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rt & Fashion/패션과 사회

사회를 디자인하는 남자-박원순 변호사와 함께 보낸 하루

패션 큐레이터 2009. 4. 6. 18:28

 

 

박원순 변호사님을 만난날은 겨울의 환이 녹지 않았던 어느 토요일 아침 8시. 그가 상임이사로 계신 희망제작소로 갔습니다. 9인승 승합차에 시사인의 고재열 기자님, 파워 블로거 문성실님, 중앙일보 시민사회연구소 최준호 부장님이 모였습니다. 원래 <사람아 사람아> 폴더는 인물탐구 및 인터뷰를 올리는 곳입니다. <행복한 가게>앞을 지나며, 시민사회에 대한 열정으로 생의 문을 열어가는 변호사 박원순님을 언젠가는 뵈어야지 마음먹었습니다. 박원순 선생님과 함께 마포지역을 돌면서 지역공동체에 기반한 풀뿌리 민주주의를 위해, 시민사회가 역량을 어떻게 모으고 변화시킬수 있는가를 살폈습니다. 하루란 시간을 꼬박 보낸 여정길에서, 오랜세월 사회를 디자인하고, 그 구성원의 희망을 설계해온 운동가의 모습을 살펴볼수 있었죠. 통합교육을 지향하는 대안학교 성미산 학교와 기존의 아카데미에서 벗어나, 지역전문가를 육성하는 체화당 사회학교, 마포 생협, 홍대아트마켓 담당자를 만나 신생 작가들을 어떻게 보호하고 육성할 것인가의 문제를 토론했습니다.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대단한 발명가나 혁명가나 사상가가 아니다. 전통 문화적 실재와 보편적 코스모폴리탄 실재 사이에서 긴장하면서도 여유 있게 자신의 삶의 터전을 지켜가는 자기 성찰적 주민들의 꼬물거리는, 작은 움직임들이다. 갖가지의 작은 실천을 통하여 새로운 언어를 만들어 가는 것이다"  조혜정의 <탈식민지 시대 지식인의 글 읽기와 삶 읽기3>

 

15년이 흐른 지금, 손때 묻은 텍스트 속 언어는 지금까지도 실현되지 않고 있음을 배웁니다. 여전히 우리 사회를 규정하고 해결책을 스스로 찾기보다 미국이란 거대한 초자아에 기대어 해결하는 마음의 습관이 베어있는 우리. 시민운동은 바로 작은 우리들의 움직임을 만들려는 노력입니다. 성미산학교의 옥상에는 습지가 있습니다. 이곳을 찾아드는 건 목마름을 해갈하려는 새들과 삭막한 도시풍경 속에서 생명을 이어가는 수많은 풀벌레들입니다. 어륀지 발음을 만들기 위해, 혀를 성형하고 다른 이들보다 먼저 국영수를 배워 습득하는 교육이 아닌, 일상과 조화된 통합교육으로 이름을 얻고 있는 학교지요. 대안교육을 꿈꾸지만 교육부와 일반 사회의 차가운 시선과 부족한 지원에 자맥질을 하며 버텨야 하는 곳. 우리는 언제부터 대안학교를 생각할때 앞에 언급한 표현으로 그들을 설명합니다.

 

 

아이들의 손끝으로 만들어진 공예작품들을 봤는데, 그 실력이 비범합니다. 우리는 여전히 미술을 하기 위해 석고댓생을 하며 서양인의 인체비례를 배우고, 서양의 색상환에 길들여진 색채감각을 체득해야 합니다. 현실이 이러니 따라갈수 밖에 없지 않느냐. 괜히 기러기아빠로 고생하는줄 아느냐?고 반문할 분이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결국 자조섞인 패배의 배후에는 우리 스스로 사회를 해석하고 변화시키기 위한 작은 움직임을 게을리한 어른들의 책임방기가 있습니다. 반드시 알아야 합니다. 아니 깨달아야 합니다. 학교에는 이미 경쟁에 낙오된 아이들이 이불공부와 왕자가 되어 수업이 되면 잠들기 일쑤고, 공교육에 대한 철학과 지원을 키우기 보단, 실력좋은 학원강사 이름을 많이 아는 엄마가 훌륭한 교육열을 가진 사람으로 포장되는 사회. 이걸 사회적 적응이라고 말해서는 곤란합니다.

