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1 테드 서울 컨퍼런스에서
어제 새벽 서울에 도착했다. 목/금요일 꿀맛같이 달콤한 이틀의 여유를 내어 보성과 담양, 순천 등 남부지방을 여행했다.
토요일 아침, 9시에 일어나 TEDx SEOUL 컨퍼런스에 갈 준비를 했다. 테드 서울 컨퍼런스는 원래 Sapling 재단이 운영하는 TED Conference로 부터 공식 라이센스를 취득한 후 독립적으로 각 국가별로 이루어지는 지역 행사다. 건축, 디자인, 예술, 정보기술, 미디어, 오락, 사회 등 전 분야에 걸쳐 혁신적 가치들을 생산해온 사람들이 모여 아이디어를 발표하고 나누는 자리다.
이 테드 컨퍼런스에 대해 알게된 건 아주 우연한 기회였다. 예전 일산 아람누리 미술관에서 <패션과 미술의 콜라보레이션>을 주제로 특강을 한 적이 있는데 그때, 강의를 듯한 한 여학생과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누었다. 이후 그가 알려준 것이 바로 이 컨퍼런스다. 인터넷 사이트를 찾아가보니, 정말 놀라운 세상이 펼쳐지고 있었다.
이런 사이트를 늦게 알게 된 게 후회스러울 정도로, 이후 이 사이트에 올려지는 다양한 토픽과 강의, 컨퍼런스를 열심히 들었다. 한국어 자막처리가 되는 것도 있고, 안되는 것도 있는데, 길이가 18분 내외라 노트 필기하면서 영어공부하듯, 보기에 아주 좋다.
이 테드 컨퍼런스를 거쳐간 스피커들의 리스트를 봤다. 하나같이 기라성같은 사람들이다. 빌 게이츠에서 부터 소설가 알랭 드 보통, <티핑 포인트>를 썼던 세계적인 사회심리학자 말콤 글래드웰의 강연도 들을 수 있다. 모두다 공짜(!!!!!!)다. 이 뿐만이 아니다. 최근 올라온 자료들을 보니 저명한 진화생물학자인 리차드 도킨스와 엘리자베스 길버트의 창의성 관련 강연도 있다. 정말이지 놀랍다. 영감과 공유, 변화를 모토로 Idea worth spreading 이라는 대 원칙을 지키며 영감이 있는 아이디를 공유 전파함으로써 세상을 변화시킨다는 테드.
이번 테드 서울 컨퍼런스의 큐레이터를 맡은 박성태님의 개회사와 더불어 테드의 정신, 역사에 대한 짧막한 브리핑이 이어졌다. 이번 서울 행사에선 10명의 강연자가 나왔다. 국악인 이자람, 디자이너 홍동원, 건축가 황두진, 경영혁신과 디자인을 강의하는 빌 드레셀하우스, 마술사 이은결, 카피라이터 송치복, 오마이뉴스의 대표 오연호님도 참여했다. 인터넷으로 신청을 받은지 30분만에 정족수가 가득차는 기염을 토할 정도로, 테드 컨퍼런스의 인기가 뜨거운지 몰랐다.
첫번째 연사로 나온 제너럴 닥터의 대표김승범 정혜진님. 이들은 홍대에서 제너럴 닥터라는 카페겸 병원을 운영한다. 예전 곽동수 교수님과 한번 이곳에서 향이 좋은 커피를 마신 것이 계기가 되어 종종 가곤 했다. 처음 카페에 들어갔을때, 주인장 두 사람이 모두 의사란 점과 카페처럼 보이는 곳 한 구석에서 진료를 한다는 개념이 익숙하지 않았다.
예쁜 고양이와 다소 너른한 공간감과 생의 부산함을 떨치고 느린 걸음으로 푹 쉬고 싶은 푹신한 쿠션이 잘 어울리는 카페, 한쪽 책장에는 의학 전공서적을 비롯 다양한 장르의 책이 꽂혀 있었다.
이번 테드 강연에서 두 사람이 주장하는 것은 의료설계의 문제다. 흔히 메디컬 디자인이란 분야인데, 이것은 쉽게 말해서 환자중심의 의료, 돌봄 체계를 디자인하는 것이다.
