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1 Phantom of Opera |
오페라의 유령은 하우스가 아닌 영혼속에 산다 |
최근 서울은 2014년까지 한강 노들섬에 한국판 오페라하우스를 건립, 세계적 랜드마크로 성장시키겠다는 청사진을 제시했다. 2005년 부터 계속된 논의에도 불구하고 민자유치 실패로 패색이 짙었던 프로젝트가 현 정권의 등장과 더불어 새롭게 부활한 것이다.
오페라 하우스를 가본지도 꽤 세월이 흘렀다. 6시만 되면 온통 하늘은 오렌지빛 노을기운으로 가득차고, 배를 타기전 먹었던 싱싱한 새우 샐러드, 바다의 직물위에 백색 포말 무늬를 수놓으며 진수하는 크루즈. 그 속에서 함께 친구와 마셨던 마티니. 오페라 하우스에서 마셨던 터키산 커피의 향과 그날 보았던 오케스트라 공연도 떠오른다.
서울시 계획을 보니, 오페라 하우스 외에도, 심포니홀(1,900석)과 오페라극장(1,500석), 다목적공연장은 물론 미술관, 야외음악공원, 조각공원, 생태노을공원, 전망카페 등을 함께 준비하여 명실상부 또 하나의 문화적 허브 공간으로 키울 모양이다.
나로서는 기쁘지 않을수 없다. 문화예술을 위한 하드웨어는 필요하다. 더구나 내가 좋아하는 건축가 박승홍의 작품이 오른다니 기대도 크다. 한국춤사위가 가진 율동미가 건축적 배면에 스며들어가게 되리라 믿는다.
문제는 하드웨어를 건설하는데 열을 올리면서 정작 오페라를 비롯, 예술향유의 기반을 이루는 기초체력을 예비하는데는 왜 이렇게 무지한걸까? 오페라 하우스를 지으면 국민 모두가 오페라를 좋아하게 되나? 천만의 말씀이다. 서울시장 오세훈은 스페인 빌바오의 구겐하임 미술관처럼 랜드마크로 만들겠다고 말한다. 하지만 오페라를 비롯 예술장르에 대한 이해와 저변확대 노력이 없이는 그저 보기에 좋은 건물로만 머물 가능성이 더크다. 그래서 이런 발언이 공허한거다.
스페인 빌바오가 구겐하임 미술관 건축 하나로만 도시 전체가 부활했다는 식의 사고는 매우 위험하다. 오세훈에게 묻고 싶다. 빌바오에 가보긴 한건가? 정치적 수사를 사용하기 전에 제발 깊이부터 갖추길 바란다. 물론 빌바오에 끼친 건축물 자체의 영향력은 엄청났다. 그러나 궁극적으로 빌바오를 키운건, 미술관 하나가 주민 자치적 동의를 끌어내고, 주민 모두가 똘똘 뭉쳐 프로모터가 되도록 하는 동기부여를 했다는 점. 구겐하임 자체가 가지고 있는 소장물의 가치가 문화적 가치를 충분히 입증하기에 관객들의 유입을 자연스레 이끌어낸점. 미술관 측도 미술에 눈을 뜨게 하기 위해 각종 프로그램을 개발하고 시민들과 적극적으로 소통했다.
S#2 Opera In Jeans |
청바지를 입고 오페라를 보러 간다면 |
나는 개인적으로 오페라를 좋아한다. 해설이 있는 오페라 프로그램에서부터 오페라의 주요 레퍼토리들은 거의 다봤다. 두 쌍의 연인들이 사랑의 내기를 하는 즐거운 드라마 <코지판 투테-번역하면 여자는 다 그래란 뜻이란다>에서 게이샤의 숭고한 사랑을 보여주는 <나비부인> 이 작품은 작년 상트 페테르부르크에서도 봤다. 스스로 신이 되려 했던 독선적인 정복자 <나부코>등 기억나는 작품이 많다.
내가 오페라를 좋아하게 된 건, 한권의 책이 큰 영향을 끼쳤다. 작고한 오페라 연출가 문호근 선생님이 쓰신 <청바지 입은 오페라>란 책이다. 심장마비로 타계한 후 사모님인 정은숙 전 국립오페라단 단장이 원고를 정리해 만든 책이다. 이 책의 장점은 다양한 오페라 작품을 일반인이 쉽게 접근할수 있도록 친절하고도 심도깊게, 그러나 연출가로서 한국적 배경속에서 어떻게 읽어가야 하는지를 고민하며 쓴 점에 있다. 이분이 쓴 책 외에도 <오페라 읽어주는 남자>에서 부터 음반평론가인 박종호 선생님이 쓴 오페라 관련책도 있으나 개인적으론 <청바지 입은 오페라>가 최고라고 치고 싶다. 신동엽의 시 금강을 가극으로 옮기고, 이탈리아어로 된 오페라 가사를 일일이 한국어로 개작하려 했던 연출가. 문호근.
서양의 것이 아닌, 우리의 가극으로 탈바꿈할때, 우리언어로 된 노래를 들을때, 더욱 친밀함을 느끼게 되지 않겠는가. 그래서 그가 그리운가 보다. 오페라를 뮤지컬 보듯, 그렇게 보러가는 세상을 꿈꾸었을 그가 보고싶다.
