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rt Holic/영화에 홀리다

마약을 이기는 테크노 음악의 힘-영화 '베를린 콜링' 리뷰

패션 큐레이터 2009. 8. 21. 06:06

 

S#1 테크노 음악의 재발견

 

지난 한해 <카핑 베토벤>과 엉뚱한 천재 피아니스트의 유쾌한 세상 뒤집기가 볼 만했던 <비투스>, 독재의 폭력앞에 분출할 수 없는 젊음의 저항을 보여준 <고고 70>에 이르기까지, 음악이 소재가 되거나 주요한 테마가 된 영화가 상당합니다.

 

제천 국제음악영화제를 통해 많은 음악 소재의 영화를 만났습니다. 음악을 통해 치유와 희망의 메세지를 전해준 영화제 개막작 <솔로이스트>. 첼로의 현이 이렇게 깊은 울림과 공명을 가져오는지 다시 느낀 기회였습니다. 이외에도 정치학자이자 피아니스트인 전 미국의 국무장관 콘돌리자 라이스의 이야기를 통해, 부시 정권을 비웃는 유쾌한 다큐멘터리 <콘돌리자 구애소동>

 

듣는이가 누구든, 무조건 잠에 빠지게 만드는 신의 악보를 그린 베토벤의 이야기를 다룬 <베토벤 악보 대소동>, 아동학대의 푸른 멍울을 견디는 바이올린의 선율이 와 닿는 가족영화 <소년과 바이올린>, 포르투갈의 전통음악, 파두를 통해 애잔한 감성과 지나간 사랑의 추억을 이야기하는 <내가 사랑한 8월>등이 기억에 남습니다.

 

그러나 뭐니뭐니해도 제 기억 속에 강렬한 이미지로 남는 영화는 오늘 소개하는 <베를린 콜링>입니다. 이 영화를 보면서 한가지 확실하게 느낀 건, 지금 제 나이를 철저하게 무시하고 '나이트클럽'에 가고 싶다는 거였습니다.

 

이 영화는 원래 국제음악영화제의 3가지 테마중 <시네 심포니> 섹션에 마련된 영화였습니다. 베를린에서 활동하는 언더 그라운드 테크노 DJ이자 작곡가인 이카루스의 이야기입니다. 그는 중학교를 졸업한 이후론 나이트클럽에서 DJ를 하면서 모든 시간을 바쳤습니다. 여자친구인 마틸드와 함께 전세계의 클럽을 돌면서 공연하는 정상급의 DJ이죠. 두번째 앨범을 준비하면서 이카루스를 둘러싼 모든 것들이 하나씩 뒤틀리기 시작합니다.

 

 

 

클럽을 다니며 알게 된 친구를 통해 코카인을 비롯한 다양한 마약에 손을 댄 것이었죠. 두번째 앨범을 준비하며 스트레스를 이기는 방편으로 다양한 약물에 손을 댄 결과로 중독 증세와 더불어 병원에 입원합니다. 약을 먹을 때마다 혼수상태가 되거나, 길거리를 배회하고, 몸에 이상발열이 생겨 레스토랑에 들어가 나체로 식사를 하는 등, 비정상적인 모습을 계속 보여주죠.

 

 

정신과 병동 응급실에 자발적으로 입원한 그를 담당하는 의사는 커트 코베인의 마약과 예술의 관계를 책으로 쓴 마약 전문의. 그를 강압하거나, 처음부터 지독한 치료요법을 요구하지도 않습니다. 그에게 병동에서도 작곡을 할수 있도록  마스터 기계를 들여오는 문제도 허락하고, 인내심을 갖고 그의 이야기를 듣습니다. 다른 마약 중독자들과의 관계 속에서 중립적인 위치에 서서, 그에게 진실한 조언을 늘어놓죠.

 

 

그러나 이카루스의 돌발행동은 점점 더 심해집니다. 몰래 병원을 빠져나가 마약에 손을 대고 나이트에서 약에 취한 채 원 나잇 스탠드에 빠지고, 심적인 바닥에 도달한 모습을 연기합니다. 여기에 자신의 곁을 지켜준 여자친구 마틸다는 예전 클럽에서 사귀었던 레즈비언 친구와 관계를 맺고, 서로의 관계는 극단에 치닫습니다. 의사와 환자의 관계, 연인과의 관계, 부모와의 관계, 그 어떤 것도 정상적인 것이 없이 극단과 극단이 배접하는 시간이 잉태하는 긴장과 상처, 회복을 향한 개인의 의지가 영화 전체에 균형감있게 아로새겨져 있습니다. 이카루스 역을 맡은 파울 칼크브레너는 실제로 유명한 독일의 테크노 DJ 입니다. 앨범 발매를 앞두고 신경쇠약 직전에 빠져 허우적 거리는 심리의 섬세한 내면을 연기하는 주인공의 면모는 놀랍습니다.  

