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rt & Healing/마음 미술관

다이어트를 도와주는 그림-백승아의 신체그림

패션 큐레이터 2009. 10. 23. 23:36

 

 

백승아_閔_캔버스에 안료_99×90cm_2009

 

퇴근 후 운동을 위해 짐으로 향합니다. 알싸한 가을기운은 차가운 몸의 표피 구석구석을 밀고 들어오네요. 다이어트를 시작하면서, 저는 항상 자신에게 물어봅니다. 목표가 무엇이냐고요. 오래전 뉴질랜드에서 힘겨운 다이어트를 한 적이 있습니다. 그때 20킬로그램을 감량했죠. 하루 평균 4리터의 물을 마셨고, 10킬로미터를 뛰었고, 새벽엔 발레수업을 받으며 몸의 균형감을 잡았습니다. 이때부터 시작된 섭생의 방식은 제 인생의 많은 부분을 바꾸어놓았습니다. 최근 다시 오랜동안 우울증 때문에 방치했던 제 몸에 주목하고 있습니다.

 

 

백승아_迷_캔버스에 안료_120×160cm_2009

 

운동을 시작하면서 요요처럼 돌아온 몸의 불균형을 잡고 살도 빼려 합니다. 이번 다이어트의 목표는 꼭 살을 빼는 것이라기 보다, 글을 쓰는 이로서 스트레스에 노출되다 보니, 몸에 축적되는 정신적 독성을 빼고, 잦아있는 감성의 표피 위에 덕지 덕지 붙어있는 먼지를 떨어내기 위함입니다. 저는 다이어트를 시작할때 제게 선포하는 몇 가지 원칙이 있습니다. 첫째 지금의 내 몸을 사랑할 것, 둘째 절대로 지금의 신체를 폄하하는 말을 하지 말것. 세번째 몸이 가볍도록 먹고 신체의 기관이 흡수할 수 있는 만큼만 혀의 유혹을 통제하고, 위장을 비롯해, 내 몸의 곳곳을 어루만지며 감사하다고 말하는 것입니다. 세번째가 가장 중요합니다. 그렇게 강한 자기암시를 합니다. 이 방식이 제게는 잘 맞는 것 같습니다.

 

 

백승아_恬_캔버스에 안료_50×120cm_2008

 

예전 다이어트를 시작하면서 한의사인 이유명호씨가 쓴 <살들에게 물어봐>란 책을 읽은 적이 있습니다. 그는 한의사 답게 '살'의 개념을 독특하게 풀어냅니다. 살이란 축적된 지방분이 아니라, 인간의 영혼에 누적된 상처라고 말하죠. 우리의 옛 굿의 형태인 살풀이란 바로 이 마음의 상처로 가득한 살을 풀어내는 것이라고 주장합니다. 저는 이 말을 아직도 잊을수가 없습니다. 돌이켜 보면 살이 찔땐 공통적으로 드러나는 몇가지 정서가 있는데요. 첫째 우울해지고 그 우울을 벗어나기 위해 폭식합니다. 빨리 먹게 되고 헛헛한 슬픔, 왠지 모를 답답함을 먹는 걸로 풀게 됩니다. 그렇게 먹어도 행복하지도 않고, 헛헛한 마음의 생채기가 덕지덕지 살이 되는 것이죠. (저 또한 이 증세를 오래 겪었습니다 지금 회복하려고 노력하고 있는 거에요) 마음이 견고하지 않으면 살이 찌는 일은 언제나 다시 돌아옵니다. 결국 섭생과 다이어트의 비결은, 내 마음의 안식을 갖는 것입니다.

 

 

백승아_適_캔버스에 안료_105×120cm_2009

 

안식이란 다른 것이 아닙니다. 6일을 일하고 나머지 하루를 온건히 쉼으로써, 생의 리듬을 사회적/우주적 리듬과 싱크로를 맞추는 일입니다. 그 과정속에서 내 신체의 각 부분이 얼마나 많은 폭력과 상처와 아픈 말과, 관계의 어려움에 노출되어 있었는지를 재발견하고, 그 몸의 질감을 다시 어루만져, 부드럽게 조율하는 것입니다. 백승아의 그림은 바로 신체와 그것을 껴안고 있는 표피의 관계, 신체와 질감의 관계론을 풀어내는 작업을 보여줍니다. 동양화를 전공한 후에 외국에서 패션을 전공한 작가는, 제가 보기엔 패션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 바로, 신체의 규정임을 제대로 이해하고 있는 듯 합니다. 서양에서 신체의 표현을 통해 시대의 이념을 표현해 왔고, 이는 동양도 마찬가지입니다. 개체는 사회를 떠나서 생각할 수 없고 사회는 개체의 구성으로 이루어졌기 때문에, 바로 개체화된 신체의 부분을 통해, 사회와의 관계맺기를 말하는 것이죠.