그의 아내였던 전 국립 오페라단 예술감독 정은숙은 그런 남편의 마음을 누구보다 잘 알았던지, 오페라의 '우리화'작업과 기초체력을 키우기 위해 필요한 것이 튼튼한 코러스와 오케스트라의 육성에 있다는 걸 누구보다 잘 아는 이였다. 오케스트라 육성이 필요하다는 점은 현 이소영 단장도 동의를 한다. (문제는 여기에 필요한 비용이 없다는 거다. 합창단원 이외에도 다른 스테프들도 함부로 해임시켰다)
17-8세기, 오페라는 연희양식의 주역이었다. 사회적 메세지를 담았고, 당대의 정치적 풍경이 그 속에 들어 있었다. 작금의 국립오페라합창단의 일방적인 해체는 우리 사회의 정치적 위기를 드러낸다. 자신이 단장으로 있을지라도, 동생이 몸담고 있는 광고사에 국민의 혈세를 지급하고, 일방적인 업체키우기에 몰입한다면, 이는 엄연히 업무상 배임혐의다. 국립오페라단의 단장으로서, 사설 오페라단 운영의 묘를 적용해선 되는 단체의 경영을 맡고 있다는 점, 새삼스레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사설 오페라단의 CEO라면 수의계약을 하건, 동생이 운영하는 업체에 해외 계약을 맡기건 문제가 안된다. 회사법적으로 유한회사이니 이런 행태는 도덕적 해이가 되지 않는다.
오페라 <나부코 중에서>
그러나 지금 당신은 국민의 혈세로 운영되는 국립 오페라단의 수장이다. 그러니 자신의 친인척을 동원하고, 사업을 확장하고, 외부청탁을 받고 연출을 하면 안되는 거다. 적어도 3년이란 기간동안은 말이다. 어떤 연출가는 <청바지를 입은 오페라>를 주장하며 한국화와 우리화에 천착하는 동안 왜 당신은 <정장입은 오페라>로 회귀시켜려 하는가? 정치적 코드에 맞지 않는, 문익환 목사의 며느리 정은숙을 '좌파' 운운하며 일방적으로 해임시킨 유인촌 장관과 자기 식구들에게 새자리를 마련하기 위해 스테프를 잘라낸 이소영 단장. 당신들은 참 많이도 닮았다. 이런 정신적 소프트웨어를 가진 자들이 연출하는 예술장르를 누가 좋아하겠나?
건물만 노들섬에 멋지게 세우면 예술이 부활하나? 오페라의 유령이 잘나빠진 건물에 살고 있던가? 연희의 기쁨을 맛보려는 인간의 영혼속에 있는 것이 아니었나? 전용 오케스트라의 필요성에 대해서 설파하던 당신이 솔로이스트의 부족한 성량을 메우고, 풍부한 무대경험으로 극의 전개와 연출을 도와주는 합창단원들을 해체하는 소이를 나는 이해하지 못하겠다.
S#3 Opera Nabucco |
히브리 노예들의 합창을 부르는 이들에게 희망을 |
작곡가 베르디의 명작 <나부코> 나부코는 성경의 느부갓네살 왕을 말한다. 거리에 내몰린 국립오페라합창단원들이 한 목소리로 부르는 <히브리 노예들의 합창>은 바로 이 오페라작품의 3막에 나온다. 유대민족들을 짓밟고 스스로 왕이 되려 했던 독선가 나부코, 그 밑에서 신음하면서도 희망을 버리지 않고 해방의 날을 기다리는 노예들의 합창이 흘러나온다.
"가라 나의 생각아, 금빛 날개를 타고 그 언덕에 날아가 앉아라. 부드럽고 향기로운 바람, 그곳, 내 사랑하는 고향땅. 요단강의 따뜻한 모래, 지금은 무너져 내렸을 시온성도 찾아봐다오. 오 조국 잃어버린 아름다운 곳. 이 가슴 아프면서도 아름다운 추억. 옛 시인들이 노래하던 악기여. 왜 말없이 나무에 걸려만 있느냐. 좋았던 옛 시절을 기억하며 조국이 자유로왔던 그때를 노래해다오. 솔로몬의 슬픈 이야기를 너의 아픈 목소리로 노래해 주지 않으면 우리는 이곳에서 주님께 지금을 이겨낼 힘을 줍시사 빌겠다!" <청바지 입은 오페라>에서 인용
정치적 억압과 고통 속에 신음하는 저 히브리 노예들의 합창. 끝끝내 희망을 버리지 않음으로서 민족의 수난을 견디고 우리를 자유케 하는 하나님이 오실거라는 믿음. 나는 오늘 거리에서 합창하는 저들의 노래에서 절망보단 희망을 볼 것이고, 그들과 함께 공감하며 막을 내릴 것이다. 꽃들에게 희망을 주듯, 독선적 지배자 나부코가 결국은 하나님의 법 앞에 무릎꿇고 저들을 해방했듯, 이 신자유주의란 허상을 쫒으며 스스로 신의 위치에 서려 하는 모든 자들에게 화 있을지니. 우리는 반드시 살아남아 목소리를 악기로 노래하는 저들에게 자유로운 해방의 날을 찾아 줄 것이다. 나는 굳건히 오늘도 믿어보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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