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rt Holic/영화에 홀리다

내 안에 상처를 들어올리는 방법-영화 킹콩을 들다 리뷰

패션 큐레이터 2009. 7. 6. 20:26

 

 S#1 내 안에 숨쉬는 킹콩을 찾아서

 

성장한다는 말처럼 듣기 좋은 말도 없다. 정체되지 않고 푸르름의 끝을 향해 달려갈 수 있는 시기가 있다는 것. 나이의 많고 적음에 관계없이 여전히 인간은 현재 진행형의 과정 속에서 성장할수 있다는 가능성은 숭고하기 까지 하다.

 

한편의 영화를 봤다. <킹콩을 들다> 오랜만에 스포츠를 소재로 한 성장영화를 봤다. 성장영화는 곧 형성 과정속의 인간을 보여주는 장르다. 세상에의 입사를 꿈꾸는 자들이 삶을 학교로서 경험의 장소로 채택한다. 성장영화 속 주인공들은 하나같이 자신을 둘러싼 환경에서 버림받거나 주눅들어 있기 마련이다.

 

세상을 수용하는 내면의 풍경은 어둡다. 나아가 내 안에 있는 가치를 탐색하려는 시도는 번번히 무너진다. 이때 개인의 삶을 결정하는 사건과 만난다. 그 사건은 아주 다양하다. 전쟁과 기근이 될수도 있고, 좋은 교사와의 만남이 될수도 있으며, 스포츠가 될수도 있다.

 

내 인생에서 기억에 남는 스포츠 영화를 뽑으라면 난 주저없이 세편의 영화를 고른다. 1960년대 영국 프리시네마의 걸작, 토니 리차드슨 감독의 <장거리 주자의 고독>과 <불의 전차> 마지막으로 <밀리언 달러 베이비>이다.

 

순서대로 마라톤과 단거리 육상, 복싱을 소재로 삼았다. 장거리 주자의 고독은 교도소장에게 장거리 선수로 발탁되면서 세상에 불만가득했던 한 청년이 변화하는 모습을 담았다. 이외에도 비인기종목 핸드볼팀을 소재로 한 <우리생애 최고의 순간>도 기억에 남는다.

 

<킹콩을 들다>는 역도를 소재로 삼았다. 비인기종목 역도. 올림픽을 비롯한 국제대회에서 메달권에라도 들어야 겨우 관심을 받는 종목이다. 여자 역사 장미란이 있긴 하지만 올림픽이 끝나고 나면 관심이 식어가는 속도는 거의 광랜의 스피드다. 영화 속 내용과 현실이 그리 다르지 않다. 그래서 더욱 카타르시스가 있는지도 모르겠다. 어찌된게 영화를 보는 처음부터 마음이 짠했다.

 

S#2 배우 이범수에 관한 몇가지 생각

 

난 개인적으로 이범수란 배우를 아낀다. 그는 성실함이 묻어나는 배우다. <슈퍼스타 감사용>에서 보여준 꼴지인생 투수의 모습을 난 잊을 수 없다. 그는 주류에서 벗겨난 삶을 잘 그려내는 배우다. 스포츠란 것 자체가 그런 것일지도 모르겠다. 적어도 한국에서 만큼은 말이다. 말이 예뻐 생활체육이니 어쩌니 하지만, 여전히 이 땅의 스포츠는 엘리츠 체육의 위계를 가지고 있다. 경쟁은 치열하고 혹독한 훈련에 시달리는 것이 일상이다. 정상의 자리에 간다 하더라도, 부상과 함께 소리소문없이 사라지기 일쑤다. 평생을 바쳐온 운동을 버려야 한다는 것. 적어도 운동선수라고 하면 그저 '무식하고 힘만 센것들'이라는 이상한 스테레오타입을 만들기 좋아하는 이들로 인해, 그들의 가슴 속엔 적지 않은 상처가 자리하고 있을터이다.

