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하루는 오전부터 살인적인 스케줄에 시달렸습니다.
12시 점심시간에 맞추어 서강대 동문회관으로 가서 40대 남성 치유 프로젝트를
준비하는 두 분의 선생님을 뵙고 내용을 정리했고, 끝난 후 바로 연세대로 직행, 특강 준비를
했습니다. 대학원을 다니며 자주 걷던 길이기만, 붉은 단풍잎이 곱게 물들어가는 교정이 예쁘더군요.
이후 클라이언트랑 만나서 지리한 상담을 마치고
리윰 미술관 쪽으로 향했습니다. 블로그를 통해 만나는 분들과
저녁식사를 같이 하기로 했거든요. 언제부터인가 일로 만나는 사람들의 숫자보다
블로그로 친목을 도모하고 알게된 분들이 더 많아졌습니다. 식사를 위핸 간 곳은 토크(Toque)란
레스토랑인데요. 외국인들이 많은 걸 보니 메뉴 조형을 잘 했나 봅니다. 제가 먼저 가서
기다리는데 옆 테이블엔, 외국인 부부와 아이들이 와서 샌드위치를 시켜 먹더라구요.
인터넷에서 찾아보니 원래 이 가게가 선릉에 있었는데 이때도 독특한
샌드위치로 인기를 얻었던 가게더라구요.
저는 개인적으로 요리하는 것을 좋아합니다.
신선한 식재료를 사서 어떻게 비율을 조정하고 독특하게 배합하는
가에 따라 맛이 천차만별이 되는 그 아득한 극미의 세계가 좋습니다. 무엇보다도
인간의 따스한 온기가 '불'이라는 매개를 통해 반드시 익혀야 하는 화식문명을 만든 이유로
요리란 행위 자체를 저는 거룩한 생의 반추적 행위라고 생각하고 있지요.
치즈와 브로콜리를 넣어 만든 수플레가 나왔습니다. 수플레란
달걀흰자를 거품내고 치즈나 고기 생선 등의 재료를 섞어 틀에 넣고 오븐에
구워 부풀린 요리입니다. 미각을 돋우기 위해, 아페리티프로는 카르베 소비뇽을 시켰는데
와인을 조금씩 마시면서 혀끝에 닿는 미각의 상큼함이 선선합니다. 이 집 요리에
대해서는 한번에 평가하긴 어렵지만 꾸밈없는 맛을 갖고 있는 듯 했어요.
저는 요리사들이 참 부럽습니다. 사실 현실은 꼭 녹록치 않죠.
프랑스 코르동 블루를 졸업한 제 후배도 자신의 가게를 내지 못한채
지금 쉬고 있고, 많은 요리사들이 이런 전철을 밟기도 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초기 캐리어와 달리, 인생의 후반기, 혹은 변곡점에서 이 요리란 매개를 통해 생을 바꾼
사람들이 있습니다. 오늘 소개할 이 토크 레스토랑의 장정은 대표도 그런 분이죠.
저는 요리를 좋아하지만 사실 배울 용기는 내질 못했습니다.
오히려 먹고 글로 쓰는 걸 좋아해서, UBC에 다닐 때, 특강과정으로 있는
푸드 칼럼니스트를 위한 글쓰기 교실 같은 걸 다녔죠. 가뜩이나 영어도 잘 못하는 데
섬세한 미각을 표현하는 형용사를, 감정의 무게에 따라, 토해내는 수많은 단어들이 머리속을
오가곤 했습니다. 물론 글쓰기 교실을 마치치 못했구요. 그래서 정말 아쉽습니다.
이건 흑미와 함께 조리한 생선요리인데
소스가 부드럽고 흑미 특유의 쫀득한 느낌이 생선살과
어우러져서 풍취가 발산되는 것이 좋더군요.
이건 메인 식사로 나온 양갈비 스테이크고요
저는 등심 스테이크를 먹었습니다. 우스타 소스에 뭘 섞었는지
기본적으로 담백한 미감이 육즙에서 흘러나오는 것 같아서, 최근 염분을 줄이려
노력하는 제겐 아주 안성맞춤인 요리였습니다. 버금딸림음이 없는 요리랄까. 굉장히 단순하게
식재료를 조리해서 정직하게 올려놓은 듯한 요리가 이날따라 입에 더 맞더군요.
설탕과 밀가루를 튀겨낸 파삭거림이
좋은 과자위에 얹은 아이스크림과 과일을 마지막으로 식사는 끝.
이제 쉐프를 만날 시간입니다. 함께 동행한 블로거 분과 친하신 관계로 저도
인사를 했습니다. 인터넷으로 찾아봤습니다. 독특한 샌드위치를 만드는 레스토랑이라고
나와 있습니다. 각 도시별 맛을 샌드위치화해서 인기를 끌었더군요. 오슬로 샌드위치엔 연어를
하바나엔 닭가슴살을(저는 다음에 이걸 시켜야 겠네요) 도쿄에는 와사비를 곁들인 게살을 넣어 샌드위치의
맛을 냈습니다. 대표 장정은씨는 이날도 주방에서 요리를 마치고 인사를 하러 왔었는데요.
한때 연봉 1억을 받던 촉망받던 은행원이었답니다. 미국 버지니아주의 명문대학
윌리엄 앤 매리에서 외교학을 전공한 수재였고, 미국 10대 은행에
꼽히는 선트러스트 은행에 다녔다지요.
뭐 이런 이력을 꼭 나열하는게 중요한 건 아니겠죠.
중요한 건 그녀가 좋아하는 요리를 평생의 업으로 삼고 있다는 것과
그것으로 인해 행복하다는 걸, 사진을 찍으면서 표정을 통해 확인할 수 있으니 되었습니다.
생의 변곡점에서, 요리란 매개를 통해 생을 재정의하며 살아가는 멋진 쉐프들이
많아졌습니다. 장정은 대표 외에도 제가 아는 두분이 그렇거든요.
이렇게 얼굴도 예쁘고 요리 실력도 좋은 분들 보면 그리도
부러울 수가 없어요. 난 도대체 뭐하고 있나 이런 생각도 들긴 하죠.
저는 역시 요리보단 글쓰기가 더 맞는 거 같습니다.
특정한 글쓰기 방식이나 문법, 어휘들을 모아놓고 익히고 배열하는
일을 너무 좋아하거든요. 다음엔 제대로 이 가게의 샌드위치를 먹어보고
평을 해봐야겠습니다. 아마존으로 다이앤 제이콥이 쓴 Complete Guite to Food Writing
이란 책도 신청을 했습니다. 레스토랑 리뷰를 잘 쓰는 법과 같
은 섹션을 잘 읽어봐야 겠습니다.
오랜만에 활짝 웃는 미인 쉐프를 만나보네요.
당차고 아름답게, 요리를 통해 세상을 환하게 만드는 분들
사실 너무나도 치열한 현실속에 노출되어 있지만, 각오의 각오를 다지며
도전하는 그 멋진 용기와 삶의 방식에 박수를 보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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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그림에 필을 받아서 열심히 그림을 그리시고 계시다네요.
레스토랑 한켠에 올려있는 장미그림이랑 유화작품이 쉐프의 그림이랍니다.
놀라와요. 하고 싶은 것을 거리낌없이 도전하고 즐길 수 있는 그대. 정말 부럽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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