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고를 탈고 한 후, 무작정 주말여행을 떠났습니다.
내 안에 있는 걸 다 토한 후, 행여 글 속에 남아 있을지 모를
상처의 무늬를 위무하고, 껴안은 후에야, 세상에 나와야 합니다. 글의 운명이지요
텍스트의 영향권에 있는 이들에게 위로의 우산을 펼쳐야 합니다.
그것이 글의 힘이고, 인간이 인간에게, 주어진 문자향의 기능을 최적화하는
방식이라고 저는 생각해 왔습니다. 자판으로 알알이 박아넣은 글들이
책으로 묶여나올 시간을 기다리는 요즘 많이 초조합니다.
평창으로 여행을 떠난 것은 송어축제 전야의 모습을
담기 위해서였고, 두번째로 바람마을 의야지를 방문하기 위함이었습니다.
구름이 쉬어가는 길목, 선자령에서 내려 걷는 길은 고적했습니다.
눈발이 점점 굵어져서, 중간에 급히 서울로 돌아와야 했지만, 숲의 연두를 감싸안는 백설기같은
눈을 보니, 갑자기 영혼이 배고픔을 느끼는 건 무슨 이유였을까요?
진부길에 들어 처음으로 간 곳은 청심대란 곳입니다.
조선조 태종시절, 1418년 강릉부 대도호부사로 있던 박양수가 6년간의
임기를 마치고 조정 내직으로 영전되어 사랑했던 기생 청심과의 관계를 청산하고
올라가게 됩니다. 서울로 올라가 그녀를 부르겠다는 약속은 공약으로 끝나고, 병으로 시름시름
앓던 청심은 옛사랑의 그림자에서 벗어나지 못한채, 푸른 소나무 한 그루 아래, 높은
절벽에서 뛰어내리고 맙니다. 그렇게 푸른 멍울진 생을 정리하게 되지요.
특히 조선조의 야사들을 보면, 기생들과 지방관사들의 연애담은
여전히 사랑의 원초적 불가능성을 보여주는 이야기들일 뿐입니다. 특히 계급관계로
돌올이 말려있는 사회에서, 인간과 인간의 사랑은 매우 취약한 연대관계를 맺습니다. 사회적 약자인
여성의 죽음은 흔히, 정조관념을 일방적으로 강요하는 사회를 떠받치는 일화로
희화화 될 뿐이지요. 그래서 전 이런 식의 일화를 좋아하지 않습니다.
단 청심대에서 내려다보는 겨울 오대천의 풍광은 섬세하고
가냘픈 여인의 영혼을 닮았습니다. 그 속을 바라다 보고 있으면 마음 한구석이
스잔하게 아려옴을 느낄수 있을거에요.
평창 송어 축제를 준비하는 진부땅에 내려, 송어낚시장에 들렀습니다.
1월 초순부터 2월까지 한달가량 열리는 송어축제는 매년 강원 대관령의 눈꽃축제와 더불어
점점 지역 축제의 핵심으로 부상하고 있다지요. 단 포멧이나 디자인의 문제는 눈에 거슬리는 것이
많습니다. 초기란 점을 고려하면 이해할 만합니다. 더구나 관청이나 주무부서의 도움없이
철저하게 평창 구민들이 힘을 합쳐서 마케팅을 하고 있다는 점은 주목할 만 합니다.
그만큼 주무관청을 끼게 되면, 예산은 꼬딱지만큼 주면서 별별 잔소리를
늘어놓는 것이 이 땅의 행정관료들이기에, 농민들이 자립을 위해
스스로 조형물을 만들고, 프로그램을 개발하는 것이겠지요.
개인적으로 국제 마케팅 분야에서 일을 하지만, 문화체험을 위해
세계의 축제를 돌아다녔습니다. 스페인의 토마토 축제나 프랑스 망통의 오렌지 축제는
결국 그 지역의 산물을 축제를 통해 비축된 재고를 창조적으로 소진합니다. 그 정리의 방식이
너무 크리에이티브 하다는 거죠. 먹거리가 조형물이 되고, 사람들의 상처를 치유하는
게임물이 되는 것, 축제란 바로 내 주변의 산물을 가지고 지근 거리의
인간을 초대해, 기쁨과 환희로 승화시키는 것이지요.
문제는 강원 지역 내에 불고 있는 이런 바람이
체계적인 설계나, 철학의 부재로 인해, 너무 엇비슷한 포멧과
차별성없는 프로그램이 난무하게 되는 점은 아쉽습니다. 시간이 해결할 문제입니다.
이점에서 저는 진부 구민들의 가능성을 믿어보고 싶더군요. 이런 자발적 노력에 창조성이
자리잡을 가능성이 더욱 크거든요. 관련 단체장 분과 만나 이야기도 나누었는데, 프로그램 연구를
꽤 많이 하셨다는 걸 느낄수 있었습니다. 토착화된 프로그램 개발을 잘 해낼수
있길 기대합니다. 평창은 한국에서 송어 양식을 가장 먼저 시작한 곳입니다.
