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rt & Healing/내 영혼의 갤러리

강철로 그린 사과-우리시대의 표정을 그리다

패션 큐레이터 2009. 6. 18. 15:23

 


김병진_apple tree_철_110×92cm_2009

우리는 흔히 일상에서 선을 긋는다는 표현을 사용한다.

이 정도에서 선을 긋자 라던가, 혹은 그 사람과의 관계는 이 정도 선에서 마무리

하자던가 하는 식이다. 이렇게 선을 그으면 그와 나, 혹은 너와 나 사이엔 균열이 생긴다.

나름대로 사회를 살아가는 기술로서, 때로는 균형을 잡기 위해서 우리는 이 '선'을

그어야 할 때가 있다. 그러나 자칫 이 선은 서로를 분열시키는 파괴력을

발휘한다. 참 단순하지만 무서운 선의 힘이다.

 

선을 긋는 다는 건 너와 내가 다름을 견고하게

만드는 행위다. 선의 경계위에 잘못 섰다간 회색주의자로 몰린다.

그만큼 선은 우리를 나누는 강력한 힘이자, 규정하고 배제하고 소외시키는 기제다.

선의 안과 밖, 밖에 있는 자들의 삶은 무겁고 어둡다. 바로 미술판에서도 이런 선긋기는

예외없이 이루어져왔다. 흔히 주류 비평가란 자들, 이번 문광부에 의해

한국문화예술위원회 3대 위원장으로 선출된 오광수를 필두로

한국 미술계는 항상 정치적 담합과 책략을 통해

타인을 누르고 억압해왔다.


 

 

김병진_blossom_철선_140×140cm_2009

 

이번 한예종 사태또한 이러한 연속 선상에서 해석할 수 있다.

많은 분들이 한예종 사태를 두고, 그저 서사창작과와 이론과 폐지 정도로

끝나는 것인줄 알고 있다. 이는 현실과 동떨어진 이야기다. 좌파교수 색출이란 어의없는

색깔론을 동원해, 사회참여적 목소리를 내온 교수들을 짓밟고 우파의 인맥을 심겠다는 수작에 불과하다.

우파의 미학적 뿌리를 내리려는 시도가 아니란 점이다. 지금 한국 문화계에서 자행되는 이러한

강철의 선긋기는 철저한 이념을 빌미로 실력없는 자들이 기존의 예술가들이 쌓아놓은

열매를 노력없이 따먹으려는 기도다. 난 거저먹으려는 인간을 싫어한다.



김병진_black blossom_철선_60×60cm_2009

 

김병진의 조각은 철선으로 이뤄져 있다.

벽에 걸면 마치 드로잉 작품처럼 그냥 한편의 그림 같기도 하다.

그러나 자세히 보면 선들은 벽 위에 떠있다. 부유하면서 서로 엉켜들기도 하고

교합하면서 다양한 표정을 연출한다. 강철은 벼릴수록 강렬해지듯, 서로가

엉키며 토해내는 화음의 아름다움은 음악의 화성악을 떠올리게 한다.




김병진_Blue blossom_철선_79×137cm_2009
 
벽 위에 강철선으로 만들어낸 꽃들의 개화.
그 순간의 매력은 떨림이다. 강철선 위로 비추인 조명으로 인해
벽면에는 선들의 비루한 움직임을 그대로 반영하는 그림자 그림이 그려진다.
그런데 지금 이 땅의 문화계는 어두운 그림자만 있고, 어둠을 몰아낼 그 어떤 밝은 빛은
찾아보기가 어렵다. 주류의 비평가들은 조선일보를 비롯, 문화부의 미술계
없애기에 그 어떤 목소리도 내지 못하고 있다. 뭐가 두려운 걸까
 
우리사회가 직면한 한예종 사태는 단순히 국립예술대학의'
손보기가 아닌, 이 땅의 표현의 자유를 위해 싸워왔던 많은 예술가들의
생을 하루아침에 짓밟으려는 시도에 불과하다. 사립예술대학교수협의회란 극 소수의
교수들이 일종의 패거리주의를 선보이며 미술계를 비롯, 예술계 전체를 향해
포화공격을 한다. 그런데 약점이 너무 많이 보인다. 개인적 질시와 질투
성과를 내는 학교에 대한 투기감이 그대로 반영된다는 거다.
더 재미있는 건 그들의 질투를 일반 국민들이 이해하고 있다는 거다.



김병진_Mysterious blossom_철선_79×85cm_2009
 
그들은 이제 무리수를 두어야 한다.
감사에 대한 이의신청을 받아들이고 많은 부분에 오류가
있음을 인정하는 듯 하면서, 그저 여론이 가라앉길 바라는 눈치다.
아니다 다를까 이의신청서에 대한 문광부의 반응은 거의 반 협박에 가깝다.
 
"이제 한국예술종합학교의 발전을 위한 이번 감사와 결과에 대해
더 이상의 오해나 편견이 없길 바라며, 향후 예술교육의 본질을 왜곡하여
한국예술종합학교의 위상을 흔드는 일이 없길 바랍니다"
 
위상을 누가 흔들었다는 걸까? 그 위상을 애초부터
붕괴시키고 실험성과 아방가르드, 통합의 의미를 예술을 통해
보여주려 한 학교를 짓밟은 자들이 이제와서 위상을 흔들지  말라는 얼척없는
이야기를 내뱉고 있다. 정말이지 우스운 꼴이다.



김병진_chair_철_74×60×67cm_2009
 
선을 긋는다. 선을 그으면 경계가 생긴다. 이쪽과 저쪽으로 나뉜다.
그러나 이는 오로지 이차원 평면에서나 가능한 이야기다. 삼차원 공간에 선을 긋는다 해서
하나가 둘로 나뉘는 일은 없다. 삼차원 공간의 선은 하나의 방향이거나 축일 뿐이다.
선 주위로 모든 공간은 나뉨 없이 그대로 존재한다. 다만 선이 거기 있어
공간에 새로운 표정이 생겨난다. 삼차원 공간의 선은 그러므로 경계가 아니라 표정이다.
서로가 서로에게 격렬히 저항하며 빚어내는 그 원심력, 긴장, 균형이, 용틀임치는
커다란 덩어리로서의 조각 못지않게 통렬하다. 이렇듯 경계를 나눔으로써
사라지는 선이 아니라 공간에 표정을 부여함으로써 실재하는 선, 그래서
자꾸 다가가 어루만지고 싶은 선이 김병진의 선이다
 
미술평론가 이주헌 선생님의 전시 발문을 소개한다. 김병진의 조각을
이루는 선은 어루만지고 싶다. 비록 지금은 강렬하게 분산되고 투쟁하고 싶지만
언젠가는 웃으며 환한 시대의 표정을 토해낼 그런 선을 보여주기 때문이다.



김병진展_가변설치_2009
 
우리는 언제쯤 무지개색 예술을 하게 될까
고정된 하나의 색으로 예술을 규정하는 자들에게
우리는 언제쯤 삼차원 공간에서 제발 선긋기가 없는 생을
예술을 향유하고 만들며 행복할 수 있을까? 난 참 기다려진다.
이 칼날의 시대가 끝날 그날이 말이다.......
그때 우리는 발갛게 익은 달콤한 강철사과를 딸수 있겠지......
 
오늘 5시부터 문화부 앞에서 한예종 사태와 관련된 1인 시위에 들어갑니다.
마음속으로 사태의 조속한 해결을 위해 기도해 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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