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rt & Healing/마음 미술관

사춘기 소녀들을 위한 그림-내 안에 있는 오필리어 되살리기

패션 큐레이터 2009. 3. 3. 17:12

 

 

  

존 에버렛 밀레 <오필리어> 1851년, 캔버스에 유채, 런던 테이트 미술관

 

오늘의 주제는 세익스피어의 비극<햄릿>의 여주인공 오필리어입니다. 미술작품에 대한 설명보다, 오필리어란 존재가 현대에 어떻게 적용될 수 있는지를 살펴보려고 합니다. 라파엘 전파의 소속된 화가 존 에버렛 밀레가 그린 <오필리어>의 모습을 보세요. 사랑했던 햄릿이 자신의 아버지를 죽이자 격분을 참지못해 미쳐버린 오필리어는 자살을 선택합니다. 밀레의 그림은 서서히 물속으로 잠겨가는 그녀의 비극적 죽음을 다루고 있습니다. 오필리어는 여배우들의 로망입니다. 비련의 여주인공을 대표하는 역활이기도 하죠.

 

 

알렉상드르 카바넬 <오필리어> 1883년 77x117.5 cm 캔버스에 유채, 개인소장

 

연극을 공부하던 시절, 3학년 때 주요 워크샵 작품으로 세익스피어를 준비합니다. 제 팀은 브레히트의 작품을 했지만 세익스피어를 하면 하나같이 여학생들은 자신이 오필리어를 맡아야 한다고 주장하는 걸 봤습니다. 왜 그렇게 여자들은 비련의 여주인공을 맡고싶어하는 것인지 궁금하기도 했지요. 오필리어는 사랑받고 싶어하는 존재의 상징입니다. 햄릿의 우유부단함과 사랑에 대한 회의적 태도로 인해, 자신의 사랑이 받아들여지지 않는다는 걸 알고 좌절하지요.

 

여성에 대한 편견이 많은 사회에서 남자는 편견을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이기 쉽습니다. 자신에게 다가오는 사랑도 그 편견의 벽과 프리즘을 통해 걸러내다 보면, 진정한 사랑을 얻기 어렵습니다. 햄릿과 오필리어의 사랑은 바로 그런 이중적 면모를 심리적으로 묘사합니다. 고전주의 작가 카바넬이 그린 오필리어는 비극적 측면을 드러내는 그림 같진 않습니다. 정교한 사진 같은 느낌이 들더군요.

  

 

존 워터하우스 <오필리어> 캔버스에 유채, 1889년, 개인소장

 

1990년대 초반 메리 파이퍼란 심리학자가 <오필리어 되살리기>란 책을 썼습니다. 사춘기에 접어든 소녀들의 자아를 되살리는 것이 곧 우리 안에서 자살한 오필리어를 되살리는 것이라고 주장합니다. 즉 사춘기에 접어든 소녀들은 두가지 측면에서의 이해가 요구된다는 점입니다. 첫째 정체성의 불안과 삶의 당혹스런 면모와 대면하게 되고, 두번째로 신경질적이고 불안정한 사춘기의 측면이 타인의 비위를 맞추고 동조하는 심리 속에서 함께 소비된다는 것입니다. 즉 후자를 이루는 과정에서 정체성의 혼란과 상처에 직면하게 된다는 것이죠. 한 마디로 엄친딸이 되어야 한다는 책임감과 더불어 불안정한 자아들, 성에 대한 호기심, 약물중독의 위험에 노출된 자신을 관리해야 하는 이중의 무거움이 있습니다.

 

 

 애니 오벤든 <오필리어> 1970년, 91.5cm x 76cm

하드보드에 유채, 브리스톨 미술관 소장

 

애니 오벤든이 그린 <오필리어>는 매우 정교합니다. 자연주의 화풍을 따르는 현대작가인데, 이제 막 자살하기 직전의 오필리어를 그렸지요.개인적으로 오벤든이 그린 오필리어가 가장 외양의 묘사가 정확하다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창연한 이끼들이 가득하게 끼어있는 오랜 숲의 정경과 백색의 슈미즈, 검정색 벨기에산 숄을 걸친 오필리어의 모습이 고혹적이기 까지 하네요.

 

폴 앨버트 스테크

<물속으로 가라앉는 오필리어>

60 x 98 cm  캔버스에 유채, 1895년

프랑스 프티팔레 박물관 소장

 

좌절은 사랑과 관계맺기, 사랑받고자 하는 이로부터의 홀대 등 다양한 요소들이 묶여 있습니다. 우리는 어떻게 상처받은 오필리어를 되살릴 수있을까요? 미국의 펜실베이나에선 <오필리어 프로젝트>란 비영리 단체가 만들어지기도 했습니다. 현재도 활발하게 운영되고 있는데, 그 목적은 사춘기 소녀들을 관계상의 폭력과 억압으로 부터 구하고 상처를 치유하는 것입니다.

