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rt & Healing/마음 미술관

우울증을 정면 돌파하고 싶다면-이 그림을 보라

패션 큐레이터 2009. 10. 26. 23:42

 

 

김정선_뭉개구름_캔버스에 유채_117×80cm_2009

가을하늘이 깊은 이유는 하늘과 대칭을 이루는 땅에 대하여 서로를 비추며 반성을 촉구하게 하려는 신의 배려인지도 모르겠습니다. 김정선의 그림을 알게 된 건 아주 우연입니다. 소비사회의 이미지와 명품 짝퉁 백을 그리던 그녀가 단색조의 식물 이미지를 들고 돌아왔습니다. 그림 속엔 청록과 파랑이 서로 강렬하게 투쟁하며 작가의 내면을 비추고 있었습니다. 그림을 보다가 문득 들었던 생각은 그녀의 그림 속에 남겨진 그림자의 존재였습니다. 왜 작가는 그림자를 투영시켜 그림을 완성시키고 싶었을까요?

 

김정선_dawn_캔버스에 유채_97×162cm_2009

이 세상의 모든 사물에는 그림자가 있습니다. 그림자에 숨겨진 음습한 생의 결을 헤아릴 수 있다면, 이 그림 한 장을 통해 짙은 우울증에 시달리고 있는 제 자신을 정면으로 투사할 수 있을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현대인의 욕망을 집요하게 파헤치던 작가는 왜 식물의 그림자를, 그것도 아련한 달빛 아래 놓여진 잡초의 메마른 그림자를 그린 것일까요? 그림자는 존재의 짝패이며 내가 살아있음을 입증하는 조건이자 단서입니다. 미술사에서 그림에 그림자가 등장한 것은 르네상스 시절이죠. 광학의 발전과 더불어, 인간의 그림자가 곧 그 사람의 이면, 표면적으로 드러나지 않는 존재의 어두운 측면을 뜻한다는 걸, 발견한 세대가 그때이기 때문입니다.

김정선_memory_캔버스에 유채_112×162cm_2009

내면을 응시한다는 것은 그리 녹록치 않은 작업입니다. 특히 상처로 얼룩진 기억의 이면을 바라보고, 그걸 치유해보겠다고 덤벼드는 일은 굉장히 전문가들의 도움을 함께 받아 치료해야만 가능한 일입니다. 김정선의 청색빛 그림자엔 자신의 내면이 담겨 있습니다. 그녀가 예전 그렸던 루이비통 명품 짝퉁 가방의 화려한 패턴은 사라지고, 잡초들의 여린 외곽선은 침묵과 명상으로 우리를 이끌어갑니다. 풀들에선 서로의 아픈 몸을 부비며 서걱거리는 가을의 애상이 느껴집니다. 까칠한 촉각의 엉겅퀴를 그려냄으로써 작가는 외롭지만 꿋꿋하게 생을 이어가는 식물의 영혼을, 그 시린 실체의 배면을 담아내는 그림자를 그리고 싶었나 봅니다.

김정선_shadow-blue1_캔버스에 유채_130×162cm_2008

우울은 사랑이 지닌 결함이다. 사랑하기 위해서는 자신이 잃은 것에 대해 절망할 줄 아는 존재가 되어야 한다. 우울은 그 절망의 심리기제이다.우리에게 찾아온 우울증은 자아를 변질시키고, 마침내는 애정을 주고받는 능력까지 소멸시킨다. 우울증은 우리의 내면이 홀로임을 드러내는 것이며, 그것은 타인들과의 관계뿐 아니라 자신과의 평화를 유지하는 능력까지도 파괴한다. 사랑은, 우울증을 예방하진 못하지만 마음의 충격을 완화하는 장치가 되어 마음을 보호해 준다. 약물치료와 심리치료는 우리가 더 쉽게 사랑하고 사랑받을 수 있도록 만들어 이런 보호 기능을 되살려 줄 수 있으며 그래서 효과를 발휘하는 것이다. 우리는 정신이 건강한 상태에서는 자신을 사랑하고 타인을 사랑하고 일을 사랑하고 신을 사랑하며, 이런 열정들은 우울증의 반대인 활기 찬 목적의식을 제공한다. 그러나 사랑은 이따금 우리를 저버리며 우리도 사랑을 저버린다. 우울증에 빠지면 모든 활동, 모든 감정, 더 나아가 인생 자체의 무의미함이 자명해진다. 이 사랑 없는 상태에 유일하게 남아 있는 감정은 무의미함이다.   앤드류 솔로몬의 <한낮의 우울>에서 발췌

