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범준_The Sheepsaekkideul_가변설치_2009
오랜만에 미술관련 글을 써본다. 미술전문 블로그 공간에 사회적 논평이
가득한 건 역시대와의 불화 때문일까. 겉으로는 법과 정의를 내세우며 철저하게
경찰력을 이용, 국민의 소통을 막는 자들에게, 미술은 풍자를 통해 말을 건낸다.
신인작가 김범준의 그림은 언뜻보면 평화로운 풀밭위 양떼들이 보인다.
양무리를 가둔 짙은 갈색 나무 우리를 걷다보면, 청색기와로 지은 집이 보인다.
이국적 풍경과는 대치되는 청기와집. 그 아래 초록방초위로 시간을 보내는 예쁜 양들,
새어보니 딱 10마리다. 영어의 Sheep(양)이 딱 열마리니까 쉽새끼이자 10마리니
그저 십새끼가 된다. 이래저래 작가는 영어와 한국어의 어감을 교묘하게
이용, 답답한 현실속의 자신의 모습을 투영하는 것 같다.
김범준_웃고있는 양_합성수지에 자동차 도료_28×33×20cm_2009
웃고 있어도 웃는 것이 아닌 이 땅의 국민들.
작가 김범준의 이전 작업은 흔히 유명 카툰이나 애니메이션에 나오는
등장 캐릭터를 이용해 작품을 만들었다. 푸우나 바니, 스파이더맨과 같은 친숙한
캐릭터를 이용하되, 본래 그들이 있어야 할 영상 이미지 내의 맥락을 제거한 채, 엉뚱한 상황에
배치시킴으로서, 이질적인 미감을 자아낸다. 그가 지금까지 보여준 작업들은 유쾌하다
밤비와 푸우를 소재로 '밀렵'시리즈를 만들어 환경에 무차별적 살육에 대한
유모섞인 비판을 했는가 하면, 건전지를 과다 섭취해 뚱뚱해진
비만아톰의 모습을 보여주기도 했다.
이번 작업을 위해 참고한 것은 예전 후지TV에서 했던
스팟 애니메이션 Stray Sheep (잃어버린 양)에서 아이디어를 얻었다고 했다
더 놀라운 건, 큰 걸개그림으로 그린 화면 속 청색기와집이 있는
이 그림을 벽에 걸어놓은 잠시, 누군가가 그의 그림을 불태워버리려고 했다는 것이다.
범인은 잡혔다. 범인은 그저 푸른 기와집을 작게 그려서란다. 참 어의가 없다.
원래 있어야 할 자리를 떠나 엉뚱한 상황에 놓이게 될때
사물은 우리에게 '이전에는 보지 못한, 혹은 듣지 못했던 목소리'를 전한다.
미술에서는 흔히 이것을 데페이즈망이라고 한다. 컨텍스트가 바뀐다는 것, 맥락이 바뀌는 것이
이렇게 사물 전체를 둘러싼 의미의 해석까지 바꿀 수 있다는 건 중요한 메세지다.
김범준_화가난 양_합성수지에 자동차 도료_28×33×20cm_2009
6월 10일 민주항쟁 기념일날, 서울 시청앞 광장을
여는 일 자체가 그리도 어려웠을까? 경찰과 오세훈 시장, 청와대에 이르기까지
왜 그들은 광장 공포증에 걸려있을까? 푸른 방초위에 있어야 할 국민들, 이 쉽새끼들이
풀밭에서 노니며 밥을 먹을수가 있나, 쉴수가 있나, 이래저래 화가난 모양이다.
입이 비쭉 튀어나오고, 눈은 치켜올려져 분노로 가득한 내면을 표현한다.
김범준_연애하는 양_합성수지에 자동차 도료_28×33×28cm_2009
김범준의 전시에서 본 작업은 캐릭터를 이용해, 우리들의
삶의 표정과 모습을 담아내고, 데페이즈망적 상상력을 통해 사회적 말걸기를
시도한다. 국민은 풀밭위를 거니는 양들이다. 위정자는 이 양을 돌보는 목자여야 한다.
양을 상대로 편취하고 거짓말을 일삼고, 폭력을 행사하는 이리가 되어서는 안된다.
오늘 한겨레 신문 기사를 보니 작년 촛불항쟁을 배경으로
한 여자는 촛불로 또 한 남자는 전경으로 만나 사랑에 빠진 이야기가 나왔다.
세상은 그런것이 아니겠는가? 칼과 칼이 마주하고, 강철을 벼리듯, 폭력으로 우리를
길들일수 있다고 믿는 그 때에도, 사랑은 피어난다. 시민광장이란 저 풀밭위에서
하긴 작가는 이 연애하는 양에 대해서 (하라는 정치는 안하고)
서로를 쳐다보면 무언의 메세지만 열심히 날리는 국회의원을 빗대었다고 했다.
김범준_눈치보는 양_ 합성수지에 자동차 도료_26×30×20cm_2009
그래 참 무서운 세상이다. 이제는 국가에 대한 일련의 비판도
눈치를 봐야 하고, 정작 폭력에 의해 쓰려진 국회의원을 칭찬하고
한쪽에선 화려한 패션 화보를 찍은 의원을 비난하는 것도 그저 명예훼손이란
멍에를 매어야 하는 양들의 운명은 침묵으로 일관할 수 밖에.
예전엔 그저 주어진줄 알았다. 우리에게 동일한 가치로 주어진
저 광장의 푸른 풀밭이 언제부터인가, 허가를 일일이 받아야 하고, 그 나마
말도 안되는 이유로 기각되는 현실앞에서 새끼양들은 좌절한다.
저 멀리 있는 '파란 기와지붕'엔 도대체 누가 살길래
목자가 되는 대신 눈치를 보게 한단 말인가?
김범준_The Sheepsaekkideul_합성수지에 자동차 도료_가변설치_2009
양들은 오합지졸 정치인을 의미한다
잃어버린 자유로 인해 눈물흘리며 우는 양이 있는가 하면
한편으론 다른 친구들은 다 해먹었는데 나만 운나쁘게 걸렸다며 우는
양도 있다. 경제위기 극복을 위해 매일 일하다가 피곤으로 깜빡 조는 양도 있다.
뭐 이도 저도 아니면 아니면 푸른 기와집에 사는 분의 의지대로 수동적으로
'따라와주기만 원하는 욕망의 대상물로 해석할 수도 있겠다.
지금 우리 사회는 작품 속 양들처럼 목자가 없다.
목자가 되기보다, 양의 껍질을 벗겨 팔 생각을 하는 자들에게
목자의 역할을 해달라고 말하기도 어렵다. 그러니 누구를 탓하겠는가 정치논리로
예술을 침탈하고, 그저 침묵하는 양으로만 있기를 바라는 누군가에게 작가는
화난 양의 모습을 투사해, 그 의지를 분명히 밝히고 있다. 양들의 침묵을
우습게 아는자, 그 선한 양들에 의해 언젠가는 짓밟히리라고.
당신은 어떤 양이 되고 싶은가? 작가는 우리에게 묻고 있지 싶다.......
우리는 그저 편하게 자유를 누리고 싶다. 뭉게구름 아래
저 초록빛 풀밭위에서 뒹굴고 싶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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