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fe & Travel/해를 등지고 놀다

내 영혼의 공중부양-소설가 이외수의 감성마을 가는 길

패션 큐레이터 2009. 4. 12. 03:48

 

 

  

강원도 화천군 상서면 다목리 799번지. 소설가 이외수 선생님이 계신 감성마을입니다. 올 겨울의 끝자락, 선생님을 다시 한번 뵙고 싶어 찾아간 길입니다. 지인의 소개로 만난 아티스트 밥장님의 차로 출발. 아티스트 밥장님은 대한민국의 대표적인 일러스트레이터입니다. 라디오에서 북칼럼니스트로 활동하면서, 전방위적 작업을 가열차게 추구하고 계시죠. 펜으로 세밀하게 표현된 사물엔 첨단에서 우러난 힘이 자유로운 의식의 흐름과 만나, 조화적인 세상을 담습니다. 부산의 신세계 센텀 시티 벽화도 이분의 작품이죠. 아래 작품도 한번 살펴보세요.

 

 

 

점심시간이 되어 경기도 포천을 넘어갑니다. 함께 출발한 블로거 그린티님의 배꼽시계 에너지가 방전. 든든하게 점심을 먹기 위해 들어간 곳은 포천시 이동읍 일대에 즐비하게 놓여진 어느 갈비집. 많은 양을 주는 걸로 유명하다는데, 4명이 3인분 시켜 충분히 먹었답니다. 냉면도 시원했고, 주변계곡 물소리도 맑고요. 포천군 이동면에서 시작된 이동갈비. 동승한 밥장님이 포천 일동 다음에 이동이라고 (놀리셨는데) 말 그대로 믿었답니다. 인터넷을 찾아보니 이동하면서 먹는 갈비라는 우스개 소리도 들어있군요. 감성마을 입구에 가면 새 형상의 그림이 있고, 그 아래, "새가 바라보는 곳을 향해 가세요"란 표지를 따라 시골 비포장길을 가야 합니다.

 

 

컨테이너 박스 형태의 구조지만, 멀리서 보면 미니멀리즘 형식의 건축물 입니다. 그만큼 간결한 심플리시티의 미학이 살아있는 집이죠. 짙은 이끼가 끼면 좋겠다고 하시는데, 그럴려면 이끼를 키우는 제반 장치가 있어야 할 것 같습니다. 산간으로 들어오니 볼에 와닿는 공기가 조금은 서늘합니다. 햇살의 양은 충분하고, 바람 속엔 청신함이 베어나네요. 

 

 

화이트빛깔의 쿠션 위에 하얀색 바지와 샛노랑 셔츠로 한껏 멋을 내셨네요. 저번에 드리지 못한 제 책을 선물로 드렸습니다. 선생님의 옷 빛깔과 제 책 표지빛깔이 깔끔하게 조우를 하는 듯 해서 좋습니다. 선생님의 웃는 모습도 좋고요. 올 한해도 그림 속 소년처럼 환하게 웃는 일만 생기셨으면 좋겠습니다.

 

 

많은 학생들의 방문에도 따뜻하게 맞아주시며, 질문에 성의있게 답변해 주시는 모습입니다. 교원대와 서울예술대 학생들이 함께 했습니다. 교원대답게 현 교육정책에 대한 날카로운 질문을 던졌습니다. 현 정권의 신자유주의적 방식의 교육정책에 대해, 현업에서 일하게 될 학생들의 입장이 꽤 단호합니다. 일제시대, 학생들을 위해 본인의 가족은 굶어도 학생 20인분의 도시락을 쌌던 (소설가 이외수님의) 아버지에 대한 추억을 이야기 하시며, 요즘은 "교육자는 없고 교직원만 늘어난다"고 답하시네요. 저도 동감합니다. 교육자 집안에서 태어나 성장하셔서일까, 교육에 대해서 열정과 관심이 여전하십니다.

 

 

이 학생은 대뜸 이외수 선생님의 머리카락 하나를 가져가겠다며 용감하게 긴 머리칼을 뽑았습니다. 한 가닥만 가져가겠다더니

여러개를 뽑아서 선생님을 아프게 했다는 후문이......

 

 

서울 예대 연극과 학생이 이외수 선생님이 "연기를 하게 되었다"고 이야기하는 걸 놓치지 않고 연기철학에 대해 질문을 던지기도 했고요. 스타니슬랍스키의 '배우수업'을 20번은 읽어야 한다고 말씀하세요. 저도 학부시절 연기 공부할때 열심히 읽었던 책이죠. 지금도 이 책의 깊이를 넘어설만한 연기론책은 없답니다. 사진 속 학생은 시인 김혜순 선생님(서울예대 문창과 교수)의 수업을 듣는 학생입니다. 본인이 쓴 시를 첨삭 해달라고 부탁하더군요.

