <색채의 연금술사-루오전> 개막식에 다녀왔습니다. 루오의 그림은 파리에 갈 때마다 퐁피두에 들러 지겹게 봐왔지만, 언제나 그렇듯, 성과 속을 결합하는 그의 색채감각은 어두운 당대에서, 천국의 빛을 꿈꾸는 여행자의 마음을 편안하게 이끄는 힘이 있습니다. 루오에 대한 이야기는 다음 포스팅에서 자세히 풀겠습니다. 그는 자신을 가리켜 "회화란 경작지에 묶여 있는 농부다"라고 표현합니다. 땅을 일구는 일에 자신의 그림 그리기 작업을 연결한 것, 그 자체로 그는 굳건한 현실에서 성스러움의 세계를 추구하는 화가의 정체성을 표명하는 말이라는 생각이 드네요.

 

 

변웅필_한 인간으로서의 자화상 39_캔버스에 유채_150×130cm_2006

 

흔히 우리가 얼굴을 가리켜 폄하하는 말로, 면상이란 표현을 씁니다. 상(相)은 한자의 의미대로 어떤 마음밭을 일궈왔는지를 살펴본다는 뜻이 있습니다. 생의 무늬이자 그의 정신적 이력서와 같은 것이죠. 나이가 들어가면서 생의 흔적과, 사유의 무게, 타인에 대한 배려, 자신의 정치적 입장, 라이프 스타일 등 이 모든 것이 마치 나무가 자라듯, 밭에서 영글어가는 무늬가 되는 것. 그것이 얼굴입니다. 올 한해를 되돌이켜 보며, 나는 어떤 무늬를 얼굴에 인각시켰는지, 새겨왔는지 살펴봐야 겠습니다.

 

 

변웅필_한 인간으로서의 자화상-표출_캔버스에 유채_120×100cm_2006

 

우리는 흔히 '생긴대로 산다'는 말과 '외모도 경쟁력'이란 두 개의 지점 사이에서 '어떤 결정을 내릴지 고민합니다. 외모가 경쟁력이 되는 시대가 무서운 것은 특정 유형의 외모와 스펙을 가진 사람을 '우수하다'라고 치켜세우는 논리이기 때문이죠. 자세히 살펴보면 인종주의자들의 논리와 다를게 없습니다. 조셉 아르투르 고비노란 학자는 자신의 <인종불평등론>에서 백인종만이 역사의 주인이 되고 나머지 황인종과 흑인종은 보조적인 역할을 해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성형으로 고치는 우리들의 외모가, 어떤 인종의 특정 '상'을 닮아가고 있다는 것. 여기서 다시 한번 살펴봐야 겠습니다.

 

 

변웅필_한 인간으로서의 자화상-키스_캔버스에 유채_120×100cm_2006

 

여기에 반해 생긴대로 산다는 건, 우주의 생성과 삶의 리듬, 우리의 모든 것을 아퀴지은 절대자의 형상으로 빚어진 인간의 모습, 그대로 본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문화철학자 에른스트 카시러는 이런 사유의 방식을 가리켜 상보적 세계관이라고 했습니다. 나만 면상을 가진게 아니라, 내 눈에 비치는 타인의 면상도 있고, 그/그녀의 시선에 비춰지는 나의 면상도 있다는 거죠. 참 단순한 이야기지만, 쉽질 않습니다. 인간은 철저하게 자신의 이기심을 포장하는 나르시스적 존재의 일면이 있기 때문입니다.

 

변웅필이 그린 자화상을 볼때마다, 클로즈업 화면으로 크게 구성한 화가 자신의 얼굴을 통해, 제 자신의 모습, 나아가 타인의 모습을 봅니다. 한 인간의 얼굴 앞에서, 나는 어떤 태도를 취해야 하나, 어떤 생각에 젖어야 하나를 자문하게 됩니다. 철학자 들뢰즈는 "땅은 조경을 통해서 영토화 된다"는 주장을 하죠. 무슨말인가 하면, 풍경을 조형함으로써, 의미있는 지점으로 만든다는 뜻입니다. 그렇다면 우리에게 있어 얼굴은 뭘까요? 울고 웃고 화내고, 빈정거리고, 질시하고 모든 감정의 체계를 풍경화를 그리듯, 안면 근육을 통해 표현할 수 있습니다. 얼굴은 정신의 풍경화를 그리는 일종의 캔버스와 같습니다.

 

여러분은 어떤 그림을 얼굴에 그리실건지.....요? 올 한해 저는 여러분과 만나 참 많이 행복하게 웃었고 울었고, 소중한 것들 받았습니다. 변웅필 작가가 그린 크리스마스 벨을 들고 있는 모습을 물끄러미 보다가, 늦게나마 여러분께 성탄절 인사 드립니다. 참 고맙습니다.

 


 

루오展 개막식에 가서 찍은 사진입니다. 그림의 주인공은 저의 루비딸, 소영입니다. 그러고 보니 벽면의 붉은 기운과 머플러가 잘 매치되네요. 소영이가 졸업반인데, 국내 최고의 의류 회사에 상품기획자로 취업을 했습니다.

 

마케팅 리더스 클럽에 강의 가서 이 녀석을 보곤, 대화 몇 마디를 나눠 본것이 전부인데, 제 대학시절 모습하고 많이 닮았던 아이였어요. 여리지만 예술작품과 패션을 보는 상당히 정확한 식견과 시선을 가져서, 제 관심을 끌었지요.

 

이제 제가 사회생활을 시작했던 그 동일직종으로 제 제자가 사회생활을 시작하네요. 내일이 첫 출근이랍니다. 만만치 않을 겁니다. 패션사업부에서 MD란 '뭐든지 다한다'의 약자라고 알려주고 왔습니다.

 

회사에서 상품기획 분야를 딱 한명 뽑았는데, 제 제자가 된겁니다. 그래서 더 신납니다.(오늘은 자랑질을 해야겠습니다. 아이들에게 멘토링을 하는 재미가 이런거구나 하고 있습니다) 

 

상품기획자는 항상 최전선에 가있는 직군이어야 합니다. 소비자행동과 소매업의 행태와 방식들, 소비자의 취향과 충족되지 않은 니즈를 끊임없이 찾아서 연구하고, 이를 경제적으로 풀어내는 사람이어야 합니다.

 

저는 소영이가 이 부분에서 최고의 기량을 발휘할거라 믿어 의심치 않습니다. 제가 알고 있는 것들, 아이들에게 최선을 다해 가르쳐 주려고, 본의 아니게 아이들 고문을 많이 했습니다.(물고문에서 전기고문까지) 하지만 그만큼 치열한 환경에서 생의 연금술을 펼수 있는 전사로 컸습니다. 그렇게 만들려고 노력했구요. 오죽하면 출판사에서 이 아이들 이야기를 책으로 묶어내자고 했을까요? 소영이를 뽑은 그 회사는 대박난 겁니다. 소영이가 멋진 상품기획자로 패션산업계를 종횡무진 다닐 수 있기를 소망합니다.  소영아......힘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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