 

여성에 대한 편견이 많은 사회는 여성으로 하여금 여장남우, 여성으로 분장한 남자로서 살아가도록 압력을 가하고, 이것이 여성의 정신적 성장에 영향을 미친다는 것이 책의 결론이었는데, 사실 이 책도 95년도에 나온 책이다 보니 <알파걸>에서는 이 책의 내용을 완전 180도 뒤집는 주장을 합니다. 최근 여학생들의 성장수치와 성취수치가 더 이상 그때와 다르다는 것이죠.

 

왼편에 보시는 그림은 19세기 프랑스 화가 폴 앨버스 스텍이 그린 <물속으로 가라앉는 오필리어>입니다. 별 내린 창님이 보신 그림이 바로 이거 같은데, 아쉽게 이미지 상태가 좋은 그림이 없네요. 파리 프티팔레 박물관에 소장되어 있긴 한데, 제가 가지고 있는 프티팔레 박물관 대형 도록에도 이 그림이 없어서 아쉽습니다. 수면속으로 가라앉는 오필리어의 모습이 잔혹함을 토해냅니다.

 

관계맺기의 어려움을 호소하는 데는 성차가 없습니다. 소년들도 동일하게 아픔을 경험합니다. <오필리어 되살리기>가 베스트 셀러가 되자 <오필리어로 살아남기>란 책도 나옵니다. 이 책은 엄마의 관점에서 쓰여진 책입니다. 사춘기 소녀를 가진 엄마의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마음을 인터뷰를 통해 정확하게 지적하고 있지요. 구속하되 일정선을 지키며 놓아주어야 하는 책임을 지는 엄마또한 이러한 정신의 경험에서 자유롭지 못합니다.

 

사춘기 중학생과 고등학생 때 우울증이 많이 시작됩니다. 우울증의 증상이 이제 성인의 증상과 비슷하지요. 흥미 상실, 무감각, 주의 산만, 자살에 대한 생각, 자살 기도 등이 자주 나타나며 가면 우울의 증상을 보이는 일이 많습니다. 문제는 이런 아픔을 엄마도 동일하게 겪는 다는 것입니다.

 

 

오딜롱 르동 <오필리어> 1900-1905년, 종이에 파스텔, 우드너 컬렉션

  

떠나고 싶은 자 떠나게 하고 잠들고 싶은 자 잠들게 하고 그리고도 남는 시간은 침묵할 것. 또는 꽃에 대하여 또는 하늘에 대하여 또는 무덤에 대하여 서둘지 말 것 침묵할 것 그대 살 속의 오래 전에 굳은 날개와 흐르지 않는 강물과 누워있는 누워있는 구름, 결코 잠깨지 않는 별을 쉽게 꿈꾸지 말고 쉽게 흐르지 말고 쉽게 꽃피지 말고 그러므로 실눈으로 볼 것 떠나고 싶은 자 홀로 떠나는 모습을 잠들고 싶은 자 홀로 잠드는 모습을 가장 큰 하늘은 언제나 그대 등 뒤에 있다 -강은교의 <사랑법>

 

강은교의 시를 읽으며 구속과 풀어줄 때의 지혜를 익혀봅니다. 상징주의 화가 오딜롱 르동이 그린 오필리어는 푸른 몽환의 물빛 아래로 잠겨드는 노랑색 꽃의 형상을 닮았습니다. 결국 상처를 치유하고 사춘기 소녀들을 감싸안을수 있는 것은 부모 스스로 아이에게 자기 존중감을 줄수 있도록 내 아이에 대한 일종의 편견들을 버리는 것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햄릿에서 그 편견이 사랑의 길을 막았듯, 우리 아이에 대해 내면으로만 키워가는 편견의 벽이 있다면 이제는 허물어 버리세요.

  

  

니콜 카바잘 <오필리어의 의심> 1998년 캔버스에 유채, 개인소장

 

네덜란드 출신의 화가 니콜 카바잘이 그린 <오필리어의 의심>을 보다보면 시적인 맥락과 문학적인 현실을 이렇게 굵은 선으로 명확하게 그려내는지 놀랍습니다. 그녀는 항상 그림 속에서 여성성의 문제를 다루고 있지만 그에게 있어 재현은 여성이 보여지는 존재이기 전에 그녀 또한 남성을 바라보는 존재임을 명확하게 각인시키죠. 색채사용을 통해 의미의 균형을 잡아간다는 그녀의 그림 속엔 수면위로 머리를 낸 채, 죽음의 의미에 대해 의심하는 모델이 보입니다.

 

그는 꽃의 운명처럼 명멸하는 인간의 삶을 그리고 싶었고, 이를 위해 꽃과 잎파리를 그립니다. 그에게 자연은 출산의 상징이자 불확실성의 상징입니다. 화면 속 짙은 군청색 숲은 삶에 대한 위협을 의미하지만 그녀를 덮는 넓은 이파리들은 희망을 의미합니다. 사춘기 소녀의 삶도 그림 속 오필리어의 모습처럼 항상 의심하고 생의 무거운 진실 앞에서 버거워 하지만, 청록빛 잎들이, 유연한 물빛 잔영위를 떠돌며 당신을 껴안을 준비를 하고 있다는 것을. 그만큼 세상은 당신에게 호의적인 곳임을 잊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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