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rt Holic/영화에 홀리다

영화 코코 샤넬-스타일의 신화를 재미있게 읽는 법

패션 큐레이터 2009. 8. 25. 17:54

S#1 스타일의 아이콘, 샤넬을 생각함 

 

영화 <코코 샤넬>을 봤습니다. 지난 20일 기자 시사회를 통해 본 코코 샤넬. 지난 7년 동안 샤넬을 연구했던 저로서는 감회가 남달랐습니다.

  

영화 <코코 샤넬>은 한번의 리뷰로 올리기엔 담아내야 할 이야기가 너무 많아서 연재 형식으로 올려볼까 합니다. 저는 꼭 샤넬이 아니더라도 인물 중심, 그의 평전을 영화로 옮기는 경우, 지나치게 개인적 역사로 환원시키는 방식에 대해 반감을 갖고 있습니다.

 

어느 개인이나 자신이 몸담고 있던 사회와의 교류속에서 성장하고 명멸하는 법이어서 당대의 철학과 역사, 시대정신, 미감의 영향을 받습니다. 디자이너였던 코코 샤넬은 누구보다도 이러한 영향력의 깊이를 크게 받았던 사람이고요.

 

분명 이번 포스팅의 제목을 <스타일의 신화를 재미있게 읽는 법>로 한것은 샤넬의 개인적 삶과 그녀를 둘러싼 시대상들을 함께 읽어 낼때, 스타일의 탄생과 관련된 이해가 가능하다는 점을 지적하기 위함입니다.

 

최근 드라마 <스타일>이 인터넷 공간에서 계속 회자되는 걸 봤습니다.  극중 '엣지있게'라는 표현은 유행처럼 번지고 있죠. 말끝마다 '엣지있게'를 사용하는 글이 눈에 보이더군요.

 

저는 이 '엣지있게'라는 표현이 사용되는 상황의 깊이에 대해 우려하고 있습니다. 스타일의 지칭어들, 엣지(Edgy)나 프렌치 쉬크(French Chic), 엘레강스(Elegance), 쿨(Cool)과 같은 단어들이 역사성이 무시된 채 어디에나 남발되는 수식어로 변질된 것이 아쉽기 때문입니다. 이제는 진정한 '스타일'의 개념을 정립하고 각자가 본연의 방식을 개발할 때가 되었음에도 불구하고, 현실은 멀군요. 기자용 프레스 키트를 보니 샤넬에 대한 피상적인 설명만 쓰여 있습니다. 이런 점이 저를 곤란하게 합니다. 몇몇 인터넷 신문은 오두리 토투 주연의 로맨틱 코미디라는 헛다리 집는 설명을 해놓았더군요(영화를 보기는 한 것인지요)

 

하긴 이해할만도 한 것이 한국엔 디자이너 코코 샤넬에 관한 책이 전무합니다. 그녀의 생애를 다룬 평전은 딱 한권. 제가 쓴 <샤넬 미술관에 가다>는 샤넬이 살았던 시대와 그 이전의 시대를 사로잡았던 패션 스타일과 액세서리, 산업적 측면을 아울러 그림을 통해 설명한 책이라서 미술책으로 분류되어 있습니다.

 

코코 샤넬은 패션에 대한 스타일의 우위를 주장한 디자이너입니다. 패션은 돈으로 살수 있지만 스타일은 개인이 소유해야 하는 것이라고 시대에 대해 일침을 놨던 디자이너입니다. "패션은 사멸하지만 스타일은 남는다"란 말의 의미는 바로 이런 것이죠.

 

패션은 사회적 개념이기에, 사회적 변동에 따라 언제든 변화할 수 있지만, '스타일'은 개인의 환원불가능한 가치입니다. 바로 이 스타일 개념을 옷을 통해 보여주고 '엣지있게' 시대에 대항했던 한 명의 여인이 바로 코코 샤넬입니다. 저는 <샤넬, 미술관에 가다>를 저술하면서 5년의 시간을 보냈습니다.

 

오른쪽에 보이는 신인상주의 화가 마리 로랑생이 그린 디자이너 코코 샤넬의 초상화를 오랑주리 미술관에서 본 후, 저는 누구도 하지 않았던 미술로 보는 패션이야기, 복식사의 세계에 빠져들었습니다. 항상 궁금했지요.  그림 속 패션을 보며 당대의 옷을 고증 할수 있지만, 중요한 건, 그녀가 왜 이런 디자인의 옷을, 컬러와 형태의 옷을 입었을까라는 질문을 끊임없이 던져야 했기 때문입니다.  

 

이번에 개봉하는 <코코 샤넬>을 보면서 1890년대 말에서 1920년대에 이르는 샤넬의 핵심적 디자인과 스타일에 대해서 공부할 수 있었습니다. 저는 샤넬에 관련된 글과 자료를 많이 찾아 읽었습니다. 평전과 비망록, 각종 카탈로그와 작품 설명서, 인터뷰에 이르기까지. 영화 <코코 샤넬>은 다큐필름같은 느껴진 것도 무리는 아니겠지요.