 

 

영화를 보는 중간 쯤, 사람이 얼마나 나락에 빠질수 있나, 바닥의 끝이 뭘까 하는 의문을 충격적인 영상으로 보여주는 덕에, 영화의 마디마디, 각인된 충격적인 영상이 가히 놀랍고 엽기적입니다. 유럽의 음산한 지하클럽문화를 볼수 있는 일면도 있겠죠. 목사이자 오르건 주자인 아버지와 박사까지 마쳤지만 여전히 인턴생활을 근근하며 동생에게 손을 벌리는 무능한 형. 이카루스를 둘러싼 삶의 풍경은 자신의 유명세와는 달리, 무겁고 버겁습니다.

 

설상가상으로, 마약 문제가 불거져 입원하게 되면서 앨범 소속사와 일방적인 계약 파기 까지 당하게 되죠. 그는 이제 모든 걸 잃습니다. 바닥의 끝을 치고 떠오르는 노을을 바라보며, 흐느낍니다. 아버지가 시무하는 교회에 가서, 그의 연주를 들으며 어린시절을 떠올립니다. 다시 희망을 향한 재기의 노력을 기울이죠. 백색가루의 유혹을 이기는 건 역시 자신의 삶을 관통하는 테크노의 힘입니다.

 

 

매년 7월 독일 베를린에서는「러브 퍼레이드」라는 이름의 축제가 벌어집니다. 100만명 이상의 전세계 젊은이들이 테크노 음악과 춤을 즐기기 위해 모여들죠. 갖가지 복장을 한 자유분방한 젊은이들이 모여 기존의 위계질서를 잠시 동안만이라도 파계하는 현대판 카니발입니다. 중세시대 지배계급에 맞서 민중의 상상력을 빚어낸 그때를 닮았습니다. 샘플러와 컴퓨터를 이용해 머리 속에 들어있던 아이디어를 실시간으로 구현하는 이 테크노 음악은 록음악을 대체하며 우리들의 삶 깊숙히 파고듭니다. 베를린의 한복판, 언더그라운드 클럽 문화의 면모를 살펴보는 재미가 솔솔합니다. 제겐 어떤 일면에선 테크노 문화의 단면을 설명하는 다큐같이 느껴졌습니다.

 

테크노 음악이 이전 대중음악과 다른 것은, 테크노 뮤지션들은 DJ 고 음악은 <얼굴없는 음악>이 되다 보니 예전 과시하는 음악가와 수동적으로 구경하는 청중의 위계적 관계를 넘어 수평적인 관계를 이끌었다는 점입니다. 끊임없이 반복되는 리듬을 통해, 현재를 철저하게 즐기는 세대의 미감을 표현합니다. 아쉬운 것은 과거와 미래에 대한 개념이 흐릿하다는 것인데, 이 또한 도덕주의자의 단선적인 시선이 되지 않을까 싶기도 하네요.

 

 

극 중 이카루스는 자신을 지키고 오늘날의 자신을 만들어준 테크노 음악을 통해, 마약의 유혹을 극복하고 뮤지션으로 다시 서게 되죠. 재미있는 건 그가 치료과정을 견디며 음악을 병동에서 만들었다는 점이고, 음반 재킷 사진도 정신병동에서 환자복을 입은 채 진행한다는 점일겁니다.

이 영화 속 이카루스의 모습에서 사실 저는 제 모습의 일부를 찾기도 했습니다.

 

저 또한 한달에 9개의 원고를 쓰고 5회 이상 강의를 하고, 두 권의 단행본을 동시진행하며 만만치 않은 중압감에 시달리고 있거든요. 2011년까지 6권의 책을 써야 합니다. 살인적인 스케줄을 거절하지 못하는 성격탓에, 끌려다닌다는 생각에 빠질때도 많습니다. 유혹도 느낍니다. "오늘 하루 정도는 완전히 무너져볼까" 하고요. 휴식과 쉼이 필요하건만, 휴가는 접은 상태인데다, 사실 몸 구석구석이 아픕니다.

 

 

지치고 힘든 날, 한마디로 무너지고 싶은 날, 헛헛한 인간의 슬픔을 견디는 힘이 테크노 음악에 있음을 보여준 영화, <베를린 콜링> 사실 이 영화를 보기 전까지만 해도, 테크노란 것이 짜깁기 음악 정도로 알고 있던 제겐 큰 의미로 다가온 작품이었네요. 영화 내용을 상세하게 설명한 것은 이 영화의 상영가능성이 극히 낮은 이유 때문입니다. 영화제의 개막작 정도가 상영되는 지금, 이 영화가 배급될 가능성이 낮아보이거든요. 게다가 거친 언더그라운드 문화와 섹스신, 동성애와 마약장면들은 거의 100퍼센트 검열대상이 될거 같습니다. 영화 한편에 대한 정보를 남긴다는 차원에서 자세하게 기억을 되살려 기술했습니다.

 

영화 속 주인공에겐 마약처럼 강렬한 유혹을 이기는 힘이 테크노 음악이었듯, 여러분은 어디서 저항의 힘을 찾으실건가요? 궁금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