붉은 속살에서 배어나오는 솔향으로 인해, 송어란 이름이
붙었다는 건 아실겁니다. 육질이 쫀득한 서양 무지개 송어지만
한국의 순정품 물과 바람, 강설을 맞으며 세월의 결을 통과하는 송어들의 외피는
이미 한국향의 무늬들이 조형되어 있습니다. 귤이 회수를 건널 때 탱자가 되는 것과 같이
튼실한 이 땅의 어종으로 육성되는 송어를 얼음을 깨고 잡는 손맛이
아주 좋습니다. 얼음을 지치는 아이들의 표정도 밝습니다.
적송의 속살을 닮았다 하여 송어라 하기도 하고, 실제로
소나무 향이 난다고 해서 송어라 이름 붙여진 이 어종은 연어과입니다. 일인당 두마리만 가져갈 수
있는 낚시터에서 한 마리를 잡아 인근에 있는 휴게실에 가서 세팅을 부탁했습니다.
캐나다 밴쿠버에 있을 때도 이 무지개 송어를 종종 먹었습니다.
시장에 가면 뫼니에르를 하거나, 버터와 밀가루로 옷을 입혀 튀겨내는 것이
보통인데, 견과류 냄새가 나는데 독특했지요. 한국산 소나무향이 은은하게 배어나오는 건
역시 이 땅에서의 생육과정이 무시할 수 없기 때문이겠죠.
돌아오는 길에 숯을 굽는 공장에도 들러
참숯을 만드는 공정도 보고, 숯을 굽고 난 후 2일이 지나면 그 속에 들어가서
불가마 처럼 찜질을 할수도 있다고 합니다. 저 또한 1시간 동안 들어가 있었는데,
이틀이 지났다지만 후끈한 기운이 가득하더군요.
여행하며 눈이 강하게 내렸습니다.
공장에서 내려오는 길, 소나무의 연두빛을 가리는 눈빛을 봅니다
사물의 외곽선을 지우고, 모든 것을 단순하게 만드는 계절의 힘 앞에서
조용히 묵상의 시간을 갖습니다. 겨울 숲을 걷는 시간은 제게 많은 것들을 내려 놓으라고
명령합니다. 부질없는 허망감과 가식을 벗어버리고 철저한 본질의 상태로
회귀하는 겨울 숲엔, 봄의 연두를 향해 끊임없이
내적인 침묵의 시간을 감내하는 인고의 기운들이 가득합니다.
바람마을 의야지로 향했습니다.
의로운 사람들이 살아가는 마을, 땅이란 뜻이라는데, 이곳에선
양들을 겨울에 방목해서 키웁니다. 양몰이 개를 볼수 있는 재미도 있습니다.
여타의 강원지역 겨울축제처럼, 다양한 프로그램을 제공합니다.
5만여평의 횡계리 땅이 겨울이 되면 겨울 스포츠의 장으로 변화합니다.
원래 겨울이 되면 휴경기로 쉼의 시간을 가졌지만, 경쟁 앞에서 농촌또한 새롭게 변화하는 것이고
그런 모습을 일차적으로 보여주는 노력이라고 봐야지요.
일단 기존의 스키장이 줄수 없는 다양한 가족단위의 체험학습장이
될수 있다는 점은 좋습니다. 프로그램의 장점이라고 봐야지요. 다만 시작한 지 얼마 안되다 보니
옥의 티가 너무 많이 보입니다. 안전사고나, 눈썰매장에서의 안전유무 문제등도
고려해야 겠지요, 관광경영이나 이와 관련된 프로그램을 전공하는
학생들에게 인턴쉽 기회를 제공하면서 새로운 아이디어를
얻는 것도 좋은 생각일 듯 해서 적어봅니다.
얼음호텔을 짓기 위해 만들고 있는 석빙고동입니다.
겨울 여행은 항상 한적함이 생명입니다.
평창 송어축제가 시작되면 다시 한번 제대로 가보려고요.
개인적으로 저는 평창에서 마음에 들었던 것은
평창 한정식을 먹은 일입니다. 물가의 확연한 차이를 느낄수 있습니다.
미술관련 일로 인사동과 사간동을 엄청나게 돌아다니는 저지만, 언제부터인가
인사동 한정식 값이 부지기수로 올랐지요. 값이 오른 건 상관없는데
그만큼의 값어치를 못하는 게 요즘 서울 음식입니다. 황태부터 시작해서, 20가지가 넘는 나물과 요리가 나오는데
일인분에 12000원 하더군요. 일반 황태국도 5천원인데 반찬이 8가지 나오고요.
나이 들면서 왜 이런것에 예민해 지는지.....원. 그래도 적어봅니다.
평창은 한때 동계올림픽 준비로 부산했던 곳입니다.
그 꿈이 물거품이 되면서 가뜩이나 피폐해가는 농촌이 자발적으로
활로를 개척해 만든 것이 이 송어축제입니다. 아직은 부족합니다. 세계적인 축제들에
비해 미약합니다. 하지만 그 끝의 창대함을 믿어보려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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