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1 세상은 엿같고 핏줄은 더럽게 아프다
배우 양익준이 연출한 독립영화 <똥파리>가 한국영화의 지평도를 바꾸고 있다. <워낭소리>에 이어 저예산 독립영화가 세계의 유수 영화제를 휩쓴다. 새로운 영화미학의 탈출구를 찾지 못하고 있는 주류 한국 영화계로선, 독립영화의 새로운 움직임이 일종의 항독소가 되는 것 같다.
관객시사에서 본 영화지만 이제서야 리뷰를 올린다. 늦은감은 없지 않지만 영화는 인기리에 상영중이니 좀 늦었다고 문제가 될건 없지 싶어서.
영화 <똥파리>의 원제를 보니 Breathless다. 예전 장 폴 벨몽도가 나왔던 <네 멋대로 해라>의 영어식 제목이었고, 1983년 리차드 기어는 미국판 리메이크 작에서 차가운 감성이 가득 배인 연기를 선보였다. 물론 영화의 줄거리는 원천적으로 다르지만, 이 3편의 영화에서 공통적으로 들어나는 정서는 비슷하다.
일상의 무게에 눌린 인간을 위한 <느와르> 장르의 영화라고 볼수 있다. 느와르란 원래 1950년대 2차 세계 대전 이후 프랑스영화에 나타난 일종의 정신적 경향을 일컫는 말이다.
검정색을 의미하는 이 느와르는 영화 스토리 전반에 걸쳐 느껴지는 우울한 정서와 탈출하고 싶어도 빠져나갈 수 없는 주인공의 상황, 그 속에서 결국은 좌멸하고 마는 인간의 모습을 주로 다룬다.
느와르란 "상황속에 규정된 인간에게 현실의 탈출구는 없다"는 점을 드러내는 영화다. 꼭 갖은 폼을 잡아가며 장삼자락 대신 긴 롱코트를 입고 장풍 대신 다련발 장총을 휘두르고 돈을 태워 담뱃불을 지피는 것이 느와르인줄 알았던 우리에게, 꽤 괜찮은 진실한 느와르 영화가 다가온 것이다. 나는 적어도 영화 <똥파리>를 그렇게 믿고 싶다. 세상은 엿같고 핏줄은 더럽게 아프다란 영화 포스터의 캐치워드가 눈길을 끄는 건, 이 한마디로 영화 이야기 구조를 관통하는 테마를 집어낼 수 있기 때문이다.
S#2 똥파리를 읽는 두 가지 시선 - 가족과 폭력의 뒤엉킴, 그 혼란스러움을 껴안는 사랑
영화를 보면서 이렇게 욕으로 점철된 대사처리를 참 오랜만에 들어보지 싶다는 생각을 했다. 양익준이란 감독의 필모그라피를 찾아봤다. 이미 3편의 단편영화를 연출한 탄탄한 경험을 가진 배우 출신의 감독이다. 굳이 배우 출신의 감독이란 표찰은 붙인건 배우이기 때문에 영화를 끌어가는 시각적 문법의 체계가 기존의 독립영화 감독과 다를 수 있다는 가능성에 기인한다. 그는 양익준식의 영화언어를 화면 위에 덧입힌다. 사실주의 영화문법의 체계는 보통 '장면구성'이라 불리는 미장센(mise en scene)을 중심으로 이루어진다. 미장센이란 게 뭐 별건 아니고 언어 그대로 풀어내면 장면(scene)안에 집어넣는다라는 뜻이다.
장면속에 들어가는 건 역시 주인공을 중심으로 한 인물과 주변의 정황들이다. 철저하게 계산되어 구성된다는 점이 특징이다. 그런데 양익준표 영화의 문법은 이런 기존의 방식들을 전복한다. 철저하게 클로즈업 중심으로 배우들의 표정을 통해, 상황에 노출된 배우의 반응과 수용의 양상을 주관적으로 드러낸다.
자기 내키는 대로 살아 온 용역 깡패 상훈. 그에겐 어린시절 엄마를 죽인 아버지에 대한 증오가 가득하다. 이로인해 해체된 가족의 역사. 가정폭력의 희생자는 이제 또 다른 폭력을 통해 세상에 분풀이를 한다. 어느 날 우연히 길에서 만난 여고생 연희. 그녀의 집안 또한 상훈 만큼 만만치 않다. 정신분열증에 걸린 월남참전용사 아버지와 그녀에게 폭력을 일삼는 걸 주저하지 않는 남동생에 이르기까지. 그러던 어느날 15년 만에 출소한 아버지가 집에 들어오면서, 그는 아버지를 상대로 계속된 폭력을 퍼붓는다.
영화는 가정폭력이 인간의 정체성을 어떻게 변모시키는 지 보여준다. 생의 어두운 그림자, 일상의 느와르가 드리워지는 시초가 바로 가정에서 시작되기 때문이다. 이 영화는 이제까지 우리를 지겹게 세뇌시켜온 '가족영화'의 문법을 비튼다. 무조건 가족이 우리를 구원하는 휴식처라는 진부한 클리쉐를 극복한다. 가족 내부에서도 상처는 현존한다. 그것을 직시할 수 있는 용기가 있을때, 가정폭력을 비롯한 가족 구성원 간의 위계가 만드는 소통불능과 아픔을 치유할 수 있다.
말끝마다 형만한 아우가 없느니 어쩌느니 해도, 실제로 형보다 잘난 아우는 세상에 수도 없이 많다. 그만큼 유교적 질서를 통해 재편된 우리 내 기존의 기족구조는 항상 위계를 통해 하부의 목소리를 봉쇄한다. 그 설움이 폭력과 상처를 잉태한다. 이 영화는 철저하게 사람과 사람간의 관계를 집중해서 보도록 우리를 이끈다.
