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정아_너의 삶, 권리 있다_캔버스에 아크릴채색_112.1×145.5cm_2008
한 권의 책을 꺼내들었다. 이순원의 장편소설『우리들의 석기시대』독재자와 통일주체국민회의, 캠퍼스의 프락치가 국민을 향해 돌을 던지던 사회. 90년대 초 군사독재 하, 절반의 낭만과 절반은 울분으로 법학개론과 경영학원론을 팔아 막걸리를 마시던 우리들의 모습. 2009년은 그때와 비교해 얼마나 변한 걸까. '우리들의 석기시대' 는 70년대 후반기 독재에 저항하며 비상을 꿈꾸던 젊은이들의 모습을 곡진한 필체로 그렸다. 남학생은 누구나 '갈매기의 꿈'을 읽었고 여학생은 누구나 '꽃들에게 희망을'을 읽었던 시절.
질식할 것 같은 시대환경에 저항하는 민중가요가 등장하고 누군가 나선 자에 대해 공통적으로 죄의식을 느꼈던 대학생들의 양심. 그때를 기억하는 이들은 과연 몇명이나 남아 있는가. 붉은페인트로 채색된 '방공방첩'의 글자. 20대의 낭만과 좌절은 투석전으로 국가의 폭력에 대항했다. 그 시절을 작가는 '석기시대'라고 부른다.
방정아『안 보이는 사람』캔버스에 아크릴97.0×162.2cm_2008
우리사회는 지금 또 다른 '석기시대'를 맞고 있다. 그 석기시대를 이끄는 수장 '석기'의 거취도 사못 궁금하다. 용산참사를 폭력시위로 변질시켜 여론을 호도하려는 조중동은 의제설정을 주도하던 과거의 영화를 찾지 못한 채 깨끗하게 속살이 발렸다.
청와대는 용산참사의 책임을 철저하게 철거민에게 떠맡겼고, 여론은 폭력시위에 대한 법질서 확립으로 향해가고 있다는 뻐꾸기만 날렸다. 문제는 날아간 뻐꾸기가 돌아오지 않고 있다는 점이리라. 도대체 대통령이 읽고 있다는 여론조사는 어디에서 수행한 걸까.
밤무대에 청춘을 바친 무명가수 오동춘의 빤짝이 수트. 재개발 예정지의 뒷골목을 어슬렁거리는 밤무대 가수의 풍경에서 하나씩 지워져가는 사람들의 모습을 본다. 작가 방정아의 그림 속 재개발 판자촌엔 삶의 권리를 말해 보려 발버둥치는 사람들이 있다. 문제는 그 목소리가 말소되고 있다는 점이고, 우리들의 눈에 '안보이는 사람'으로 변질되어 버렸다는 것이다.
방정아 '재개발지역의 오동춘씨' 캔버스에 아크릴, 2008년
경찰들의 자기 모순은 여러군데서 드러난다. 이미 용역업체와 함께 진압작전을 한 사실은 언론에 노출되었고, 이에 대해서도 철저하게 거짓말로 일관했다.
김석기 청장의 경찰 특공대 투입 승인도 보고만 받았다고 거짓말을 했다가 들통이 났다. 경찰이 비호하는 정권과 시민과의 대항은 석기시대로 되돌아갔지만, 옳바른 정보를 보고 판단할 수 있는 주체는 바닷물의 입자수만큼이나 늘었다.
경찰특공대의 홈페이지는 개편을 이유로 '교묘하게 문을 닫은 상태'이고 이에 대한 구질구질한 경찰측 변명도 가관이다. 현직 경찰관으로서 주변의 따뜻한 이야기만 하겠다던 블로거는 어용 블로거로 판명나서 인터넷 여론의 뭇매를 맞고 있고, 50대 경찰관의 평범한 아내의 말을 운운하며 순수한 국민의 입장을 말하겠다던, 어쭙잖은 수필문학가 또한 뭇매를 맞았다.