 

 

 

 

화면 하나하나가 복식사 교과서를 보는 듯 했습니다. 샤넬의 가치를 계승한 디자이너 칼 라거펠트가 제대로 재현해냈기 때문이죠. 타조깃털을 비롯해 다양한 꽃장식으로 범벅이 된 모자를 쓰고, 코르셋으로 허리를 졸라매고 트레인(바닥에 질질 끄는 옷)을 입고 해변가를 거닐던 당대의 지배적 패션과, 샤넬의 옷은 어찌나 잘 대조되던지요. 당시의 벨 에포크 시대 패션을 조롱하는 샤넬의 코멘트가 압권입니다. 모자를 보곤 슈크림을 엊은 것 같고, 각종 보석으로 치장한 여인들을 향해 금은방을 털었으냐고 독설을 내품지요.

 

이 장면 후 연인 카펠과 함께 해변가를 거닐며 어부들이 돌아오는 풍경을 바라보는 샤넬의 모습이 클로즈업으로 삽입됩니다. 제가 이 부분을 기술하는 이유는 이 장면의 의미를 모르고 넘어가기 쉽기 때문입니다. 샤넬이 찾아간 도빌은 프랑스 노르망디 해변가에 있는 리조트입니다.

 

여기서 그녀는 자신의 디자인에 영감을 불어넣은 어부들의 복식에 매혹됩니다. 차가운 날씨와 소금기 먹은 해풍을 견디며 작업하는 어부들이 입었던 의상들, 풀오버와 터틀넥 스웨터, 피코트 등이 눈에 들어온거죠. 샤넬은 자신의 비망록에서 "내가 한 것이란 남성복을 여성들이 입을 수 있게 변화시킨 것 이외에는 없다"라고 말합니다.

 

어부들의 옷을 보고 영감을 얻어 그녀는 여성용 가디건을 비롯 다양한 스웨터 종류의 아이템들을 디자인하여 그녀의 초기 샵이 있던 도빌 지역에서 디자이너로 성공하게 됩니다.

 

그녀의 삶에 영향을 미친 두 명의 남자와의 사랑 이야기가 이야기의 축을 이루다보니 디자이너로서 그녀가 어떻게 어디서 교육을 받았고, 영감을 얻어 당대의 패션에 도전장을 던지게 되었는지에 대한 설명은 나오지 않습니다. 그만큼 디자이너로서의 개인적 삶에 초점을 맞춘 영화였습니다. 가브리엘 코코 샤넬(Gabriel Coco Chanel), 코코는 그녀의 애칭입니다. 18세 되던 해 수녀원을 나와 보딩스쿨을 다니며 재단기술을 익혔고 모자가게를 전전하며 세일즈를 하기도 했습니다-이 부분은 영화에 나오지 않습니다. 그녀는 가수가 되고 싶어 비시 지역에 작은 카페에서 무급 가수로 일을 하죠. 이때 '내 사랑하는 강아지 코코'라는 나름의 레퍼토리를 만들어 인기를 끌긴 합니다. 하지만 큰 무대를 오르는데는 성공하지 못하죠.

 

 

승마하는 모습을 담은 장면이죠. 이 당시 여성들은 말에  양 다리를 걸치고 타지 못했습니다. 기마자세로 타지 못했죠. 카롤뤼스 뒤랑의 그림 속 여인의 모습을 보세요. 영화 속 배경보다 20년 전의 모습이긴 합니다만, 당시 모든 여성들은 승마를 할 때 이런 복장을 차려입고 말을 타야 했습니다. 이 조차도 거친 여성의 느낌을 발산한다고 해서, 신화 속 활을 쏘기 위해 유방을 잘라낸 강철여인, 아마존을 승마복 이름으로 부르죠.

 

 

이런 관행들을 깡그리 무너뜨리고 남성들이 즐겨입던 스포츠웨어와 승마바지(흔히 조퍼스라고 부르죠)를 나름대로 재단해 입은 샤넬의 모습이 영화 속에 등장합니다.

 

영화 <코코 샤넬>의 상영을 앞두고 언론에 나오는 영화 기사들을 봤습니다. 영화를 보긴 한 건지, 로맨틱 코미디라고 써붙여놓질 않나, 말로 안되는 스타일 용어들을 갖다 붙이며 덕지덕지 수식해 놓은 문장들은 읽기에도 화가 날 지경입니다.

 

말끝마다 쉬크(Chic)가 어떻고 프렌치 스타일이 어떻고 말은 하면서, 정작 이러한 스타일의 방식이 어떤 사회적 과정을 겪으며 창조되는지에 대한 설명은 부재합니다. 이 땅에서 벌어지는 스타일 담론들이 하나같이 가볍고 깊이있는 이론적 체계를 갖지 못한 이유이기도 하죠.