S#3 새로운 영화 언어를 찾아서
나는 배우 겸 감독 양익준을 발견한 기쁨으로 행복했다. 클린트 이스트우드에서 멜 깁슨에 이르기까지 배우 출신으로 명 감독의 반열에 편입된 이들이 상당하다.
개인적으로 연출이란 것이 꼭 연출을 전공하지 않아도 영화적 호흡을 집어낼 수 있는 사람이라면 가능하다고 믿는 편이다.
상기의 배우들이 좋은 영화를 만든 이유는, 오랜 세월 배우의 삶을 거쳐 현장의 분위기와 텍스트를 실현해내는 주체인 배우의 감성을 누구보다 잘 이해하고, 현장에서 배우들에게 멘토링 해줄 수 있기 때문이 아닐까 생각해봤다.
실제로 학생작품들 만드는 과정을 살펴보면 내가 주장하는 것을 느낄수 있을거다. 실제로 연출전공하는 친구들을 보면 이론적으로 배운 연기론을 리허설 시간과 현장에서 주장할 때가 많았다. 그게 현실이다.
배우에 대한 배려나, 배우 각 개인이 가진 장점과 개성을 찾아내고 화면에 어떻게 합치시킬까 하는 것은 상당한 내공이 필요한 작업이다. 그렇기 때문에 많은 독립영화들이 연기자 때문에 망하고, 연출미숙으로 망한다.
독립영화는 주류영화에 비해 촬영과 조명, 편집, 음향에 이르기까지 모두 상대적인 열세를 껴안고 시작할 수 밖에 없다.
<똥파리>나 <워낭소리>같은 성공작들이 나오면서 영화 제작의 풍토가 더욱 풍성해지고 주류 영화산업과 유통이 '제3의 목소리'를 담는 독립영화에 더욱 투자해주기를 기대해 보는 수 밖에.
중요한 건 독립영화건 주류영화건 탄탄한 이야기 구조다. 이야기가 가지고 있는 긴장관계, 풀어내는 이야기 속 실체가 보는 이들에게 얼마나 공감대를 만들어 낼수 있는가의 문제인거다. 이 영화를 만들게 된 계기며 과정에 대한 이야기를 들어보니 감독 자신의 고생과 땀이 참 많이도 배어있다. 독립영화임에도 불구하고 편집이 탄탄하게 호흡을 유지하고 있다는 것. 굉장한 자산이자 장점이다.
영화 <네 멋대로 해라>를 연출했던 프랑스 누벨바그의 명장 장 뤽 고다르. 그는 모든 작품에 자신의 개성을 문체처럼 새겨넣는 영화작가다. 양익준은 이 영화에서 배우와 연출, 시나리오에 이르기까지 1인 3역을 했다. 고다르에 못지 않은 열정이다. 중요한 건 양익준표의 웰 메이드 영화가 만들어졌다는 점이겠지. 양익준은 한국의 작가주의 영화의 새로운 장을 열었다. 그의 횡보에 기대가 크다.
영화가 끝나고 나오는 길에 연희역을 맡았던 김꽃비 님을 만났다. 개인적으로 영화 내에서 열연을 했지만, 양익준과의 2인 씬을 자세히 보면 힘이 많이 딸린다. 시선처리나 섬세한 감정을 토해내며 조형하는 부분도 많이 미숙하다. 아직 신인이고 영화적 호흡을 완전히 껴안기엔 경력이 적지만, 가능성을 가진 배우를 만났다고 생각한다. "좋은 배우로 성장하세요"라고 덕담해 드렸다. 앞으로도 영화 속 그녀를 주목해서 볼 것을 약속한다. 건승하시길.
■ 뱀발
미로 스페이스에서 한국영화 아카데미 출신의 감독들이 만든 독립영화 두편을 봤다. 아쉽게 토/일요일 딱 이틀동안 상영기회를 가진 터라 알리기가 쉽지 않았다. 베를린 영화제에서 수상을 했다.
희준이란 소년의 자살을 중심으로 장례식장에 모여든 가족들간의 어두운 이야기가 펼쳐졌다. 탄탄한 이야기 구조가 아주 마음에 들고 시간의 역전적 구성을 통해 각자의 목소리를 담아내는 모습도 좋다.
최근 독립영화에 대한 관심은 쏟아지고 있지만, 정작 어디에 투자되어야 하는지에 대한 논의는 찾아보기 어렵다. 그만큼 이 나라의 문화정책이란 것이 일단 어떤 것이 떠야, 그 후에 사후약방문 식으로 방법론을 찾는 미숙함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독립영화, 흔히 인디영화가 발전해야 한다는 명제에는 영화예술이 자본으로 부터 자유롭게 그 자율성을 지킬 수 있도록 해야 한다는 사회적 함의가 담겨 있다. 자본으로 부터 자유로운 언론이 그 시대의 민감한 성감대와 상처와 치부를 국민의 알권리를 위해 보여줄 수 있듯, 영화 또한 소수자의 목소리와 사회 속 알려지지 않은 우리 내 이야기를 '재현'해 낼수 있는 것이다.
그런 이야기들, 주변부를 바라보는 생의 시선들이 하나하나 모여 강물을 이룰 때, 자본논리에 잠식당한 채, 위험요소가 없는 이야기 구조만을 다루는 영화가 갖는 답답함을 감싸 안는 항독소가 될수 있다. 독립영화의 미덕은 바로 여기에 있다. 우리가 지금 한국 독립영화의 희망을 이야기 하는 것은, 이 작은 이야기를 언제든 듣고 보고 싶어하는 많은 이들이 속속들이 등장하고 있다는 점이다. 새로운 관객층의 개발. 이것을 위해 문화정책자와 영화산업이 무엇을 해야 하는지 고민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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