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텔에서 외국 바이어를 만나고 돌아오는 길
가을 정취가 묻어나는 정동길을 걷고 싶었습니다. 고즈넉한
저녁과 밤의 사이, 무조톤의 도시를 가르는 역사의 목소리가 들리는 듯 합니다.
어디에서 들리는 소리일까요?
바로 정동길을 걷다보면 시립미술관 가는 길에
서울도시갤러리 프로젝트로 세워졌던 '희망을 드는 역사'의
모습입니다. 황금알을 들고 있는 모습이죠.
서울시민들이 직접 돌에 자신의 희망을 새겨
그 돌을 내부에 놓고 조각으로 만들었던 작품이기도 합니다.
그런데 뒤에서 보면 영 자세가 안나옵니다. 마치 디자인 서울을 외치며
서울을 '한국의 밀라노'로 만들겠다는 오세훈 시장의 '무국적'발언
처럼 위상이 느껴지지 않는 조각중의 하나지요.
원래 무거운걸 드는 것도 기술이 필요하잖아요.
힘만 있다고 드는 것이 아닐텐데요. 힘만 쓸경우 괜히 에너지
낭비만 많은것이 요령없이 무거운 것을 들겠다고 호기를 부리는 일입니다.
저는 오세훈 시장이 말끝마다 내뱉는 '한국을 유럽같이'
'서울을 밀라노처럼' '한강 르네상스' 이따위 발언을 좋아하지 않습니다.
서울은 서울이고 강릉은 강릉이어야 합니다. 우리의 역사가 디자인의 내면에 스며들어
만드는 진정한 우리자신의 아이덴티티이자, 정체성의 표현입니다. 그런데 왜 자꾸 밀라노를
좋아하는지 모르겠습니다. 디자인 올림픽도 볼거 없는 잔치로, 천덕꾸러기로
전락한지 오래인데, 올해는 국제올림픽위원회에서 경고까지 먹었더군요.
우리가 가진것이 얼마나 많은데, 그걸 한 스타일로 만들지
못하고 왜 유럽의 한 도시를 모델삼아 따라하려 합니까? 더 웃기는 건
중앙의 움직임을 지방은 툭하면 그대로 모방하는 지방자치단체입니다. 이러다 안동
하회마을을 한국의 스코틀랜드 혹은 웨일즈로......이따위 캐치프레이즈가 나올까 두렵습니다.
서울 내의 공공미술작품들과 주변과의 통일성의 의미를 묻는
경관학과 그 역할에 대해 공부하고 있습니다. 도시 조경에 대한 기본적인 개념도
희박한 이 나라에서, 사실 많은 어려움이 있는 프로젝트이기도 합니다. 최근 경향신문이나
한국일보에서도 이 문제로 제게 인터뷰 요청을 하더군요. 솔직히 막막합니다.
많은 이들의 소망을 담은 황금알
원더걸스의 선예양도 그 꿈을 담았나 보네요.
오세훈 시장은 디자인과 미술을 좋아해서 서울을 갤러리처럼
꾸미겠다는 말을 많이 했죠. 그렇게 공공미술의 인식도 커졌고, 예산도 확충을
했습니다. 하지만 이 땅의 공공미술은 철저하게 관치행정의 산물이 되어 버렸고, 잘 사는
동네는 더욱 세련되게, 쇠락해가는 동네는 더욱 비참하게, 도시의 미감을
설계하는 것도 바로 이 공공미술이 가진 두개의 얼굴입니다.
디자인과 공공미술의 부익부 빈익빈이 시작된거죠.
관치 디자인이 도시 서울을 망치고 있습니다.
한강 르네상스 계획은 시간을 두고 안정성을 확보하며 완성
해도 힘든 판에, 임기안에 보이기 위해, 밤샘작업을 시키기 일쑤이고
눈가림을 위해 공공미술의 힘을 악용하는 더러운 작태가 오늘도 서울에선
비일비재하게 일어납니다. 디자인이 좋다는 오세훈 시장. 과연 그에게
디자인이란 무슨 의미인지 궁금합니다. 인간을 위한 디자인인지
자신의 임기동안 '뭔가를 했답시고' 거들먹거리기 위한
정치적 수사의 매개물인지 참 궁금합니다.
전 이 조형물의 머리를 볼때마다
낑낑거려대는 모습이, 마치 희망을 들기는 커녕
그저 무겁기만 한 '무개념의 잔여물'을 드느라 켜켜히 버거운
모습을 보는 것 같아서 별로 기분이 좋질 않습니다. 최근 핀란드의 디자인
정책과 사례들을 담은 책을 읽고 있는데요. 너무 많은 대조가 되는거
같습니다. 한편으론 이런 책을 오세훈 시장에게 보내면
또 다음날, 서울을 오슬로로 만들자고 할까
두렵습니다. 핵심은 그게 아니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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