 

 

그 상처를 연기한다는 건 쉽지 않은 일일거다. <킹콩을 들다>에서 보여준 이범수의 매력은 역할을 재현하기 위해 쏟아부은 그의 열정이다. 부상으로 인해 역도를 그만두고, 세상에 나오지만 뭐 하나 할줄 아는게 없는 자신의 모습에 환멸을 느끼고, 학교에 돌아와 아이들을 맡지만 지지부진한 아이들에게서 미래를 찾기란, 그들에게 역도를 가르치기엔, 자신의 상처가 너무 크다. <슈퍼스타 감사용>에서는 왼손투수의 애환을 눈물로 그려내더니, 이번엔 퇴락한 역도선수에서 좋은 선생님으로 변신한다. 이범수는 몰입의 힘과 캐릭터를 위해 자신의 몸을 어떻게 담금질 해야 하는지를 아는 배우다. 선수들과 찍은 사진을 보면 자연스레 배가 나와있다. 몸무게를 상당히 늘인듯.

 

 

역도를 하겠다고 몰려든 아이들 또한 비루하기 그지없다. 부모없는 고아에, 뚱뚱해서 왕따당하는 아이에, 하버드 로스쿨을 가기 위해 다양한 경험을 쌓아야 한다며 역도부에 들어오는 아이가 있는가 하면, 다리가 불편한 엄마를 잘 들기 위해 역도를 배우는 아이도 있다. 동병상련이란 말은 괜히 있는게 아니지 싶다. 아파본 사람이 아픈 사람의 마음도 보듬을 수 있는 법이다.

 

 

삶의 열병을 치룬 자들이 모여 다시 한번 세상을 들기 위해 뭉친다. 이 영화는 실화를 바탕으로 했다.  2000년 제81회 전국체전, 체전 사상 초유의 사건이 벌어진다. 여자 역도 부문에서 5명의 선수가 출전, 4명이 3관왕에 오르고 15개의 금메달 중 14개의 금메달과 1개의 은메달을 딴 것이다. 시골 소녀들의 거대한 반란은 역도란 운동을 통해 이뤄졌다. 보성 대나무 숲에서 촬영된 영화의 미장센은 너무 곱다. 역기 봉 대신 대나무를 꺽어 연습하고 벚꽃 환하게 핀 도로를 뛰며 훈련하고, 자갈밭에서 타이어를 매단채 달리는 여중생의 모습이 화면 가득 메워진다.

 

개인적으로 <킹콩을 들다>를 <우생순>보다 더 높은 점수를 주고 싶다. 개인적 슬픔을 단순히 스포츠의 승리로 마감하기 보다, 내적인 성장을 이루며 자라나는 아이들의 모습을 아련하게 담았기 때문이리라. 영화의 마지막 장면에서 왜 킹콩을 들다라는 제목이 붙게 되었는지 알게 될 때는 나도 모르게 눈물이 났다. 실화가 주는 힘은 강력하다. 허구가 아닌 현실에서 벌어지는 눅진한 진실의 힘은 교묘하게 설계된 스토리텔링의 힘을 누른다. 삶의 진정성이 묻어날 때, 그 힘은 극대화된다.

 

 

영화 후반부로 갈수록 감상주의에 빠지는 우를 범하긴 하지만, 예쁘게 봐줄 수 있다. 영화를 보는 내내 중학생인 여자조카를 데리고 가서 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너무 교과서적인 코멘트가 자주 등장하지만, 사실 스포츠영화란 컨벤션이 이 정도의 호사도 부리지 못할 거라면 누가 운동소재의 영화를 만들겠는가? 세상의 높은 진입장벽을 넘는 힘을 스포츠를 통해 얻는 아이들. 그들에게 메달의 색은 그리 중요하지 않다. 금메달만큼 소중한 동메달이 있고, 그 과정의 아름다움은 더더욱 설명하기 어렵다. 교훈적이고 도덕적이기까지 한 메세지는 성장소설과 영화의 단골소재지만, 진부하지 않은 건, 영화를 보는 내내 자꾸 '글을 쓰지 않고 달아나고 싶었던' 최근의 나를 바라보게 했기 때문일거다.

