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5회 제천 국제음악 영화제에 다녀왔습니다. 신지혜 아나운서와 함께 도착한 제천은 단아한 도시였습니다. 의림지에 밤이 들어서고, 제천 국제음악 영화제의 기념앨범 발매 기념을 위한 콘서트가 열렸습니다. 기념앨범 제작에 동참했던 뮤지션들이 의림지 무대에 나와 연주곡을 들려주었습니다. 신지혜 아나운서의 원활한 사회 속에 "당신에게 있어 영화음악은?"이란 질문에 자답하며 청중들은 또한 질문의 내용을 곰삭이며 다시 한번 영화를 듣습니다.
김성주의 색소폰 연주로 영화 <싱글즈>의 메인테마곡을 들었습니다. 혼신을 다해 색소폰을 부는 모습에서, 음악이 환기시키는 영화 속 이미지들을 떠올렸습니다. 음악의 행복한 환기능력이겠죠. 암으로 투병중인 배우 장진영씨도 생각나네요. 빨리 쾌유하시길 소망합니다. 흔히 영화를 본다고 표현합니다. 시각예술 장르로만 인식하다보니 영화 내부에 작동하는 음악의 기능을 부지불식간에 잊기 쉽습니다. 우리가 보는 화면 속 움직임, 이야기의 흐름, 정서의 고조에는 영화음악이 강력한 요소로 자리한다는 사실을 말이지요. 영화는 음악을 통해 듣는 영화로 피어나게 됩니다. 이번 제천 국제음악영화제는 영화와 음악의 접점이 만들어내는 다양한 목소리를 담은 영화들을 선별하고 보여준다는 점에서, 그 역할이 기대되는 영화제입니다.
가야금 주자 정민아 님은 영화 <M> OST 중 첫사랑을 연주합니다. 극중에서 소리와 음향은 화면구성 못지않게 창의적인 가능성을 잉태합니다. 음의 세기와 강도, 흔히 음색이라 불리는 음의 빛깔은 그 세가지 요소지요. 이외에도 외재음향이라 해서 극 중 이야기가 펼쳐지는 공간 바깥에 있는 음원을 빌려와야 할 때도 있습니다. 이것이 필요한 까닭은 우리가 영화란 창을 통해 세상을 인식할 때, 자연스레 수반되는 소리들이기 때문이죠. 평소 우리의 일상을 한번 생각해 볼까요? 음악이 주는 정서의 효과는 굉장히 큽니다. 현실의 비루한 냉정함에 따스한 기운을 부여하고, 생의 서사가 무너지지 않고 앞으로 진행될 수 있도록 힘을 보태기도 하죠. 그리움을 그리워하며 그림을 그리듯 음악은 우리 내 마음 내부에 숨은 쩔어있는 그리움의 고갱이를, 속살을 끄집어 내어 사랑의 아픔과 정치적 고독, 사회적 고립에 이르는 다양한 감정을 그려냅니다.
여러분에게 영화음악은 무엇인가요? 그것은 영화의 확장이자, 음을 통해 그리는 풍경화일수도 있고, 영화란 거대한 건축물의 내부에 공명을 일으키는 작은 호흡이 되기도 합니다. 예전 영화미학을 공부하면서 항상 음악이 이야기 구조에 미치는 효과에 대해서 면밀하게 학습하곤 했죠. 하긴 이준익 감독의 영화 3편은 음악이 없었다면 지금과 같은 효과를 얻을 수 있었을까요? 혹은 히치코크의 새나 '북북서로 기수를 돌려라'와 같은 영화에서 음향효과가 없다면, 추적씬의 긴장도가 얼마나 크게 표현될수 있을까요?