기존의 병원에서 이루어지는 의사와 환자의 관계를 살펴보면 무엇을 고쳐야 할지가 명확하게 보인다. 병원을 찾아 방문하고 접수를 하고, 의사와 상담을 한후 수납을 하는 전 과정을 살펴보면, 오늘날의 방향성은 오로지 한가지다. 기계화와 자동화에 의한 비 인간화의 경향이 강해진다는 점. 인간이 인간을 위해 무엇인가를 해 줄수 있는 과정으로 의료체계 서비스의 개념을 확대하고 인간적 의료환경을 위한 그림을 그린다. 그들은 메디컬 디자인은 다음과 같이 정의한다. An attempt to reconfigure tools environment, communication for patient-oriented care system.
작가들을 위해 전시도 열고, 창의성 있는 작품을 만드는 작가들과 함께 멋지게 작당(?) 모드에 들어가 멋진 의료 서비스를 위한 물건도 디자인한다.
어디 내놔도 결코 뒤지지 않을 향과 혀끝의 감미로움을 가진 핸드드립 커피와 치즈케이크를 파는 동네병원. 그러나 간단히 한 줄로만 설명할 수 없는 오묘하고 수상한 공간, 제너럴 닥터. 이곳을 처음 찾아온 손님들은 대개 둘 중 하나다. 병원이란 이야기를 듣고 찾아왔지만 쉽게 병원의 흔적을 찾지 못해 어리둥절 하는 사람, 맛있는 커피와 이런저런 음식들을 먹고 고양이와 장난을 치며 사진도 찍고 재미있게 놀다 가면서 그곳이 정작 병원인 줄은 전혀 모르는 사람.
김승범 원장과 정혜진 원장이 운영하는 홍대앞 동네병원 혹은 카페일지도 모르는 제너럴 닥터는 간판조차 찾기 쉽지 않은 곳이다. 물어물어 간신히 찾아 문을 열고 들어서면 누가 의사이며 누가 손님인지 분간이 가지 않는다.
그러나 제너럴 닥터는 환자와 의사가 진심으로 소통하는 인간적인 진료가 이루어지는 곳이다. 환자는 병원 문을 열 때 결코 두려워하지 않으며, 의사는 한 환자 당 30분 이상 할애하며(1시간을 훌쩍 넘길 때도 있다) 그의 고충을 귀담아 듣고 수다스러울 만치 친절한 조언을 해준다. 그리하여 의사와 환자가 서로 일상을 이야기하고 더불어 친구가 될 수 있는 곳이 바로 제너럴 닥터다.
<제너럴 닥터-이상한 동네병원 이야기> 중 인용
이곳을 이끄는 김승범 원장은 자신의 참모습을 잃지 않고 행복한 의사가 되는 길을 찾기 위해 공중보건의 생활을 마친 뒤 2007년 5월, 홍대 앞에서 제너럴 닥터를 시작했다. 세상에서 가장 자유로운 직업이라고 생각해서 의사가 되었으나 인간적인 의료와 소통, 의료 디자인과 커뮤니케이션 연구에 골몰해 있다. 자유로운 것을 좋아하지만 학교생활은 고분고분 잘하는 편이었고 어릴 때부터 불평과 불만이 가득했으며 고지식한 성격이었다. 같은 것보다는 다른 것을 좋아하고 잘난 체 하는 것을 좋아한다. 지는 것과 속는 것을 싫어한다. 책의 인물설명을 들으니 천상 좋은 의사 선생님이란 생각 외엔 들지 않았다. 무엇보다도 내가 관심을 갖는 분야와 동일한 부분이 있어서 꼭 다음엔 깊은 대화를 하고 싶다는 생각. 즉 디자인이 변화시키는 커뮤니케이션의 방식이다.
이번 컨퍼런스에서 보여준 짧은 동영상이다. 엄마가 아기를 데려와 진료를 받는다. 대부분의 경우 청진기를 갖다대면 아무리 앞에서 인형을 들고 까꿍을 남발해도 한번 시작한 울음을 그치지 않는다. 하지만 청진기를 인형으로 만들면 어떨까? 아이는 자신에게 인형을 주는 줄 알고 가슴에 갖다댄다. 그 속엔 고성능 청진기가 내장되어 있다. 아이의 박동소리가 깨끗하게 들린다.