 

 

"부분을 깊이 파고들면 그곳에 전체가 있다"는 프랙탈 이론의 명제를 기억해봅니다. 작금 이 땅의 교육현실, 작은 교실에서 벌어지는 미세한 풍경을 깊게 파고드는 것만으로, 우리는 많은 것을 얻을 수 있습니다. 교육의 위기와 서열화, 무한경쟁 속에 도태되어 가능성을 개발하는 일을 일찌감치 포기한 아이들이 보입니다. 이 아이들을 구해내야 합니다. 기존 체제에 안주하기 보다, 자신의 삶을 우리 아이들의 삶을 낯설게 보고, 자세히 보고, 그 속에서 잉태되고 있는 진행중인 희망을 찾아내야 합니다.

 

아이들의 고물고물한 신발이 가지런히 놓여진 붉은장을 보다가 그런 생각이 들었네요. 제발 이 신발장에 놓여진 신발의 위치가 서열과 사회적 우대와 약자에 대한 철저한 배제와 같은 철학과 연결되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이곳 성미산 학교를 구석 구석 살펴봤습니다. 요리교실에서 음식만들기를 익히는 아이들의 손길이 어찌나 뛰어나던지 그 중 한 아니는 외국의 제이미의 키친처럼 최고의 요리사가 되고 싶어합니다. 물론 이 아이가 구워낸 브로니 쿠기를 먹어보니 그 맛이 정말 좋습니다.

 

마포지역을 특별히 돌면서 이 성미산 학교를 주목하게 된 데는 몇가지 이유가 있습니다만, 이곳이 공동육아를 취지로 뜻을 함께 했던 사람들이 모이며 도시에서 사라진 우리들의 '마을'개념을 조금씩 복원해가는 곳이기 때문입니다.

 

마포 FM 라디오는 반경이 1킬로미터 조금 넘은 소지구 라디오지만, 바로 내 이웃의 소식을 들을 수 있는 매체이기도 합니다. 마을 개념이 현대화 속에서 사라지면서, 거대한 아파트 구조와 그 속에서 살아가는 이들이 누구인지, 아이들이 실종되고 유기되어도 어느 집 아이인지 모르는 사회. 모더니즘 사회가 잉태했던 어둠의 모습입니다.

 

성미산학교 사람들은 “우리 마을”이라는 표현을 아주 자연스럽게 씁니다. ‘우리 마을’은 성미산을 둘러싸고 있는 마을입니다. 그날도 길을 걷다가 어떤 분이 저희를 보시보건 "우리 마을 분들이 아니신가 보네요"라는 말에 깜짝 놀라기도 했습니다. 이런 마을에서 아이들이 뛰어논다면, 유기되거나 납치되는 아이들이 생길까요? 창문으로 어른들이 차를 마시며 아이들의 일거수를 보고, 가르치던 옛날 우리들의 정겨운 모습, 그 원형이 조금씩 배어나오는 걸 경험합니다.

 

저는 이 땅의 아이들이 고도의 사교육 속에서 정작 학습능력을 퇴화시키고 있다고 믿는 쪽입니다. 불안하고, 급속한 변화의 속도 속에 놓여진 세상. 그 속에서 살아남기 위해선 주변부를 읽고, 메인으로 떠오를 것들을 스스로 찾아내고, 자기가 공부해야 할 내용을 스스로 기획하고 관리할 수 있는 능력이 필요합니다. 바로 공부에도 큐레이터의 시선이 필요하다는 것이죠. 전통과 현대의 고리를 잇는 매개를 찾고, 그 속에서 지혜를 얻고, 내 자신에게 가장 어울리는 스타일의 지식을 모으고 축적해서 변화 속에서 당의정처럼 꺼내쓸수 있는 능력. 그것이 바로 교육의능력입니다.

 

체화당은 경북 상주에 있는 조선시대 가옥의 이름으로 ‘어깨동무하고 선 산벚나무처럼 사이좋은 형제처럼 배움과 뜻을 함께 한다’는 의미를 갖고 있습니다.

