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fe & Travel/나의 행복한 레쥬메

월간 여성조선 3월호에 인터뷰 기사가 나왔습니다

패션 큐레이터 2009. 2. 27. 04:41

 

 
김홍기는 한마디로 정의하기가 어려운 남자다. 그러기엔 관심의 폭이 너무 넓고, 좋아하는 것들이 너무 많기 때문이다. 물론 이런 평가는 상대적일 수밖에 없다. 어떤 이는 ‘그림 읽어주는 남자’라 부르고, 어떤 이는 ‘국내 패션큐레이터 1호’라 하고, 어떤 이는 ‘삼촌’ 정도로 가볍게 부르니까. 그는 지난해 봄 『샤넬, 미술관에 가다』란 책을 낸 뒤로 꽤 주목을 받았다. 330쪽이 넘는 이 책은 미술을 통해 본 패션 이야기를 담고 있다. 그는 패션디자이너 코코 샤넬로 분해 빅토리아 시대(1837~1901년)로 돌아갔다. 당시 그림을 주제에 맞게 분석하면서 패션과 문화, 시대상에 얽힌 이야기를 흥미진진하게 풀어냈다.


로코코 시대의 복식과 빅토리아 시대의 귀족 초상화에서 현대식 이브닝드레스를 재발견했고, 신고전주의 시대 그리스풍 의상에서 오늘날의 시스루 룩과 슈미즈 룩을 읽어냈다. 19세기 초 앵그르가 그린 카롤린 리비에르의 초상화를 본 독자라면 시폰 소재로 된, 속이 은은히 비치는 시스루(See-through) 룩의 원형을 발견하고 ‘패션도 돌고 도는 유행’이란 말을 실감했을 것이다.

제임스 티소의 그림에서 빅토리아 시대 파리지엔의 패션을 읽으려면 웬만한 내공으로는 부족하다. 참고문헌 목록에 가득한 원서와 논문들로 봐선 미술사 전공자나 복식사가가 쓴 글 같지만, 책날개의 재미난 약력을 읽고 나면 생각이 바뀐다. 김홍기는 마니아다. 끊임없는 열정으로 좋아하는 일을 탐닉해 전문가가 되었다. 너무 깊이 빠져 남들에게 이야기를 하지 않고는 못 배기는 남자! 어쨌거나 미술과 패션을 아우르는 ‘복식사’가 그의 관심을 대변하는 키워드임에는 분명하다. 

 

 

패션디자이너의 꿈을 간직한 어린 소년

김홍기는 패션, 미술과는 거리가 먼 학과를 나왔다. 그는 경영학을 전공했다. 멀리 캐나다로 건너가 MBA 과정을 이수했으니 말 다했다. 초등학교 때 우연히 엄마 손을 잡고 따라간 앙드레김 패션쇼에 푹 빠져 일찌감치 패션디자이너로 인생의 목표를 정했지만, 성적으로만 진학이 결정되는 이 나라 교육 시스템과는 궁합이 맞지 않았나보다.

그는 부모의 반대를 무릅쓰고 의상학과에 지원했다 두 번이나 떨어졌다. 세 번은 안 되겠다 싶었는지, 방향을 살짝 틀어 배우가 될 생각으로 동국대 경영학과에 턱걸이로 들어갔고, 영화를 복수전공하면서 열공했다. 패션에 대한 열정을 주체 못해 28명의 여학생들 틈에 끼어 봉재와 피복 재료학, 복식 의장학 같은 가정과 수업을 듣기도 했다. “졸업 시즌에 신세계 공채 포스터를 보고 지원했어요. ‘십 년 후에도 여전히 튄다는 말을 듣고 싶다’는 문구에 끌려서 지원했죠. 전 패션 구매 파트에 들어가서 아동복을 담당했어요. 제가 좋아하는 일이기도 하고, 시장과 트렌드를 살피고 디자이너를 상대하는 일이다 보니 소재 분석과 디자인, 패션 이론 쪽에 두루 공부를 해야 했죠.”


