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rt & Healing/내 영혼의 갤러리

비 오는 날에 보면 좋은-김영민의 그림展

패션 큐레이터 2009. 4. 20. 02:21

 

 
김영민_투명y-Untitled_캔버스에 혼합재료_162.2×130.3cm_2008

 

하루 종일 밀린 잠을 잤습니다. 균형이 깨어지는 건 좋은 일이 아니지만, 원 없이 늦잠을 잤습니다. 토요일은 KT&G 상상마당에 패널로 초대되어 100분의 참석자들을 대상으로 <대중비평시대의 글쓰기>에 대해 포럼을 가졌습니다. 한겨레 구본준 기자님을 뵐수 있어서 기뻤고, 씨네21을 열혈 구독하던 시절, 좋아한 문화평론가 김봉석님도 직접 뵈었습니다. 글쓰기에 대한 포럼이었지만, 저 스스로 비평행위의 아마추어와 프로의 차이, 리뷰와 크리틱의 차이에 대해서 생각해 볼수 있었던 시간이었습니다. 오늘은 오전에 <퍼블릭 아트>에서 인터뷰를 한다고 해서 빨리 나가봐야 할것 같습니다.


글을 쓰는 새벽시간, 월요일엔 거센 비가 내릴거란 예보에, 내일 아침 입고 나갈 옷과 우산을 다시 챙겨봅니다. 예전 보았던 김영민의 그림이 떠오르네요. 캔버스 가득 흔들거리는 물의 표면. 빗물은 모여 어디로 흘러갈까요. 빗망울이 낙하하는 형상, 대지에 부딪치며 만들어낸 파동과 상처가 보입니다. 비오는 날, 괜이 뒤숭숭한 마음에 더욱 쓰린 건, 빗물의 흔적이 도시 아스팔트의 표면위로 부딪혀 사라지는 모습에서 우리 안의 내면을 보기 때문일 겁니다.

 



김영민_Remember-00_OHP필름에 디지털프린트_2008

 

김영민의 작업을 볼때마다, 창가에 부딛치며 흘러내리는 빗망울 속엔, 뭔가 우리에게 하고 싶은 말을 쉽게 파열되는 멍울진 몸 속에 담고 있지는 않았을가 하고요. 창가에 소연히 귀를 대면 또르르르르, 작은 멍울은 또 다른 상처의 멍울과 몸을 합쳐 더욱 커진 물방울이 되어 떨어집니다. 상처란 그런것인가 봅니다. 작은 것들이 뭉쳐 큰 상처가 되고, 패인 균열을 매우기 어려운 상태가 됩니다. 작은 파동을 일으키는 청록빛 빗소리. 이런 날은 유독 피아노를 치고 싶습니다.

 

오크나무 낡은 피아노의 껍질을 열면, 세월의 겹속에 누르스름하게 변한 건반이 보입니다. 그 알몸을 톡톡 누를때마다, 머리 속엔 빗망울의 패턴 만큼이나 조율되지 않은, 음표들이 비에 젖어 팽팽하게, 내 머리 속을 떠돌지요.

 



김영민_투명g-Untitled_캔버스에 혼합재료_130.3×162.2cm_2008

 

김영민의 작업을 볼 때, 생에 대해 반추해 볼수 있는 건, 역시 물이 가진 운동성이 우리에게 건내는 몇 마디의 말 때문입니다. 쉼이 없이 반복되는 빗망울의 패턴과 운동성. 어느 한 순간도 쉼없이 지향점을 향해 달려가야 한다고 말합니다. 이 수많은 빗망울은 어디로 흘러갈까요? 일본처럼 빗물을 사용하는 생태 도시를 만들지 못한 우리들. 빗물은 유실되고, 끊임없는 가뭄속에 목마름을 경험합니다. 쉼없이 달려가는 동안, 비축하지 않고, 마냥 쓰기만 한 탓에, 빗물의 운동성도 아스팔트의 차가운 기운을 뚫지 못하고 흔적없이 사라집니다. 비의 운동성을 내 몸에 맞아들여, 생의 에너지로 쓰지 못하는 우리의 모습이 보입니다.

 



김영민_투명a-Untitled_캔버스에 아크릴채색_116.8×91cm_2008

 

작가 김영민은 자신의 작품 속 빗방울의 움직임은 과거의 시간들을 되새김질 하도록 돕는 창구의 역할을 한다고 말합니다. 빗물과 과거의 기억을 대칭시킬수 있도록 하는 건, 역시 여러가지 빛깔의 빗망울이죠. 그가 여러가지 컬러를 통해 비의 움직임을 표현하는 건, 바로 빗망울 하나하나에 추억의 향기를 담아내기 때문입니다.

 



김영민_투명g-Untitled_캔버스에 혼합재료_72.8×60.6cm_2008

 

생의 답답함이 내 일상의 무게를 누르는 시간, 하늘은 온통 짙은 회색구름으로 덮여 있는 지금 김영민의 작품 속 초록빛 빗망울의 파동이 신선하게 내 마음의 한 구석을 메워 주기를 그저 바라고 있습니다. 5월 부터는 많은 것들이 변하게 될 것 같습니다. 우선 부모님을 떠나 독립하게 될 것이고, 스스로 글을 쓸수 있는 공간을 마련하려고 준비하고 있습니다.





김영민_Untitled_캔버스에 아크릴채색_162.2×130.3cm_2007

 

비가 오는 날은, 유독 가슴 한구석이 아립니다. 빗망울의 슬픈 연가를 따라 부르며, 과거의 시간속으로 침잠하게 되죠 독립해서 살게 되면, 이런 시간이 더 많아질지 모르겠습니다. 한편으론 힘이 납니다. 주변의 신경쓸 일이 많이 줄어들고 글쓰기에 전력 할수 있을테니까요. 버지니아 울프처럼 '자기만의 방'을 갖고 열심히 글의 음표를 악보에 그릴 것입니다. 서재도 더 멋지게 꾸미고, 가능하면 피아노도 사서 놓고 싶어요. 멋진 월요일 아침, 환하게 내리는 빗망울 수만큼 행복하시고, 초록색 영혼의 빗망울, 영혼의 저수지에 마르지 않도록 담아두시는 하루 되길 바랄께요.


유니스 황의 休-Rain 을 올려놓습니다. 마른 땅을 충분히 적시는 비가 왔으면 좋겠어요. 너무 목말랐잖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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