꽃별님의 해금연주로 영화 <영어완전정복> OST 중 Under the Moonlight를 들었습니다. 일본에서 인기를 얻고 있는 최고의 해금주자 답게 여러곡을 함께 들려주었죠. 단 두줄로 구성된 악기가 어쩜 그리도 그리움의 몽환적 세계를 그려내는지, 저는 해금소리를 들을 때마다 놀랍니다. 한국의 악기인 것이 자랑스럽죠. 연주곡 중 Road to the Sidh란 곡이 맘에 와 닿더군요. 안타깝게 Daum 뮤직에선 음원을 구하기가 어렵네요. 연동시켰다면 그날의 느낌을 잘 이해하실수 있었을텐데 아쉽습니다. ‘이와이 슈운지’ 감독은 자신의 역작 <릴리 슈슈의 모든 것>에서 ‘현실은 노래로 감출만큼 만만하지 않다.’ 는 말로 자신의 영화 속 음악의 존재론을 설명합니다. 그러나 그 음악이 있기에, 버거운 현실의 외피가 드러나고, 이런 무거운 옷을 어떻게 입을까? 어떻게 견뎌나갈까를 고민할수 있게 되죠. 그만큼 음악과 영화의 적절한 접합, 혹은 상호작용은 영화감상에 지대한 영향을 미칩니다.
이번 영화제에서 한국의 정상급 음악감독님들과 만나 이야기를 나눌 기회가 많았습니다. <실미도>를 비롯 최근 제작중인 장동건과 고두심 주연의 <굿모닝 프레지던트>의 음악을 맡은 한재권 감독님의 멘트를 들었는데 기억에서 지워지지 않네요. "예전 영화 음악을 할때는 빈 화면에 뭔가를 채우려고만 했었는데, 이제와서 보니 영화 자체가 하나의 음이었다. 그래서 요즘은 어떻게 하면 잘 덜어낼 수 있을까를 고민한다"고요. 덜어냄의 미학이 잘 드러낸 논평이 아닐 수 없습니다.
채수린씨의 연주로 들었던 아코디언 연주. 영화 <형사>의 메인테마와 허진호 감독의 연출이 돋보였던 <행복>의 메인 OST를 들려주셨습니다. 영화 형사는 우리 시대 최고의 영화적 스타일리스트 이명세 감독이 만든 작품이지요. 매우 회화적인 작품이란 비판과 칭찬을 동시에 들어야 했습니다. 화면 속 화려한 색감의 동세가 사람들의 시선을 사로잡았죠. 그러나 이 또한 채수린의 아코디언 연주가 있었기에, 흐뜨러지지 않는 힘을 결집시켜 이야기에 투영시킬수 있었습니다.
영화 <와일드 카드>의 메인 타이틀을 랩으로 부르는 Nacchal의
노래를 들었습니다.
여러분의 기억 속, 최고의 영화 OST는 무엇이었나요? 저는 개인적으로 한스짐머란 작곡가를 좋아합니다. 이분은 우리가 기억하는 왠만한 좋은 영화(?)들의 음악을 맡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만큼 그는 영화음악의 대부입니다. 영화 웨딩 싱어의 “Killed the Radio Star”에서 부터 <파워 오브 더 원> <델마와 루이스> <이보다 더 좋을 순 없다> <글래디에이터>에 이르기까지 셀수 없이 많은 작품들이 있습니다. 개인적으로 1994년 <라이온 킹>이 기억나네요. 이후 98년엔 <이집트 왕자>까지. 최근 재기에 성공한 휘트니 휴스턴이 머라이어 캐리와 부르는 <이집트 왕자>의 메인테마곡은 제가 아끼는 곡 중의 하나지요.
여러분이 기억 속에 최고의 OST는 무엇이었을지 궁금합니다. 영화에 음악이 필요한 이유, 그건 아마도 그 둘이 뗄수 없는 연인으로 태어났기 때문은 아닐까 생각되네요. 친구가 보내준 사운드 트랙을 듣는 지금, 글을 쓰면서도 음악과 영화는 하나의 몸뚱아리가 되어 제 머리 속 빈 공간을 헤집고 다닙니다. 내일 드디어 영화 <코코 샤넬>의 기자시사회가 있습니다. 기다리던 영화를 볼수 있게 되어 기쁩니다. 바로 리뷰 올릴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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