 

시를 꼼꼼히 읽으시며, 산문투가 강해서 교수님께 혼이 났을거라고 말씀하세요. 대학시절 김혜순 시인의 <우리들의 음화> <나의 우파니샤드 서울>과 같은 시집을 열심히 읽었던 기억을 되살렸죠. 제가 수업을 듣는다면 어떤 야단을 맞을까요?  예전 시를 쓰고 싶은 욕망에 여러 권의 시작법 책을 읽었습니다. 학부시절땐 서울예대 오규원 시인과 한양대 이승훈 교수의 시작법 강의가 인기가 많았죠. 이 두분의 책도 열공했던 기억이 가물가물합니다. 시어와 일반어의 차이, 은유를 만드는 법 등 좋은 조언은 제 기억속 어디에 박혀 있는지......

 

 

선생님이 학생들과 이야기를 나누고 계실 때 저는 함께 갔던 블로그 그린티님과 함께 주변을 산책했습니다. 저도 질문거리가 많았답니다. 선생님의 크레파스화를 모아 <내 영혼의 공중부양展-소설가 이외수의 그림>이라는 제목의 전시회를 기획하고 싶었거든요. 이외에도 이외수의『글쓰기의 공중부양』을 읽으며 만난 생각들, 단어를 채록하고 만드는 방법에 대해 자세하게 알고 싶었습니다.

 

개인적으로 굉장히 마음에 들었던 바위로 만든 테이블. 테이블위에 누워서 흐드러지께 쏟아지는 별들을 보고 싶습니다. 서울만 벗어나도 별이 환하게 보이니, 삭막한 도시가 점점 무섭습니다. 탈출의 욕구가 조용히 계면위로 떠오르는 시간이죠.

 

 

이외수님의 글은 생생합니다. 단어 하나하나에 싱싱한 수사학이 넘치죠. 질문을 던져보니 3년간 문장수업을 하실때, 온 몸으로 느끼는 언어를 얻기위해, 한 겨울에도 한기를 느끼려 문을 열고 잠을 청하셨다네요. 그만큼 관념어를 나열하는 건, 우리 스스로 죽은 언어를 만드는 일이니, "살아있는 재료의 언어로 오감을 자극하고 생명력을 불어넣는 것이 중요하다"라고 지적하시더군요.

  

 

주변 계곡길을 걸으며, 물의 흐름을 표현한다면 어떻게 할까 생각에 빠져봅니다. 生語로 물의 움직임을 그려내는 일, 한 줄의 묘사문을 얻기가 이렇게 어렵네요. 사업기획서와 각종의 전략 보고서에 묻혀 지내다 보니 관념어로 머리가 가득찹니다. 창의성 경영이 어떻고, 응집력있는 조직설계 운운하지만, 조직의 속살을 생생한 언어로 표현하지 못하니, 듣고 실행하는 사람의 마음도 생생하게 살아 움직이지 않습니다. 그저 조용히 산책 길, 내 배면으로 흐르는 물 소리에 귀를 기울입니다. 겨울의 꼭지점 위에, 불안한 모습으로 자신의 젖무덤 꺼내 온 몸으로 녹이는 냇물의 움직임. 손에 닿으니 차가운 느낌에 몸의 세포 하나하나가 깨어납니다.

 

 

이외수 선생님이 저녁 먹고 가라고 하셔서, 그린티님과 친구분들과 함께

숯불 바베큐 준비를 했습니다.

 

 

숯이 타는 냄새가 참 좋습니다. 가까이 렌즈를 대고 찍을량 하면

어디에선가 내 가슴을 꼭 후려잡고 여인의 속살로 끄집어댕기는 것 같은 느낌.

회백색으로 변해가는 숯불, 붉은 기운이 왠지 모르게 힘든 마음을 위로합니다. 요즘 이 불의 기운이

자꾸 끌리네요. 이러다가 확 불속으로 몸을 던지는 건 아닌지 원.......

 

 

오늘 하루는 점심 저녁 고기로 확실하게 배를 채우는 군요. 그래도 좋기만 합니다.

 

 

따뜻한 밥과 싱싱한 냉이국, 두툼하게 썰어 숯불에 구운 고기와

집 주변 텃밭에서 키운 채소들 담아 한끼 곱단하게 밥 먹었습니다. 사모님 요리솜씨가

이만 좋지 않으시더라구요. 예술가의 아내로, 수많은 손님상 차리고 감성마을

설립준비 해내시는 모습을 보니 놀랍기만 합니다.

 

두분 모두 건강하시고, 하하미술관 꼬마의 웃음처럼

선생님 가정과 그의 글을 사랑하고 좋아하는 모든 마니아들에게도

노란 샤프란빛 환희가 가득차는 봄이 되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