 

 

백승아_迷_캔버스에 안료_120×160cm_2009

 

많은 분들이 의아해 할지 모르겠습니다. 다이어트를 도와주는 그림이라면 뭔가 식욕을 제거하거나, 몸짱의 모습을 그려놓아서 동기부여라도 해줘야 하는게  아닌가 생각하는 분들이 있을겁니다. 다시 말합니다만, 멋진 비현실에 가까운 모델의 몸을 눈앞에 두고, 동기부여를 하는 것은 어리석은 짓입니다. 여러분의 몸의 상태, 자신의 신체가 최적화된 균형점을 찾는 일. 이것이 바로 다이어트입니다. 왜 작가는 다리와 손을 저리도 자세하게 그려낼까요? 가장 노출이 심하고, 사회적 관계를 맺기위해 가장 먼저 사용하는 신체의 부위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일까 가장 마음의 상처를 직접적으로 받아내야 하는 부위이기도 합니다. 많은 사람이 응시하고 있지만 무심코 자신의 존재로서 지나쳐 버렸던 팔과 다리에 집중하게 된 것은 바로 그런 이유지요. 여러분, 다리와 팔을 얼마나 주력해서 바라본 적이 있습니까? 물어보세요. 여러분의 시선에 집중하다 보면 내 몸의 본질이 조금씩 보이기 시작합니다.

 

 

백승아_傷_캔버스에 안료_99×90cm_2009

 

작가는 작업일지에서 “개인이라는 존재가 여러 가지 규제나 틀 속에 자신을 자발적으로 가두고 살아간다.”고 주장합니다.그녀의 그림 속엔 신체형상과 관련을 맺는 사회적 관계가 그려져있죠. 화면에 꽉 차게 그린 건, 그만큼 감금되고 가두어진채 살아가는 우리들의 모습을 그리기 위함이었습니다. 작가는 인격이 세월과 환경에 노출되면서 이루어진 흔적이라고 믿고있죠. “몸의 살결, 발바닥의 갈라진 부분, 지문, 튼 살, 몸의 구석구석의 얼룩과 땀구멍” 등 “피부의 표피에 집중하면서 섬세하게 그려내는 작업은 바로 다른 이와 나를 구분시켜주는 환원불가능한 내 신체의 면면을 그리기 위함이죠. 슈퍼모델의 몸매와 나를 비교할 이유가 하등없다는 점. 흔히 매스미디어가 만들어내는 기준점이 되는 신체란, 그저 '그건 니생각이고'라고 말해도 된다는 걸. 동양화풍으로 그려진 우리의 신체를 통해 보여주는 겁니다.

 

 

백승아_愁_캔버스에 안료_ 110×110cm_2009

 

저는 개인적으로 대한민국의 다이어트 담론은 하나같이 바로크적인 속성을 갖고 있다고 믿고 있습니다. 무슨 소리인가 하면 그만큼 허장성세로 가득하다는 겁니다. 섭생의 목표가 하나같이 기계적으로 조형한 몸을 만드는 것이 되어서는 안됩니다. 제 자신에게 6개월의 시간을 주려고 합니다. 많이 뺄 생각도 없습니다. 앞에서 말씀드렸듯, 회사와 글쓰기를 함께 하면서, 너무 질린탓에 호흡을 놓치고, 균형감을 상실해서 그 결과로 따라온 '살'의 상처들을 치유하는 것. 그것이 목표입니다. 저는 흔히 '40일, 다이어트의 기적' 이런 것 믿지 않습니다.

 

오랜동안 감각이 둔탁해져 있던 걸 복원하는데는 꽤나 오랜시간이 걸립니다. 지금 필요한 건 다이어트 보조제나, 속성 단식이나 다이어트 시크릿이 아니라, 여러분의 신체를 다시 보고, 감사하는 마음을 회복하는 것이고, 내가 몸의 주인이란 생각을 버리고, 몸이 나의 주인이라면, 내가 어떻게 그를 편하게 만들어줄수 있을까? 쉬게 해줄 수 있을까 하는 것을 찾는 것입니다. <샤넬 미술관에 가다>를 출판하면서 프로필 사진을 찍을 때가 64 킬로그램이었는데 지금 71킬로그램입니다. 몸과의 화해가 끝나는 시점에서 멋진 새책도 나오게 할겁니다. 예쁜 몸, 단순하게 초콜릿 복근을 갖는게 중요한 것이 아니라, 내 몸의 균형을 회복하는 것. 그것이 최고의 답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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