그는 영화든 연극이든 미술이든 무용이든 가리지 않고 섭렵했고, 좋아하는 분야를 깊이 파고드는 외곬 기질이 있었다. 1998년에는 역삼역에 있는 퀼트하우스를 찾아 한국에 딱 두 분이라는 고재숙 선생에게 열 달간 퀼트를 배운 적도 있다. 이는 작은 예에 지나지 않는다. 포털사이트 다음에 ‘김홍기의 문화의 제국’이란 블로그에 들어가 보면 그 방대한 자료와 텍스트에 입을 떡 벌리게 된다.

“인터넷 블로그가 처음 시작된 1997년부터 블로깅을 했어요. 초기에는 사진은 안 되고 단순히 글을 써서 올리도록 돼 있었죠. ‘문화의 제국’은 오시마 나기사 감독의 <감각의 제국>이란 영화에 감명을 받아서 붙인 제목이에요. 하루하루 일기 쓰듯 제가 보고 느끼고 체험한 것들을 올리기 시작했죠.” 그러나 직장생활은 순탄치 않았다. 일도 일이지만, 얽히고설킨 인간관계의 실타래를 풀기가 너무 힘들었다. 스트레스를 먹고 자란 살들이 그를 압박했고, 사직서를 내지 않고는 못 배길 만큼 정신적으로 괴로웠다. 그는 회사를 그만두고 잃어버린 건강과 문화적 감수성을 되찾기 위해 뉴질랜드로 무작정 여행을 떠났다. 그곳에서 빙하를 세 번이나 탔고 번지점프를 열두 번이나 했다. 또 새벽 6시에 시작하는 발레 수업을 들으며 2시간 동안 춤을 췄다.


지방을 태운 자리에 뭉친 근육들이 생겨났고, 계곡으로 낙하한 육체가 하늘로 튀어 오르며 죽음의 고통이 생의 환희로 치환되는 경험을 했다. 그는 정신적으로 육체적으로 구원받았다. 피터 잭슨이 <반지의 제왕>을 찍기도 전에 뉴질랜드의 자연은 그에게 ‘절대 건강’의 반지를 선물했다. 그리고 1년 뒤에 귀국했다.

 

미술을 통한 복식사 연구에 탐닉하다

예전의 탄탄한 몸매를 되찾은 그는 연세대 경영대학원을 거쳐 캐나다 브리티시 콜롬비아 대학에서 MBA 과정을 이수했다. 세계 어디를 가든 박물관과 미술관을 돌며 도록과 원서를 사는 데 돈을 아끼지 않았다. 특히 유학 준비를 위해 아일랜드를 여행하던 중 복식사가 앤 홀랜더가 기획한 ‘Fabric of Vision’이란 전시를 보고 큰 충격에 빠져 미술을 통한 복식사의 재조명을 평생 화두로 삼았다.


“지금 하는 일은 여러 가지예요. 본업은 해외 마케팅 전략가로 일하고 있죠. 또 화요일 아침에는 원음방송의 라디오 프로그램에서 북칼럼니스트로 활동하고 있고, 상상마당 웹진에도 정기적으로 글을 기고하고 있어요. 주로 평일에는 영화를 보고, 오늘 같은 주말에는 미술관 순례를 다니거나 연극, 무용 같은 공연을 보러 다니죠. 블로깅은 일상이고요.” 지난해 책을 낸 뒤로 이름이 꽤 알려져 대학이나 문화센터에 강의를 나가기도 했고, 출판 제의도 많이 받고 있다. 어쨌거나 복식사에 대한 그의 관심은 지금도 여전하며, 대학 3학년 때부터 해온 미술품 수집가로서의 안목은 더 넓고 깊어졌다. 돈이 많든 적든 관련 자료 수집에 열을 올렸고, 업무 차 해외에 나갈 때도 시간과 경비를 쪼개어 그 나라의 박물관과 미술관을 들락거리고 있다. 그리고 올해 초 『하하 미술관』이란 두 번째 책을 냈다. 전작 『샤넬, 미술관에 가다』가 하드록에 가깝다면 이번 책은 따스한 감성을 지닌 포크록에 가깝다. ‘영혼의 여백을 따듯이 채워주는 그림치유 에세이’란 소개에서 보듯, 화가 28인의 그림을 통해 작가가 받은 마음의 위로와 치유의 경험을 들려주고 있다.