 

저는 개인적으로 우울증과 그 치료에 관심이 많습니다. 저 스스로가 감정의 기복이 심했던 성격이고, 그걸 인정하고 받아들이며 호흡을 조율하는 걸 몇년에 걸쳐 연습하고 있는 지금. 우울증이란 인구의 25퍼센트가 앓고 있는 대중적인 질환이 되어버린 사회에서, 미술치료를 좋아하는 제가 무엇을 할 수 있을까 고민하게 했고, 동기부여를 시켜준 증상이기도 합니다. 소설가이자 역사가인 앤드류 솔로몬은 우울증의 역사적/정치적 근원을 따져 물으며, 우리가 이 증상에 대해 어떤 태도를 취해야 하는지 하나씩 짚어갑니다.

김정선_shadow-violet2_캔버스에 유채_17×80cm_2008

우울증으로 인한 인간의 고통을 가늠하기란 쉽지 않지만, 결국 멜랑콜리라 불리는 어두운 담즙 같은 내면의 어두운 그림자를 바라보지 않는한 그 원인을 타인과 사회가 아닌, 내 안에서 찾아보고 화해하지 않는한 우울증은 치료되기 어렵습니다. 물론 약물치료를 동반해서 좋은 결과를 만들어낼 수 있습니다. 그만큼 임상적으로 접근해도 무리가 없죠.  하지만 이건 아주 심한 정도를 보일 때고요. 저는 우울증이 삶의 에너지가 소진되면서 나를 둘러싼 주변부를 어두운 시선으로 보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예전같으면 까짓거 한번쯤 기회를 더 주거나, 내가 시도해 보거나 했을 일들도 우울한 마음이 겹치면 자신감도 사라지면서 (저와 같은 경우엔)폭식에 빠지기 쉬웠습니다. 이렇게 되면 비만으로 연결되고 우울증은 더욱 가중되죠. 앤드류 솔로몬의 말처럼 내게 사랑이 가득할 때는 모든 상처들을 쉽게 잊고 이겨나갑니다. 언제부터인가 홀로 덩그라니 남겨진 내 자신을 발견하고선, 헛헛한 마음에 쉽게 빠집니다. 쓴 검정색 담즘이 마치 몸에서 분비되는 것처럼, 눈도 쾡해지고 혈액의 흐름도 느려지죠. 해결책은 꼭 먼데 있는 건 아니었습니다. 적당하게 햇살아래를 걷고 운동하고 몸에 켜켜히 쌓인 상처의 독을 빼기위해, 한번쯤 가열차게 땀을 흘려주는 것. 그걸 한번으로 마무리 하는 것이 아니라, 정기적으로 규칙을 세워서 내 몸의 균형을 잡아가는 것이죠.

 

사랑의 대상을 재정렬하는 일도 필요한 것 같습니다. 꼭 이성을 만나고 격정의 사랑을 나누는 것만이 답은 아니겠죠. 사랑은 결국 관계를 재조정하는 일이고, 새롭게 조율된 대상에게 내 애정을 전략적으로 배분해서 쏟는 일입니다. 마냥 쏟아붇기만 해서 피로감이 더해지면 안되겠죠. 나 또한 얻을 수 있고 받아야 합니다. 사람은 사랑을 하는 것이 아니라, 이미 신이 준 사랑이란 공간 속에 놓여지는 것입니다. 그 공간을 다시 한번 깨끗하게 청소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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