탈춤 공연을 본 후 마을 어귀에 도착, 이제부터 하회마을을 본격적으로 살펴보았다. 드넓은 연꽃밭이 눈에 들어온다. 시골길을 걷는 느낌. 그 속에서 시야를 둘러싼 주변의 풍광은 고즈넉한 담장의 높이로 시선을 가로막지 않는 고택들로 가득하다. 하회마을 자체가 연꽃의 형태를 하고 있단다. 그래서 연꽃과는 깊은 유대를 자랑한다고 했다. 사림의 정신성이 승화된 곳에 피어난 이 연꽃처럼, 조선의 역사를 유교의 엄정성으로 교정하려 했던 그들의 혼이 마을 곳곳에 배어난다.
야트막한 산새와 그 아래 초가지붕을 한 고택들이 옹기종기 모여있다. 난 개인적으로 초가지붕의 빛깔이 이렇게 다채로울수 있을까 하는 놀라움에 빠졌다. 6월의 뜨거운 햇살을 품었다 토해내는 일이라지만, 초가의 빛이 단순한 황토빛이 아니었다. 패션 디자이너 아르마니가 회색 한 가지로 100가지가 넘는 색의 역동성을 변주해내듯, 하회마을의 초가지붕의 빛깔은 그 농담과 대비로 인해 설명하기 어려운 색감을 대지위에 풀어놓는다.
담장이 낮은 집들, 그 사이로 난 작은 사잇길을 걸어가는 시간이 흥겹다. 프라이버시 침해니 개인의 자유니 한다지만, 사실 근대화와 더불어 마을개념이 붕괴된 이 땅의 현실은 차가운 사회적 소외의 확장이다. 옆집에 누가 이사를 왔는지, 그들이 무엇으로 흥겹고 슬픈지, 내 아이가 아닌 근린의 아이또한 내 아이처럼, 잘못을 했을 때는 야단을 치던 어른이 있던 마을. 지금 성냥갑같이 개성없는 아파트에서 자라난 아이들에겐 이런 어른도, 타인에 대한 간섭이 아닌 따스한 배려도 점점 더 사라진다. 페미니스트들이 말하는 공동육아란 것이 별건가 하는 생각을 했다. 마을개념이 우리에게 복원될 수 있다면, 마을사람들 전체가 아이들 하나하나를 바라보며 교정하고 훈육하는 체계가 세워지리라. 진정한 사회성과 연대를 배운 인간이 우리 시대에 점점 줄어가기에, 이런 소리를 해본다. 그냥 푸념거리라 생각하시길.
곰방대 문 어르신 다 헤진 짚신에는 우리 할아버지들의 잊혀진 미소가 담겨 있다. 왜 그렇게 점글어가는 옛 사랑의 미소가 떠오른걸까. 너무 많은 걸 잊고 살아온 우리들에게, 전통이란 이런 감성을 부여하는 가 보다. 전통이 우리의 정체성을 벼리고 조형하는 형상의 거푸집이 되는 건 바로 이런 이유인 거다.
북촌댁에 들렀다. 하회마을에서 가장 격조 높은 집이라 불린다. 정식명칭이 화경당이다. 21년에 지중추부사 류사춘에 의해 처음 건물이 세워졌고, 1862년 철종 13년에 경상도도사 류도성에 의해 증축되어 제 모습을 갖추게 되었다. 야트막한 담장 하나를 두고 북향과 남향으로 각각 지어진 북촌댁과 남촌댁. 동전의 양면같이 사림의 삶과 역사를 대변하는 가옥들이다. 사진은 중간 사랑채인 화경당이다. 7대 200년에 걸쳐 위용을 자랑하던 이 곳에선, 매일 어떤 대화들이 오갔을까. 한국건축의 미학을 공부할 때, 이 북촌댁의 사랑채 3곳을 반드시 공부하게 되어있단다. 지식이 일천한 까닭에 중심이 패인 미음자 형태의 고유 가옥의 아름다움을 짧은 시간에 배워내기엔 부족하다. 글씨나 그림을 나무에 새겨 걸어두는 것을 현판이라 하고 여기에 액자를 두른 것을 편액이라 한다. 짙은 갈색의 액자 속 한석봉의 서체만 눈에 겨우 담아두었다.
사실 허락된 시간이 길지 않아 북촌댁의 면면을 살펴보지 못한 것이 아쉽다. 예전 행복이 가득한 집이란 잡지에 북촌댁에 대한 섬세한 설명이 실린적이 있는데, 그때 읽어두고 눈으로 섬세하게 검증하며 글로 적지 못해 정말 아쉽다. 다음기회에 반드시 가보리라.
북촌댁의 자랑인 소나무다. 300년의 역사를 가진 소나무의 형상또한 마을의 본질과 닮아있다. 물이 도는 마을의 형상처럼, 한 가족사의 유장한 세월의 결을 돌올하게 안고 갔을 소나무의 형상이 눈에 유독 들어왔다. 부유했으나 가진자로서, 소작농의 입장을 항상 배려하고 안아준 가문이다. 노블레스 오블리주를 실천한 아름다운 가문의 역사는 7대손 주인의 손끝을 통해서도 그대로 드러난다. 그는 내셔널 트러스트 활동을 통해 이 땅의 유물을 보존하고 지키는 일에 앞장서고 있단다.