“고인이 된 조각가 구본주 씨를 빼고는 몇 년 안에 발표된 국내 작가의 신작들 위주로 소개했어요. 그동안 미술 전시회를 찾아다니고 작가들과 개인적인 친분을 쌓으면서 보고 느낀 점들이 담겨 있죠. 제 마음속에 깊은 인상을 남긴 작품들을 다른 분들에게도 전하고 싶은 마음이 간절했어요.”

 

 

인터뷰 했던 게이트 갤러리 I LOVE GATE 展 전시작품들

 

영혼을 치유하는 그림읽기의 행복
『하하 미술관』에는 아시아 미술 시장에서 각광받고 있는 권경엽, 2008 정헌메세나 재유럽 청년작가상 수상자인 홍일화, 국내 만화학 박사 1호인 이순구, 한국화의 미래를 이끌어나갈 기대주였으나 2007년에 요절한 주정아 등 28명의 작품이 실려 있다.
박재영의 ‘올 그려가기’ 연작에서는 한 올 한 올 고리를 엮은 스웨터에서 인간이 관계를 맺는 원리를 들려주고, 이순구의 ‘웃는 얼굴’ 연작에서는 고된 인생사를 긍정으로 변화시키는 웃음의 힘에 주목한다. 여행을 주제로 많은 그림을 그린 전영근의 작품은 보고만 있어도 기분이 좋아지고, 아줌마를 주제로 찍은 이인청의 셀프 사진들은 주부의 일상과 로망을 한눈에 보여준다.


“어떤 선입견 없이 제가 좋아하는 작품들을 고르고, 작가들의 동의를 얻어서 책으로 엮었어요. 십 년째 일기 쓰듯 블로그에 글을 올리면서 정말 많은 사람들과 작가들을 만났고, 제 삶과 영혼이 윤택해지는 걸 느꼈죠. 이런 감정들을 서로 나누고, 제가 만난 좋은 작가들의 작품을 더 많은 분들께 알리고 싶었습니다.”

 

 

 

게이트 갤러리 조미영님 작업 (개인적으로 하하 미술관에 넣지 못해 너무 아쉬웠던 작품)


그는 블로그를 통해 오래전부터 이 일을 실천해오고 있다. ‘김홍기의 문화의 제국’은 누적 방문자 수가 480만을 넘었고, 하루 방문자만 7000명에 이른다. 포털 메인에 기사가 뜨는 날에는 댓글만 1500개가 달린 적도 있다. 그는 댓글에 댓글을 달며 사람들과 소통하는, 보기 드문 블로거다. 김홍기는 콕 집어 말할 수 없는, 넓디넓은 관심의 스펙트럼을 가지고 있다. 분광기를 빠져나온 여러 빛깔을 정제해 책의 지면으로 세상 사람들과 소통을 시도하고 있다. 세상과 소통하는 수단이 하나 더 늘었단 뜻일 뿐, 관계 맺기를 갈구하고 예술적 감성을 공유하고 싶어 하는 마음에는 변함이 없어 보인다. 그래서인지 김홍기의 제국에는 대문도 울타리도 없다. 난롯불이 꺼진 옥탑방에서 펜을 입에 물고 시상을 잡아가는 ‘가난한 시인’의 그림이 벽에 걸려 있고, 누군가 옆에서 이 모습을 가만히 지켜볼 뿐이다. 낯익은 웃음을 입에 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