 

이화여대 후문에서 공대 쪽으로 담벼락을 따라 올라가는 곳에 자리해 있는데요. 2001년 연세대 정외과 이신행 교수가 자신의 집 1층과 지하층을 개방해 이 지역 학생과 주민들을 위한 문화공간으로 만든 것이 시초입니다.

 

신촌민회와 풀뿌리사회학교가 이곳을 근거로 여러 사회활동 및 지역활동을 펼치고 있다. 물론 지나가다 편하게 차 한잔 마실 수 있는 카페이기도 합니다. 지역 전문가가 되고 싶은 사람들은 이곳에서 관련 과목들을 공부하고 현장 전문가들과 함께 프로젝트를 수행하며 지식을 몸으로 체화시키는 곳이기도 합니다.

 

인문학의 죽음을 목도하는 사회. 경쟁논리만이 판을 치고 제외되고 배제된 사회적 약자에 대한 배려가 없는 사회. 바로 신 자유주의란 사단의 세력이 만들어낸 우리의 정신적 내면입니다.

 

마음의 터를 짓는 일에 익숙하지 않은 사회. 인문학 교육 이외에도 현장 전문가와의 연결을 통해 지역의 현안들을 배우고 마을 사람들이 힘을 합쳐서 해결하는 공동체를 만드는 일. 바로 체화당이 만들어내고자 하는 지역전문가의 모습입니다.

 

우리사회는 전문가는 많은데 말만 많고, 실제 처리를 하라하면 현장을 모르고, 그 현장은 각각의 특성이 있건만, 정작 현장 속 이들은 일반화된 논리만 배우느라 시간을 소비해왔던 것이 사실이지요.

 

 

성미산 학교의 교장선생님과 이야기를 나누는 박원순 변호사님의 모습입니다.

 

 

점심시간에는 나무식당에 들러 발우공양처럼 밥을 먹는 곳에서

식사를 함께 했습니다. 원래 이 공간도 철학자 윤구병 선생님이 가지고 있던 곳인데

박원순 변호사님께 맡겨 이 공간으로 만든 것이라고 하네요. 자기가 먹을 수 있는 만큼만

적당하게 덜어내 먹고, 남김없이 물로 씻어내 그 한방울까지 먹는 것

거대한 효율 속에서 쓰레기로 남겨지는 우리들의 욕망과

싸우는 불교적 발우공양의식으로 점심을 함께 합니다.

 

인터뷰를 하면서, 마포지역을 함께 돌아다니면서 느낀 것은

박원순 변호사님이 가진 시민사회에 대한 열정입니다. 많은 이들을

지역공동체의 전문가로 육성하고, 새로 짓기 보다, 이미 있는 것을 잘 활용하고

그 효익이 많은 이들에게 되돌아가도록 하는 것. 자연스런 재활용을 통해

새롭게 용도를 만들고 사용하는 일. 이런 작은 시민들의 움직임이

정작 우리가 살고 있는 사회를 구성하는 힘임을 배웠습니다.

 

 

청바지를 리폼해서 만든 드레스가 곱지 않나요? 저는 개인적으로 매우 끌렸습니다.

아이디어가 참신하다고 생각했어요. 개성도 있고요.

 

 

건강한 시민사회를 이루는 하나의 축으로서, 우리가 간과하지 않아야 하는 것이

바로 윤리적 소비입니다. 제대로 쓰는 것입니다. 안사고 안먹는 것이 아니라, 쓰였던 것에서

새로운 가능성과 역할을 찾아내고 이것을 리폼하고, 재생해서 쓰는 것. 그 산물들을 잉태해준 자연과

순환되도록, 최선을 다해 호흡의 마디마디를 연결해내는 창의적 활동이 우리에게 필요합니다.

 

 

지역 공동체의 전문가와 관련 인터뷰어들을 만나면서

일일이 노트북에 필요한 내용과 사항들을 꼼꼼이 정리하고, 이들을 도울수 있는

사람들을 함께 연결시키려 노력하는 변호사님의 모습에서, 사회내부에

잠재된 열정을 디자인하는 패션 디자이너(Passion Designer)의 모습을 봅니다.