바로 곰인형으로 만든 청진기다. 아이디어가 놀랍지 않은가? 진료과정에서 환자들이 두려움을 갖거나 불편한 감정에 빠지는 상황을 분석, 이를 디자인으로 극복한 것이다. 이 뿐만이 아니다. 제너럴 닥터의 메디컬 디자인은 커뮤니케이션의 방식에도 큰 변화를 일으킬 준비를 하고 있다. 흔히 문진이라 해서 의사는 환자와 상담을 할 때, 그의 병력을 기록한다. 이때 환자의 이야기는 제 3자의 이야기이고, 의사는 자신이 들어야 할 이야기만 발췌해 듣는다. 이것이 기존의 병원에서 이뤄지는 진료의 풍경이다. 제너럴 닥터의 김승범 원장은 여기에 반기를 든다.
그는 일일이 수제 노트에 환자의 이야기를 적는다. 병력(Medical History)에 개인의 스토리를 결합하는 것이다. 이것은 환원불가능한 소중한 인간의 기록이 된다. 그렇게 빼곡히 적어 정리한 노트가 5천권이 넘는다고 하니 원장의 집념도 대단하지 싶다. 이런 좋은 의사들이 많이 나와야 할텐데라는 생각. 그럼에도 한 사람의 혁신적 사고가 세상을 변화시킬수 있다고 믿는 내겐, 그의 움직임이 소중할 뿐이다.
이 두분 외에도 오늘 강연해주신 타이포그라피 디자이너 홍동원 선생님. 이런 분이 있어서 참 고맙다는 생각이 든다. 대학 1학년 시절 재미없는 숫자놀음을 해야 하고, 상법조문을 열심히 외우며 회계사반에서 활동하던 시절, 좋아했던 디자인사 관련 책들을 읽곤 했는데, 그때 내 손에 쥐어 있었던 책이 바로 빅터 파파넥의 <인간을 위한 디자인>이다. 우리는 자꾸 망각한다. 디자인은 기업을 위한 것이 아니라, 결국 인간을 위한 것임을. 이외에도 의용학자인 정지훈님의 Social Web 강의도 좋았다. 결국 웹 안에는 정보이외에 실제적 에너지가 존재하며 그것을 선한 목적으로 한 곳에 모을 수 있다면 우리는 사회적 변화를 이루어갈 수 있다는 것. 철저하게 동의한다.
마지막으로 본 이은결 마술사의 강연. 마술과 퍼포먼스를 함께 해 재미를 더했다. 그는 자신을 가리켜 마술사라고 표현하지 않는다. 항상 퍼포먼스 아티스트라고 말한다. 그림자 장치를 통해 아프리카의 이미지를 되살려주는 다양한 손동작 놀이도 놀라왔다. 그의 말 중 잊고 싶지 않은 한마디가 있다.
"마술은 가능성이다"란 말이다. 가능성이란 단어만큼, 우리에게 희망을 주는 단어도 없지 싶다. 작은 가능성이 있을때, 포기하고 싶다가고 다시 한발을 내딛게 되니까 말이다. 결국 경영상의 의사결정과 그 모델도 가능성의 여부와 얼마만큼의 가능성을 가지고 있는지를 산술적으로 계산하기 위함이 아니던가? "새는 알에서 나오려고 싸운다. 알은 곳 세계이다. 태어나려고 하는 자는 하나의 세계를 깨뜨리지 않으면 안된다. 그 새는 신을 향해 날아간다. 그 신의 이름은 아브라삭스라고 한다" 마술사 이은결은 데미안의 한 구절을 빌어, 마술이 우리에게 보여주는 힘. 나를 둘러싼 껍질을 깨고 날아가는 새의 희망을 보여준다. 오늘 정말이지 멋진 강연으로 가득했던 Ted Conference. 다음에 캐주얼한 모임이 있으면 꼭 나가서 함께 나누고 싶다. 눈물나게 힘나는 하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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