 

저는 '엣지있다'라는 표현을 샤넬에게 써주고 싶습니다. 그녀의 발언들, 비망록에 담긴 시대에 대한 날카로운 논평들, 스타일을 둘러싼 생각들을 읽다보면, 이것이야 말로 진정한 엣지라고 생각했답니다. 엣지(Edgy)란 칼끝을 의미합니다. 많은 이들이 독특하고 고유한 화려함을 가리켜 이 엣지라는 스타일 용어를 사용합니다. 물론 틀린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한가지 간과한 것이 있습니다. 엣지란 말 그대로 칼끝이란 의미처럼, 화려함과 더불어 어둠을 동시에 가진 칼날 같은 현실에서 한 개인이 창조하는 저항적 스타일을 의미합니다. 이 사회에서 회자되는 '엣지'개념은 온통 브랜드만의 잔치로 전락한지 오래입니다. 한 벌의 옷이 사회속에 용인되기까지 어떤 과정을 겪는지 알아야 합니다. 영화 <코코 샤넬>을 보면'클래식'의 반열에 든 샤넬 스타일을 선보이며 어떤 조롱을 당했는지 속속들이 나옵니다. 

 

 

오늘 <코코 샤넬>에 관련된 포스팅을 읽다보니 영화 전문 블로그인 FILMON에서 샤넬이 입은 펜슬 스트라이프 티를 바닷가에서 본 어부들의 옷에서 영감을 얻어서 살짝 삽입해 놓았더라는 식으로 써 놓았군요. 이는 스트라이프 무늬의 역사에 대해 전혀 무지한 표현입니다. 스트라이프가 서구 복식에 사용된 것은 13세기입니다. 단 무늬를 둘러싼 인식이 부정적이었기에 주류사회에 나올수 없었을 뿐이죠. 샤넬이 이 스트라이프를 입었을 당시에는 화가를 비롯 예술가들이 앞 다투어 줄무늬 옷을 입고 다니며 그 부정성을 많이 제거한 후입니다. 오해없으시길 바랍니다.

 

 

<코코 샤넬> 영화에서 그녀가 옷을 만드는 순간들을 포착한 화면들을 뚫어져라 보곤 했습니다. 그녀는 뛰어난 바느질 솜씨를 가진 장인이었죠. 직물을 가위로 자르는 순간을 포스터로 쓰더니, 영화 내용이 전개되는 내내, 숍에서 그녀가 고객을 상대로 옷을 마감하고 재단하는 모습을 보여줍니다. 강력한 내면의 힘이 느껴져요. 오랜 경력을 가진 디자이너들이 옷을 재단하는 모습을 본 적이 있습니다. 가위질 하나를 해도 일반인과 다른 힘이 발산되어 나와요. 예전 55년간 영국 여왕의 옷을 만들었던 궁정 디자이너 하디 에이미스의 다큐를 본적이 있습니다. 평균 경력이 50년이 넘는 재단및 봉재사들과 함께 만들어내는 옷과 그 과정을 보면서, 한길을 아름답게 가는 사람들의 손에선 항상 향기가 난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그녀가 옷의 헴라인을 만지는 모습을 보면, 옷 주름 하나하나에 얼마나 정교한 애정을 쏟아내는지가 화면을 통해 느껴지더군요. 한 개인의 스타일이 유포되려면 이런 열정과 애정이 있어야 합니다.

 

 

마지막 장면, 그녀가 선포한 샤넬 수트의 정격미를 그대로 느꼈습니다. 제 기억이 맞다면 영화 속 마지막 장면은 1954년 그녀가 다시 복귀하던 때의 모습을 담은 것입니다. 자신의 살롱에 있는 전설적인 곡선 계단위에 앉아 쇼를 위해 내려가는 모델들의 모습을 물끄러니 바라보는 샤넬의 모습을 담죠. 현대 의상의 대부분이 그녀의 '관습타파'의 결과물이란 점을 알아야 합니다. 당대의 관행과 싸우고 시대적 미감에 대항하는 것. 거친 독설을 시대를 향해 내뱉는 것. 그것이 샤넬이 보여준 '엣지녀'의 모습입니다. 진정코 엣지란 이런 것이죠.

 

내일이면 <코코 샤넬>이 본격적으로 상영되겠군요. 제 설명이 영화이해의 폭을 넓히는데 도움이 되었으면 합니다. 더불어 그녀가 살았던 사회적 풍경에 대해서도 한번쯤 깊이있는 독서를 해보시는 것도 좋을 듯 하네요. 샤넬에 대해서는 연재 개념으로 하나씩 올려보도록 할게요. 일명 <코코 샤넬 시즌2>라고 해둘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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