 

 

마포 생협에서는 성미산 공동체의 멤버들이 모여 단체 구매를 하고, 이를 주부의 눈으로 꼼꼼히 살펴 건강한 식재료와 유기농 재료들을 생협에서 저렴한 가격에 팔고 있습니다. 마을 단위로 구매를 한다면 충분히 지금같은 식재료의 위험사회에서 우리를 지킬수 있는 방법이 모색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했지요. 최근 석면검출 기저귀에서 GMO와 같은 유전자 변형곡물의 공포, 중국산 농작물의 창궐 속에서, 건강하고 안전한 식거리의 취급이 중요한 시대가 되었습니다.

 

2000명이 넘는 생협조합 회원들이 힘을 모아 업체를 선정하고 먹거리를 생산하는 구조는, 업체 측에서 볼때도 건강한 선순환의 구조를 만들어냅니다. 하나같이 문제를 일으켰던 식재료 회사들이 재벌 대기업들의 방계회사였던 기억해 보세요. 법적 구속도 제대로 받지 않고 번번히 피해가는 그들의 작태 앞에서, 우리들의 건강을 지키기 위한 작은 움직임, 생협의 탄생은 큰 의미를 가집니다.

 

 

일상예술창작센터(프리마켓사무국)는 문화예술에 대한 애정과 관심을 가지고 있는 시민, 학생, 작가, 전문가 등이 자발적으로 모여 활동하는 비영리민간단체입니다. 일상과 예술이 만나는 예술시장 프리마켓을 홍대앞, 이천시, 부천시, 광주 등에서 기획해 진행하고 있으며 프리마켓의 확산과 생활창작의 활성화를 꾀하고 있습니다.

 

 

문화 생산과 소비의 낡은 틀을 벗어나 창작자와 시민이 주체가 되는 문화를 일구기 위해 다양한 활동을 전개하고 있습니다. 토요일 오후 부산한 홍대 거리를 걸었습니다. 거리를 장식하는 화려한 그라피티가 눈에 들어오고, 생활예술을 꿈꾸는 이들이 만든 예술작품을 보면서 이들의 창의적인 힘을 보호하고, 생활 속에서 더욱 풍성하게 키워갈수 있도록 연계하는 문제에 대해 고민했습니다.

 

 

사무국장님과 심도깊은 토론도 하고, 나름대로의 의견도 개진해봤습니다. 저는 생활예술에 누구보다 관심을 갖고 있습니다. 이날 제겐 가장 많은 생각거리를 던져준 미팅이 아니었나 싶네요.

 

 

 

Think Globally, Act Locally란 표어를 잘 아실거에요. 우리의 마을은 인터넷으로 세계의 곳곳과 연결되는 네트워크 사회를 형성합다. 그렇다해도 여전히 지역을 중심으로 한 작은 실천의 움직임이 세상을 변화시키는 가장 큰 힘이 되리라는 것. 그것을 믿는 것이지요. 박원순 변호사님께서 해주신 많은 이야기들, 한번의 포스팅으로 다 정리하지 못해 아쉽습니다.

 

정부는 수많은 예산을 들여 블로그에 투자했습니다. 단시일내에 파워 블로그의 위치에 서게 된 건 자본의 힘으로 몰아붙인 컨텐츠의 힘입니다. 블로그가 1인 미디어임에도 불구하고 17대 1의 싸움이라는 말이 돌 정도로 대학생 기자단에서부터 품평단에 이르는 이들을 자본의 힘으로 사들인 결과입니다. 이에 반해 시민사회의 블로그는 예산부족으로 소통의 어려움을 겪고 있지요. 그러나 이런 생각을 해봅니다. 돈의 힘으로 얻을 수 있는 사람의 마음에는 한계가 있다고요. 결국 우리의 삶을 읽고 그 삶을 만들어가는 과정에서 우리는 연대할수 밖에 없으며 사회운동에 참여할 수 밖에 없다는 사실을 인정하게 되더라구요. 우리는 지금의 구조를 탈출하는 것이 아니라, 안과 밖을 자유로이 넘나들며 바로 자생적 생을 만들어가는 열정의 디자이너라는 점을요. 박원순 변호사에게 바로 그런 인간의 모습을 봅니다.

 

우리는 호모 데지그넌스(Homo Designance)니까요. 우리의 삶을 디자인하는 열정을 계속해서 키워가길 소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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