마을 중앙에는 600년이란 시간의 시금석을 통과한 느티나무가 서 있다. 풍산류씨의 입향 시조인 전서공이 식수 했다는 이 나무는 현재 마을의 삼신당으로 기능을 한다. 세월의 결속에 인간의 간절한 욕망이 투사된 탓일까. 나무의 형상을 자세히 보니 해산하는 여인의 모습을 닮았다. 참 독특하다. 아이를 낳기 위해 두 다리를 벌리고 누운 여인의 모습이 머리 속에 떠올랐다. 풍수지리적으로 마을의 혈에 해당하는 이곳에서 나무는 수많은 인간의 욕망을 안아온 탓에 수많은 찔림을 당했으리라. 아들에 대한 욕망, 적자를 낳아 대를 잇는 것이 인간의 예의였던 시절의 상처는 수많은 혈흔자국을 삼신당 느티나무에게 남겼을거다. 굵은 빗줄기가 앗아간 아스라한 초록의 시간들 앞에서, 여전히 인간을 위해 혈의 자리에서 대신 피를 흘리는 나무에게 감사할 뿐이다.
옹기가 조락조락 놓여진 시골길을 따라 걷는다. 난 옹기를 보면 기분이 좋다. 숨쉬는 그릇이기 때문이다. 불의 자궁을 통과한 투박한 질감의 옹기엔 이땅의 사람을 얼르고 먹여온 손길이 녹아있다. 진정한 빈티지란 이런 것이다. 디자인 서울을 운운하며 베니스같은 한강을 만들겠다며 설레발을 떠는 오세훈 시장에게, 진정한 빈티지의 본질을 보고 싶다면, 세계의 명소를 한국에 이식해 키우지 말고, 우리 스스로 숙성시켜왔던 것들을 다시 살펴보고 그 속에 담긴 이야기를 발견하라고 말해주고 싶다.
마을과 맞닿은 부용대의 화기를 막기 위해 만 그루의 소나무를 심어 숲을 만들었다 해서 만송정이다. 북서풍의 기운을 막아 마을의 안녕을 도모했다. 고운 입자의 모래는 세월의 결 속에 걸러진 사금같다. 낙동강의 유장한 물빛이 마을을 안고 돈다. 이 사이 인간의 마을을 초록빛 갑옷을 입은 채 수호하는 소나무 군락이 서 있다.
울창하게 우거진 소나무숲은 서로를 껴안으며 오랜 섭생의 지혜를 나누었을까. 숲을 걷는 시간은 청신하다. 연초록 가시 잎새를 투과하는 햇살의 무게는 여행자의 어깨를 살포시 누른다.
무심히 돌아드는 물빛을 닮아가며 오랜 억겁의 시간을 버텨온 사림의 기운이 대지에 편만하다. 그들은 사계의 시간을 관통하는 자연의 계율을 배웠을거다. 물이 돌아가듯, 따가운 생의 가시 같은 말과 논리를 껴안고 도는 봄의 미풍처럼, 인간의 마을을 안고 보는 물돌이마을. 하회에는 따듯한 사람들이 살고 있었다. 물욕이 풍화된 모래톱에선 시간의 형상합금이 빚어내는 '느린 호흡의 지혜'가 묻어난다. 탈들의 미소가 사금(砂金)의 입자처럼 떨어지며 인간의 입가에 머문다.
생의 고요한 솔솦을 지나 부용대에 이른다. 가문 탓에 유량이 적어 드문드문 물줄기 위로 융기한 모래톱이 소원한 거리의 섬처럼 서있다. 그 사이로 작은 거룻배 하나 타고 이곳으로 간다. 부용대. 하회마을 자체가 한송이의 연꽃처럼 피어나는 형상이라 부용(연꽃)이라 이름지었단다. 64미터란 그다지 높지 않은 언덕이지만 이곳에 서면 하회의 본질이, 그 여린 속살이 품어내는 인간의 짙은 살냄새를 맡을 수 있다. 언젠가 기회가 된다면 겨울에 이곳에 한번 들르고 싶다.
겨울 솔숲을 살포시 껴안는 흰눈내린 군락의 풍경을 눈에 담고싶다. 연두와 백색이 어떻게 어우러지며 서로를 침탈하지 않으며, 상합하여 고요한 솔숲의 섭생을 완성하는지 살펴보리라. 그리고 잊으리라. 내가 미워했던 모든 것들. 그리고 다시 솔숲을 지나 집으로 갈 것이다. 지난날들을 가만히 하회의 마을에 내려놓고 남은 생을 벅차게 살아가기 위해 살아 돌아오리라고......
젊은 해금주자인 신날새의 연주로 듣습니다.『花 風 病』 짧은 안동 여행......연꽃과 사금같은 모래 위로 불던 여름의 미풍, 그 속에 취해 여전히 현실속에 아픈 제 자신을 생각해 봤습니다. 전수연의 피아노와 해금소리가 어우러져 상사병을 앓는 인간의 심성을 그렸답니다. 한예종을 졸업한 재원이네요. 저도 오늘 우연하게 검색하다 발견했는데 음악이 참 좋습니다. 아무래도 한예종 지킴이를 하라는 뜻인것 같습니다. 이렇게 예쁜 사람들, 부족한 힘이나마 끝까지 싸워서 지켜내야죠. 제 남우새스런 글을 읽어주는 모든 분들에게 감사합니다. 그리고 참 많이 미안합니다. 언제부터인가 블로그의 글이 정치성을 띠게 된것. 인정합니다. 예전같은 따스함을 많이 잃었습니다. 시대가 일개 블로거까지도 싸움을 시작하지 않을 수 없게 만드는 현실이 가슴 아픕니다. 곧 돌아오게 되겠지요. 나는 꽃이져도 여러분을 잊지 않을 겁니다. 이 공간에서 저를 안아준 여러분이 바로 제 상사병의 근원이기에......그녀가 연주하는『찔레꽃』도 함께 올립니다. 느껴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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