입장이란 것이 얼마나 천양지차일 수 있는지 모르는 바 아니다. 검찰의 수사결과야 청와대의 입맛대로 조율된 채 발표되겠지만, 그렇다고 석기시대를 유발시킨 '석기'의 죄가 경감되는 않는다. 진압과정에서 규정을 완벽하게 어겼고, 관리책임조차도 물지 않는 정권은 경찰의 사기를 운운하며 유임설을 내세운다. 그 바탕에는 곤봉으로 국민을 때려잡아 줄 충견이 필요하다는 자체 분석이 있다고 보여진다.
이용재_장미_합성수지_310×510×180cm_2008
이용재의 작품을 보다가 눈물을 흘렸다. 도시 재개발 현장을 돌아다니며,
쫒겨나고 말소된 사람들의 검은 눈물을 보았다던 작가는 합성수지로 검은 장미를 만들었다.
가식적인 웃음조차도 이제는 화려한 사치가 되어버린 사회. 검은 눈물 위로 마천루의 높은 빌딩들이 세겨져 있다.
5명의 인명을 잔혹하게 학살한 정권은, 추모하기 위해 모인 이들을 향해서도 물대포를 쏘았다. 법질서를 훼손하는 자 누구인가?
바로 경찰이다. 더 이상 국민들은 경찰은 믿지 않는다. 용산참사는 권력의 충견이 되려 했던 경찰이 '과유불급'의
죄를 넘어 광견이 되어버린 사건일 뿐이다. 작가가 만든 장미의 꽃잎파리에선
위로와 상처를 다듬어가는 눈물이 흐른다.
도시의 빈번한 재개발과 재건축으로 인해 도시의 변두리로 추방된 원주민들,
치열한 생존경쟁에서 밀려나 바닥인생으로 전락한 노숙자들, 저마다의 아픔과 상처를 내장한채,
대지위에 쏟아진다. 도시의 눈물을 통해, 부동산 공화국의 정체성 상실과 풍요 속에 죽어가는 우리들의 양심,
죽어가는 도시적 생태의 아픔을 검은 장미를 통해 보여준다.
이용재展_2008
꽃이 흘리는 눈물에는 무엇이 담겨 있을까?
무심한 풍경 속에 감추어져있는 서민들의 눈물, 빼앗긴 자의 한이
그 속에 담겨 있지 않겠는가? 이제 서민은 없고 오로지 가진자의 배를 불리고 또 불리기
위해 선연히 피어날 인간의 꽃을 꺽는 것은 죄악이다.
이용재_장미부분
식물 생태학을 공부하다 보면 한가지 배우는 사실이 있다.
식물과 꽃도 똑같이 독을 내뿜는다는 사실이다. 외부의 환경에서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 해충으로 부터 자신을 지키기 위해 독을 품는다. 사람들은 식물이 고통을
경험한다는 사실 조차도 모른다. 무생물이라고 표현하는 무식한 이들도 있다.
지금 이 땅의 국민들이 검은 장미가 되어 피고 있다. 우려할 수준이다.
이용재_연잎_가변설치 합성수지_2008
『우리들의 석기시대』를 2009년에도 재현시킨 이는 누구인가
그 석기시대의 중심에 서 있는 '석기'씨에게 나는 묻는다. 이제 용산참사로 빚어진
국민의 눈물은 검정색이 되어버렸다. 정권의 속성에 따라 철저한 광견이 되어버린 당신들을 위해
꽃은 저항한다. 당신들은 그 꽃을 꺽을수 있을 진 몰라도 먹진 못할 것이다.
그랬다간 검정독으로 인해 온 몸이 검푸르게 변하게 될테니 말이다.
그리고 김석기 청장에게 고마움을 표한다.
당신이 새롭게 부활시킨『우리들의 석기시대』를 통해 다시 한번
앞서 나간자들에 대해 공통된 죄의식을 갖고 양심을 벼릴 수 있는 기회를 주어서 말이다.
석기씨! 우리 한번 석기시대를 즐겨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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