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rt & Healing/마음 미술관

인생을 잊는 법을 배우고 싶을 때 보는 그림

패션 큐레이터 2009. 3. 5. 17:21

 

 
김혜옥_종이배 띄우고_캔버스에 유채_41×53cm_2007

 

어린시절 종이배를 접는 법을 배우고선 참 수도 없이 접었다 폈다를

반복하며 종이배를 만들어 띄웠습니다. 동네 실개천 위에 종이배를 올려놓고

물살의 흐름에 따라 몸을 의탁하며 흘러가는 배를 보며 따라가고

멈추고. 그렇게 배를 건져내곤 했지요.

 

며칠 전 종이를 자르다가 날카로운 종이끝에

손을 베었습니다. 붉은 선혈이 꽤 흐르다가 멈추었는데

문제는 그 자리가 꽤 시간이 지나도 아물지를 않습니다. 아무래도 철분

부족인가 혹은 상처를 치유하는 효소가 부족하다고 그러는데

제 안에 있는 아픔을 설명하는 혀처럼, 쉽사리 가라앉질 않네요.



김혜옥_종이배 띄우고_캔버스에 유채_80×130cm_2003

 

미싱을 배우면서 한두번 손을 찍기 마련입니다.

생각보다 기계치인 저는 초기 꽤나 여러번 손을 찍히곤 했는데

그럴때마다 함께 봉제를 배우는 사람들의 반응이, 영 시원찮다는 식의

눈이 많았죠. 누구나 한번쯤은 이란 식의 눈빛입니다.

그렇게 시간이 흘러가며 익숙해집니다.

 

비록 삶은 남루하고 그 비루함을 기우기 위해

지금 인생의 한 부분을 장식할 시간의 벽돌 위에 잠금장치를

하고 있다 해도, 누구나, 바로 지금 시간의 흐름 앞에 당당할 수 있는

사람은 없습니다. 흘러간다는 것은 그렇게 무섭습니다.

그러나 흘러갈수 있기에, 잊으라고 말합니다.

잊을 수 있기에 삶은 가벼워집니다.



김혜옥_종이배 띄우고_캔버스에 유채_53×72.7cm_2007

 

오랜동안 누드 크로키를 해온 작가 김혜옥은

이전과 달리 종이배를 선택해, 강물위에 띄우고 이를 그림으로

그려냅니다. 인사아트센터에서 전시할 때, 그림을 보러 갔다가 작가를 한번

뵌적이 있습니다. 그때는 그림을 그려온 이력에 대해 별로 알지 못하던

상태라, 작가가 불렀던 그림값이 좀 비싼게 아닌가 싶었더랬죠.



김혜옥_종이배 띄우고_캔버스에 유채_50×72.7cm_2006

 

살아가면서 누군가를 떠나보내고 또 누군가를 받아들입니다.

그 과정은 반복되고, 알알이 차오르는 따스한 색실처럼 인생을 자수놓지요.

김혜옥의 그림은 꽤나 그런 점에선 명상적입니다. 작가 자신은 스토리텔링이 있는

그림을 그리고 싶었다던데, 그 이야기는 보는 자의 몫을 뿐, 사실 함께

나누기엔 비루하거나 아프거나, 혹은 환희의 연두빛으로

가득할지는 그 자신만 알 뿐입니다.



김혜옥_종이배 띄우고_캔버스에 유채_41×60.6cm_2006

 

세월이 가면서 참 좋은 것은

잊어야 할 것은 잊을 수 있는 용기와 지혜

기다림 같은 미덕을 배우게 되는 것입니다. 간절히 바란다고

이루어진다는 생각. 그 또한 무섭습니다. 이루어지지 않을 때, 내가 이렇게

정성을 들이는데, 왜 시운이 따르지 않는가 하고 한탄해 보지만 이 또한 다음에 선물로 줄

생의 큰 선물을 위해 포장지위에서 떼구르르 구르고 있을지모를 희망의 연대기라고

믿어버리면 힘이나고 풀이 죽지 않습니다. 생을 통해 배운 사실이지요.




김혜옥_종이배 띄우고_캔버스에 유채_41×60.6cm_2005

 

소금처럼 환하게 햇살 아래 빛나는 상처를 가진 당신

이제 저 종이배에 인생의 시름을 담아 강물위에 흘려보내십시요.

흘려보내면 다시 돌아옵니다. 그러나 그 회귀의 시간엔 이미 상처는 아물고,

새로운 선물을 받게 될 것입니다.



김혜옥_종이배 띄우고_캔버스에 유채_130×97cm_2006

 

영혼의 솔기선을 곱게 오늘도 마장하며

이렇게 여러분에게 예쁜 그림 편지 한장을 띄웁니다.

그녀의 종이배를 바라보면서, 최근 실수로 놓쳐야 했던 계약건과

문서상의 잘못들을 다시 되돌려놓아야 했습니다.

물론 금전적인 손해도 조금 보았습니다.

 

그래도 괜찮습니다.

오늘도 이렇게 배우니까요. 살며 사랑하며

배우며, 성장하는 우리의 삶이, 매일 매일 종이배를 띄움으로써

하얗게 표백된 세탁물, 잘 널어 말린 후 출근길에 입는

행복처럼, 잊으며 또 새로 시작해 보는 것입니다.

 

삶을 그렇게 시작됩니다.....힘을 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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