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rt & Healing/내 영혼의 갤러리

나무는 엄마다-행복의 나무 아래 쉬던 날

패션 큐레이터 2009. 4. 22. 01:42

 

 

아침 제 기억의 흐린 풍경들 사이로 비가 내립니다. 아침에

갓 걸러낸 커피 한잔 마시며, 오늘 하루를 시작하고 새로 산 몇 권의 책을

서재에 꽂아둡니다. 오늘은 라디오 방송에서 <바나나로 못질할 만큼 외로워>란 일본

소설과 <한국의 글쟁이들>이란 구본준 기자님의 책을 소개했습니다.

목요일이 세계 책의 날이랍니다. 그래서 글쟁이들의 글쓰기

방식을 통해, 우리의 글쓰기 습관을 바로보고, 도움을

얻을 수 있지 않을까 해서 골랐던 책입니다. 
 

오후 인사동에 나갔습니다. 지나가다

재미있는 입간판이라 찍었습니다. 원래 빈티지랑 핸드 메이드

패션제품을 다루는 가게인데 표찰이 인상적이지요. 아침에 내린 비로 거리는

가지런해졌고 청신한 봄냄새가 지난 가물었던 목마른 도시의 혈흔을

어루만지며 지나갑니다.

 

 

 

육심원씨 작품이 있는 갤러리를 지나

인사동 거리를 스쳐지나갑니다. 빨강색 가방 속

풍성하게 퍼머넌트를 한 예쁜 아가씨의 모습이 눈에 들어오네요.

 

 

오늘은 서양화가 박정민 선생님의 작품을 보러갔습니다.

예전 한눈에 반했던 작품은 여전히 동일한 테마를 통해 변주되고 있습니다.

일상의 행복과 그 속을 살아가는 가족의 모습입니다. 너무나 이상적인 공간이지요.

가족을 이루고 산다는 것은, 마치 한 그루의 튼실한 나무를 키워가는 일임을

그림을 통해 겸허하게 배워갑니다. 예전 엄마등에 저렇게 업히는걸

그리도 좋아했던 저였답니다. 이제는 그리움만 가득하지요.

 

 

마치 편안하게 자신의 가족을 이야기로 풀어가는 듯한

느낌의 그림들이 전시회 공간을 가득 메웁니다. 세부적인 묘사보단 색의 덩어리로

감정을 풍성하게 표현하기에, 소박하면서도 정감있는 내면의 풍경이

더욱 잘 드러납니다. 어떨땐 한편의 동화 일러스트 같은 느낌도 들지요.

 

 

나무 아래 연인같은 부부의 모습이 따뜻합니다. 

쉼을 뜻하는 한자의 휴(休)자를 보면 사람이 나무에 기대어 있는

모습을 형상화 한것이지요. 인간의 쉼에 자연이 기대어

있는 것, 아니 자연이 없이 쉼이란 있을 수 없음을

다시 배우게 됩니다.

 

 

이틀동안 쿠데타처럼 봄의 환희를

꺽으려는 비 소식으로 연두빛 봄날의 시간은

그 뿌리에 작은 생채기를 내었습니다. 짧디 짧은 봄날,

그러나 내일 아침이면 봄은 속살 깊이 숨겨둔 꽃들을 만개하여

분기충천, 식어버린 육면체 도시의 곳곳에 봉기를 하겠지요.

빗망울이 쓸고간 아스팔트의 차가운 미감 위로 다시 한번 봄꽃은

들불처럼 일어나 생존하는 자의 몫을 채워주려하겠지요.

 

 

이제 4월도 마지막을 향해 달려갑니다.

올해 3권의 책을 쓰겠노라 결심했지만 제대로 초고 하나

보내지 못했습니다. 이제 독립해서 제 자신의 공간을 갖게 되면

더욱 가열찬 글쓰기에 들어가야지요. 정말 편집자들에게

미안할 뿐입니다. 글이란 것도 결국은 산물이어서

약속한 데드라인은 반드시 지켜야 하거든요.

 

첫술을 떼기가 쉽지 않습니다.

정말 좋은 아이템이라고 제가 스스로 기획해서

가져간 것이지만, 통찰력과 충실한 내용을 가질것을 요구하는

편집자의 주장앞에서, 내 자신이 너무 쉽게 가려 한 것은 아닐까 반성도

해보게 되구요. 흐드러지게 핀 봄꽃처럼, 한줄 한줄 읽을 때마다

과실 베어물듯, 묵향이 흘러나오는 글 쓰고 싶습니다.

사실 지난 3개월 동안 슬럼프에 몸서리 쳤는데

이제 일어서야겠습니다.

 

글쓰는 이의 고통이 읽는 이의 행복이 될때

사실 고통이라 표현하기엔, 나 스스로 원해서 선택한 고통을

성장통으로 받아들이지 못한 내 자신의 부족함부터 살펴야겠습니다.

 

 

나무가 손끝이 가늘어진 것은 /바람이 묶어 놓은 매듭을 푸느라 /닳아진 까닭이다.
나무가 등이 시리도록 꼿꼿한 것은 / 교과서가 얹어준 거름으로 / 진리를 먹었기 때문이다.
나무가 [하늘이 파랗다]고 / 말 할 수 있는 것은 / 하늘을 가까이서 보았기 때문이다.
나무가 밤에도 누워 잘 수 없는 것은 / 낮에 태양이 쏟아 놓은 사랑을 / 올올이 엮고 있기 때문이다.
나무가 순순히 쓰러져 죽어가는 것은 / 또하나의 희망이 발 아래에서 / 움트기 때문이다

 

김윤자의 <매듭을 푸는 나무> 전편

 

글을 쓰는 일이 내게 쉼인것을, 글쓰기가 어렵고

호흡을 견뎌내기 어렵다고 도망한다면, 저는 이곳에서 오랜 세월을

버티고 지켜온 제 자신을 쉽게 버리는 일이 되겠지요. 어려운 생의 매듭을

푸는 것도, 결국 내가 시작한 일을 다시 바라보는 작업에서

시작해야 하는 것임을 다짐하게 됩니다.

 

작가 박정민이 그린 저 만화방창의 세상, 나무아래

행복하게 쉬고 싶습니다. 이 공간이 여러분에게 항상 그런 곳이

되길 그저 바랄 뿐입니다. 저는 이 영혼의 정원을 가꾸는 정원사가 되어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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