 

이 영화는 마냥 눈물만 쥐어짜게 하는 신파조의 작품은 아니다. 사실 이야기 구조를 섬세하게 나누다 보면 편협한 스포츠 민족주의도 보이고 학교내의 왕따문제, 스포츠계의 고질적인 폭력등이 등장한다, 다양한 층위의 미시서사가 역도 소녀의 승리담이란 핵사건을 중심으로 궤도를 돈다. 이런 영화는 소재들을 다 들어내놓고 심각하게 처리하거나 결말 지어선 안된다. 그냥 승리 하나로 마법처럼 그렇게 풀려야 좋다. 오히려 소녀들의 성장, 혹은 사회의 진입이란 관점에선 자연스레 풀었지 싶다.

 

 

모든 운동은 결국 자신과의 싸움이라고 한다지만, 역도는 체급경기일지라도 맞붙어 링에서 싸우는 대상이 있거나 혹은 레이스처럼 함께 경쟁하는 구도가 아니다. 그래서 더욱 그들이 들어올려야 할 역기무게는 삶보다 가벼울 수도 혹은 무거울 수도 있다. 무언가를 드는 행위는 중력에 법칙에 대한 저항이다. 무용가들이 쉬르라 포앵을 통해 발끝으로 무대위에 서는 행위나 역도 선수들이 무게를 드는 행위는 그런 점에서 동일한 존재적 가치를 갖는다.

 

 

 

세상의 헛헛한 슬픔, 그 아련한 무게를 들어올리는 소녀역사들의 모습에서 힘을 얻는다. 정말이다. 지난 5개월동안 지리한 시간의 슬럼프를 겪었다. 사실 지금도 완전히 극복하지 못한 상태다. 하지만 조금씩 내면의 트랙을 따라 뛰고 있다. 올해 좋은 결과물을 반드시 내어놓을 각오를 하고 다시 뛰어보려 한다. 내 안에 있는 슬픔의 킹콩을 들어올리고 싶다. 영화 속 간절한 소녀들의 꿈처럼, 나도 올해 더욱 영글어 가야겠다. 참 고맙다. 좋은 영화 만들어줘서. 아마도 2009년 하반기를 시작하며 최고의 영화로 뽑아야 할 것 같다. 연기에 몰입해준 멋진 6명의 소녀들이 보고싶다. 마지막으로 영자 역의 조안......(사실 너무 연기적으로 따먹는 역할이라)그걸 할수 있는 그녀가 부럽고, 왠만큼은 잘 소화해준 것 같다. 그만하면 선방한 듯 한데, 많은 블로거들은 그리 생각하지 않나보다.

 

뱀발#1

사실 <킹콩을 들다>에서 새롭게 재발견한 배우가 있다. 바로 교장선생님 역할의 박준금이다. 그녀의 구성진 사투리와 감정처리방식을 섬세하게 살펴봤다. 드라마보다 영화의 호흡이 더 어울리는 배우를 만나 기쁘다. 그리고 6인의 소녀 역사 중에선 한달만에 목간통에 들어간 여옥과 군수딸로 나온 S라인의 4차원 미녀, 하버드 타령하며 타령을 구성지게 뽑는 소녀도 나쁘지 않았다 좀 더 지켜봐야 겠지만 그녀들의 후속작이 기다려진다.

 

뱀발#2

<킹콩을 들다>의 리뷰들을 쭈욱 읽어봤다. 블로거들의 글을 보니 대부분 그냥 착한영화, 감정의 과잉, 눈물을 쥐어짠다는 식의 의견이 많다. 난 좀 생각이 다르다. 스토리텔링이 너무 단선적이라고 이야기 하던데, 물론 그런 점에선 앞에서 언급한 <장거리 주자의 고독>과 같은 내러티브 구성을 가진 영화들을 예로 들어 대비시키는 건 너무 잔혹하지 싶다. 슬픔을 극복하는 합리적 서사를 주장하는 블로거도 있던데, 문제는 캐릭터를 구성하는 아이들이 여중생이라는 점을 고려하지 않은건 아닐까. 물론 이 발언이 소녀들이 단무지란 걸 뜻하는 것이 아님을 알거다. 그만큼, 다양한 외부환경에 노출되고 여러 가지 요소에 의해 심리적 정황들이 섬세하고 곡진하게 드러날수 있는 캐릭터는 아니란 점일거다. 차라리 드러낸다면 청소년이 아이들이 자라면서 학교에서 겪게될 에피소드들이 잘 구성되었는지의 여부로 판단가능하지 않겠나 하는 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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